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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대나무 비계와 안전고리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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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동결이라니. 공무원에게 가장 치사하고 졸렬한 짓을 골라서 하는군요.”


천운종 외문 행정안전 임시 사무소의 책상 앞.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를 단정하게 고쳐 입은 오지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행정 수첩을 덮었다. 그의 안경 렌즈 위로 붉게 점멸하는 시스템 경고창이 비쳤지만, 지훈의 표정은 평온하다 못해 서늘했다.


사무소 내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전령 요원 최순돌은 숨을 헐떡이며 지훈의 눈치만 살폈고, 수석 보조관 백현우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깃펜을 꼭 쥔 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감, 감찰관님…… 사마도 집행관이 마진태 장로의 묵인하에 외문 집행당의 금고를 잠가버렸습니다. 우리 사무소로 배정되어야 할 소방 정비 및 안전 보조금 예산이 단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자재를 수급할 영석이 없습니다!”


최순돌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지훈은 가볍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전생에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소속의 9급 산업안전감독관으로 일하며, 예산 삭감과 부서 이기주의에 찌든 상급자들을 상대해 본 지훈이었다. 돈줄을 묶어 손발을 자르려는 사마도의 수작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행정적 양아치 짓’에 불과했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게 관료의 역사입니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굶어 죽을 이유는 없지요. 사마도 집행관이 예산 동결이라는 무리수를 둔 건, 역설적으로 그가 숨겨둔 ‘이중 장부’의 존재가 내 단속망에 걸려들까 봐 겁에 질렸다는 증거입니다.”


지훈은 위험 요인 투시안을 슬며시 가동했다. 7화에서 사마도의 가슴팍에서 포착했던, 비자금과 예산 횡령 내역이 붉은 실루엣으로 빛나던 이중 장부의 잔상이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장부만 확보하면 사마도를 공금 횡령 죄로 즉각 탄핵하고 동결된 예산을 강제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마도의 처소를 그냥 뒤질 수는 없으니, 합법적인 명분이 필요하겠군요. 순돌 씨, 지금 문파 내에서 가장 크게 영석이 움직이고 있는 ‘공사 현장’이 어디입니까?”


최순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억을 더듬었다.


“공사 현장이요? 아! 문파 대전(Main Palace) 보수 공사 현장입니다! 지붕 기와가 노후화되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데, 사마도 집행관이 직접 예산을 집행하며 현장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순돌이 침을 꿀꺽 삼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곳은 잡역부들 사이에서 ‘지옥의 절벽’이라 불립니다. 아무런 발판이나 생명줄도 없이 맨몸으로 수십 장 높이의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얹어야 하거든요. 매주 한두 명씩 발을 헛디뎌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사마도는 ‘수선자의 기개가 부족해 떨어진 것’이라며 시신을 대충 치우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지훈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수선자가 되겠다며 무모하게 폭포 밑에서 바위를 맞거나, 불량 가마를 돌리다 폭사하는 것은 본인들의 선택이라 쳐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급 잡역부들이 안전장치 하나 없이 고공에서 일하다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명백한 ‘산업재해’이자 ‘살인 행위’였다.


“추락 재해 예방 안전대책 미비. 그리고 중대재해 처벌법 위반에 해당하는 고위험 사업장이군요. 사마도 집행관이 직접 감독하는 현장이라면 더더욱 단속할 명분이 확실합니다. 백현우 씨, 정만식 씨와 황두식 씨를 우리 사무소로 소집하십시오. 외상 장부를 끊어서라도 자재를 수급해 현장으로 갑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 * *


천운종 대전 보수 공사 현장.


웅장하게 솟아오른 대전의 지붕은 구름에 닿을 듯 높았다. 하지만 그 화려함 아래 숨겨진 작업 환경은 야만 그 자체였다.


하급 잡역부 수십 명이 밧줄 하나에만 의지한 채, 가파른 기와지붕 위를 위태롭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바람이 한 번 강하게 불 때마다 낡은 목조 서까래가 삐걱거렸고, 잡역부들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상에서는 가죽 채찍을 든 현장 감독관이 목청을 높이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해! 마 장로님께서 대전의 영기를 정비하기 위해 기와를 당장 올리라 하셨거늘, 어찌 이리 굼뜬 게냐! 떨어지는 놈은 기개가 부족해 단전이 뒤틀린 놈이니 신경 쓰지 말고 기와나 날려라!”


“작업 중지(STOP WORK) 하십시오!”


그때, 대연무장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공사 현장에 내리꽂혔다.


현장 감독관과 잡역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때 묻은 잡역복 위에 노란색 형광 안전 조끼를 걸친 오지훈이, 한 손에는 붉은색 수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휴대용 영력 확성기를 쥔 채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비계 기술자 황두식과 보안경을 쓴 정만식, 그리고 기동대장 강두찬이 버티고 서 있었다.


“뭐, 뭐야? 네놈은 외문의 그 미친 잡역부 감찰관이 아니냐! 공무원인지 뭔지 하는 놈이 왜 남의 공사 현장에 와서 초를 치는 게냐!”


감독관이 채찍을 휘두르며 씩씩거렸다. 지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대전 지붕 위를 위험 요인 투시안으로 스캔했다.


[작업 환경 등급: E등급 (극위험)]

[위반 사항:

1. 고소 작업 시 추락 방지용 안전벨트 및 생명줄 미설치

2. 작업 발판(비계) 및 낙하물 방지망 부재

3. 근로자 안전 보건 교육 미이행]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 및 비상 대피로 확보 및 점검 규정 위반입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고공 작업을 강행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입니다. 즉시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잡역부들을 지상으로 대피시키십시오.”


“하! 웃기는 소리 마라! 수선 수련을 하는 자들이 무슨 밧줄 타령이냐! 시간이 생명이다! 비계인지 뭔지 설치할 시간 따위는 없다! 저리 꺼지지 않으면 이 채찍 맛을 보여주마!”


감독관이 지훈을 밀쳐내려 험악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가 지훈의 형광 조끼에 손을 대기도 전에, 지훈의 주변으로 투명한 황금빛 행정 가호막이 파르르 떨리며 강력한 반동력을 뿜어냈다.


퍼엉!


“끄악!”


감독관은 지훈의 옷자락 끝도 건드리지 못한 채, 가호막의 반동에 밀려 진흙 바닥으로 사정없이 나자빠졌다. 엉덩이를 찧은 감독관이 비명을 지르자, 지훈은 차분하게 볼펜을 딸깍거리며 위반 딱지를 꺼내 들었다.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되었습니다. 과태료 가산 처분을 원치 않으시면 얌전히 계십시오. 황두식 소장님, 정만식 씨. 지금 즉시 비계 공사를 개시합니다.”


지훈의 신호가 떨어지자, 정만식이 어깨에 멘 거대한 도끼를 바닥에 쿵 내려놓으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의 눈가에는 지훈이 선물한 강화 유리 보안경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오 감독관님! 벌목장에서 가장 곧고 단단한 놈들로만 골라왔습니다!”


정만식이 이끄는 잡역부들이 수레에서 거대한 대나무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대나무가 아니었다. 푸른빛 영기를 은은하게 내뿜으며 강철 같은 탄성을 자랑하는 ‘고강도 비계용 청죽(High-strength Bamboo Scaffolding)’이었다. 일반 대나무보다 탄성이 5배나 강해, 높은 곳의 하중을 지탱하는 데 이보다 좋은 자재는 없었다.


하지만 비계를 엮어야 할 황두식은 청죽 무더기 앞에서 밧줄을 쥔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의 거친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과거 동료가 지붕 보수 공사를 하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사했던 끔찍한 트라우마가 그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엮은 비계가 무너지면 어쩌지? 또 누군가 내 눈앞에서 떨어져 죽는다면…….’


황두식의 내적 공포를 간파한 지훈이 그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지훈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굳건했다.


“황 소장님. 당신이 만드는 것은 단순한 나무 뼈대가 아닙니다. 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동료들의 목숨을 지탱할 ‘생명의 다리’입니다. 스스로의 기술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우리에겐 이것이 있습니다.”


지훈이 품속에서 튼튼한 가죽 끈과 강철 고리가 연결된 ‘추락 방지용 생명줄 안전벨트(Fall-prevention Safety Harness)’를 꺼내 황두식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안전벨트의 고리를 청죽 비계에 걸어두는 한, 그 누구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추락 사망률 0%의 기적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증명해 보이십시오.”


지훈의 단호한 목소리가 황두식의 닫혀 있던 마음을 세차게 두드렸다. 황두식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던 그였다. 하지만 지훈이 제시한 완벽한 설계도와 안전 하네스를 보는 순간, 그의 눈빛에 장인으로서의 집념이 다시 타올랐다.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내 손으로 엮은 비계 위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습니다!”


황두식이 굵은 밧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청죽 비계 타워를 향해 달렸다.


그의 손놀림은 신기에 가까웠다. 정만식이 보안경을 쓴 채 고강도 청죽을 신속하게 조달하면, 황두식은 기하학적인 하중 분산 공식을 적용해 청죽과 청죽을 밧줄로 단단히 엮어 나갔다. 삐걱거리던 대전 벽면을 따라,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견고한 대나무 비계 타워가 1층, 2층, 그리고 마침내 지붕 높이인 3층까지 초고속으로 조립되어 올라갔다.


“자, 전원 이 안전벨트를 착용하십시오! 그리고 이동할 때마다 이 강철 고리를 비계 파이프에 상시 체결하십시오!”


지훈이 잡역부들에게 노란색 안전벨트를 하나씩 배포했다. 지붕 위에서 덜덜 떨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잡역부들은 반신반의하며 벨트를 몸에 감고 고리를 청죽에 걸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기와 한 무더기를 짊어지고 걷던 한 잡역부가 이끼 낀 지붕 기와를 밟고 발을 헛디뎠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잡역부들이 비명을 질렀고, 현장 감독관은 “거 봐라, 기개가 부족하니 떨어지지!”라며 혀를 찼다.


툭!


하지만 끔찍한 파열음은 들리지 않았다.


지붕에서 떨어지던 잡역부의 몸이, 비계에 연결된 추락 방지용 생명줄 안전벨트에 걸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생명줄이 그의 몸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었고, 고강도 청죽 비계는 미세한 진동조차 없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사, 살았다…… 내가 살아있어!”


공중에 매달린 잡역부가 자신의 몸을 만지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강두찬이 신속하게 그를 비계 발판 위로 끌어올려 안전하게 안착시켰다.


이 광경을 목격한 공사 현장의 모든 잡역부의 눈빛이 완전히 뒤집혔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작업자들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던 극심한 공포가 눈 녹듯 사라졌다. 발밑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기자, 잡역부들의 손놀림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추락할까 봐 덜덜 떨며 기어가던 지붕 위를, 이제는 안심하고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기와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안전이 확보되자 공사 효율은 오히려 3배 이상 급증했다. 반나절 동안 기와 한 줄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던 공정 속도가, 불과 한 시간 만에 대전 지붕의 절반을 덮어버릴 정도로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현장 감독관은 입을 벌린 채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도 안 돼…… 밧줄 따위를 묶었는데 작업 속도가 어찌 저리 빨라진단 말이냐…….”


“건설 현장의 속도는 나태함이 아니라, 작업자의 ‘불안감’ 때문에 저하되는 법입니다. 완벽한 안전대책을 제공하면 생산성은 자연히 극대화되죠.”


지훈이 차갑게 말하며 수첩에 공정 완료 도장을 찍으려던 바로 그때였다.


공사 현장 입구 방향에서 징 소리와 함께 험악한 기세가 밀려왔다.


기름진 청색 관복을 입고 거만한 태도로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금색 주판을 손에 쥔 사내가 수십 명의 무장 규율대원들을 거느리고 현장으로 난입했다. 마진태 장로에게 황금 상자를 뇌물로 받고 불법 연단 시설을 눈감아 주던 부패한 상급 안전 검사관, 주만득(Ju Man-deuk)이었다.


“당장 공사를 중지하라!”


주만득이 금색 주판을 짤랑거리며 지훈의 청죽 비계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에 비열한 살기가 번뜩였다.


“맹회에서 파견된 상급 안전 검사관 주만득이다! 이 공사 현장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와 안전벨트는 맹회의 공식 인증을 받지 않은 ‘미인증 불법 가공물’이다! 천운종의 법과 안전을 어지럽히는 불법 적치물이니, 지금 즉시 전량 압수하여 폐기 처분하겠다!”


주만득이 마진태의 사주를 받고 작성한 ‘공사 중지 및 자재 폐기 명령서’를 허공에 흔들어 보였다. 황두식과 정만식의 얼굴이 분노로 하얗게 질렸고, 지훈의 안경 렌즈 위로 새로운 행정 전쟁의 경고등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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