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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방의 검은 화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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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동(寒氷洞) 깊은 지하 빙굴을 채우고 있던 살벌한 한기가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던 날카로운 고드름 폭풍을 당혜린의 은사(銀絲)로 막아내고, 사천당가의 기적적인 침술과 주화초 배합액으로 단전의 화독을 제어해 낸 직후였다.


추공은 자신의 단전을 내관(內觀)했다. 타오르는 불꽃 같던 양명경 화독(陽明經 火毒)과 뼛속을 얼려버릴 듯한 남궁세가의 빙결 독 기운이 이제는 서로를 밀어내는 대신, 마치 태극(太極)의 소용돌이처럼 고요하게 맞물려 돌고 있었다. 음양조화 태극진기(陰陽調和 太極眞氣)의 완벽한 발흥이었다. 수년간 그를 괴롭히던 내상의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공력이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제약은 여전했다. 오른쪽 바짓단 아래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기계 의족 없이는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외다리 절름발이의 신세였다. 추공은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지지대 삼아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사부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아철이 여전히 진흙투성이가 된 몸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물었다. 그의 눈에는 스승을 향한 깊은 염려와 가문의 자원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단전의 기운은 완전히 안정을 찾았다. 걱정하지 마라.”


추공의 변조된 둔탁한 목소리가 동굴 벽을 울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당혜린을 바라보았다. 당혜린은 천년빙침(千年氷針)을 가죽 주머니에 수거하며 차갑게 읊조렸다.


“내 동맹자가 싱겁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군. 하지만 잊지 마라. 네 단전의 균형은 아직 임시방편일 뿐이다. 무리하게 공력을 폭발시키면 언제든 화독이 다시 역류할 수 있어. 매달 내 약리방에 들러 맥을 보이지 않으면 다음 해독재는 없을 줄 알아라.”


“약속은 지키겠소, 당 소저.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추공은 짧은 묵례를 건넨 후, 아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없다. 오늘 밤 삼경(三更)이라 했느냐?”


“예, 사부님. 뇌진풍이 무기 밀매상 육필과 철도방을 동원해 천조산의 한철(韓鐵)로 만든 대규모 군용 무기들을 창강 나루터의 수송선에 싣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화물이 출항하면 뇌진풍은 흑사련 내에서의 입지를 완벽히 회복하고, 우리 문파의 광산 자원은 영구히 수탈당하게 됩니다.”


추공의 안광이 밤안개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뇌진풍이 연이은 참패로 실추된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자 사신으로서, 이를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외다리 상태로는 나루터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을 수 없었다.


“먼저 문파의 마구간으로 가야겠다. 대풍이 숨겨둔 내 의족을 찾아야 해.”


추공은 아철의 부축을 받으며 한천동의 차가운 안개를 뚫고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


깊은 밤, 천조종 총단 외곽에 위치한 마구간은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낮의 하급 문지기 초소와 다를 바 없이 소외되고 지저분한 공간이었지만, 이곳은 추공의 밤 활동을 지원하는 가장 은밀한 요새 중 하나였다.


마구간을 지키고 있던 이중 첩자 대풍이 인기척을 느끼고 여물통 뒤에서 급히 기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이고, 양면일도 장인님! 드디어 오셨습니까요! 마유신 장로의 순찰대가 마구간 주변을 수시로 드나들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요!”


“대풍, 내 의족은 무사한가?”


“그럼요! 말들의 여물통 밑바닥, 가장 깊은 짚단 더미 속에 꽁꽁 숨겨두었습니다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대풍이 헐떡이며 짚단을 헤치고 검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를 열자, 천조산 한철과 백련강 스프링으로 정교하게 주조된 목제 기계 의족이 붉은 화로 불빛을 받아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추공은 익숙한 동작으로 오른쪽 잔존 허벅지 경맥의 진기를 의족 접합부에 밀어 넣었다. 찰칵, 하는 둔탁한 금속성 마찰음과 함께 의족이 그의 몸과 완벽하게 일체화되었다. 단전의 태극진기가 의족 내부의 기계 장치로 물 흐르듯 주입되자, 천조산 한철 특유의 묵직한 무게감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전보다 무게중심의 이동이 기막히게 매끄러웠다. 허대수의 주조 기술과 당혜린의 침술이 융합되어 완성된 최상의 상태였다. 추공은 천천히 대지 위에 두 발로 섰다. 겉보기에는 긴 도포 자락 아래 가려져 있어 멀쩡한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풍, 수송선에 실릴 화물의 정확한 출항 시간은 확인했느냐?”


대풍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소리를 낮추어 밀고했다.


“오늘 밤 삼경 정각에 세 척의 대형 수송선이 나루터에서 동시에 출항할 예정입니다요. 육필 상인이 직접 고용한 철도방의 정예 대장장이들과 사파 무뢰한들이 화물창을 철벽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알았다. 아철, 너는 먼저 저잣거리의 탁삼 사형에게 가거라. 나는 지붕을 타고 나루터로 향하겠다.”


말을 마친 추공의 신형이 바람처럼 흔들리더니, 소리도 없이 마구간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무념보(無念步)의 극의를 발휘한 그의 발걸음은 떨어지는 낙엽보다 조용했다.


***


야수현 저잣거리 한구석에 위치한 탁삼의 만두 노점상.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만두 찜기의 김이 밤공기 속에서 몽환적인 장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서민들이 야식을 사 먹는 지극히 평화롭고 소박한 저잣거리의 풍경이었지만, 그 하얀 증기 장막 뒤에서는 강남 무림의 판세를 뒤흔들 잔혹한 Heist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한쪽 팔을 잃은 탁삼이 땀을 흘리며 만두 판을 정리하는 척하다가, 주변의 시선이 차단된 순간 만두 찜기 밑바닥의 비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철도방의 내부 첩자를 통해 극비리에 훔쳐낸 대규모 한철 무기 수송 경로 도면이었다.


스스슥.


검은 복면과 흑철 귀면을 쓴 추공이 소리도 없이 만두 노점의 그늘 속으로 스며들었다. 탁삼은 놀라지 않고 조용히 도면을 탁자 위에 펼쳤다.


“사제, 몸은 좀 어떠냐?”


“당가의 침술 덕분에 내력은 완전히 복원되었소. 도면은 입수했소?”


“여기 있네. 철도방과 육필이 지키는 나루터 창고의 내부 구조와 수송선 세 척의 화물창 배치도일세. 보안 장벽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네. 창고 입구에는 압력 감지 진법이 깔려 있고, 갑판 위에는 쇠사슬 경보 장치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어.”


추공은 도면 위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청이법(聽耳法)이 저잣거리 순찰 무사들의 발걸음 소리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뇌진풍을 직접 죽이는 것보다, 그가 흑사련 총단에 바칠 상납금을 중간에서 횡령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우는 것이 그를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길이다. 이번 수송선 화공은 단순한 방화가 아니라, 뇌진풍의 목을 죌 이간지계(離間之計)가 되어야 하오.”


그때, 저잣거리 상인회 소속의 정보 중개인 맹필이 야식 손님으로 가장하여 노점 탁자에 앉았다. 그는 품속에서 정교하게 위조된 서찰 몇 장과 검은 가죽 장부 하나를 꺼내 탁삼의 만두 접시 밑으로 밀어 넣었다.


“천해 소협, 요청하신 위조본들을 준비했습니다요. 뇌진풍의 서재에서 극비리에 복사해 둔 그의 친필 인장 흔적을 그대로 이식한 가짜 횡령 서찰과, 흑사련 철전 비밀 장부(黑蛇盟 鐵錢 秘密 帳簿)의 이중 위조본입니다. 이 장부에는 뇌진풍이 상납금의 6할을 개인 금고로 빼돌렸다는 가짜 거래 내역이 아주 정교하게 적혀 있습니다요.”


추공은 가짜 서찰 표면의 인장을 만져보았다. 뇌진풍 본인조차 속아 넘어갈 정도로 정교한 복사본이었다.


“훌륭하군, 맹 필. 이 가짜 장부와 서찰이 수송선 내부의 비밀 금고에 심어지는 순간, 흑사련 총단은 뇌진풍을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사제, 도주로 배치는 완료되었네.”


탁삼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밤의 도주로를 책임질 비밀 도선사 춘삼과 백 노인이 수송선 후방의 어두운 수로 구석에 평저선(平底船)을 대기시켜 두었네. 화공 장치를 가동한 즉시 물밑으로 뛰어내리면 완벽하게 탈출할 수 있을 걸세.”


그때, 아철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점상 그늘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의 옷자락에는 진흙과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나루터 창고 주변의 보초 교대 주기를 확인하려 수송선 근처에 접근했다가, 마유신의 정예 경비대 무사들에게 순찰 경로가 겹쳐 발각될 뻔했습니다.”


추공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정체가 들통난 것이냐?”


“아닙니다! 다행히 저잣거리 소매치기 소년 사리가 경비 무사의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소동을 일으켜 무사들의 시선이 쏠린 틈을 타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사리의 소동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잡혔을 겁니다.”


추공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철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위험한 곳이었다. 사리의 기지가 우리를 살렸군. 정보 수집을 위해 백엽전(百葉錢)과 금풍상표(金風商票)의 일부 자금을 맹필과 사리에게 지급해 주어라. 우리의 신분 노출 위험성이 커진 만큼, 오늘 밤 작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추공은 흑철 귀면의 가죽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일어섰다.


“오늘 밤 삼경, 뇌진풍의 수송선이 출항을 시작한다는 횃불 신호가 켜질 것이다. 이번 출항식은 그의 무덤이 될 것이다. 가자.”


***


창강 야수현 나루터(滄江 夜獸縣 渡口)는 삼엄한 어둠과 매캐한 횃불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강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물결이 출렁이며 둔탁한 수면의 파동 소리를 냈고, 나루터 선착장에는 백련강 제련 무기들과 천조산 한철 궤짝들이 대형 수송선 세 척의 화물창으로 끊임없이 실려 가고 있었다. 철도방의 거구의 대장장이들과 무기 밀매상 육필이 고용한 정예 사파 무뢰한들이 가죽 갑옷을 입고 삼중으로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추공은 나루터 창고 지붕 위 가파른 기와 틈새에 몸을 밀착한 채 엎드려 있었다. 그의 전신은 토납은형술(土納隱形術)로 기척을 완벽히 지워 주변의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경비가 도면에 적힌 것보다 두 배는 삼엄하군.’


추공은 조용히 청이법(聽耳法)을 가동했다. 빗소리조차 없는 고요한 밤공기 너머로, 수송선 갑판 위를 걷는 무사들의 가죽 장화 마찰음과 그들이 쥐고 있는 쇠사슬 경보 장치의 미세한 짤랑거림이 고막을 타고 뇌리에 실시간으로 그려졌다.


갑판 중앙의 쇠사슬은 밟는 순간 방울이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화물창 입구에는 압력 감지판이 설치되어 있어 외다리 신체 조건으로는 침투 경로를 잡기가 극도로 까다로웠다.


추공은 품속의 가짜 장부와 위조 서찰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이 물증들을 수송선 내부 선실의 극비 금고에 심고 화공 장치를 가동해야만 뇌진풍을 완벽히 파멸시킬 수 있었다. 그는 호흡을 극도로 가라앉히며, 무사들의 교대 주기가 어긋나는 찰나의 틈을 노리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그때였다.


나루터 선착장 입구 쪽에서 수십 개의 횃불 무리가 길게 늘어서며 삼엄한 살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추공은 지붕 기와 틈새 새로 눈동자를 빛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횃불의 붉은 불빛이 어둠을 찢어발기며 한 사내의 차갑고 음산한 얼굴을 비추었다. 검은색 가죽 무복에 쇠사슬 띠를 두르고, 허리에는 유연한 채찍검을 찬 사내.


뇌진풍의 오른팔이자 잔혹한 집행관, 수석제자 마유신(馬庾信)이 직접 철도방 무사들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경비를 강화하라! 양면일도 그 절름발이 자객 놈이 언제 이 나루터를 습격할지 모른다! 쥐새끼 한 마리도 배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마유신의 서슬 퍼런 호령이 창강의 밤공기를 찢어발겼다. 철도방 무사들이 일제히 도검을 고쳐 잡으며 수송선 주변의 포위망을 더욱 촘촘하게 좁히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 잠복해 있던 추공의 가슴속에서 차가운 살기가 솟구쳐 올랐다. 원수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가 직접 수송선의 현장 지휘를 맡은 것이다. 일촉즉발의 침투 전조 속에서, 외다리 사신의 손가락 끝이 도칼 자루를 굳게 움켜쥐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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