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산업 스파이와 노란 테이프의 함정
어둠이 짙게 깔린 천운산 동편, 봉인된 고대 영석 광산 입구 앞마당에는 비바람이 쓸고 간 진흙 냄새가 자욱했다. 방금 전까지 무자비한 가죽 채찍을 휘두르며 하급 잡역부들을 착취하던 외문 교관 독고악은 온몸에 노란색 테이프를 칭칭 감은 채 기동대원들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대참사를 막아내고 양동생 지석을 무사히 구해냈다는 안도감도 잠시, 오지훈은 숲속의 어두운 나무 그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위험 요인 투시안’의 안경 렌즈 우측 상단에 점멸하는 경고등이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숲속 깊은 음영 속에서 일렁이는 기묘한 붉은색 실루엣. 그것은 누군가 은신술을 펼친 채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지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흠칫 놀란 실루엣이 신형을 감추며 빠르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도주의 궤적마저 투시안의 홀로그램 선 위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었다. 지훈은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단순히 나를 감시하는 쥐새끼가 아니군. 내 눈을 피해 시선을 고정했던 위치가…… 내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노란색 안전 테이프와 당철진 어르신의 설계 도면 보관함 쪽이었다.’
지훈은 전생에 건설 현장 소장 시절, 경쟁 업체에서 파견한 산업 스파이들이 현장의 특허 공법 설계도를 훔치려 밤마다 현장 펜스를 넘던 꼬락서니를 수없이 보아왔다. 선협 세계의 수선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무력으로 빼앗기에는 천도의 가호막이 두렵고, 그렇다고 자신들이 개발할 능력은 없으니 밤중에 몰래 침투해 기술을 도용하려는 야비한 수작임이 분명했다.
“감찰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옆에서 더러워진 노란 조끼를 털어내던 기동대장 강두찬이 지훈의 심상치 않은 시선을 눈치채고 방패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두찬 씨. 숲속에 들쥐가 한 마리 기어 다니는군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보다, 우리 임시 사무소의 자재 창고 보안 등급을 이 시간부로 최고 수준인 ‘가 등급’으로 격상하겠습니다.”
“예? 자재 창고 말씀이십니까? 거긴 볼품없는 청죽 비계와 안전모, 테이프 릴밖에 없지 않습니까?”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현장 인프라를 지탱하는 특허 기술과 규격화된 안전 자재입니다. 기술 유출은 문파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재해입니다. 지금 즉시 복귀하여 보안 시스템을 세팅하겠습니다.”
지훈은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첩자가 자신을 미행하고 도면을 노리고 있다면, 굳이 숲속을 뒤져 잡을 필요가 없었다. 제 발로 가장 삼엄한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유인 전술이야말로 가장 행정적이고 안전한 포획법이었다.
* * *
천운종 외문 행정안전 임시 사무소 뒤편에 위치한 자재 창고.
“감찰관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잠을!”
창고 문을 열자마자 뚱뚱한 체구에 창고 열쇠 꾸러미를 짤랑거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창고 관리인 김팽식이 지훈을 향해 달려왔다. 그의 손에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바코드식 자재 관리 장부’가 꼭 쥐어져 있었다.
“팽식 씨. 밤늦게 무슨 일입니까? 재고 실사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장부상에는 강철 안전모 재고가 정확히 432개여야 하는데, 어제 대련장에서 마태풍 씨가 안전 홍보를 하다가 모서리가 미세하게 긁힌 안전모 하나를 반납하는 바람에 실사 등급과 장부의 규격 수량이 맞지 않습니다! 이 1개의 오차 때문에 제 머릿속의 행정 회로가 터져버릴 것 같습니다!”
김팽식은 정리 정돈의 광인이자 창고 재고 수량의 노예였다. 단 하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꼼꼼함은 지훈이 전수한 바코드 장부 정리법을 만난 후 거의 광적인 집착증으로 진화해 있었다. 지훈은 팽식의 어깨를 토닥이며 침착하게 말했다.
“훌륭한 공직 자산 관리 태도입니다, 팽식 씨. 하지만 오늘 밤은 그 오차보다 더 큰 불순물이 창고에 침입할 예정입니다. 출입증이 없는 외부인이 창고에 무단 침입할 경우 자동으로 작동하는 ‘출입증 미소지자 전용 안전 경보 시스템’을 이 문틀에 설치하겠습니다.”
지훈은 허리춤에서 노란색 영력 차단 안전 테이프 릴을 꺼내어 창고 문틀 좌우측과 천장의 자동 롤러 기동 장치에 연결했다. 그리고 우진선인이 설계해 준 공간 왜곡 방지 공식을 적용하여, 출입문과 도면 보관함 주변에 보이지 않는 ‘공간 왜곡 방지용 노란색 차단 테이프 결계’를 이중으로 매설했다.
“팽식 씨, 오늘 밤은 일부러 창고 경비들을 철수시키고 문을 허술하게 잠가둘 겁니다. 쥐새끼가 도면 보관함에 손을 대는 순간, 이 천장의 자동 롤러에서 노란 테이프가 사방으로 사출되어 침입자를 완벽하게 결박할 것입니다. 팽식 씨는 장부를 들고 사무실 안쪽에서 대기하십시오.”
“제, 제 장부의 안전모 수량이 무사할 수만 있다면 어떤 함정이든 대환영입니다! 감찰관님만 믿겠습니다!”
김팽식은 장부를 품에 소중히 안고 안쪽 골방으로 신속하게 대피했다. 지훈은 창고 불을 끄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덫은 완벽하게 놓였다.
* * *
야삼경(夜三更), 사방이 고요해진 시각.
외문 행정안전 임시 사무소 주변의 대나무 숲이 비바람에 스산하게 흔들렸다. 순찰을 돌던 경비 대원들이 지훈의 지시에 따라 반대편 연무장 구역으로 멀어지자, 창고 뒷마당의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스우우우.
기척도, 소리도 없었다. 타 문파에서 파견된 일류 산업 스파이 야율홍은 자신의 가문 비전인 ‘무형환영공(無形幻影功)’을 시전하여 신체의 모든 기척과 영력을 어둠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축기기 1성의 경지에 오른 그의 은신술은 결단기 고수조차 정밀하게 감지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수준이었다.
‘삼류 잡역부 출신의 감찰관 놈이 감히 천계의 가호를 사칭하며 대단한 법기를 부린다기에 긴장했거늘, 경비 꼬락서니를 보니 하찮기 짝이 없구나.’
야율홍은 소매 속에서 도면 기록 주술 수정구를 만지작거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임무는 간단했다. 천운종 외문을 순식간에 장악한 저 기묘한 ‘노란색 영력 차단 안전 테이프’의 제조 비법과 도면을 복사해 배후의 거대 세력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창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에는 조잡하게 그려진 ‘안전 제일’이라는 노란색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수선자가 기개를 기르지 않고 안전 따위를 논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놈들이 분명하다.’
야율홍은 비웃으며 철사 모양의 은신 법기를 열쇠구멍에 찔러 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허술하게 열렸다. 너무나도 손쉬운 침투에 야율홍은 실소를 흘리며 창고 내부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창고 안은 퀴퀴한 대나무 냄새와 신선한 고무 수액의 향으로 가득했다. 야율홍은 무형환영공을 완벽히 유지한 채, 위험 요인 투시안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벽면의 음영만을 밟으며 전진했다. 그의 눈앞에 지훈이 일부러 배치해 둔, ‘테이프 제조 비법 도면’이라 적힌 붉은색 나무 상자가 보였다.
‘바보 같은 놈들. 이런 보물을 허술한 나무 상자에 담아두다니.’
야율홍은 침을 꿀꺽 삼키며 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끝이 상자의 뚜껑에 닿는 바로 그 찰나.
위이이이이잉——! 삐이이이이익——!
고요하던 창고 내부에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천장을 울렸다. 동시에 야율홍의 발밑에서 숨겨져 있던 노란색 차단 테이프 결계가 번쩍이며 에메랄드빛 홀로그램 장벽이 솟구쳐 올랐다.
[경고: 출입증 미소지자 무단 침입 감지!]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및 무단 침입 현행범으로 규정합니다!]
“이, 이게 무슨 주문 소리냐!”
야율홍은 경악하며 신형을 뒤로 날렸다. 무형환영공이 흐트러지며 그의 은신 상태가 미세하게 일렁였다. 본능적으로 함정에 걸렸음을 직감한 그는 창고 문을 향해 폭풍처럼 질주했다.
그러나 지훈이 설계한 행정 보안 시스템은 야율홍의 반응 속도보다 한발 더 빨랐다.
철컥! 슈슈슈슈슉——!
창고 문틀과 천장에 매설되어 있던 자동 롤러 기동 장치가 경보음과 함께 일제히 작동했다. 롤러가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사방의 벽면에서 수십 가닥의 노란색 영력 차단 안전 테이프가 그물망처럼 사출되었다.
“하찮은 종이 쪼가리들이 감히 나를 막아서느냐!”
야율홍은 이빨을 갈며 허리춤에서 자신의 보검을 뽑아 들었다. 축기기 1성의 예리한 검기가 은색 칼날을 타고 이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테이프들을 단숨에 잘라내려 했다.
깡——! 치이이이익!
그러나 검날이 노란 테이프에 닿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테이프에 새겨진 ‘안전’과 ‘행정 통제’라는 붉은색 한자가 눈부시게 빛나더니, 우주의 절대적인 엔트로피 고정 법칙이 발동했다. 유성검에 서려 있던 예리한 검기와 축기기의 영력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즉시 동결되며 차가운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 내 영력이…… 보검의 반응이 사라졌다?!”
야율홍이 경악하며 보검을 내려다보는 사이, 사방에서 날아온 노란 테이프들이 그의 발목과 손목을 자비 없이 휘감았다.
“끄아악! 이거 놓지 못할까!”
야율홍은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무형환영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신체를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었다. 기척을 지우고 테이프의 틈새로 빠져나가려던 속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악수였다.
슈슈슉! 찰칵! 찰칵!
공중을 날아다니던 노란 테이프들이 야율홍의 투명한 신체 윤곽을 따라 자석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야율홍의 몸은 투명해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몸을 감싸 안은 노란 테이프들은 허공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결국 창고 한가운데에는 사람 형상을 한 노란색 테이프 덩어리가 허공에 둥둥 떠서 버둥거리는 해괴망측한 비주얼이 연출되었다. 야율홍이 몸을 비틀며 탈출하려 할수록, 테이프는 그의 관절 마디마디를 더욱 단단하게 조여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괴상망측한 결계란 말이냐! 투명한 내 몸을 어떻게 정확히 감싸 쥔단 말이냐!”
“무단 침입자에게는 은신 권한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항공 안전 및 산업 보안 규정에 따른 당연한 물리적 제재지요.”
어둠 속에서 탁 하고 횃불이 켜지며, 노란 조끼를 입은 지훈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철제 방패를 든 강두찬과 대원들이 삼엄하게 창고 입구를 봉쇄했다.
“감찰관님! 제 바코드 장부의 안전모 수량은 무사합니다! 단 하나의 오차도 없습니다! 으하하하! 재고가 완벽합니다!”
골방에서 뛰어나온 김팽식이 야율홍의 발밑에 뒹굴고 있던 안전모를 품에 안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야율홍은 온몸이 노란 테이프에 감겨 미라처럼 바닥에 처박힌 채 씩씩거렸다. 그의 투명화 주술이 완전히 풀리며 비참한 첩자의 몰골이 드러났다.
“네놈이 오지훈이냐……! 감히 나를 무단 구금하다니, 내 배후가 누구인지 안다면 당장 이 테이프를 풀고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야율홍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악을 썼다.
지훈은 차분하게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품속에서 붉은색 볼펜을 꺼내 ‘딸깍’ 소리가 나도록 가볍게 눌렀다.
“야율홍 씨. 귀하는 현재 천운종 공식 보안 구역에 출입증 없이 무단 침입하였으며, 문파 특허 자산인 안전 테이프 제조 도면을 도용하려 한 ‘산업기술 보호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입니다. 귀하의 배후가 누구이든 간에, 천도의 행정법 앞에서는 과태료 가산 처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훈이 단호한 어조로 말하며 야율홍의 이마에 붉은색 ‘무단 침입 위반 딱지’를 정확히 붙였다. 딱지가 닿는 순간, 야율홍의 단전에서 요동치던 축기기 1성의 영력이 완전히 동결되며 차가운 쇠사슬이 그의 경맥을 옭아맸다.
“끄으윽…… 내, 내 경맥이…… 영력이 움직이지 않는다! 네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게냐!”
야율홍의 오만한 눈빛에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가 서렸다. 일개 잡역부 출신의 감찰관이 부리는 노란 테이프와 딱지 한 장이, 자신의 축기기 수련을 손쉽게 무력화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강두찬이 거대한 철제 해머를 야율홍의 코앞에 쾅 하고 내려찍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피의자는 헛소리를 멈추고 감찰관님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하십시오. 불성실한 태도를 유지할 경우, 공무집행방해 가중 처벌로 이 해머가 귀하의 안전모 없는 머리를 직격할 수 있습니다.”
야율홍은 머리맡의 대지에 박힌 해머의 무시무시한 진동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지훈은 야율홍의 품속을 수색하여 은밀히 정보를 기록하려던 수정구와 배후의 지시가 담긴 밀서를 확보했다.
“야율홍 씨. 이 은밀한 침투를 지시한 자가 누구입니까? 자백하시면 감경 처분을 고려하겠으나, 묵비권을 행사하시면 전 재산 압류 및 영혼 과태료 처분으로 이어집니다.”
지훈의 차갑고 사무적인 협박에 야율홍의 멘탈은 완전히 바스러졌다. 그는 바들바들 떨며 결국 숨겨왔던 진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 내가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다! 동역 연맹 전역에서 불법 연단 가마를 유통하고 무허가 마수 사육장을 운영하며 막대한 비자금을 챙기는 거대 범죄 카르텔이 존재한다……!”
“거대 범죄 카르텔이라고요?”
지훈의 미간이 좁혀졌다. 야율홍은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그렇다! 네놈이 외문에서 마진태 장로의 가마를 압수하고 사마도의 비자금을 털어내어 연맹의 자금줄을 위협하자, 연맹 고위층의 부패한 기득권 카르텔이 너의 안전 단속 활동을 극도로 경계하며 주시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내문의 강력한 무력 집단이 네놈의 목숨과 안전 테이프의 비법을 빼앗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러니 날 풀어주면…….”
야율홍의 충격적인 자백이 창고 내부의 무거운 공기를 뒤흔들었다.
[띵! 산업 스파이 야율홍 검거 및 기술 유출 방지 성공!]
[천도 안전 마일리지 5,000포인트 적립! 현재 잔고: 49,000포인트]
[신규 재난 경보: 동역 연맹 거대 카르텔의 외문 감찰 사무소 습격 및 파괴 위험도 99%]
지훈의 안경 렌즈 위로 붉은색 시스템 경고창이 요동치며 타올랐다. 단순한 문파 내부의 부패 단속을 넘어, 동역 연맹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무법 카르텔과의 행정 전쟁이 마침내 그 서막을 올린 것이다. 지훈은 조용히 안경을 밀어 올리며 붉은 볼펜을 꽉 쥐었다. 그의 눈빛에 새로운 투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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