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의 내분과 어둠의 조율
“사부님! 큰, 큰일 났습니다요! 뇌진풍 그 악마 같은 놈이…… 자신을 의심하는 마유신 장로를 독살하기 위해, 비밀리에 사파 최정예 살수단을 대동하고 야수현 성내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요!”
아철의 헐떡이는 목소리가 눅눅한 안전가옥의 공기를 세차게 흔들었다. 진흙과 빗물로 범벅이 된 소년의 전신은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고 있었다.
가마터 지하의 어두운 등유 램프 불빛 아래, 추공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녹슨 무쇠 빗자루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단전의 내력을 절반 이상 소모해 탁삼의 고독(蠱毒)을 정화한 직후였기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는 듯한 한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오른쪽 다리는 기계 의족이 완전히 소실되어 빈 바짓단만 허전하게 묶여 있었고, 미세한 골절상이 남은 왼쪽 다리는 조금만 힘을 주어도 뼈를 깎는 통증을 유발했다. 극도의 육체적 탈진 상태였으나, 추공의 안광만큼은 밤안개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뇌진풍이 결국 제 사냥개의 목줄을 끊으려 하는구나.’
추공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뇌진풍이 상납금을 횡령했다는 위조 장부와 수송선 폭발 사건. 그것은 독조 마씨와 흑사련 총단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궁지에 몰린 뇌진풍은 제 안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충직했던 가신인 마유신을 배신자로 단정 지은 것이다. 사냥개가 주인의 불신을 사고, 주인이 사냥개의 목을 베려 하는 내분. 이것이야말로 추공이 어둠 속에서 정교하게 조율해 온 ‘이간지계(離間之計)’의 완벽한 결실이었다.
“소협, 몸 상태가 말이 아니오. 내공의 절반을 내 상처를 치료하는 데 쏟아붓지 않았소. 이 다리로 직접 움직이는 것은 자살행위요. 내가 대신 가겠소!”
만성 고독의 독기를 완전히 씻어내고 경맥을 회복한 탁삼이 단도를 꽉 쥐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외팔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이전과 달리 웅장하고 단단했으나, 추공은 고개를 저으며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바닥을 짚었다.
“사형은 방금 고독을 뽑아내어 기혈이 완전히 안착하지 못했소. 지금 무리하게 내력을 쓰면 정화된 경맥이 다시 뒤틀릴 것이오. 오씨 숙부를 모시고 이곳을 지키시오.”
“하지만 소협, 의족도 없이 그 몸으로 어찌 살수단을 상대하겠다는 말이오!”
탁삼의 절박한 만류에도 추공의 결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간지계의 묘리는 적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데 있지 않소. 마유신이 뇌진풍의 살수들에게 허망하게 죽어버린다면, 원수들 내부의 균열은 그대로 묻히고 말 것이오. 마유신이 살아서 제 주인의 잔혹한 배신을 목도하게 만들어야 하오. 그래야만 원수들끼리 서로의 심장에 칼을 꽂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이 완성되는 법이외다.”
추공은 벽 구석에 놓여 있던 검은 야행포를 끌어당겨 전신에 걸쳤다. 그리고 품속에서 양 볼에 기괴한 송곳니가 돋아나고 이마에 붉은 해 문양이 새겨진 흑철 귀면(黑鐵 鬼面)을 꺼내 얼굴에 썼다. 가면의 차가운 감촉이 닿는 순간, 비참한 문지기 청소부 추공은 사라지고 자비 없는 밤의 사신, 귀면천도(鬼面天刀)의 교주 양면일도가 깨어났다.
“아철, 뇌진풍의 살수단이 움직이는 경로를 안내해라. 가장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유인해야 한다.”
“예, 사부님! 저를 따르십시오!”
아철이 앞장서 지하 가마터의 비밀 출구를 열었다. 쏟아지는 폭우와 칠흑 같은 어둠이 외다리 사신의 뒤태를 무겁게 집어삼켰다.
***
야수현 동부의 버려진 약재 골목.
비바람에 씻겨 내려가는 썩은 약초 냄새와 축축한 진흙탕이 뒤엉킨 좁은 골목길을, 마유신은 어깨를 감싸 쥔 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최근 독조 마씨의 삼엄한 가택 수색과 수송선 폭발 사건의 책임 추궁으로 인해, 그는 며칠 밤낮을 쉬지 못해 심신이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다.
‘장문인께서 어째서 나를 피하시는 거지? 수송선 경비가 뚫린 것은 내 실책이나, 귀면천도 놈들의 기습이 워낙 기상천외했다. 그런데 왜 내원에 가둔 채 나를 감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시는가.’
마유신의 가슴속에 깊은 불신과 초조함이 싹트고 있었다. 평생을 뇌진풍의 그림자가 되어 온갖 더러운 피를 손에 묻혀가며 충성을 다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서늘한 의심의 눈초리뿐이었다.
그때였다.
*샤아아아-*
폭우 소리 너머로, 젖은 기와를 스치는 미세한 파공음이 마유신의 일류 초입 고수다운 감각망에 걸려들었다.
“누구냐!”
마유신이 허리춤의 쇠사슬 채찍검을 뽑아 들며 신형을 급히 돌렸다.
어둠 속에서 검은 야행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세 명의 자객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손에는 비바람 속에서도 빛을 반사하지 않는 칠흑의 단검들이 쥐여 있었다. 자객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전신에서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며 마유신을 반월형으로 포위해 들어왔다.
“감히 분타의 집행관인 나를 습격하다니, 귀면천도의 잔당들이냐!”
마유신이 채찍검을 휘두르며 기세를 올렸으나, 자객들은 침묵을 지킨 채 동시에 신형을 날려 쇄도했다. 그들이 펼치는 신법의 궤적과 단검을 찌르는 각도를 목격한 순간, 마유신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크게 흔들렸다.
‘이, 이 수법은……!’
자객들의 단검 끝에서 서늘하게 피어오르는 검붉은 기운, 그리고 뱀이 기어가듯 변칙적으로 신형을 꺾는 보법. 그것은 사파의 흔한 무공이 아니었다. 뇌진풍이 자신의 내원 사저 깊은 곳에서 극비리에 키워낸 직속 가신들의 독문 무공인 ‘혈혼공(血魂功)’과 ‘독사보법’의 변형식이었다.
“너희들…… 장문인의 직속 살수단이 아니냐! 어째서 나를……!”
마유신의 절박한 외침에 자객들의 우두머리가 차가운 실소를 흘렸다.
“장문인께서 전하시는 유언이다, 마유신. 배신자의 최후는 오직 죽음뿐이라고 말이다.”
“배신이라니! 내가 평생을 바쳐 충성했거늘, 어찌 나를 토사구팽한단 말이냐!”
“상납금을 횡령하고 귀면천도와 내통해 수송선을 폭파한 장부가 네놈의 처소 밑바닥에서 발견되었다.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다. 죽어라!”
*카아앙! 콰아앙!*
살수들의 무자비한 파상 공세가 시작되었다. 세 명의 일류 살수들이 펼치는 혈혼공의 붉은 검기가 좁은 골목길의 벽면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마유신은 필사적으로 채찍검을 휘두르며 저항했으나, 이미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세 명의 정예 살수를 상대하기란 역부족이었다.
*푸학!*
자객의 단검이 마유신의 옆구리를 깊숙이 스치고 지나갔다. 검붉은 피가 폭우 속으로 비산했고, 마유신은 비틀거리며 진흙탕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신을 옥죄는 배신감과 절망감이 그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장문인…… 당신이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살수의 단검이 마유신의 목덜미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갑자기 골목길의 빗줄기가 기이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폭우 소리를 뚫고, 지옥 바닥에서 긁어 올린 듯한 무겁고 둔탁한 마찰음이 골목 벽면을 타고 울려 퍼졌다.
*퍽! 아작!*
“으아악!”
마유신의 목을 노리던 자객의 머리통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진흙탕 바닥으로 처박혔다. 단 한 번의 타격음이었다. 으스러진 두개골 사이로 시커먼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남은 두 자객이 경악하며 뒤로 급히 신형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한 손으로 낡은 무쇠 빗자루를 움켜쥐고 한 다리로만 서 있는 기괴한 형상의 사내가 안개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가린 흑철 귀면의 붉은 해 문양이 횃불 잔광 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빛나고 있었다.
“귀면천도…… 양면일도!”
자객들의 목소리에 극도의 경계심과 공포가 서렸다.
추공은 왼쪽 다리의 뼈를 깎는 골절 통증과 단전 내력의 고갈로 인한 오한을 이빨을 악물고 참아냈다. 그는 빗자루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해 신체의 중심을 잡은 채, 단전 속에서 부드럽게 순환하는 음양조화 태극진기를 도칼 끝으로 서서히 끌어올렸다.
“장문인의 사냥개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꼴이 제법 볼만하구나.”
추공의 변조된 기괴한 목소리가 골목길을 얼려버릴 듯 울려 퍼졌다.
“이 배신자 놈! 감히 우리 장문인의 일에 끼어들다니! 죽여라!”
남은 두 자객이 좌우로 갈라지며 독사보법을 전개해 추공의 사각지대를 향해 쇄도했다. 좁은 골목길의 특성상 좌우 꺾임의 반경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이동 궤적은 추공의 청이식 심안(聽耳式 心眼)에 완벽하게 포착되었다.
‘오른쪽 자객, 발걸음 진동 삼 보 앞. 왼쪽 자객, 단검 투척 찰나.’
추공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다리가 없었기에, 제자리에서의 회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일도류 정좌도법(一刀流 靜座刀法)만이 그가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무학이었다.
*스으으읍-*
추공은 빗자루를 짚은 채 몸을 반 바퀴 역회전시키며, 품속에서 풍검의 목도를 뽑아 단숨에 수평으로 휘둘렀다.
정좌도법 제1식, 단극참(單極斬)!
*파아아앗!*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단 한 줄기의 서슬 퍼런 푸른 도광이 밤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윽!”
오른쪽에서 습격해오던 자객의 목덜미가 실로 꿴 듯 깨끗하게 잘려 나가며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추공은 몸의 회전 각도를 멈추지 않고 역방향으로 뒤틀며 목도 끝으로 왼쪽 자객의 단검을 쳐내고, 그의 가슴팍 사혈을 정확하게 관통시켰다.
*퍽!*
쇄맥수(鎖脈手)의 극음 진기가 자객의 심장 경맥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자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이 하얗게 서리로 뒤덮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단 세 번의 호흡 만에 뇌진풍의 최정예 살수 세 명이 흔적도 없이 소멸한 것이다.
진흙탕 바닥에 주저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마유신은 전율했다. 휠체어도 없이, 오직 한 다리와 빗자루 하나만을 의지한 채 일류 고수들을 낙엽 쓸듯 도륙해버리는 귀면의 괴물. 그 압도적인 무력과 기개 앞에 마유신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추공은 빗자루를 절뚝거리며 짚고 마유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흑철 귀면 아래로 비치는 서슬 퍼런 안광이 마유신의 심장을 꿰뚫을 듯 내려다보았다.
추공은 심음파악술(心音把握術)을 가동했다. 마유신의 가슴팍에서 들려오는 맥박 소리는 공포로 인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으나, 그 너머에는 뇌진풍을 향한 뼈를 깎는 배신감과 타오르는 증오의 고동이 묵직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충직한 사냥개가 주인의 솥으로 들어가는 꼴이 제법 애처롭구나, 마유신.”
추공의 차가운 조롱에 마유신은 이빨을 부르르 떨며 바닥을 짚었다.
“끄으윽…… 나를 죽여라! 어차피 장문인에게 버림받은 목숨, 네놈 손에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
“죽는 것은 쉽지. 하지만 평생을 개처럼 충성하고도 배신자로 낙인찍혀 개죽음을 당하는 꼴을, 네놈의 조상들이 지하에서 어찌 보겠느냐?”
추공의 서늘한 질문이 마유신의 뇌리를 세차게 때렸다.
“뇌진풍은 제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이미 모든 횡령 혐의를 네놈에게 덮어씌웠다. 독조 마씨는 조만간 네놈의 목을 베어 흑사련 총단으로 보낼 터이지. 뇌진풍은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 다시 화려한 옥좌에 앉을 것이고 말이다.”
“뇌진풍…… 그 비열한 노친네가 정녕 나를……!”
마유신의 눈동자에 붉은 핏발이 서서히 서려 갔다. 평생을 바친 충성의 대가가 이토록 참혹한 배신이라니.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증오가 그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내게 힘을 다오, 귀면천도의 교주여.”
마유신이 추공의 빗자루 끝을 잡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비열한 노친네를 내 손으로 찢어발길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 내원 사저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 통로의 열쇠와, 뇌진풍이 사적으로 수탈해 둔 진짜 비리 장부가 어디 있는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독조 마씨에게 그것을 넘겨 뇌진풍을 완벽히 매장시켜 버리겠다!”
흑철 귀면 뒤에서 추공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원수들 내부의 가장 날카로운 사냥개가, 마침내 제 주인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미친 개로 완전히 거듭난 순간이었다.
“좋다. 그 열쇠와 장부를 독조 마씨에게 넘겨라. 뇌진풍의 파멸이 시작되는 순간, 귀면천도가 네놈의 목숨줄을 거두어 주마.”
마유신이 피 묻은 고개를 조아리며 복수의 결의를 다지는 바로 그 찰나였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야수현의 좁은 골목길 전체가 기이한 진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밤비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리는 듯한 가공할 극양(極陽)의 위압감이 사방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스으으으으-*
골목 저편의 짙은 밤안개 속에서, 거대한 무쇠 쇳덩어리가 돌바닥을 질질 끄는 기괴한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마유신과 추공의 시선이 동시에 골목 너머로 향했다.
안개를 찢고 나타난 것은 전신에 거친 해골 문신을 새기고 회색 승복을 거칠게 찢어 발긴 거구의 삭발한 승려였다. 그의 어깨에는 한 번 휘두르면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린다는 백근 무게의 거대한 무쇠 철근(鐵禪)이 얹혀 있었다.
뇌진풍이 귀면천도를 몰살하기 위해 최후의 금력으로 초빙한 잔혹한 파계승, 반야(반야)가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쇠 철근이 진흙탕 바닥을 긁을 때마다 서슬 퍼런 불꽃이 빗속에서 피비린내 나게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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