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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으로 이어 붙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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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문이 무겁게 닫히는 소리는 지하 아틀리에를 완전히 단절된 무덤으로 만들었다. 천장 중앙의 외줄기 백색 조명 아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는 비색 고려청자 찻잔의 파편들이 날카로운 이빨처럼 흩어져 있었다.


지안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더듬었다. 오른손바닥 깊숙이 파고든 자상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점토 먼지가 섞인 바닥에 뚝뚝 떨어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지안에게는 지금 손바닥의 통증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파편의 감각이 더 절박했다.


‘열둘…….’


지안은 숨을 고르며 마지막 미세한 파편까지 찾아내어 손바닥에 모았다. 정확히 열두 조각이었다. 은지원 상무의 어머니인 한여진 이사장이 남긴 마지막 유품이자, 지안이 이 저택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구석의 어둠 속에 멈춰 선 휠체어 위에서 은지원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예민한 청각은 어둠 속에서도 지안의 움직임을 샅샅이 읽어내고 있었다. 찢어지는 듯한 숨소리, 옷자락이 쓸리는 마찰음, 그리고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나직한 소리까지. 지원은 지안이 당장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자신을 원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안의 숨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정갈하고 단단했다. 가식적인 동정도, 자신을 미치광이로 보는 공포도 섞여 있지 않은 정직한 숨소리였다. 그것이 지원의 마음속에 지독한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다.


“왜 그러고 있지?”


지원의 목소리가 얼음바람처럼 차갑게 떨어졌다.


“동정이라도 바라는 건가? 그 손으로 피를 흘리며 불쌍한 척하면, 내가 마음이라도 열 줄 알았나? 내일 아침이면 당신은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이 저택에서 끌려나갈 텐데.”


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틀리에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 놓인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의 황동 잠금장치를 열자, 은은한 나무 향과 함께 정갈하게 정돈된 도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안은 상자 안에서 가죽 아교와 천연 옻나무 수액(생칠), 그리고 토분을 꺼냈다.


“저는 동정을 구걸하지 않습니다, 상무님.”


지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제가 구걸하는 것은 오직 제 가문의 공방, 은광요를 지킬 시간뿐입니다. 그리고 약속한 24시간 동안은 제가 이 방의 지배자입니다.”


지안은 오른손바닥의 상처를 깨끗한 거즈로 단단히 감싸 쥐었다. 손을 쥘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척수를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눌러 참았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자 극도의 미세 작업이 요구되는 ‘킨츠기 초급 접합(Kintsugi Novice)’ 단계였다.


지안은 대나무 긁개로 천연 생칠과 찹쌀가루, 그리고 고운 토분을 황금 비율로 배합하기 시작했다. 전통 옻나무 수지 접합법(Lacquer Joining)의 기초가 되는 천연 접착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점도가 높은 아교가 서서히 갈색빛을 띠며 단단한 점성을 갖추어 갔다.


바로 그때, 아틀리에 내부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위이잉—.


천장의 환기구에서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틀리에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습도계의 바늘이 4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지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천연 옻은 화학 접착제와 달라서 온도가 섭씨 20도 이상, 습도가 70%에서 80% 사이의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만 경화 반응을 일으킨다. 온습도가 떨어지면 옻은 결코 굳지 않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니터실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최 비서가 지안의 복원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HVAC 시스템을 조작한 것이 분명했다. 24시간 안에 복원하지 못하게 만들어 합법적으로 쫓아내려는 위선적인 덫이었다.


“치졸하군요.”


지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주 가마터에서 평생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법을 보고 자란 장인의 딸이었다. 지안은 즉각 대안을 강구했다. 그녀는 오동나무 도구 상자 자체를 간이 건조실(습상)로 개조하기로 했다.


지안은 아틀리에 구석의 세면대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작은 그릇에 담은 뒤, 오동나무 상자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깨끗한 린넨 천을 물에 적셔 상자 내부 벽면에 둘렀다. 상자 문을 닫자 내부의 온습도가 순식간에 섭씨 25도, 습도 75%의 완벽한 경화 환경으로 고정되었다. 최 비서의 기계적 방해 공작을 아날로그 장인 지혜로 무력화하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던 지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기업의 거대한 시스템과 감시망 앞에서도 한 올의 당황함 없이 즉흥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지안의 대담함은, 지원이 평생 보아온 나약한 인간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이제 본격적인 접합 작업이었다. 지안은 왼손가락 끝의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가문의 비전인 ‘손끝의 절대 촉각’이 활성화되는 순간이었다. 지안이 눈을 감고 청자 파편의 단면을 쓸어내리자, 미세한 점토 입자의 결이 머릿속에 3D 그래픽처럼 정밀하게 그려졌다.


1,000년의 세월 동안 가마 안에서 구워지며 형성된 비색 청자의 빙열 무늬. 지안은 손끝의 감각만으로 12개의 파편이 서로 맞물려야 할 정확한 수평 각도를 읽어냈다.


서걱, 서걱.


배합한 옻 아교를 0.05mm 두께로 얇게 도포한 뒤, 지안은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나갔다. 손바닥의 자상 상처가 아교를 쥘 때마다 찢어지는 고통을 유발했고, 정제되지 않은 생칠의 독한 기운이 상처 틈새로 스며들며 극심한 옻독의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안의 손가락 끝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진물이 흐르는 신체적 한계가 찾아왔다. 시야가 흐려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지안은 세필 붓을 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내 세계도, 그리고 이 방에 갇힌 저 사람의 세계도 영원히 깨진 채로 남을 거야.’


지안의 처절할 정도의 몰입과 장인 정신이 아틀리에의 차가운 정적을 가득 채웠다. 지원은 어느새 휠체어를 테이블 가까이 대고 지안의 손끝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안의 거친 숨소리와 피 묻은 거즈, 그리고 진물이 흐르는 손가락이 자아내는 처절한 광경은 지원의 가슴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죄책감과 연민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새벽 4시.


마침내 12개의 조각이 단 0.1mm의 오차도 없이 하나의 완벽한 청자 찻잔의 형태로 결합되었다. 지안은 임시 접합된 찻잔을 오동나무 습상 안에 넣고 한 시간 동안 건조시켰다.


동트기 직전인 아침 7시. 지안은 건조된 찻잔을 꺼내어 마지막 단계인 ‘금가루 메움 기법(Gold Leafing)’에 돌입했다. 주칠을 얇게 입힌 옻 선 위에, 지안은 세필 붓 끝에 순도 99.9%의 순금 분말을 조심스럽게 묻혔다.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날아갈 수 있는 극도로 미세한 순금 나노 가루였다. 지안이 붓을 가볍게 쓸어내리자, 어둡고 칙칙했던 갈색의 균열 선들이 눈부신 황금빛 선으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깨지고 파괴되었던 흔적이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닌, 이전보다 훨씬 화려하고 고귀한 예술적 무늬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의 순간이었다.


지안은 찻잔 표면의 마지막 금빛 선을 정리한 뒤, 거칠게 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전 8시 정각.


철컥 소리와 함께 아틀리에의 차단 철문이 위로 열렸다. 기다렸다는 듯 최 비서와 오만석 주치의, 그리고 한 집사가 삼엄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최 비서의 입꼬리에는 이미 지안을 쫓아낼 생각에 비열한 승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24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지안 씨. 이제 당신의 그 무모한 도박의 결과를……”


최 비서의 말이 테이블 중앙에 놓인 물건을 보는 순간 턱 막혔다.


백색 조명 아래, 은은한 비색을 뿜어내는 청자 찻잔이 단아하게 서 있었다. 12개의 깨진 틈새는 찬란한 금빛 선으로 정교하게 메워져 있었고, 그 영롱한 광택은 깨지기 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예술적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한 집사가 천천히 다가와 안경을 쓰고 찻잔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노쇠한 눈에 경탄과 함께 붉은 눈물이 고였다.


“이건…… 한여진 이사장님의 찻잔이 맞군. 아니, 이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졌어…….”


최 비서와 오만석은 사색이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안의 완벽한 기술적 증명 앞에 그들의 해고 명분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지안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어둠 속의 은지원을 바라보았다. 지원은 휠체어에서 천천히 바퀴를 굴려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복원된 청자 찻잔을 차가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졌다. 찬란한 금빛 흉터의 온기가 그의 손끝을 타고 뇌 신경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지원의 시선이 찻잔에서 천천히 움직여, 지안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피 묻은 거즈와 옻독으로 짓물러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가냘픈 손가락들이 지원의 붉은 눈동자에 깊게 담겼다. 지원은 지안의 상처 입은 손을 가만히 응시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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