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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야광 조끼를 입은 자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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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세가 우렁차게 외치며 가슴통을 풍선처럼 크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에 걸린 대형 확성기가 눈부신 영기를 내뿜으며 작동하기 시작했고, 음공귀인의 광포한 소음 진동이 대연무장 바닥을 뒤흔들며 그들의 발밑을 조여왔다.


대연무장 전체를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122데시벨의 초고주파 통곡 소리. 그 사악한 음파의 해일 앞에서 오지훈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방향은 정확히 허만세의 대형 확성기 전면부였다.


“허만세 씨! 주파수 변조 개시! 위상을 정확히 180도 반전시키십시오! 천운종 소음·진동관리 규정 제3조에 의거, 불법 소음원을 물리적으로 상쇄합니다!”


“안전! 역위상 사자후(逆位相 獅子吼) 발사아아아!”


허만세의 목청이 찢어질 듯이 열렸다. 그가 내뿜은 영력이 목에 걸린 영력 증폭 확성기 법기를 통과하는 순간,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파동이 전방을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뿜어져 나갔다.


보통의 사자후라면 귀를 찢는 폭음이 터져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허만세가 뿜어낸 소리는 기묘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무음(無音)의 진동이었다. 오직 공기막이 쩍쩍 갈라지며 일그러지는 시각적인 파동만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음공귀인의 보랏빛 울음소리와 허만세의 백색 역위상 파동이 대연무장 한가운데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 픽.


대참사를 예견하며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던 외문 제자들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연무장을 날려버릴 듯이 요동치던 보랏빛 소음 폭풍이, 허만세의 무음 파동과 맞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스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음파의 파도가 서로의 마루와 골을 갉아먹으며 상쇄되어 가더니, 결국에는 물에 젖은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둔탁한 ‘픽’ 소리만을 남긴 채 허무하게 증발해 버린 것이다.


데시벨 계측기의 바늘이 순식간에 뚝 떨어졌다.


[실시간 소음 측정치: 122데시벨 -> 45데시벨 (정상 범위)]


“……어, 어라? 내 귀가 멀쩡하다?”


“소리가…… 소리가 안 들려! 저 미친 통곡 소리가 멈췄어!”


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하던 제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연무장 광장에는 오직 맑은 밤바람 소리만이 평화롭게 흩날리고 있었다.


“이,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냐! 내 위대한 천상통곡공의 음파가 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사라진단 말이냐!”


음공귀인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평생 비술이 한낱 잡역부의 확성기 조작 한 번에 지워졌다는 사실을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훈은 안경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단순한 파동의 간섭 효과입니다, 음공귀인 씨. 동일한 주파수의 음파에 위상만 180도 뒤집어 맞부딪히면 소음은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상쇄되어 0데시벨이 됩니다. 대한민국 소음 저감 대책의 기본 중의 기본이죠. 무식하게 소리를 지른다고 다 도(道)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이 행정 악마 같은 놈이 감히 무사의 기개를 모독하는구나!”


음공귀인이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수인을 맺으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스스스스…….


지훈의 등 뒤, 차가운 밤안개가 서린 그림자 속에서 아주 미세한 영기의 일그러짐이 발생했다.


검은 복면과 타이즈를 입고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있던 자객 사도형이 마침내 움직인 것이다. 그는 은신 무공인 ‘암영보법’의 극치를 발휘하며, 고양이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훈의 등 뒤 1척 거리까지 소리 없이 육박했다. 그의 손에 쥔 예리한 단검이 차가운 달빛을 받아 섬뜩한 은빛 궤적을 그리며 지훈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소음으로 시선을 끄는 사이, 이 성가신 감찰관 놈의 목을 치면 끝이다!’


사도형의 눈동자에 잔인한 승리의 확신이 서렸다.


그러나 오지훈에게는 상대방의 무공 경지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지훈의 시야 우측 하단에 전개된 ‘위험 요인 투시안’ 격자판 위로, 어둠 속에서 살기를 품고 다가오는 사도형의 전신 실루엣이 시뻘건 형광색 경고선으로 아주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경고: 등 뒤 30센티미터 지점, 날카로운 금속 무기 접근 중]

[위험도: 극위험 (생명 위협 단계)]

[행정 조치: 신분 증명용 의복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의 기본 가호막 강제 활성화]


지훈은 피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품속에서 붉은 볼펜을 꺼내 가볍게 딸깍거렸을 뿐이다.


딸깍.


그 소리와 함께, 지훈이 입고 있던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 표면에서 눈이 멀 것 같은 황금빛 육각형 결계 장막이 웅장하게 솟구쳐 올랐다. 천도가 보증하는 절대 질서의 행정 가호 배리어가 지훈의 전신을 감싸 안은 것이다.


깡——!


사도형이 혼신의 영력을 실어 내리친 단검의 칼날이 황금빛 결계막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사도형의 단검 끝이 흉측하게 휘어지며 무서운 반동이 그의 손목을 타고 역류했다.


“크아악!”


사도형이 손목뼈가 뒤틀리는 극심한 통통 속에 단검을 떨어뜨리며 뒤로 서너 걸음 비틀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과 수치심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결단기 장로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완벽한 암습이, 일개 잡역부의 노란 조끼 장벽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분쇄된 것이다.


그 충격의 여파로 지훈이 손에 쥐고 있던 대한민국 행정용 빨간 볼펜 한 자루가 ‘툭’ 소리를 내며 반으로 부러졌다.


지훈은 부러진 볼펜 조각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제 아끼는 모나미 볼펜이 부러졌군요. 사도형 씨, 귀하는 현재 공무를 수행 중인 사법 감찰관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는 공무집행방해죄 가중 처벌 대상이자, 문파 기물 파손 혐의까지 추가되는 중범죄입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대체 무슨 법을 지껄이는 것이냐! 내 암영보법이 어찌 간파당했단 말이냐!”


사도형이 이빨을 갈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기 위해 신형을 뒤로 날리려 했다. 자객의 본능이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도망칠 생각은 접어두시는 게 좋습니다. 야간 작업 시 시인성 확보를 위한 반사 조끼 미착용은 현장 노동 안전 규정 제24조 위반입니다. 즉시 현장 계도 및 강제 조치를 집행하겠습니다.”


지훈이 허리춤의 안전 테이프 릴을 가볍게 튕겼다.


동시에 지훈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노란색 안전모 모양의 요정 삐삐가 날개를 반짝이며 초고속으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끼익! 안전! 야광 띠 부착!”


삐삐가 허공을 선회하며 지훈의 허리춤에서 흘러나온 노란색 영력 차단 안전 테이프를 낚아챘다. 그리고 도망치려던 사도형의 주변을 번개 같은 속도로 맴돌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이, 이게 무슨…… 어억!”


사도형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노란색 야광 반사 테이프가 그의 허리와 어깨, 허벅지를 엑스자 형태로 촘촘하게 휘감았다. 테이프가 신체에 밀착되는 순간, 사도형의 단전에서 흘러나오던 연기기 8성의 암습 영력이 씻은 듯이 차단되며 그의 몸이 바닥으로 쿵 주저앉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훈은 품속에서 야간 순찰용 고휘도 야광 반사 조끼를 꺼내 사도형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씌워버렸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야간 안전 수칙 위반’ 빨간 딱지를 정확하게 날려 붙였다.


착!


“자, 이제 야간 시인성이 완벽하게 확보되었습니다. 어디 한번 다시 숨어보시죠.”


지훈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수첩에 사도형의 인적 사항을 기록했다.


사도형은 수치심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 이빨을 갈았다.


“우습게 보지 마라! 내 암영보법은 어둠이 있는 한 무적이다!그림자 속으로 숨으면 그만…….”


사도형이 기합을 넣으며 연무장 구석의 가장 어둡고 음침한 숲 그늘 속으로 몸을 날렸다. 자객의 비술을 발휘해 어둠과 하나가 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대연무장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손가락질을 하며 풋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핫! 저것 봐! 저 자객 놈 몸에서 불이 나!”


“어둠 속에 숨었는데 혼자 번쩍번쩍 빛나고 있어! 완전 반딧불이잖아!”


사도형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 숨으려 했던 그의 몸은, 지훈이 강제로 입힌 노란색 야광 반사 조끼와 야광 띠 때문에 사방 100미터 밖에서도 눈이 부실 정도로 형광 초록빛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주변의 어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혼자 밤하늘의 등대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은신술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위치가 전 문파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기괴한 굴욕.


“내, 내가…… 내가 등대라니! 자객인 내가 왜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단 말이냐아아아!”


사도형이 머리를 감싸 쥔 채 연무장 바닥을 뒹굴며 절규했다. 평생을 갈고닦은 자객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엄성이, 노란색 반사 조끼 한 장 앞에 완전히 박살 나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은 배를 움켜쥔 채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자객이 야광 조끼를 입다니, 이건 역사에 남을 개그다!”


“앞으로 밤길 걸을 때 사도형만 따라가면 절대 길 잃어버릴 일은 없겠네!”


사도형의 비참한 몰락을 목격한 음공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자신의 소음 공격은 상쇄당했고, 은밀한 기습을 노리던 자객 동료는 야광 조끼를 입은 채 밤하늘의 등대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 그에게 남은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이…… 이 사악한 행정 요괴 놈들! 감히 내 슬픔의 예술을 조롱하고 동료를 모욕하다니! 내 오늘 전 영력을 쥐어짜 내어 너희 놈들과 함께 동귀어진하겠다!”


음공귀인이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발밑의 동종(銅鐘)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의 단전에서 흘러나온 모든 영력이 폭주하며 동종 표면의 보랏빛 영기가 백색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동종이 과부하 기동을 시작하며 내뿜는 진동이 대연무장 바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연무장 바닥의 석판들이 쩍쩍 갈라지며 먼지가 솟구쳤고, 주변 건물들의 대들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후의 광포한 소음 폭탄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 붕괴와 폭발의 전조 속에서, 대연무장 구석에 서 있던 설무진이 지훈의 지시를 기다리며 차가운 서리 영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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