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방, 어둠 속의 포옹
성북동 대저택의 밤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감옥과 같았다.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는 장대비 소리만이 적막한 저택의 침묵을 간신히 찢어발기고 있었다.
지하 아틀리에 옆, 이지안에게 배정된 작은 대기실의 공기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지안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거즈로 꽁꽁 싸맨 오른손바닥에서는 메스에 베인 상처가 맥박에 맞춰 지끈거리며 고통을 뿜어냈고, 밤새 정제되지 않은 생칠을 다루느라 벌갛게 짓물러 진물이 흐르는 손가락 끝은 불에 달군 바늘로 찌르는 듯 쓰라렸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지안의 숨통을 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지호야…… 아버지…….’
대포폰을 통해 날아왔던 남동생 지호의 절박한 문자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유령처럼 떠돌았다. 여주 은광요 공방에 사채업자 조상식 패거리들이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 당장이라도 여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수현은 그녀를 만류했다. 지금 성북동 저택을 무단이탈하면 무단침입 및 비밀 유지 서약 위반으로 고소당해 계약금은커녕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이라며, 공방의 신변은 최태준 변호사가 보낸 사설 경호원 최강식에게 맡기고 버텨야 한다고 했다.
저택 정문의 보안 검색대에서 개인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는 ‘외부 통신 장비 소지 금지’ 규칙 때문에 지안은 공방의 상황을 더 이상 확인할 길조차 없었다. 불안과 초조함이 뼈마디를 갉아먹는 듯한 밤이었다.
시계 바늘이 밤 10시를 가리켰다. 성북동 저택의 가장 가혹한 금기 중 하나인 ‘야간 저택 통행금지 규칙’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밤 10시 정각이 되자 저택 복도의 모든 화려한 전등이 일제히 소등되었고, 어둠이 깔린 벽면을 따라 붉은색 야간 감시 카메라 센서들이 섬뜩한 눈동자처럼 좌우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안은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했으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때였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아주 미세하지만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안의 예민한 청각에 포착되었다.
“으 아 아 악—!”
그것은 인간의 비명이라기보다, 깊은 수렁에 빠진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처절한 비명이었다. 저택 2층 서재 방향이었다.
지안은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은지원이다. 안 간호사가 주입한 그 비정상적인 신경 마비독의 농도가 한계치에 달해, 그의 뇌 신경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안은 주저 없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야간 통행금지 규칙을 위반하다 박 경호원에게 적발되면 즉시 해고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깨진 도자기를 눈앞에서 지나치지 못하는 복원가의 집념이, 어둠 속에서 깨어져 가는 한 인간의 영혼을 향해 그녀의 몸을 움직였다.
스슥.
지안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어두운 복도로 나섰다. 수현과 송은아가 분석해 준 저택 감시 카메라의 15초 회전 사각지대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붉은 레이저 포인터가 벽면을 훑고 지나간 직후, 지안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날려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지만, 2층 서재로 향하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2층 서재 깊은 곳,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무거운 목재 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음산하고 왜곡된 클래식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소년 시절 지원에게 가학적인 완벽주의를 강요하며 학대를 일삼았던 원흉, 그의 망부 ‘은태웅’ 회장이 지원을 가둘 때 틀어놓았던 잔인한 트리거 음악이었다.
이곳은 ‘2층 서재 안쪽 비밀 방’이자, 고용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2층 서재 안쪽 비밀 방 출입 제한’ 구역이었다.
지안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열고 방 안으로 난입했다. 방 안은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차가운 회청색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음산한 백색의 먼지 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그리고 방 구석, 어둠이 가장 짙게 내린 곳에 은지원이 주저앉아 있었다.
“오지 마…… 다가오지 마……!”
지원의 눈동자는 초점을 완전히 잃은 채 충혈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의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은지원의 자해용 메스’가 쥐어져 있었다. 이미 그의 허벅지와 손목 주변의 실크 셔츠가 갈기갈기 찢겨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과거 은태웅 회장의 학대 기억과 체내에 쌓인 마비독이 결합해 최악의 ‘한밤중 2층 서재 공황 발작’을 일으킨 상태였다.
지안은 상황을 파악하고 방 안의 전등 스위치를 올리려 손을 뻗었다.
탁.
불이 켜지는 순간, 갑작스러운 광량의 변화가 지원의 시각 피질을 자극했다. 환각 속에서 거대한 괴물을 본 지원이 비명을 지르며 메스를 허공에 휘둘렀다.
“으아악! 저리 가!”
그가 휘두른 팔이 테이블 위의 크리스탈 꽃병을 강타했다. 쨍그랑—!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바닥은 순식간에 은빛 칼날 같은 유리 조각들로 뒤덮였다.
지안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지원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작.
얇은 실내화 밑창을 뚫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지안의 발목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화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바닥의 유리 파편 위로 뚝뚝 떨어졌다.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고통에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지안은 이빨을 악물고 앞으로 전진했다.
“지원 씨! 정신 차려요! 나를 봐요!”
지안은 광기 어린 힘으로 메스를 내리꽂으려던 지원의 팔을 막아서며, 그의 등 뒤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텁!
지안은 양팔을 뻗어 지원의 넓은 등을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았다. 메스를 쥔 그의 오른팔을 가슴팍으로 강하게 당겨 밀착시켰다. 지원의 몸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며 거칠게 뒤틀렸다.
“놔! 놓으란 말이야! 죽여버릴 거야!”
그가 울부짖으며 몸부림칠 때마다 지안의 오른손 상처가 터져 하얀 거즈가 붉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지안은 뼈가 부러질 듯한 완력으로 그를 묶어둔 채, 품 안의 온기를 그의 등에 고스란히 전했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그의 굳어버린 심장 근처로 강하게 고동쳤다.
“지원 씨, 제 숨소리를 들어요. 숨 쉬어요. 흡, 후…… 제 심장 소리에 맞춰요.”
지안은 귓가에 정직하고 따뜻한 숨소리를 불어넣으며, 다른 한 손으로 목에 걸고 있던 ‘신경 안정 한방 펜던트’를 움켜쥐었다. 경동시장에서 임태호에게 공수한 최상급 천연 침향과 박하를 배합해 만든 특제 치유 목걸이였다.
지안은 펜던트의 은빛 뚜껑을 열어 지원의 코끝에 바짝 들이밀었다.
스으읍.
차가운 회청색 방 안으로 깊고 그윽하며 따뜻한 침향의 나무 향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 은은한 후각적 자극이 은태웅이 심어놓은 클래식 음악의 공포와 뇌 신경의 마비 감각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지원의 거친 호흡이 찰나의 순간 멈추었다. 향기로운 나무 향이 그의 기도를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들자, 과호흡으로 뒤틀리던 그의 가슴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 흐으……”
지원의 눈동자에 서렸던 광기가 서서히 걷히고, 초점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척수를 지배하던 극단적인 긴장감이 풀리며, 오른손에 힘이 빠졌다.
팅그랑.
피 묻은 자해용 메스가 바닥의 유리 파편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지원은 더 이상 발작하지 않았다. 그는 지안의 품에 몸을 완전히 기댄 채, 어린아이처럼 몸을 잘게 떨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지안의 심장 소리가 그의 등을 타고 따뜻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살았어요…… 괜찮아요, 이제.”
지안은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며 그의 어깨를 꼭 안아주었다. 지원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안의 피 묻은 손과 발목을 바라보았다. 나약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피를 흘린 이 여자의 정직한 온기 앞에, 그의 경계성 자기방어 장벽은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지원은 떨리는 왼손을 뻗어, 회청색 벽면 모서리의 낡은 나무 판자 틈새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은태웅 회장의 학대 일지이자 지원의 아픈 소년 시절 기록이 담긴 ‘비망록’의 모서리가 빼꼼히 드러나 있었다.
지원이 지안의 품 안에서 떨림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픈 비망록을 손으로 가리키는 바로 그 순간.
서재 밖 복도 끝에서 묵직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벅. 벅. 벅.
야간 순찰을 도는 한 집사의 무겁고 엄격한 발걸음 소리였다. 구두 소리는 2층 서재 문 앞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안의 전신이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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