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다리와 녹슨 빗자루
천조산(天照山)의 아침은 언제나 눅눅한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예전에는 천하제일의 도맥(刀脈)이라 불리며 장엄한 일출을 맞이하던 천조종(天照宗)의 총단이었으나, 지금은 사파 연맹인 흑사련(黑蛇盟)의 하부 분타로 전락하여 음산한 뱀의 소굴이 되어 버린 곳.
사방에서 들려오는 삼류 문도들의 난잡한 연무 소리와 천박한 웃음소리가 산자락을 더럽히고 있었다.
철컥, 철컥.
그 소음 사이로 기이하게 엇박자를 타는 둔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때 묻은 회색 하급 문지기 무복을 입은 사내가 녹슨 무쇠 빗자루에 온 체중을 실은 채 마당을 쓸고 있었다. 사내의 이름은 추공(秋公).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였으나, 그의 굽은 허리와 헝클어진 머리칼, 그리고 때와 숯검댕으로 얼룩진 얼굴은 쉰이 넘은 노인처럼 피폐해 보였다.
가장 처참한 것은 그의 오른쪽 바짓단이었다. 무릎 아래가 허전하게 잘려 나간 것처럼 텅 빈 채 허벅지춤에 대충 묶여 있는 바지자락. 추공은 왼쪽 다리 하나에만 의지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가 빗자루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오른쪽 다리의 상흔이 욱신거리며 기경팔맥을 뒤흔드는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다.
‘스스로 다리를 부러뜨려야 했던 그 치욕의 밤을 어찌 잊겠는가.’
추공은 이가 빠진 입술을 짓씹으며 단전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열기를 억눌렀다. 멸망의 밤, 배신자 뇌진풍(雷震風)과 흑사련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돌로 내리쳐 부러뜨렸다. 천하제일 도객의 명예도, 장문인의 적장자라는 고귀한 신분도 모두 그 부러진 뼈마디와 함께 진흙탕에 파묻었다. 오직 복수를 위해, 살아서 그들의 목을 베기 위해 스스로 폐물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이, 절름발이 개새끼! 마당을 그따위로 쓸어 넘길 거냐?”
연무장 저편에서 날카롭고 오만한 목소리가 날아와 추공의 고막을 찔렀다. 화려한 황금색 비단 장포를 걸치고 허리에는 남궁세가에서 약탈한 연검(軟劍)을 찬 청년, 뇌진풍의 아들이자 현재 천조종의 소장주 행세를 하는 뇌태백(雷太白)이었다. 그의 곁에는 쥐새끼 같은 인상을 한 하급 제자 곽두식(郭頭植)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바짝 붙어 있었다.
추공은 즉시 허리를 더 깊숙이 숙이며 얼굴에 비굴하고 흐리멍덩한 웃음을 띠었다.
“아이고, 소장주님! 이 늙은이 눈이 침침해서 그만…… 바로 깨끗이 치우겠습니다요.”
“더러운 늙은이가 아침부터 눈앞에서 절뚝거리니 기분이 잡치는군. 네놈의 그 쓸모없는 다리는 아직도 덜 부러진 모양이지?”
뇌태백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가죽 군홧발이 추공의 부러진 오른쪽 다리 끄트머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쩍!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물리적인 충격과 함께 단전 속에 가두어 두었던 양명경 화독(陽明經 火毒)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가슴팍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과부하가 걸렸다. 당장이라도 내력을 폭발시켜 이 오만한 애송이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살기가 뇌리를 지배했다. 하지만 추공은 이빨을 악물고 전신의 진기를 강제로 억눌렀다.
“으아아악! 소, 소장주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다리만은……!”
추공은 내력을 극도로 억제한 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연무장 바닥을 굴렀다. 흙먼지가 그의 회색 무복을 더럽히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흙바닥에 처박혔다. 그 처참한 꼴을 보며 뇌태백은 큰 소리로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꼴 좋구나! 천조종의 문지기라는 놈이 개처럼 기어 다니는 꼴이라니!”
그때, 곁에 있던 곽두식이 눈을 가늘게 뜨며 추공이 쥐고 있던 녹슨 무쇠 빗자루를 주목했다.
“소장주님, 이 절름발이 늙은이가 빗자루를 쥐는 손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요. 혹시 이 안에 무슨 쓸만한 칼이라도 숨겨둔 것 아닙니까?”
곽두식이 침을 흘리며 무쇠 빗자루를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그 빗자루 내부에는 추공이 밤마다 어루만지며 복수의 칼날을 갈던 숙부 추만엽(秋萬葉)의 부러진 검 손잡이가 숨겨져 있었다. 발각되는 순간, 모든 기만극이 끝장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추공은 빗자루를 강제로 움켜쥐어 의심을 사는 대신, 발목을 삐끗하는 척하며 몸을 앞으로 크게 기울였다.
스슥!
그가 넘어지는 순간, 빗자루 끝이 마당의 흙더미를 절묘한 각도로 쓸어 넘겼다. 일도류 정좌도법의 기초 회전력이 미세하게 실린 빗자루질은 연무장 사방으로 거대한 흙먼지 폭풍을 폭발적으로 일으켰다.
“쿨럭! 퉤! 이게 무슨 먼지야!”
“눈을 못 뜨겠습니다요, 소장주님!”
뇌태백과 곽두식이 갑작스러운 먼지 장막에 가로막혀 기침을 해대며 눈을 비볐다. 그 혼란을 틈타 추공은 더욱 비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때 마침, 저편에서 하급 경비무사 칠성(七星)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이미 추공에게 은밀히 돈을 받고 야간 순찰 구역의 구멍을 열어주기로 매수된 자였다. 칠성은 상황을 눈치채고 서둘러 소리쳤다.
“소장주님! 분타주님께서 내원에서 찾으십니다요! 이까짓 절름발이 쓰레기 때문에 아침부터 손을 더럽히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뇌태백은 침을 뱉으며 흙먼지를 털어냈다.
“쳇, 재수 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두식아, 가자. 더러운 똥내 나는 놈이랑 더 엮여봤자 입만 더러워진다.”
뇌태백과 곽두식이 멀어지자, 추공은 바닥에 엎드린 채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 읊조렸다.
“감사합니다요, 소장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요!”
그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추공은 서서히 상체를 일으켰다. 비굴하던 눈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밤안개보다 차갑고 서슬 퍼런 살기가 그의 안광에서 뿜어져 나왔다. 부러진 오른쪽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와 회색 바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으나, 사내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뇌태백, 네놈의 그 오만한 다리도 머지않아 똑같은 각도로 부러뜨려 주마.’
추공은 부러진 무쇠 빗자루를 단단히 쥐고 문지기 초소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
깊은 밤, 천조산은 거대한 침묵에 잠겼다.
사방을 가득 채운 안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욱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대나무 숲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삼경(三更)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희미하게 울려 퍼질 무렵, 문지기 초소의 짚단 위에 앉아 있던 추공이 눈을 떴다. 그의 몸짓에는 낮의 비참한 절뚝거림이 존재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완벽한 잠행의 보법, 무념보(無念步)였다.
그는 초소 바닥 밑의 은밀한 이중 판때기를 열고 품속에서 낡은 은자 주머니를 꺼냈다. 낮에 매수해 둔 경비무사 칠성이 약속대로 서쪽 담장 모퉁이의 순찰을 비워두는 시간은 단 반 각(약 7.5분).
추공은 그림자처럼 초소를 빠져나와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리의 화독이 욱신거리며 통증을 유발했으나, 그는 천조일월신공(天照日月神功)의 음기를 운용해 감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켰다. 한 다리로 지면을 차고 오르는 그의 신형은 바람을 타는 낙엽처럼 가볍고 소리가 없었다.
서쪽 담장을 넘은 추공이 당도한 곳은 천조종의 금지 구역이자 역대 장문인들의 묘역인 ‘천조종 지하 일월릉(日月陵)’의 입구였다. 잡초와 넝쿨로 가득 찬 석문을 밀고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와 차가운 음기가 온몸을 감쌌다.
지하릉 깊은 곳, 거대한 시조 추일성의 석상 뒤편에 숨겨진 비밀 밀실에 도달해서야 추공은 참았던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석대 위에 놓인 숙부 추만엽의 부러진 검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비록 칼날은 반 토막이 나고 손잡이는 가죽이 다 헤어졌으나, 그 표면에 새겨진 거친 도흔(刀痕)들은 여전히 숙부의 웅장한 기개를 담고 있었다. 멸망의 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만인참의 칼날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성문을 가로막았던 숙부의 처절한 외침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는 듯했다.
‘추공…… 반드시 살아서 가문의 대통을 잇고…… 원수들의 목을 베어라……!’
추공은 부러진 검날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속죄의 열망과 복수심이 단전의 음양 진기를 사납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는 한 다리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벽면에 새겨진 시조의 구결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체내의 끓어오르는 화독을 차가운 음기로 억누르며, 그는 매일 밤 이 어둠 속에서 홀로 무학을 연마해 왔다. 부러진 다리라는 신체적 한계는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제자리에서 단 한 번의 회전력으로 공간을 베어내는 일도류 정좌도법의 극의를 완성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었을 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스스슥.
지하릉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석문 너머 통로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일반적인 발소리가 아니었다. 뱀이 모래 위를 기어가듯 슥슥 긁히는 기괴한 소리, 그리고 등 뒤의 털끝을 쭈뼛 서게 만드는 서늘한 살기.
추공의 청이식 심안(聽耳式 心眼)이 극도로 활성화되었다. 백 보 밖의 옷깃 스치는 소리까지 구분해내는 그의 귀에, 침입자의 무서운 내공 호흡 주기가 잡혔다.
‘마유신(馬庾信)이다.’
뇌진풍의 오른팔이자 가장 잔혹한 사냥개. 그 음험한 자가 이 깊은 지하릉 근처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추공은 서둘러 부러진 검을 석대 밑에 은닉하고, 무념보를 펼쳐 석상 뒤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심장 박동을 분당 서른 번 이하로 강제 저하시키며 기척을 완전히 지웠다.
쾅!
석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횃불의 붉은 빛이 지하릉 내부를 어지럽게 비추었다. 쇠사슬 채찍검을 허리에 찬 마유신이 음산한 눈빛을 빛내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장서각(藏書閣) 내부의 비밀 장치와 연동된 기밀 탐지 부적이 들려 있었다. 부적의 붉은 문양이 미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흠, 쥐새끼가 다녀간 흔적이 분명하군. 장서각의 비밀 장치가 작동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어.”
마유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리며 시조의 석상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의 발걸음이 추공이 숨어 있는 석상 바로 뒤편으로 향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추공은 단전의 진기를 극도로 압축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무쇠 빗자루 속에 숨겨진 철침 발사 장치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때, 석문 밖에서 급박한 전령의 외침이 들려왔다.
“보고 드립니다, 대장님! 장서각 지하 밀실의 철문에서 기이한 도흔이 발견되었습니다! 침입자가 아직 분타 내부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마유신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석상 뒤편을 한 번 더 노려본 뒤, 가차 없이 몸을 돌려 외쳤다.
“하급 제자들과 잡역부들의 처소를 단 한 곳도 빠짐없이 포위하라! 쥐새끼의 꼬리를 밟는 즉시 사지를 찢어버릴 것이다! 전면 불시 수색을 선포한다!”
마유신이 이끄는 무사들이 거칠게 지하릉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추공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수색대가 그의 문지기 초소 턱밑까지 들이닥치기 전에 돌아가야 했다. 만약 초소 바닥 밑에 숨겨진 밤의 살수 도포와 의족 장비가 발각된다면, 가문의 모든 복수극은 시작되기도 전에 피바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추공은 빗자루를 꽉 쥔 채, 어둠이 가득한 출구를 향해 절뚝거리며 번개처럼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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