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의 쥐를 잡다
“아서 사령관. 밤중에 창고지기 늙은이를 대동하고 황실의 비밀 군수고를 무단 침입하다니. 이것은 요새의 군수품을 사적으로 약탈하려 한 명백한 ‘반역죄’이자 현행범이다. 감시관님의 명령에 따라, 이 자리에서 반역자들을 즉결 처형하겠다!”
횃불의 붉은 불꽃이 축축한 지하 통로 벽면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헨리 대위의 비열한 목소리가 좁은 석조 통로에 메아리쳤고, 그의 수하들이 뽑아 든 검날이 서늘한 살기를 뿜어냈다. 사방이 가로막힌 지하 군수고 입구.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당한 아서(김도현)의 표정에는 그러나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품속에서 가죽 장부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은빛 안개 요새의 차가운 안개 습기 속에서도 조금도 마모되지 않은, 펠릭스와 헨리의 조직적 범죄가 음각으로 기록된 바로 그 이중 장부였다.
“반역이라.”
아서가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의 살기에 위축되지 않는, 현대 대한민국 육군 작전 전술가 특유의 냉철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헨리 대위. 네가 거느린 그 사병들은 매일 아침 기억을 잃고 눈을 뜬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최전방 요새에서 목숨을 걸고 망령들과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오직 사령관인 나와 요새의 규율을 믿고 검을 쥐는 자들이지.”
아서는 장부의 첫 페이지를 펼쳐 헨리의 사병들을 향해 들어 보였다. 장부의 모서리에는 헨리 대위 고유의 붉은색 마력 인장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희들은 알고 있나? 너희가 배를 갉아먹으며 안개 속에서 미쳐갈 때, 이 뚱뚱한 보급관 놈은 황실에서 보내온 정품 식량의 40%를 ‘안개로 인한 부패’로 위조해 이 비밀 군수고에 빼돌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국경 암시장에 팔아치워 자신과 펠릭스 감시관의 주머니를 채웠지. 지금 너희가 칼을 겨누고 있는 대상은 너희를 반역죄로부터 구하려는 사령관이다.”
사병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기억을 잃지만, 배고픔과 생존에 대한 본능은 영혼에 각인되어 있었다.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자신들의 식량을 가로챈 자가 바로 자신들의 지휘관인 헨리였다는 사실에, 사병들의 칼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 무슨 헛소리를! 저건 위조된 장부다! 사병들은 들어라! 사령관이 광증에 걸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즉시 베어버려라!”
헨리가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병들 중 누구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깨진 순간, 헨리가 구축한 군사적 통제력은 밑바닥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선동이 먹히지 않자 극도의 공포를 느낀 헨리는 허리춤에서 붉은색 비상 마력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감시관님께 알려야 한다! 이 반역자 놈들을 전부 쓸어버려라!”
*쉬이이익! 쾅!*
헨리가 격발한 신호탄이 지하 환기구를 타고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 지상의 밤하늘을 붉은 섬광으로 물들였다. 지상의 펠릭스에게 보내는 비상 구조 신호였다.
“월터, 엎드려라!”
아서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아서가 미리 설계해 둔 전술적 매복이 가동되었다.
*쿠구구궁! 쾅!*
비밀 군수고 인접 통로의 얇은 벽면이 거대한 충격과 함께 박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자욱한 돌가루 먼지 사이로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멘 돌격 투사 브루노와, 대검을 치켜든 늙은 부사관 카엘의 중갑조가 벼락같이 난입했다.
“사령관님의 명령이다! 무기를 버려라, 쥐새끼들아!”
브루노가 대지를 울리는 포효와 함께 거대한 청동 기어 전투 도끼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르릉하는 파쇄음과 함께 돌바닥이 갈라지자, 헨리의 사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어뜨렸다. 카엘의 상급 부사관 특유의 서늘한 살기가 통로 전체를 압도했다.
대치 과정에서 월터가 헨리의 사병이 휘두른 검 끝에 어깨를 긁혀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브루노가 헨리의 덜덜 떨리는 목덜미를 움켜쥐고 쇠사슬로 그의 온몸을 결박했다.
“지상으로 간다.”
아서가 차갑게 명했다.
“펠릭스가 쥐새끼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
* * *
요새 지상 연병장은 이미 삼엄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지하에서 쏘아 올려진 붉은 신호탄을 본 감시관 펠릭스가 요새 내부 저항군 소속의 사병들과 자신에게 매수된 기사들 수십 명을 이끌고 연병장을 장악한 상태였다.
“병사들은 들어라!”
펠릭스가 단상 위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며 외쳤다. 그의 화려한 황실 문양 가죽 장포가 밤바람에 사납게 펄럭였다.
“아서 사령관이 결국 광증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 군수고를 습격해 반역을 모의했다! 보급관 헨리 대위가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즉시 무장을 갖추고 지하 통로를 봉쇄해 반역자들을 처단하라!”
기억을 잃은 채 밤의 안개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일반 징집병들이 펠릭스의 선동에 휘말려 칼을 쥐려던 그때, 지하 통로의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누가 반역자라는 것인가, 펠릭스 감시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아서가 연병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쇠사슬에 묶인 채 개처럼 끌려오는 보급관 헨리와, 대검을 거꾸로 쥔 카엘, 그리고 거구의 브루노가 버티고 서 있었다.
연병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펠릭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저 미친 사령관을 즉시 체포하라! 헨리 대위를 구출하라!”
펠릭스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아서는 침착하게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가 펠릭스의 비밀 장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목에 새겨진 군사 명령 문신들이 밤의 안개 속에서 미세하게 푸른빛을 내뿜으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서는 무의식적 위압감(Commander's Aura)을 발동하여 연병장 전체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모든 병사들은 주목하라!”
아서의 목소리가 마력의 파동을 타고 연병장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에 적힌 것은 너희가 매일 아침 기억을 잃는다는 약점을 이용해, 너희의 목숨줄인 겨울철 식량과 특수 마력 잉크를 횡령해 온 펠릭스 감시관과 헨리 대위의 실제 범죄 기록이다! 지난달에만 너희의 식량 40%가 안개로 썩었다고 조작되어 이 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것은 위조된 문서다! 사령관의 광증이 지어낸 헛소리다!”
펠릭스가 이 갈며 반박했다.
“장부의 필적과 마력 인장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병사들은 속지 마라!”
아서는 예상했다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품속에서 요새의 표준 마력 측정기를 꺼내 장부 표면에 새겨진 붉은 인장에 갖다 대었다.
“제국의 법률에 따르면, 모든 감찰 장교와 보급관의 고유 마력 인장은 황실 마탑에 등록된 고유의 주파수를 지닌다. 이것은 결코 위조할 수 없지.”
*위이이잉! 틱.*
측정기에서 방출된 푸른빛이 헨리의 인장과 공명하며, 헨리 대위 고유의 군사 식별 코드가 공중에 선명한 마력 홀로그램으로 투사되었다. 헨리의 범죄 장부임이 만천하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 이럴 수가…….”
연병장에 모인 병사들의 눈빛이 경악에서 분노로 변했다. 그들은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안개에 미쳐가고 있었는데, 자신들을 지켜주어야 할 감시관과 보급관이 식량을 빼돌려 배를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한 것이다.
“우리 식량을…… 저놈들이 빼돌렸다고?”
“우리는 굶주리며 망령들과 싸웠는데!”
분노한 병사들의 외침이 해일처럼 연병장을 덮쳤다. 펠릭스의 사병들마저 동요하며 칼끝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들의 생존권을 훔친 부패한 상관을 위해 목숨을 바칠 병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엘 부사관, 브루노 투사. 즉시 저 반역 세력의 무장을 해제하라.”
“명령 수행!”
카엘과 브루노가 정예 중갑병들을 이끌고 무력 진형을 전개했다. 펠릭스의 친위 병력은 분노한 군중의 기세와 중갑병들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헨리 대위를 요새 지하 감옥에 처넣어라. 그리고 펠릭스 감시관.”
아서가 단상 아래의 펠릭스를 내려다보며 서늘하게 선포했다.
“너의 모든 군사적 권한과 물자 통제권은 이 시간부로 박탈된다. 이것은 사령관인 나의 정당한 군사 재판권 행사이자 요새 수호 조치다.”
펠릭스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요새 내부의 여론과 군권은 이미 완벽하게 아서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완벽하게 패배한 펠릭스는 기사들의 엄호 속에서 자신의 집무실로 비참하게 물러났다. 문을 걸어 잠근 그는 분노로 이빨을 갈며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어둠의 빛을 뿜어내는 비밀 전령석을 꺼내 들었다.
“아서…… 네놈이 감히 내 모든 것을 망쳐놓았구나.”
펠릭스가 마력을 주입하자 전령석 표면이 음산하게 일렁이며 황실 직속의 그림자 암살자 제브(Zev)의 주파수와 연결되었다.
“제브…… 지금 즉시 은빛 안개 요새로 와라. 사령관 아서의 목을 베어라. 대가는 네가 원하는 만큼 지불하겠다.”
어둠 속에서 암살자의 차가운 조소가 전령석을 통해 흘러나오는 장면과 함께, 요새의 밤하늘에는 다시금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하얀 안개가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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