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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의 풀무질과 붉은 쇳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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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지배하는 천조산의 밤은 깊고도 시렸다. 전날 밤 대지를 적셨던 폭우는 끈적한 밤안개로 화하여 험준한 산맥의 골짜기마다 귀신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터덜, 터덜.


외다리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추공(秋公)의 숨결은 단전 속에서 타오르는 화독(火毒)에 그을린 듯 뜨거웠다. 낮 동안 대연무장에서 마유신의 철사수 압력을 견뎌내며 심장 고동을 억지로 늦췄던 대가는 가혹했다. 단전 깊은 곳에서 기경팔맥을 타고 역류하는 양명경(陽明經)의 열기가 오른쪽 허벅지 잘려 나간 경맥의 단면을 칼로 후벼 파듯 찔러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핏물이 치솟았으나, 추공은 어금니를 악물며 그것을 삼켜냈다.


오른쪽 다리에 있어야 할 목제 기계 의족(木製 機械 義足)은 지금 그의 등 뒤에 메어둔 낡은 삼베 자루 속에 분해된 채 들어 있었다. 폭우 속에서 김쌍도를 처단할 때 가해진 물리적 충격과 빗물의 유입으로 인해 내부의 백련강(白鍊鋼) 스프링이 뒤틀리고 톱니가 어긋나 버린 탓이었다. 지금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손에 쥔 녹슨 무쇠 빗자루(鏽鐵帚)뿐이었다.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대지를 짚을 때마다 둔탁한 파공음이 안개 속으로 흩어졌다.


추공이 향하는 곳은 천조산 정상 부근, 수십 년 전 철광석이 고갈되어 버려진 폐광 동굴이었다. 일반인들은 무너질 위험이 있다며 접근조차 꺼리는 음산한 사지(死地). 하지만 그 깊은 지하 깊숙한 곳에는 과거 천조종(天照宗)의 신병이기를 독점 주조하던 외문 장인, 은둔 대장장이 허대수(許大秀)가 숨어 살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매캐한 유황 냄새와 그을음 향이 안개를 뚫고 코끝을 찔렀다. 동굴 내부로 한 걸음씩 절뚝거리며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 저편에서 은은하고 붉은 화광(火光)과 함께 대지를 흔드는 둔탁한 쇠매질 소리가 들려왔다.


깡! 깡! 깡!


일정한 박자로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는 단순한 제련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강철심공(鋼鐵心功)의 내력이 실린 묵직한 기운의 파동이었다. 추공이 마침내 동굴 가장 깊은 공동에 들어섰을 때, 붉게 달아오른 화로 앞에서 거대한 무쇠 망치를 휘두르던 거구의 사내가 망치질을 멈추었다.


숯검댕이 가득 묻은 가죽 앞치마를 두른 50대 사내, 허대수였다. 그의 호랑이 같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허대수는 추공의 초라한 하급 문지기 무복과 허전하게 묶인 오른쪽 바지춤을 거칠게 훑어보더니, 이내 손에 쥔 천년 한철 망치를 고쳐 잡으며 살기를 뿜어냈다.


“누구냐. 이곳은 사파의 사냥개들이 발을 들일 곳이 아니다. 당장 꺼지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네놈의 머리통을 쇠찌끼로 만들어 주마.”


추공은 대답 대신 품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윽고 꺼내든 옥빛 물건을 허대수의 눈앞에 고요히 치켜들었다.


붉은 화로 불빛을 받아 기이하게 빛나는 물건. 그것은 해와 달의 문양이 교차로 새겨진 천조종 장문인의 신물, 일월인(日月印)이었다.


“……!”


허대수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망치가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허대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추공의 발밑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거친 손이 떨리며 일월인을 향해 뻗어왔다.


“이, 이것은…… 장문인 선조의 일월인……! 그렇다면 소협이 정녕 장문인 추만강 대협의 적장자이신 추공 소협이십니까?”


“그렇소, 허 숙부. 가문이 멸망하던 밤, 스스로 다리를 부러뜨려 살아남은 못난 후손이외다.”


추공의 담담한 목소리에 허대수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그는 숯검댕이 묻은 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흐느꼈다.


“아아, 장문인 대협이시여……! 살아계셨군요. 소인이 무능하여 가문이 찬탈당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이 늙은 목숨, 이제야 장문인 가문의 대통을 뵙게 되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울음을 그치시오, 숙부. 원수들의 목을 베기 전까지 가문의 눈물은 사치요. 지금 내 밤의 다리가 손상되었으니, 천조산 한철(千照山 寒鐵)과 백련강을 풀무질하여 내부 스프링을 보수해 주셔야겠소.”


추공이 메고 있던 자루를 풀어 손상된 목제 기계 의족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허대수는 눈물을 훔치며 정교한 의족의 구조를 세밀히 살폈다.


“의족 내부의 백련강 스프링이 폭우 속 격렬한 도약력의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미세하게 뒤틀렸군요. 이 상태로 내공을 주입했다간 무릎 관절 전체가 으스러졌을 것입니다. 소협, 내 오늘 밤 천조산 깊은 폐광에서 캐낸 한철을 녹여 그 어떤 충격도 견뎌낼 불괴의 스프링을 다시 주조해 드리겠습니다!”


허대수가 거구의 몸을 움직여 풀무를 잡았다.


슈우우우! 콰아아아!


거대한 가죽 풀무가 작동할 때마다 화로의 온도가 무서운 속도로 상승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도가니 속에서 천조산 한철과 백련강 조각들이 녹아내리며 붉은 쇳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굴 내부는 순식간에 숨이 막힐 듯한 고열과 붉은 화광으로 가득 찼다. 허대수는 쇳물을 풀무질하며 이마에 땀방울을 비 오듯 흘렸다. 추공은 의족을 해체한 채 외다리로 화로 옆 바위에 기대어 앉아, 단전의 음양 진기를 조율하며 몸을 식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추공의 청이식 심안(聽耳式 心眼)이 동굴 입구 먼 곳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파공음과 발걸음 진동을 포착했다.


터벅, 터벅, 터벅.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서너 명의 발걸음 소리가 동굴 내부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었다. 추공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수색대다. 발소리의 깊이로 보아 삼류 무사들이나, 우두머리의 기척은 낯익군.’


“숙부, 불을 끄지 말고 풀무질을 계속하시오. 적들이 입구에 당도했소.”


추공의 나지막한 경고에 허대수의 안색이 굳어졌다.


“수색 무사들이 이 깊은 곳까지…… 어찌 아셨습니까?”


“소장주 뇌태백의 앞잡이, 곽두식(郭頭植)의 목소리가 들리는구려. 뇌태백이 김쌍도의 참수 이후 성내의 모든 대장간과 폐광을 이 잡듯 뒤지라 명한 모양이오.”


추공은 다리가 해체되어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무방비 상태였다. 그는 무쇠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전신의 태극진기를 상체 경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신형을 날려 동굴 천장의 거친 바위 들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스스슥.


한 손으로 천장 바위 틈새를 움켜쥔 채 대롱대롱 매달린 추공은 토납은형술(土納隱形術)을 가동했다. 그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은 습하고 차가운 동굴 천장의 바위 기운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이윽고 동굴 내부로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예상대로 비열한 웃음을 지은 곽두식이 다섯 명의 뇌진풍 직속 무사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에이, 지독한 그을음 냄새군! 이 버려진 광산 구석에서 웬 늙은이가 풀무질을 하고 있단 말이냐?”


곽두식이 횃불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허대수는 화로 앞을 거구의 몸으로 가로막아서며 굵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관청의 허가를 받고 농기구를 수리하는 늙은 대장장이다! 무뢰한 놈들이 신성한 제철소에 함부로 발을 들이다니, 당장 꺼지지 못할까!”


“농기구 수리라고? 이 늙은이가 누굴 속이려 들어!”


곽두식이 비열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대장간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작업대 위에 널려 있는 정교한 목제 기계 톱니들과 어긋난 백련강 스프링 부품들에 머물렀다.


“이 정교한 쇠붙이들은 농기구 부품이 아니로군. 이 모양새는…… 밤마다 우리 문도들의 목을 베고 다니는 ‘양면일도’의 살수 기계 장치가 분명하다! 이 늙은 대장장이가 살수 놈과 한패였구나!”


곽두식의 외침에 무사들이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허대수의 안색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는 화로 옆에 놓여 있던 붉은 쇳물이 가득 담긴 도가니를 거대한 집게로 움켜쥐었다.


“무엄한 놈들! 이 쇳물 맛을 보고 싶지 않다면 물러서라!”


허대수가 도가니를 기울이자, 백색으로 달아오른 붉은 쇳물이 석판 바닥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


쇳물이 바닥의 습기와 만나며 거대한 화염 폭풍과 함께 사방으로 엄청난 불꽃 아지랑이가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곽두식과 무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백색의 열기가 동굴 내부의 공기를 한순간에 팽창시켰다.


하지만 그 열기는 천장에 매달려 있던 추공에게 치명적인 재앙으로 다가왔다.


아래에서 치솟는 무서운 열독이 추공의 오른쪽 다리 잔존 경맥을 자극하자, 단전 속에 제어되어 있던 양명경 화독(陽明經 火毒)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며 폭주하려 했다. 전신 피부가 검붉게 타오르고, 한 손으로 바위를 움켜쥔 손가락 끝이 마비되어 가는 극심한 내상이 그를 덮쳤다.


‘으윽……!’


추공의 눈앞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손끝의 내력이 빠져나가며 천장에서 추락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혀끝을 깨물어 피 맛을 보며 억지로 이성을 붙잡았다. 전신의 진기를 극도로 억제하며, 왼손에 쥔 무쇠 빗자루 손잡이 중간의 미세한 홈을 엄지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


철컥.


빗자루 내부에 숨겨진 특수 발사 장치에서 무쇠 빗자루 속 철침들이 발사 대기 상태로 긴장했다. 추공은 천장 들보 위에 거꾸로 매달려, 횃불을 든 채 허대수를 찌르려 다가서는 곽두식의 무방비한 목덜미 사혈(死穴)을 정확히 조준했다.


‘여기서 저놈들을 침묵시켜야 한다. 단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내면 폐광 전체가 군대로 포위될 것이다.’


추공이 발사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였다.


두두두두…….


도가니에서 쏟아진 붉은 쇳물의 열기와 허대수의 내공 폭발로 인해, 수십 년간 방치되어 수분이 가득 차 있던 폐광 동굴 천장의 거친 암반 벽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빠드득, 쩍!


추공이 움켜쥐고 있던 천장의 바위 들보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거대한 낙석 가루와 먼지가 곽두식 일당의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동굴 천장 전체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절체절명의 붕괴 전조가 시작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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