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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메스, 첫 번째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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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거친 기계음과 함께 지하 아틀리에의 백색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방을 붉게 물들이며 돌아가는 비상등의 기괴한 박동이었다.


철컥, 쿵!


육중한 방화문이 하강하며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는 순간이었다. 공기는 순식간에 진공 상태처럼 무겁게 가라앉았고, 미세한 소독약 냄새가 붉은 조명 속에서 비릿하게 피어올랐.


“하아…… 하아……!”


휠체어에 앉은 은지원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밀실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동공은 극도로 수축되어 있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는 허공의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제어력을 잃은 기계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안은 직감했다. 이것은 단순한 공황 발작이 아니었다. 그의 얇은 실크 셔츠 깃 사이로 드러난 백자처럼 창백한 목덜미, 그 척수 근처에 미세하게 돋아난 붉은 바늘 자국들. 일정한 주기로 신경을 마비시키고 환각을 유도하는 만성 독극물이 그의 뇌를 갉아먹고 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급성 마비성 발작 증세였다.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위선자 년!”


지원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책상 서랍에서 꺼내 든 것은 정교한 의료용 일회용 메스였다. 날카로운 메스 날이 붉은 비상등 불빛을 받아 섬뜩한 핏빛으로 번뜩였다.


그는 환각 속에서 귓가를 때리는 날카로운 괘종시계 소리와 기괴한 클래식 음악 소리를 멈추기 위해, 자신의 왼손목을 향해 메스 날을 내리누르려 했다. 스스로에게 극단적인 통증을 가해 뇌 신경의 혼란을 강제로 잠재우려는 처절하고 가학적인 자해 시도였다.


그 순간, 지안은 아틀리에 벽면 위쪽에 설치된 폐쇄회로 카메라의 렌즈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다.


철문 너머, 모니터실에 있을 최 비서의 서늘한 안경 너머 눈빛이 그려졌다. 은정학 부회장의 충직한 사설 밀정인 그는 지원의 발작을 진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원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미치광이로 확정되어 후계자 자격에서 영구히 배제되기를 바라며, 이 처절한 광경을 방관하고 기록할 터였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야.’


지안의 머릿속에 병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신음하던 아버지의 얼굴과 빨간 딱지가 붙기 시작한 은광요 공방의 마당이 스쳐 지나갔. 월 2천만 원의 급여를 조건으로 내건 이 계약을 지켜내지 못하면, 그녀의 세계는 오늘로 완전히 무너진다.


하지만 그 절박함보다 먼저 지안의 장인적 직관을 움직인 것은 눈앞에서 스스로 깨어지려 하는 한 인간의 영혼이었다. 금이 가고 깨진 도자기를 지나치지 못해 옻칠과 금박으로 메워왔던 그녀의 손끝이, 피를 흘리려 하는 지원을 향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스슥.


지안은 주저 없이 붉은 빛이 일렁이는 아틀리에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흙먼지가 약간 묻은 린넨 셔츠 자락이 허공에 흩날렸다.


“다가오지 마! 죽여버릴 거야!”


지원이 메스를 쥔 오른손을 치켜들며 발악했다. 그의 예민한 귀는 지안의 급박한 구두 발자국 소리를 적대적인 괴물의 침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안은 지원의 정면으로 다가가는 대신, 그의 시야 사각지대인 오른쪽 뒤편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원이 메스 끝을 자신의 손목으로 내리꽂으려던 찰나, 지안은 양손을 뻗어 그의 떨리는 오른 손목을 단단히 낚아챘다.


탁!


“이거 놔! 놔 간단 말이야!”


지원의 몸이 격렬하게 뒤틀렸다. 광기에 휩싸인 사내의 완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지원은 자신을 구속하려는 지안을 밀쳐내기 위해 메스를 쥔 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서늘한 금속의 감각이 지안의 오른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갔.


아스라한 통증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지안의 손가락 사이로 울컥 흘러내렸다. 의료용 메스의 예리한 날이 지안의 부드러운 살결을 깊게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붉은 피가 지원의 창백한 손목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려 하얀 대리석 바닥에 흩뿌려진 백토 가루와 뒤섞였다.


“윽……!”


지안은 비명을 삼켰다.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자상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결코 손귀를 늦추지 않았다.


평생 물레를 돌리며 거친 흙의 무게를 견뎌온 지안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단단한 장인적 악력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피로 미끄러워지는 지원의 손목을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지원의 손가락을 하나씩 억지로 벌려내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으면, 내 공방도 죽어. 그러니까 절대 못 놔.”


지안의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지원의 귀가에 꽂혔. 지안은 온 힘을 다해 그의 엄지손가락 마디를 꺾어 눌렀다.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지원의 손가락 사이에서 힘이 빠지며, 피 묻은 메스가 댕그랑 소리를 내며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지안은 발끝으로 메스를 아틀리에 저 멀리 구석으로 차버린 뒤, 곧바로 휠체어 뒤편에서 지원의 떨리는 상체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지원의 굳어버린 어깨가 지안의 품 안에서 덜덜 떨렸다. 그의 숨소리는 이미 과호흡으로 인해 찢어질 듯 가빴고, 심장은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아…… 으윽…… 숨이…… 안 쉬어……”


지원의 귀에 세상의 모든 위선적인 목소리들이 가득 찬 잡음처럼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목소리 톤과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그 안의 거짓을 감지해 내는 그의 ‘숨소리 공감각 청각’은 지금 극도의 과부하 상태였다. 모두가 자신을 이용하려 하고, 자신을 미치광이로 몰아 가두려 한다는 공포가 그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귓가로 아주 가깝고 정직한 숨소리가 흘러들어왔.


지안은 지원의 창백한 볼에 자신의 뺨을 대고, 그의 귀를 향해 일정하고 정갈한 호흡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습, 후.

습, 후.


그것은 가식적인 동정이나 꾸며진 위로가 아니었다. 가마터의 매운 연기를 견뎌내고, 흙의 미세한 숨구멍을 살려내기 위해 장인이 내쉬는 정직하고 단단한 생명의 호흡이었다. 그 숨소리에는 오직 ‘살리겠다’는 순수한 의지와 따뜻한 흙의 온기만이 담겨 있었다.


지원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예민한 청각이 지안의 숨소리를 공감각적으로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비정한 은성그룹의 회색빛 거짓말들 사이에서, 오직 지안의 숨결만이 따뜻한 황토색 빛을 띠며 그의 어두운 심연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위선과 기만이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정직한 숨소리.


지원은 자신을 옥죄던 차가운 이명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안이 불어넣어 주는 호흡의 리듬에 맞춰, 그의 터질 듯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아주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이제 숨 쉬어요. 내 호흡에 맞춰요.”


지안은 자신의 오른손에서 흐르는 피가 지원의 셔츠 깃을 적시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그녀의 체온이 지원의 차가운 척수를 타고 올라가 뇌 신경의 극단적인 흥분을 강제로 가라앉혔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는지 모를 침묵 속에서, 마침내 지원의 거친 호흡이 잔잔해졌다. 그의 오른손가락 마디의 경련이 멈추고, 힘없이 지안의 품 안으로 꺾여 들어갔.


붉은 비상등의 느린 박동만이 아틀리에를 채우고 있었다. 바닥에는 깨진 백토 도자기 조각들과 두 사람의 붉은 피가 흥건히 엉겨 붙어 있었다.


발작이 가라앉은 지원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충혈된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의 옷깃을 적시고 있는 붉은 혈흔이었다.


지원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창백한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꽉 움켜쥐고 있는 지안의 오른손, 찢어진 상처 틈새로 붉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그녀의 손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영혼이, 난생처음 마주한 타인의 피와 온기 앞에서 거대한 충격으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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