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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심문관의 붉은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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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막의 그림자가 요새 성벽을 잠식해 들어오는 순간, 아서는 품속의 펠릭스 장부를 가볍게 쥐었다.


창밖의 풍경은 기괴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매일 밤 요새를 집어삼키던 하얀 안개 대신, 타오르는 향로의 연기 같은 핏빛 안개가 성벽 아래에서부터 소리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신성 교단이 전개한 마법 억제 결계, ‘신성 장막’의 기운이었다. 눅눅한 산성의 냄새 대신, 코를 찌르는 매캐한 유황과 말린 약초의 향이 집무실 안쪽까지 스며들었다.


아서는 가볍게 신음하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매일 아침 자아를 복구하기 위해 가해진 정신적 충격과, 지난 폐광 탐사에서 무리하게 마력을 소모한 부작용으로 뇌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죽 장갑을 낀 오른손 끝은 차갑게 마비되어 감각이 무뎌진 상태였다.


스스슥.


그림자 속에서 실비아가 소리 없이 다가와 아서의 왼손을 가볍게 잡았다. 그녀의 서늘하고 맑은 마력이 아서의 손끝을 타고 흐르며 지독한 두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해 주었다. 실비아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직 은빛 눈동자에 깊은 경계심을 담은 채, 창밖의 붉은 불빛을 턱 끝으로 가리킨 후 아서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수화조차 아끼는 그녀의 기민한 움직임은 이미 최악의 상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방구석에서 서기 레오가 이중 장부의 필사본을 품에 꼭 껴안은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조금 전 감찰관 발락의 사법적 공세를 간신히 막아냈지만, 요새 정문을 통과한 교단의 광기는 발락의 기사단과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었다.


*쿵. 쿵. 쿵.*


무겁고 단단한 철제 군화 소리가 부서진 집무실 문틀 너머 복도를 울렸다. 규칙적이고도 위압적인 발걸음 소리였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젖혀지며, 핏빛처럼 붉은 사제 로브를 걸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성 교단 수석 심문관, 도나투스였다. 그의 전신에서는 금빛 신성 불꽃이 일렁이는 거대한 철퇴, ‘신성한 사슬 낙인 구체’가 뿜어내는 열기가 서늘한 방 안의 공기를 단숨에 가열시키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성 대신 광적인 신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굳게 다문 입술은 타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광신도의 전형이었다.


도나투스의 뒤를 따라 한 소녀가 걸어 들어왔다. 순백의 사제 로브를 입고 금빛 마력이 깃든 지팡이를 쥔 성녀 후보, 헬레나였다. 그녀의 백자기처럼 창백하고 맑은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다. 오직 이성적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서의 집무실 내부를 훑어볼 뿐이었다. 발락의 사주를 받은 행정관 루시우스가 그들의 뒤편에 서서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아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곳이 북방의 미치광이 사령관이 숨어 지내던 둥지인가.”


도나투스의 목소리는 맷돌이 갈리는 듯 둔탁하고 웅장했다. 그가 철퇴를 바닥에 쾅 내리찍는 순간, 붉은색 신성 장막의 파동이 사방으로 방출되며 집무실 내부의 미세한 마력 흐름을 강제로 억제하기 시작했다.


*웅-*


아서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마력 회로가 억눌리는 물리적인 압박감을 느꼈다. 마력을 쓰지 못하게 묶어두고 시작하겠다는 교단의 노골적인 선제 제압이었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아서였지만, 이단 심문관 특유의 영혼을 짓누르는 기세는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아서는 침착하게 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매일 아침 죽음을 이겨내며 단련된 서늘하고 냉철한 기운, ‘무의식적 위압감’을 방출했다. 방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했다. 도나투스의 광기 어린 기세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백전노장 지휘관의 기운이었다. 도나투스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루시우스가 앞으로 나서며 아서의 찢어진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붉고 푸른 문양들을 가리켰.


“도나투스 님, 보십시오. 저것이 바로 제국 마탑에 등록되지 않은 이단 주술의 흔적입니다! 저 사령관은 매일 아침 안개 속에서 기억을 잃는다는 핑계로, 몸에 사악한 결계 회로를 새겨 요새의 병사들을 세뇌하고 제국의 통제를 벗어나려 했습니다!”


도나투스가 아서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는 기하학적 각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철퇴에서 일렁이는 금빛 불꽃이 더욱 거세졌다.


“이교도의 더러운 낙인이로군.”


도나투스가 차갑게 명령했다.


“아서 사령관. 당장 모든 의복을 벗고 단상 위로 올라라. 전신 사상 검증을 실시하겠다. 네 몸에 새겨진 그 사악한 주술 회로가 영혼의 어느 깊은 곳까지 침투했는지, 신성한 불꽃으로 직접 해부하여 밝혀내리라.”


사령관의 의복을 강제로 벗겨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짓밟고, 사상 검증을 빌미로 요새의 지휘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기사들이 검을 반쯤 뽑아 들며 아서를 포위했다. 레오는 공포에 질려 숨을 멈췄고, 실비아의 손가락 끝이 단검 자루로 향했다. 아서는 실비아의 손등을 지시 없이 가볍게 누르며 그녀를 제지했다.


“도나투스 심문관.”


아서가 한 걸음 나아가며 단호하게 소리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제국 헌법 제3권 최전방 특별 군사법 제47조 3항에 의거, 최전방 요새의 현직 사령관은 적의 정보 탈취를 방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암호 체계를 수립할 절대적 권한을 지닌다. 내 몸에 새겨진 각인은 이단 주술이 아니라, 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암호화된 가죽 각인 해독법’의 결과물이다. 세속의 사법 감사관인 발락조차 이 법리적 정당성을 인정하고 물러갔거늘, 교단이 제국의 최전방 군사 sovereignty를 무력으로 짓밟겠다는 것인가?”


“닥쳐라, 이단자 놈!”


도나투스가 포효했다.


“신의 진실 앞에서는 황제의 법률조차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하다! 교단의 권위는 황실의 군법 위에 존재하거늘, 감히 세속의 얄팍한 율법으로 신성한 정화를 가로막으려 드는가!”


도나투스가 거대한 철퇴를 치켜들었다. 금빛 신성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아서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뜨거운 열기가 아서의 피부를 그을릴 듯이 다가왔고, 철퇴의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쇄골 바로 위에서 멈춰 섰다. 단 1인치만 더 움직여도 목뼈가 부러질 듯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성녀 후보 헬레나는 지팡이를 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아서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서가 공포에 질려 주술을 발동하거나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순간을 단 한 톨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예리하게 빛났다. 루시우스는 승리를 확신한 듯 비열한 조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서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목줄기를 조여오는 뜨거운 철퇴 앞에서도 시선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품속으로 왼손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리고 펠릭스의 비밀 장부에서 복사해 둔 두꺼운 청동 음각 판본 사본을 도나투스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이것을 보고도 그 철퇴를 내리칠 수 있을까, 도나투스 심문관?”


청동 판본의 표면에는 교단 고위직 사제들의 신성 인장과 함께, 그들이 펠릭스로부터 받아 챙긴 막대한 뇌물 수수 내역이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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