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각의 덫과 숨겨진 칼날
삼경의 짙은 밤안개를 뚫고, 문지기 초소의 낡은 사리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추공은 숨을 죽였다. 방금 전 일월릉 지하 밀실에서 빠져나와 초소 바닥 밑의 이중 판때기 아래로 밤의 살수 도포와 흑철 귀면을 밀어 넣은 직후였다. 부러진 오른쪽 다리에서 흐른 피가 바짓단을 타고 내려와 축축하게 짚단을 적셨지만, 사내에게는 고통을 호소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쿠우웅!
“열어라! 감찰 장로님의 명령이다!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샅샅이 뒤져라!”
문밖에 당도한 수색 무사들의 거친 고함과 함께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창호지 문을 어지럽게 물들였다. 마유신의 사냥개들이 들이닥치기 일보 직전, 초소 뒷문으로 마구간지기 대풍이 땀범벅이 된 얼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대풍은 비굴한 눈빛을 지우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추공 형님, 이중 판때기 장치는 완벽히 맞물려 고정해 두었소. 하지만 마유신의 눈은 예리하오. 부디 조심하십시오.”
대풍이 어둠 속으로 쥐새끼처럼 사라지기가 무섭게, 초소의 사리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나며 흩어졌다.
콰앙!
문틀을 부수고 진입한 자는 천조종 분타의 수석제자이자 뇌진풍의 잔혹한 사냥개, 마유신이었다. 그의 허리춤에 차인 쇠사슬 채찍검이 횃불 불빛을 받아 차갑게 번뜩였다. 그의 뒤로 삼십여 명의 정예 무사들이 초소를 겹겹이 포위한 채 도검을 뽑아 들었다.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군.”
마유신은 코를 찌푸리며 초소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서슬 퍼런 안광이 짚단 위에 엎드려 있는 추공의 전신을 훑었다.
추공은 즉시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헝클어진 머리칼 사이로 흐리멍덩한 눈빛을 흘려보냈다. 그는 걸걸한 가래 끓는 목소리로 침을 뱉어내며 미친 노인처럼 헛소리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장로님! 이 늙은 문지기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밤중에 이리 소란이십니까요? 뇌태백 소장주님께서 낮에 제 다리를 부러뜨리시더니, 밤에는 목숨마저 거두려 하시는 겁니까요? 흐흐흐,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추공은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연신 엎드려 빌었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꼴이었으나, 마유신의 눈빛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가락 끝에 흐르는 일류 초입의 기세가 더욱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입을 닥쳐라, 미치광이 늙은이.”
마유신이 차갑게 읊조리며 추공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억센 악력이 추공의 목뼈를 부러뜨릴 듯 가해졌다. 추공은 숨이 막히는 척 혀를 내밀고 허우적거렸으나, 단전의 공력은 단 한 올도 흘려보내지 않은 채 철저히 억제했다.
“장서각의 철문 봉인이 뚫렸을 때, 분타 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절름발이인 네놈이 어떻게 밤마다 이곳을 지키고 서 있었는지 의심스럽군.”
마유신의 시선이 추공의 부러진 오른쪽 다리로 향했다. 낮에 뇌태백에게 짓밟혀 붉게 물든 회색 바짓단 아래로 피딱지가 앉은 상처가 드러나 있었다.
“네놈의 다리가 진짜 쓸모없는 폐물인지, 아니면 우리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인지 내 직접 확인해 보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유신의 오른손이 추공의 오른쪽 무릎뼈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끝에서 뼈를 바스러뜨리는 독문 외공, 철사수(鐵沙手)의 음독한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아작!
무릎 관절이 어긋나며 뼈마디가 비틀리는 둔탁한 파열음이 초소 내부에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추공의 단전 속에 가두어 두었던 양명경 화독(陽明經 火毒)이 마유신의 외공 압력에 반응하여 폭발하듯 꿈틀거렸다. 타오르는 듯한 열독이 기경팔맥을 타고 솟구치며 전신을 불태우려 했다. 만약 여기서 단 한 올의 진기라도 밖으로 흘러나간다면, 마유신은 즉시 그가 내력을 숨긴 고수임을 알아채고 목을 벨 터였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가문의 원한을 갚을 불씨마저 사라진다.’
추공은 이빨이 깨져나갈 정도로 입을 악물었다. 그는 단전 깊은 곳에 보관해 두었던 한천수(한천수)의 극음한 기운을 양명경맥으로 우회시켰다. 뼈를 깎는 차가운 음기가 타오르는 화독을 덮치며 상충했다.
치이익!
체내에서 불과 물이 부딪치는 듯한 극심한 내적 충격이 일어났다. 추공은 단전의 음양이 충돌하는 여파로 입가에 미세한 핏방울이 맺히는 것을 간신히 삼켜냈다. 한천수의 마비 기운이 오른쪽 다리 전체의 신경을 얼려버렸고,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은 일시적으로 감각 저편으로 사라졌다.
“으아아아악! 장로님! 다리가, 제 다리가 다 부러집니다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추공은 핏대를 세우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동자는 고통으로 뒤틀려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철사수의 강력한 내력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반발 진기도 흘러나오지 않자, 마유신의 눈에 서려 있던 의심의 빛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정말 내공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폐물이군.”
마유신은 혐오스럽다는 듯 추공의 다리를 내던졌다. 추공은 바닥에 쓰러져 부러진 다리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흐느꼈다.
그사이 수색 무사들이 초소 구석구석을 도검 끝으로 쑤시며 바닥을 두드렸다.
탁! 탁! 탁!
무사들의 구두굽이 추공의 밤 장비가 숨겨진 바닥 밑을 밟고 지나갔다. 추공의 심장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대풍이 낮에 보수해 둔 이중 판때기는 단단한 흙바닥과 완벽히 수평을 이루고 있었고, 짚더미와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어 아무런 빈틈의 소리도 내지 않았다.
“보고 드립니다! 초소 내부에는 아무런 수상한 물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사들의 보고에 마유신은 혀를 찼다.
“쳇, 시간 낭비였군. 이딴 절름발이 쓰레기 방에 침입자가 숨어들었을 리가 없지. 가자! 장서각 주변의 숲을 더 샅샅이 뒤져라!”
마유신이 수색 무사들을 거느리고 초소를 빠져나갔다. 사방을 가득 채웠던 횃불의 불빛과 거친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추공은 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
수색대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삼경의 끝자락.
추공은 서서히 상체를 일으켰다. 비굴하게 흐느끼던 노인의 안색은 온데간데없고, 밤안개보다 서늘하고 차가운 안광이 그의 얼굴을 지배했다. 입가에 고여 있던 핏자국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낸 사내는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초소 바닥의 이중 판때기를 열었다.
그 아래에는 흑철 귀면과 살수 도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비록 마유신의 철사수 공격으로 오른쪽 무릎뼈에 미세한 균열이 가고 양명경 화독이 역류하여 내상이 깊어졌으나, 추공은 복수의 칼날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사내는 부러진 빗자루 손잡이 내부에서 낮에 장서각을 청소하는 척하며 은밀히 복사해 둔 지하 청동문의 열쇠를 꺼내 쥐었다.
‘마유신, 네놈이 장서각의 흔적을 쫓는 동안, 나는 가문의 시조가 남긴 진짜 비급을 내 심장에 새길 것이다.’
추공은 무념보를 펼쳐 초소를 빠져나왔다. 다리의 내상으로 인해 걸음걸이가 무거웠으나, 한천수의 차가운 기운으로 통증을 억누르며 그림자처럼 어둠 속을 가로질렀.
그가 다시 도달한 곳은 천조종 지하 일월릉 깊은 곳, 시조 추일성의 석상 뒤편에 숨겨진 차가운 석실이었다.
철컥.
복사한 청동 열쇠가 톱니와 맞물려 소리 없이 돌아가며 석실의 무거운 석문이 열렸다. 먼지가 자욱한 석실 내부로 들어서자, 사방의 벽면에 붉고 푸른 기운으로 그려진 거대한 벽화들이 추공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천조종의 전설적인 심법이자 체내의 음양 진기를 극적으로 순환시키는 일월신공 기초구결(日月神功 基礎口訣)의 도해들이었다.
추공은 한 다리로 차가운 석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벽화 속 시조의 기운이 그의 눈동자를 통해 단전으로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일월(日月)의 조화는 대립이 아닌 순환에 있으니, 타오르는 태양의 양기를 차가운 달의 음기로 감싸 안아 태극의 원류를 이룬다…….’
추공은 벽화에 새겨진 구결 조각들을 하나씩 해독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단전 속에서 폭주하려던 양명경 화독이 일월신공의 정종 호흡법을 따라 서서히 차가운 한빙의 기운과 조화를 이루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뒤틀린 경맥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뼈를 깎는 듯한 무릎의 통증이 미세하게 완화되었다.
그는 가슴 깊은 곳에 시조의 위대한 가르침을 새겨 넣었다. 비록 다리는 영구히 폐색되어 고칠 수 없으나, 이 무학의 정수를 완성한다면 외다리로 서서 천하를 베어낼 날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했다.
수련을 마치고 음양의 진기를 정화한 추공이 은밀히 문지기 초소로 귀환했을 때, 방 안의 어둠 속에서 묵직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추공은 즉시 무쇠 빗자루 손잡이의 철침 발사 장치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어둠을 뚫고 들려온 목소리는 낯익고 우직했다.
“추공 형님, 나요.”
외팔이 만두 장수 탁삼(卓三)이었다. 그의 잘려 나간 오른팔 소맷자락이 어둠 속에서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탁삼의 다부진 안색에는 전에 없는 극도의 긴장감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탁삼 사형, 이 밤중에 초소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추공이 목소리를 낮추며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탁삼은 추공의 부러진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며 이빨을 악물었다.
“마유신 그 개새끼가 네 다리를 또 건드렸군……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급한 일이 터졌네.”
탁삼이 추공의 어깨를 꽉 쥐며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뇌진풍(雷震風)의 사냥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네. 김쌍도(金雙刀) 그 잔혹한 채찍수가 이끄는 분타의 무뢰한들이, 상납금을 기한 내에 바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근 우각촌(牛角촌)을 피바다로 만들려 하고 있네. 오늘 밤 삼경이 지나기 전, 마을의 늙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을 본보기로 참수해 성문에 걸어둘 계획이라네.”
탁삼의 눈에서 핏발이 섰다.
“우각촌은 과거 우리 문파에 충성을 다했던 민초들의 마을이네. 사부님과 숙부님이 살아계셨다면 결코 묵과하지 않으셨을 참극이야.”
추공의 눈동자가 안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리의 내상이 깊어져 오늘 밤 당장 밤의 살수로 움직이기에는 육체적 무리가 따르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문의 영혼들과 무고한 민초들의 비명이 귓가를 맴돌았다.
사내는 천천히 품속에서 흑철 귀면을 꺼내 들었다. 가면의 기괴한 송곳니가 횃불의 잔광을 받아 붉게 빛났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