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비상구 없는 미로
산업 스파이 야율홍을 자재 창고의 자동 테이프 함정으로 생포하고, 배후에 동역 연맹 전역을 장악한 거대 부패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자백을 받아낸 지열한 밤이 지나갔다.
천운종 외문 행정안전 임시 사무소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피로에 찌든 서류 정리로 시작되었다. 창고 관리인 김팽식은 밤새 야율홍이 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철 안전모의 재고 수량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432개로 딱 맞아떨어졌다며, 바코드 장부를 품에 안고 황홀한 표정으로 창고 구석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역시 감찰관님의 행정 보안 시스템은 우주 최고의 명작입니다……. 재고 수량이 일치할 때의 이 짜릿함이란…….”
지훈은 피로가 몰려오는 미간을 짚으며 야율홍에게서 압수한 카르텔의 밀서를 정밀 분석하고 있었다. 동역 연맹의 고위층 부패 관료들과 내문 장로 마진태, 그리고 파면된 사마도 집행관 사이에 얽히고설킨 횡령 자금의 공급망이 붉은 실루엣처럼 뇌리 속에서 그려지던 그때였다.
쾅!
임시 사무소의 낡은 목조 문이 다급하게 열리며,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외문 제자 한 명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기어들어 왔다. 그의 제자복은 사방이 찢겨 있었고,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듯 입술이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감, 감찰관님……! 살려주십시오! 제 동료들이…… 동료들이 지하 계곡 동굴에 갇혀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훈은 즉시 마시던 둥굴레차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 9급 산업안전감독관 출신의 직업병이 본능적으로 발동한 것이다.
“진정하고 천천히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지하 계곡 동굴이라니요?”
수석 보조관 백현우가 신속하게 달려와 쓰러진 제자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제자는 물을 미친 듯이 들이켠 후, 목을 매만지며 울부짖었다.
“내문 진법가이신 제갈참(Jegal Cham) 장로님께서 새로 설계하신 수련용 미로 진법인 ‘정혼미로(靜魂迷路)’에 제 동료 외문 제자 열다섯 명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미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출구를 찾지 못하고 닷새째 조난당한 상태입니다! 장로님께 입구를 열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제자의 눈에서 억울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로님께서는 ‘이 정도 미로조차 스스로 돌파하지 못하는 나약한 놈들은 수선자로서 자질이 없으니, 그 안에서 굶어 죽어 영양분이나 되는 것이 문파를 위한 길이다’라며 오히려 입구를 봉인 주술로 굳게 잠가버리셨습니다! 제발 그들을 구해주십시오!”
“……뭐라고요?”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백현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지훈의 안경 렌즈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전생의 건설 현장에서도 공기 단축을 한답시고 인부들을 밀폐된 지하 갱도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가버리던 악덕 소장들이 있었다. 선협 세계의 오만한 장로 놈들 역시 본질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수련’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방패 삼아 인명 경시를 당연한 상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비상구와 대피로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구조물에 제자들을 가두고 입구를 봉인했다고요. 이건 단순한 수련이 아니라 불법 감금이자, 명백한 중대 재해 유발 행위입니다.”
지훈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란색 안전 수첩을 쾅 소리가 나도록 덮었다.
“백현우 씨, 즉시 기동대장 강두찬 씨와 대원들을 소집하십시오. 당철진 어르신이 제작한 비상구 안내 결계석(Emergency Exit Barrier Stone)과 안전 자재들을 수레에 싣고 즉시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감히 소방법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제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예술 장난을 치는 꼰대 장로 놈의 뚝배기에 행정 처분 딱지를 박아줄 때가 되었습니다.”
“안전! 즉시 이행하겠습니다!”
백현우가 결연한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천운종 외문과 내문의 경계선에 위치한 지하 계곡 동굴 입구.
그곳은 음침한 영기가 서린 거대한 암석 지대였다. 동굴 입구에는 거대한 돌벽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소용돌이치는 미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정체불명의 푸른 환각 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훈이 이끄는 안전감찰 기동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로 입구 앞에는 화려한 진법 도포를 걸치고 깃털 부채를 살랑거리는 중년의 사내가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가 바로 내문의 악명 높은 진법가이자, 이번 미로의 설계자인 제갈참 장로였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제갈참의 조카이자 외문의 천재 진법가로 불리는 제갈용(Jegal Yong)이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갈용은 삼촌의 억지스러운 설계에 내심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장로의 권위 앞에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다.
지훈은 즉시 ‘위험 요인 투시안’을 발동하여 미로 전체를 스캔했다.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격자무늬 홀로그램으로 전환되며, 미로 내부의 처참한 상황이 붉은색 경고선으로 낱낱이 투시되었다.
[구조물: 미인증 수련용 미로 진법 ‘정혼미로’]
[위험 등급: C등급 (보통) -> 실시간 조난자 아사 위험도 96.8%]
[위반 사항:
1. 비상 대피로 및 피난 유도선 전무 (비상 대피로 확보 및 점검 규정 위반)
2. 화재 및 비상 상황 발생 시 외부 탈출 경로 원천 차단 (소방법 위반)
3. 밀폐 공간 내 산소 농도 저하 및 환기 장치 부재
4. 조난자 발생 시 비상 구조 동선 미확보]
미로 내부 깊은 곳에는 열다섯 명의 외문 제자들이 환각 가스에 취해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위험 수위인 황색 구역까지 떨어져 요동치고 있었다.
지훈은 차가운 발걸음으로 제갈참 장로를 향해 걸어갔다. 때 묻은 잡역복 위에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를 걸친 그의 자태는, 오만한 수선자들 사이에서 지극히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한 권위를 풍기고 있었다.
“제갈참 장로님. 외문 안전 감찰관 오지훈입니다.”
지훈이 품속에서 붉은 볼펜을 딸깍거리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귀하가 설치한 ‘정혼미로’ 구조물은 현재 문파 소방 안전 규정 제18조 ‘비상 대피로 확보 및 점검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미로의 봉인 결계를 해제하고 조난당한 제자들을 밖으로 대피시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현 시간부로 불법 시설물 강제 철거 및 행정 제재 조치에 들어가겠습니다.”
제갈참은 부채질을 멈추고 지훈을 쳐다보았다. 그의 길게 기른 수염이 실룩거리더니,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광소가 동굴 광장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 미천한 잡역부 출신의 감찰관 놈이 감히 천계의 이름값을 빌려 내 진법 예술을 모독하는구나! 네놈이 사마도와 마진태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내문 장로인 나까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인데, 내 진법은 천지 우주의 이치를 담은 궁극의 예술이다! 나약한 범재들이 미로 속에서 도태되는 것은 수선계의 당연한 섭리이거늘, 무슨 대피로니 소방법이니 하는 기괴한 주문을 외우며 훼방을 놓는단 말이냐!”
“수선계의 섭리보다 인간의 생명권과 안전 보건 규정이 언제나 우선합니다.”
지훈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제갈참의 오만한 폭언을 받아쳤다.
“장로님의 그 대단한 ‘예술’ 때문에 현재 내부의 산소 농도가 15% 이하로 떨어졌고, 제자들이 닷새째 굶주려 질식사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비상구가 확보되지 않은 밀폐된 훈련장은 시설물 안전법상 즉각 가동 중지 대상입니다. 제갈용 씨!”
지훈이 갑자기 뒤에 서 있던 제갈용을 지목했다.
“예, 예?! 저, 저 말씀이십니까?”
제갈용이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귀하는 진법의 설계에 참여한 보조 설계자로서, 이 미로의 탈출 경로가 확보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조난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 그게…… 저도 삼촌께 비상구는 최소한 하나 있어야 소방법에…… 아니, 문파 안전에 부합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삼촌께서 진법의 완벽한 순환 흐름을 해친다며 제 의견을 묵살하셨습니다…….”
제갈용이 제갈참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진실을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삼촌의 억지스러운 설계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놈 용아! 감히 장로이자 삼촌인 내 가문의 비전을 의심하는 것이냐!”
제갈참이 불같이 화를 내며 부채를 휘둘렀다. 그바람에 일어난 강한 풍압이 지훈의 노란 조끼 자락을 세차게 흔들었으나, 지훈의 신체 주변으로 황금빛 가호막이 파르르 떨리며 풍압의 파괴력을 무해하게 방산시켰다.
“소용없습니다, 장로님. 설계자가 위험 요성을 인지하고도 묵인한 정황이 확인되었으므로, 본 시설물은 즉각 철거 대상입니다. 강두찬 조장님! 안전 테이프를 전개하여 미로 입구를 봉인하십시오!”
“안전! 철거 개시합니다!”
거구의 기동대장 강두찬이 노란 조끼를 휘날리며 대형 해머를 쥐고 앞으로 나섰다. 삐삐 역시 신나게 날아올라 노란색 영력 차단 안전 테이프 릴을 초고속으로 전개하려 했다.
“감히 내 미로에 손을 대려 하다니! 어리석은 쥐새끼들!”
제갈참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품속에서 화려한 옥빛 진판(陣板)을 꺼내어 영력을 주입했다.
지훈은 즉시 위험 요인 투시안을 가동해 제갈참의 손끝 움직임을 분석했다.
‘입구를 테이프로 봉인해 영력 흐름을 끊어야 한다!’
지훈이 테이프를 던지려던 찰나, 제갈참은 결단기 고수다운 엄청난 속도로 진판의 제어 주술을 변경했다. 미로 입구의 돌벽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뒤틀리더니, 공간의 좌표 자체가 순식간에 휘어지며 고속으로 변경되었다. 지훈이 사출한 노란 테이프가 휘어진 좌표의 틈새로 미끄러져 허공을 가르며 벽면에 허무하게 달라붙었다.
“하하하! 내 진법은 공간을 다스린다! 감히 그 조잡한 노란 끈으로 내 정혼미로의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제갈참이 진판을 허공으로 치켜들며 무시무시한 결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진법의 위대함을 모르는 하급 벌레들아, 내 친히 너희에게 무한한 공간의 미학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환각의 숲, 미혼림(迷魂林) 결계 전개!”
웅웅웅웅——!
동굴 내부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기괴한 소음과 함께, 제갈참이 들고 있던 진판에서 눈이 멀 것 같은 자색 광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 광채는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왜곡하고 물리적 거리를 무한히 늘려버리는 강력한 왜곡 결계 에너지였다. 지훈과 강두찬, 백현우, 그리고 기동대원들이 서 있던 대지가 순식간에 늪지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감, 감찰관님! 발밑의 지반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백현우가 비명을 지르며 지훈의 조끼 자락을 붙잡았다. 강두찬 역시 철제 방패를 바닥에 박아 지탱하려 했으나, 왜곡되는 공간의 흡입력 앞에서는 축기기 초입의 완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자색의 결계 에너지가 파도처럼 지훈 일행을 덮쳤다. 그 찰나의 순간, 지훈이 착용하고 있던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에서 눈부신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우주 행정안전의 가호가 활성 상태입니다!]
[공무집행 중인 행정관에게 가해지는 공간 왜곡 및 파괴력을 원천 차단합니다!]
지훈의 신체 주변으로 거대한 황금빛 육각형 결계막이 웅장하게 떠올랐다. 쇄도하던 자색 왜곡 에너지가 황금빛 가호막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치이이익! 콰과광!* 소리와 함께 엄청난 불꽃 스파크를 일으켰다. 가호막 덕분에 지훈과 그를 붙잡고 있던 대원들은 공간이 찢어지는 치명적인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갈참의 목적은 지훈 일행을 직접 살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결계 속에 가두어 영원히 조난시키는 것이었다.
스우우우——!
눈부신 자색 광채가 서서히 가라앉았을 때, 지훈 일행이 마주한 풍경은 차가운 동굴 내부가 아니었다.
사방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침엽수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은 보랏빛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지면에는 정체불명의 달콤하면서도 매캐한 보랏빛 환각 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려 흐르고 있었다.
그곳은 제갈참이 정혼미로와 연동하여 은밀히 전개한 천연 환각의 결계, 환각의 숲 ‘미혼림’의 한가운데였다.
“콜록! 콜록! 머리가…… 머리가 빙글빙글 돕니다…….”
기동대원 한 명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미혼림 특유의 강력한 환각 가스가 대원들의 호흡기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스템 단말기가 요란하게 적색 경고등을 울리며 대원들의 정신력 게이지가 미세하게 깎여 나가고 있음을 표시했다.
[경고: 고농도 환각 가스 ‘미혼독무’ 노출!]
[대원들의 정신력 지속 감소 중. 방향 감각 상실 위험도 98%]
허공에서 제갈참의 오만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환청처럼 웅장하게 메아리쳤다.
“하하하하! 9급 감찰관 오지훈! 내 친히 너희에게 비상구 없는 무한한 환각의 숲을 선물했으니, 그 안에서 너희가 그렇게 부르짖던 ‘소방법’과 ‘안전 규정’을 읊조리며 천천히 말라 죽어가거라! 출구는 없다! 오직 영원한 방황만이 있을 뿐이다!”
보랏빛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나무들의 위치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의 방위각이 완전히 뒤틀려, 한 걸음만 움직여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가 대원들을 엄습했다.
비상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무한한 미혼림의 어둠 속에서, 지훈 일행은 완벽하게 고립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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