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의 벽과 쇄맥수
콰아아앙!
벼락이 치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야수현 서문 밖, 버려진 옛 우물터의 낡은 벽돌 담벼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며 거대한 흑영이 들이닥쳤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 칠흑 같은 무쇠 근육을 드러낸 사내, 철권 강씨였다. 그의 양손에 장착된 천년 한철 권갑이 폭우 속에서도 붉은 안광을 반사하며 추공의 정수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피할 곳은 없었다. 뒤편은 가시덤불이 우거진 깊은 우물터였고, 좌우는 무너진 담벼락 잔해가 퇴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추공은 귀면 가면 너머로 차갑게 가라앉은 안광을 빛냈다. 그는 억지로 신형을 뒤로 물리는 대신, 왼쪽 다리 하나에 전신을 무게중심을 실었다. 천조산 한철로 보강된 목제 기계 의족의 무릎 관절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꺾였다.
스으으읍.
단전에서 음양조화 태극진기가 요동쳤다. 추공은 오른손에 쥔 풍검의 목도를 비스듬히 치켜들며, 적의 권갑이 내뿜는 가공할 파괴력을 정면으로 받아내려 했다.
쿠웅!
무쇠와 참나무 목도가 맞부딪치는 순간, 고막을 찢는 듯한 금속음이 우물터 전체를 뒤흔들었다. 강씨가 펼친 철포삼 외공의 둔중한 내력이 목도를 타고 추공의 손목 경맥으로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크윽!”
추공의 입가에서 비릿한 핏물이 울컥 솟구쳤다. 가면 밑으로 흘러내린 피가 턱끝을 적셨다. 간밤에 미세하게 흡입했던 주화초의 열독이 격렬한 충격을 받자 폐맥을 사정없이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기계 의족의 스프링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고, 지탱하던 왼쪽 무릎 관절의 연골이 으스러지는 듯한 극심한 마모 통증이 뇌리를 강타했다. 한 걸음만 뒤로 밀려나도 척추가 완전히 꺾일 판국이었다.
“하하하! 쥐새끼 놈, 겨우 이 정도더냐! 내 주인의 금고를 턴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네놈의 뼈마디를 다 부러뜨려 알려주마!”
강씨가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지르며 왼손의 권갑을 크게 휘둘러 추공의 허리를 가로로 베어왔다. 그의 전신은 이미 철포삼 외공으로 인해 짙은 무쇠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검조차 이가 빠져 튕겨 나간다는 무적의 방어막이었다.
추공은 정면 대결이 자살행위임을 직감했다. 무쇠처럼 단단한 외공 고수를 상대하려면 그 힘의 흐름을 흔들어야 했다.
추공은 쓰러지는 척 신형을 아래로 굽히며, 왼손에 쥐고 있던 녹슨 무쇠 빗자루를 기민하게 휘둘렀다.
선풍소(旋風掃)!
백근에 달하는 무쇠 철심이 박힌 빗자루가 지면을 크게 쓸어내리자, 빗물에 젖어 있던 진흙탕과 가시덤불 잔해, 낙엽들이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되어 폭발하듯 솟구쳤다. 붉은 흙먼지와 진흙 장막이 순식간에 강씨의 사방을 가로막으며 그의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비겁한 놈! 이런 먼지 장막 따위로 내 철권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강씨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소리만을 의지한 채 맹목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가공할 권풍이 허공을 가르며 추공의 어깨 자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추공은 눈을 감았다. 대신 청이식 심안을 가동했다. 지면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소리, 강씨의 가죽 장화가 진흙을 밟는 마찰음, 그리고 그의 거친 호흡 주기가 고막을 통해 실시간으로 뇌리에 그려졌다.
‘열다섯 보 앞, 무게중심이 오른쪽 어깨로 쏠려 있다. 그리고…….’
강씨가 날카로운 권풍을 내뿜으며 돌진하는 순간, 그의 겨드랑이 밑 사혈이 일시적으로 노출되었다. 아무리 철벽같은 철포삼 외공이라 할지라도, 진기가 시작되고 배출되는 ‘극문(極門)’의 사혈만큼은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없는 법이었다.
추공은 빗자루 손잡이 중간의 미세한 홈을 엄지손가락으로 강하게 눌렀다.
퓩! 퓩! 퓩!
빗자루 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고 날카로운 무쇠 빗자루 속 철침 십여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폭발하듯 발사되었다.
“으윽?!”
강씨는 자신의 철포삼을 믿고 피하지 않았으나, 침들은 흙먼지를 뚫고 그의 겨드랑이 밑 사혈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한철로 제련된 미세한 비침들이 경맥 깊숙이 박히자, 강씨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무쇠 빛 호신강기가 한순간에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이, 이게 무슨……!”
진기의 흐름이 꼬이며 강씨의 신형이 크게 흔들린 찰나, 추공은 의족의 반동력을 이용해 제자리에서 반바퀴 회전하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쇄맥수(鎖脈手).
추공의 두 손가락 끝에 서늘한 빙백 진기가 맺혔다. 그의 손끝이 강씨의 가슴팍과 목덜미, 그리고 단전의 주요 접합부를 번개 같은 속도로 연타했다. 소리도 없고 도광도 없는 조용한 제압이었다.
툭, 툭, 툭.
“커, 헉……!”
강씨의 전신 경맥이 얼어붙듯 굳어버렸다. 그의 거구는 허공에서 굳어진 채 무릎을 꿇었다. 양손의 무거운 권갑이 진흙탕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단전의 내력이 완전히 묶여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폐인의 상태가 된 것이다.
추공은 굳어버린 강씨를 우물가 그늘진 가시덤불 속으로 거칠게 밀쳐두었다.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독조 마씨에게 귀면천도의 자객이 고도의 경맥 제압술을 쓰는 고수라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쿨럭!”
추공은 가슴을 움켜쥐고 각혈했다. 무리하게 태극진기를 끌어올려 쇄맥수를 펼친 대가는 참혹했다. 단전 내부에서 억제되어 있던 양명경 화독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과거 채홍에게 입었던 독 상처의 잠재된 독 기운이 동시에 발흥하며 전신 경맥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오한과 열독의 충격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추공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야수현 서문 밖 옛 우물터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으나, 눈앞의 안개가 급격히 흐려지며 대지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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