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공의 소녀와 한빙의 동맹
쩍! 쩍쩍!
천조산 한천동의 천장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추공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음양의 진기 파동이 빙굴 전체를 뒤흔든 결과였다. 사람의 몸통만 한 거대한 청빙 고드름 수십 자루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얼음 바닥 위에 마비된 채 누워 있는 추공의 정수리를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단전은 한천수와 화독의 충돌로 완전히 얼어붙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태. 낙하하는 얼음 칼날들을 바라보며 추공이 죽음을 직감한 그 찰나, 동굴 벽면의 어두운 바위 그늘 속에서 보랏빛 그림자가 번개처럼 쇄도했다.
쉬이익! 콰아앙!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수십 줄기의 은밀한 강철사들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낙하하던 청빙 고드름들을 정확하게 휘감았다. 이어 보라색 여무복 자락이 허공에서 화려하게 펄럭이는가 싶더니, 엄청난 반동력과 함께 고드름들이 사방의 암벽으로 처박히며 먼지 같은 얼음가루가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쿠구구구…….
낙석과 얼음 파편들이 추공의 주변으로 무수히 쏟아져 내렸으나, 그의 몸에는 단 한 조각의 얼음도 닿지 않았다. 자욱한 수증기 안개 속에서 가볍게 착지한 인물은 사천당가의 방계 출신이자 독공의 천재, 당혜린이었다.
그녀는 숯검댕과 때로 얼룩진 추공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허리춤에서 길고 얇은 청동 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침 끝에는 보랏빛 광채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당혜린은 한 다리를 잃고 얼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추공의 목덜미에 거침없이 침 끝을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라. 아니, 움직이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겠지. 한천수를 한꺼번에 들이켜 단전을 강제로 얼려버리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당혜린의 목소리는 얼음동굴의 냉기보다 더 차갑고 요염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기이한 독성과 화독이 공존하는 추공의 육체를 해부하듯 집요하게 훑고 있었다.
추공은 눈을 갚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청이식 심안(聽耳式 心眼)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귀 주변의 경맥이 미세하게 떨리며 당혜린의 맥박 소리가 고막을 타고 뇌리로 전해졌다.
두근, 두근, 두근.
그녀의 심장 고동은 매우 빨랐지만, 거기에는 살인마의 살기나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기이한 생명체를 마주한 학자이자, 평생을 찾아 헤맨 완벽한 독공 연구체를 발견한 광적인 집착과 호기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소녀는 자신을 죽이러 온 뇌진풍의 사냥개가 아니었다.
추공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전신 마비를 풀기 위해 억지로 손가락 끝을 움직여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꺾으려 시도했다.
파르르.
그러나 검게 죽어버린 오른쪽 다리의 경맥과 뒤틀린 단전은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 손가락 마디가 미세하게 떨렸을 뿐, 신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당혜린은 그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 침 끝에 묻은 당가비전의 만독약물이 네 목 경맥에 닿는 순간, 네 심장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시커멓게 썩어 들어갈 테니까. 그보다 대답해라. 네놈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이 기이한 진기의 파동은 대체 뭐지? 사파의 음독한 양명경 화독인데, 어떻게 정파 남궁세가의 빙결 독 기운이 섞여 있는 거지? 보통 인간이라면 벌써 경맥이 녹아내려 즉사했을 텐데.”
추공은 억지로 목구멍을 짓누르는 얼음 기운을 밀어내며, 둔탁하고 변조된 목소리를 간신히 뱉어냈다.
“사천당가의…… 방계 약리방 방주, 당혜린이군.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미 숨통을 끊었을 터. 네 눈빛은 자객의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약재를 발견한 의원의 눈빛이다.”
당혜린의 눈동자가 일순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침 끝을 쥔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설마 나를 조사하고 있었던 건가?”
추공은 차가운 이성으로 그녀의 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당혜린은 사천당가의 방계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야수현의 초라한 약리방에 유배당하듯 머물고 있었다. 그녀가 본가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문의 어르신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독공이나 의학적 연구 성과가 반드시 필요했다.
“사천당가의 방계가 본가로 복귀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독성의 조화와 파해법을 본가에 바치는 것. 내 몸은 남궁세가의 비전 빙결 독과 양명경 화독이 공존하며 버티고 있는, 강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완벽한 연구체다. 나를 죽이면 너는 평생 야수현의 구석진 약리방에서 썩어가야 할 터.”
당혜린은 침을 거두지 않은 채 이빨을 지그시 물었다. 사내의 말은 그녀의 가장 아픈 구석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건방진 살수 놈이군. 죽어가는 처지에도 내 신분과 야심을 이용해 거래를 제안하다니. 하지만 제안은 나쁘지 않아. 네놈의 그 뒤틀린 경맥을 살려두는 것이 내게도 훨씬 이득이니까.”
당혜린은 침을 거두고 품속의 백보독낭(百寶毒囊)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정교한 침통을 꺼냈다. 그것은 극음의 한기를 머금어 주화입마를 치료하는 천하의 기물, 천년빙침(千年氷針)이었다.
“잘 버텨라. 침이 들어가는 순간, 네 단전 속에 갇힌 불꽃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뛸 테니까.”
당혜린의 손끝이 눈부시게 움직였다. 서늘한 백색 광채를 띤 천년빙침이 추공의 오른쪽 다리 양명경맥의 막힌 혈도들과 단전 주변의 사혈들을 번개 같은 속도로 관통했다.
치이이익!
침이 박히자마자 추공의 체내에 갇혀 있던 양명경 화독이 격렬하게 저항하며 붉은 아지랑이를 모공 밖으로 뿜어냈다. 뼈를 깎는 듯한 열기와 한기가 전신 경맥에서 동시에 충돌했다. 추공은 이빨을 악물고 비명을 삼켰다.
당혜린은 지체하지 않고 백보독낭에서 주화초(주화초)의 열독을 중화시키는 특수한 약초 배합액을 꺼내 추공의 입안에 강제로 흘려 넣었다. 차가우면서도 끈적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단전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 단전 내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한천수의 음기와 남궁세가의 빙결 독, 그리고 양명경 화독의 양기가 주화초 해독재의 조율 아래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꽃과 차가운 얼음의 기운이 서로를 파괴하는 대신, 태극(太極)의 소용돌이를 그리며 하나로 융합되어 갔다.
음양조화 태극진기(陰陽調和 太極眞氣).
마침내 추공의 단전 속에서 천조종 시조가 남긴 전설적인 내공의 맹아가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전신을 옥죄던 마비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막혀 있던 상체의 경맥들이 폭발하듯 뚫리며 서늘한 힘이 차올랐다.
추공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오른쪽 다리는 힘없이 바닥에 끌렸으나, 그의 상체와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위엄차 있었다.
“고맙소, 당 소저. 이로써 우리의 위험한 동맹이 성사되었구려.”
당혜린은 천년빙침을 수거하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그저 내 연구체를 살려둔 것뿐이니까. 네 몸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내 약리방으로 찾아와 맥을 보여야 할 거다.”
추공이 낡은 대나무 빗자루를 집어 들고 한천동을 나서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동굴 입구 너머에서 거칠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사부님!”
숨을 헐떡이며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온 인물은 그의 비밀 제자, 고아 소년 아철이었다. 아철은 전신이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채, 공포와 긴장감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추공을 바라보았다.
“아철, 무슨 일이냐?”
아철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뇌진풍이 철도방의 무기 밀매상 육필과 결탁했습니다! 천조산에서 채굴한 한철(韓鐵)로 대규모 군용 무기를 제작하여, 오늘 밤 삼경에 창강 나루터를 통해 흑사련 총단으로 수송하려 합니다! 이미 수송선에 무기들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추공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서늘한 사신의 안광으로 화했다. 뇌진풍이 가문의 자원을 빼돌려 흑사련의 뒷배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 외다리 사신의 복수극을 뒤흔들 새로운 거대한 음모의 서막이 한천동의 차가운 안개 속에서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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