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미혼림에 켜진 초록색 불빛
“콜록, 콜록! 감찰관님, 이 안개는 단순한 독무가 아닙니다! 영력을 갉아먹고 정신을 뒤흔드는 진법의 왜곡 기운입니다!”
백현우가 소매로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손에는 바람의 기운을 담은 정화용 풍수부(風水符) 몇 장이 쥐어져 있었다. 백현우는 지훈의 허락을 구하듯 허공으로 부적을 날렸다.
“벽풍(辟風)! 정화(淨化)!”
파스스스!
부적이 불타오르며 한 줄기 맑은 바람이 일어 주변의 자색 안개를 잠시 밀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사방을 가득 채운 보랏빛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바람이 쓸고 간 자리를 즉시 메워버렸다. 오히려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대원들의 기침 소리만 커질 뿐이었다.
백현우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안 됩니다……. 정화 주술이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안개가 끊임없이 자가 재생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반나절도 못 버티고 환각에 빠져 질식하고 말 겁니다.”
“백현우 씨, 진정하십시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따르면, 밀폐 공간 및 독성 가스 누출 지역에서 검증되지 않은 개인용 주술 도구에만 의존해 작업을 강행하는 것만큼 위험한 짓은 없습니다. 소모적인 영력 낭비는 즉시 중단하십시오.”
오지훈은 때 묻은 잡역복 위에 걸친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자색의 왜곡 에너지가 지훈의 신체에 닿으려 할 때마다, 조끼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천도의 행정 가호막이 *파르르* 스파크를 일으키며 모든 유해 기운을 무해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지훈은 가죽 서류 가방을 열어 어젯밤 자재 창고에서 검거한 산업 스파이 야율홍에게서 압수한 밀서 더미를 꺼냈다. 그리고 위험 요인 투시안(Hazard Penetration Vision)을 발동하여 밀서에 적힌 은밀한 한자들을 정밀 분석하기 시작했다.
안경 렌즈 너머로 붉은색 격자무늬 홀로그램 정보가 빠르게 스캔되었다.
[밀서 분석 완료]
[핵심 내용: 내문 장로 마진태와 사마도 집행관이 횡령한 외문 방재 예산 중 일부가 진법가 제갈참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 포착]
[자금 용도: 제갈참의 무허가 개인 미로 진법 ‘정혼미로’ 및 사설 수련장 건설 비용 지원]
[배후 커넥션 일치율: 99.4%]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지훈은 차갑게 미소 지으며 수첩에 붉은 볼펜으로 적어 내려갔다.
제갈참이 이토록 당당하게 소방법을 무시하며 불법 미로를 가동하고, 감찰단을 향해 기습 결계를 전개한 배후에는 결국 마진태와 사마도의 더러운 비자금 공급망이 얽혀 있었다. 제갈참의 미로는 단순한 수련 시설이 아니라, 카르텔의 자금을 세탁하고 불법 엘리트 무력을 양성하기 위한 비밀 기지였던 것이다.
“이거 아주 가산 과태료 청구 명분이 확실해졌군요. 뇌물 수수에 불법 사설 체육시설 운영, 그리고 공무집행방해까지 가중 처벌 조항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그, 그것보다 감찰관님! 지금 우리가 미혼림 한가운데에 갇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완전히 왜곡되어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가고, 위로 올라가도 아래로 떨어지는 상태입니다!”
백현우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말했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침엽수들은 살아있는 기괴한 생물처럼 위치를 바꾸며 감찰단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훈의 위험 요인 투시안 레이더 우측 하단에, 자색 안개 너머에서 미세하게 깜빡이는 떨리는 청색 신호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미로 밖의 안전지대에서 제갈참 몰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전령 주술을 보내고 있는 외문의 천재 진법가, 제갈용의 수신호였다.
[송신자: 제갈용]
[메시지: 감찰관님…… 삼촌의 억지 설계 때문에 무고한 제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습니다. 미혼림 결계는 공간을 뒤틀지만, 에너지가 순환하는 다섯 개의 핵심 맥로(脈路)가 존재합니다. 그 맥로를 고정하면 결계의 왜곡이 멈춥니다. 삼촌 몰래 미로의 정밀 기하학적 좌표를 보냅니다. 제발 제자들을 구해주십시오!]
이윽고 지훈의 뇌리 속에 미혼림 내부의 정밀한 공간 좌표 매트릭스가 에메랄드빛 선으로 전개되었다. 제갈용이 삼촌의 눈을 피해 목숨을 걸고 보내온 내부 고발성 힌트였다.
지훈은 즉시 수첩을 덮으며 외쳤다.
“대원 여러분, 주목하십시오! 탈출 경로의 실마리를 확보했습니다. 진법의 대가 우진선인 어르신에게 전수받은 공간 기하학 공식을 대입하여, 이 왜곡된 공간을 강제로 정상화하겠습니다. 강두찬 조장님!”
“예, 형님!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터질 듯한 노란색 안전 조끼를 걸친 거구의 기동대장 강두찬이 수레에서 묵직한 가죽 상자를 내렸다. 상자를 열자, 당철진이 지훈의 현대식 설계도에 따라 특수 제련한 다섯 개의 ‘비상구 안내 결계석(Emergency Exit Barrier Stone)’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결계석들을 제갈용 씨가 보내온 다섯 개의 핵심 맥로 좌표에 정확히 매설하겠습니다. 맥로가 고정되는 순간, 이 사악한 환각 안개는 아군이 제어하는 안전한 경로로 강제 개조될 것입니다. 강 조장님은 저를 엄호하며 결계석 매설을 보좌하십시오!”
“안전!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지훈은 투시안이 가리키는 첫 번째 좌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공간이 왜곡되어 몸이 우측으로 쏠리려 했지만, 지훈은 투시안의 홀로그램 보정 선을 따라 정밀하게 중심을 잡았다.
“첫 번째 좌표, 매설합니다!”
지훈이 첫 번째 결계석을 바닥의 썩은 흙더미 속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웅——!
결계석이 바닥에 닿는 순간, 주변의 자색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결계석 내부로 빠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던 대지의 오염 맥로가 에메랄드빛으로 고정되는 광경에 백현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것이 공간을 고정하는 힘이란 말인가……!”
“두 번째 좌표로 이동합니다. 서두르십시오, 대원들의 산소 농도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훈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결계석이 미혼림의 뒤틀린 대지 곳곳에 박힐 때마다, 사방을 가로막고 있던 침엽수림의 위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 cùng내, 미로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 맥로 좌표 앞.
지훈은 마지막 결계석을 대지 깊숙이 밀어 넣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비상구 안내 결계, 최종 활성화!”
쿠구구구구궁——!
다섯 개의 결계석이 일제히 공명하며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에메랄드빛 광채를 전방위로 뿜어냈다. 미혼림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악한 자색 환각 안개들이 결계석의 정화력에 밀려 순식간에 무해한 이슬로 변해 대지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칠흑 같던 미혼림의 어둠 속에 기적이 일어났다.
결계석과 결계석 사이를 잇는 바닥 위로, 현대의 빌딩 복도에서나 볼 수 있는 선명한 초록색 야광 유도선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초록색 달리는 사람 모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현대식 ‘비상구 유도등’ 홀로그램이 10미터 간격으로 허공에 둥실둥실 떠오르며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어, 어어?”
백현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저, 저 초록색 불빛은 대체 무엇입니까? 달리는 사람 모양의 기괴한 주술 문양이 왜 허공에서 빛나고 있는 겁니까?”
“저것은 안전한 탈출 경로를 지시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직관적인 ‘비상구 유도등’입니다. 주술 문양이 아니라 행정의 상징이죠.”
지훈은 당연하다는 듯 응수하며 유도선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리켰다.
“유도선이 가리키는 끝에 조난당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즉시 구출 절차에 들어갑니다!”
초록색 불빛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한 감찰단은, 마침내 뒤틀린 바위 나무 그늘 아래에서 환각에 취해 쓰러져 있던 열다섯 명의 외문 제자들을 발견했다. 제자들은 닷새 동안 굶주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지훈은 신속하게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백현우 씨, 이들에게 즉시 보건소에서 가져온 온수와 기초 영약 상비약을 배분하십시오.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갑작스러운 고농도 영력 주입은 금지합니다. 천천히 회복시켜야 합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제자들이 온수를 마시며 희미하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시뻘건 사망 위험 게이지가 서서히 노란색의 안전 영역으로 내려앉았다.
“살았다…… 진짜로 살았어…….”
“초록색 불빛을 가진 도사님이 우릴 구하러 오셨어…….”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지훈의 노란 조끼 자락을 붙잡았다.
[띵! 소방 안전 규정 준수 및 조난자 15명 전원 구출 성공!]
[천도 안전 마일리지 5,000포인트 적립 완료. 현재 잔고: 54,000포인트]
뇌리 속에서 울리는 경쾌한 시스템 종소리와 함께 지훈의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안도감이 차올랐다. 전생에 어두운 지하 현장에 갇힌 인부들을 구하지 못해 밤새 눈물 흘렸던 죄책감이, 이 초록색 비상구 불빛 아래에서 조금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자, 낙오자 없이 전원 유도선을 따라 신속하게 대피하십시오. 미로 밖으로 나갑니다.”
지훈이 확성기를 들고 대원들과 제자들을 이끌며 초록색 유도선 위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릉——!
미혼림 결계 깊은 곳, 정화된 안개 너머의 어둠 속에서 지반을 통째로 뒤흔드는 불길한 지동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숲속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차가워지며, 피비린내와 함께 흉포한 야성의 살기가 사방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감, 감찰관님! 저 안쪽 어둠 속에서 엄청난 수의 붉은 안광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노춘배가 열화상 감지 수정구를 조작하며 사시나무 떨듯 소리쳤다. 수정구 내부의 화면은 이미 과열된 붉은색 반응으로 가득 차서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것은 미혼림의 깊은 음지에 서식하던 야생 마수(魔獸) 무리였다. 평소에는 환각 안개에 취해 동굴 속에서 잠들어 있던 놈들이었지만, 결계석이 활성화되며 환각 가스가 정화되고 찬란한 초록색 비상구 불빛이 사방을 밝히자, 그 강렬한 빛과 신선한 공기에 자극받아 광포하게 깨어난 것이다.
“크어어어어어——!”
“캬아아악!”
어둠 속에서 시뻘건 눈동자를 번뜩이는 수십 마리의 마수들이 침을 흘리며 초록색 유도선 주변으로 무서운 속도로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제자들을 구출하느라 대원들의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마주한 최악의 습격이었다.
“제자들을 안쪽으로 대피시키십시오! 강 조장님, 전방 방어선을 구축하십시오!”
지훈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안전 제일! 형님 뒤는 제가 지킵니다!”
강두찬이 노란색 안전 조끼를 휘날리며 지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철제 단속 방패를 대지에 쾅 박아 넣으며 단단한 축기기 초입의 영력 장벽을 전개했다.
콰아아앙!
가장 먼저 달려든 날카로운 발톱의 마수가 강두찬의 방패 전면부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귀를 찢는 금속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 스파크가 튀었다. 강두찬은 이빨을 악물고 버텼으나,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마수들의 파상 공세에 방패 표면이 순식간에 흉측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쩍! 쩍쩍!
“크윽……! 형님, 이놈들의 완력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방패의 강철 지지대가 버티지 못하고 갈라지고 있습니다!”
강두찬의 철제 단속 방패가 마수들의 이빨과 발톱에 긁혀 처참하게 파손되며 불꽃을 뿜어냈다. 대원들의 비명과 마수들의 포효 소리가 대피로 주변을 지옥처럼 뒤흔들었다.
지훈은 즉시 위험 요인 투시안을 가동해 마수들의 움직임을 분석하며, 머릿속으로 재난 대피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전개했다. 어떻게든 이 포위망을 뚫고 제자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인도해야 했다.
그러나 지훈이 대피 경로를 지시하려던 바로 그 찰나.
쿠우우우웅——!
초록색 유도선이 곧게 뻗어 나간 비상구 경로 한복판, 탈출구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 위로 집채만 한 거대 마수가 천장에서 낙하하며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온몸이 강철 같은 검은 가시로 뒤덮이고, 세 개의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거대 마수가 쩍 갈라진 아가리에서 고열의 침을 흘리며 대피로 정중앙을 가로막고 섰다.
“크르르르르…… 콰아아아아아아악——!”
거대 마수의 포효 한 번에 대연무장 지반 전체가 무너질 듯 요동쳤고, 피난 유도선 양옆의 침엽수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 내렸다. 탈출로가 완벽하게 가로막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지훈의 안경 렌즈 위로 거대 마수의 붉은색 위험 수치가 섬뜩하게 요동치며 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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