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경보, 가방 속의 비밀
철컥 소리와 함께 수장고 내부의 붉은 비상등이 일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수장고 제7실의 두꺼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는 밀폐된 지하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음과도 같았다. 이지안은 선반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몸을 더 깊이 웅크렸다. 세척액의 매캐한 가스가 폐부 깊숙이 박혀 기침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그녀는 피가 흐르는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통을 억눌렀다. 발목의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삭스 안쪽을 축축하게 적셔오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했다.
“어이! 제7실 문이 왜 열려 있어? 경보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한 건가?”
경비원들의 다급한 군화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렸다. 랜턴의 백색 광선이 지안이 숨은 선반 바로 옆 칸을 칼날처럼 가르며 지나갔다. 먼지 쌓인 공기 중으로 유기산 세척액의 비릿한 화학 향이 흩어지는 찰나, 경비원의 랜턴 불빛이 지안의 검은 구두 끝을 정면으로 비추기 직전이었다.
탁—!
갑자기 수장고 내부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붉은색 비상등마저 암전되며 완벽한 암흑이 수장고를 집어삼켰다.
“뭐야? 정전인가? 본관 전원이 왜 차단된 거지?”
“비상 발전기도 안 돌아가잖아! 보안실, 들리나? 응답해라!”
경비원들이 당황해 무전을 외치는 소리가 암흑 속에서 울려 퍼졌다. 지안은 어둠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직감했다. 이것은 성북동 저택에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은지원 씨의 기습적인 원조였다. 미술관 전체의 전력 제어 장치를 해킹하거나 원격으로 차단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준 것이 분명했다.
‘지금 나가야 해.’
지안은 어둠 속에서 손끝의 절대 촉각을 가동했다. 빛이 사라진 공간이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수장고 내부 선반의 철제 결을 읽고 있었다. 품에 안은 비색 청자 주전자를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 안에 밀어 넣고 벨트를 채웠다. 셔츠 안쪽 주머니에는 한여진 이사장이 남긴 12자리의 스위스 은행 마스터 패스코드가 적힌 수첩이 묵직하게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안은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선반 뒤를 빠져나왔. 경비원들이 랜턴을 켜기 위해 배터리를 두드리고 무전을 지르는 사이, 그녀는 발목의 통증을 짓누르며 제7실의 열린 철문 틈새로 몸을 날렸다. 어두운 지하 복도는 비상 유도등의 희미한 녹색 불빛만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타다닥.
지안은 벽을 짚어가며 필사적으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디딜 때마다 발목 유리 자상 흉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지원 씨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고 이 암호를 무사히 반출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침내 지하를 벗어나 1층 대리석 로비에 도달했을 때, 지안의 눈앞에 절망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위이잉—!
미술관 전역에 붉은색 비상 경보등이 회전하며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가 로비를 가득 채웠다. 정전과 동시에 작동한 자동 폐쇄 프로토콜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육중한 통유리 보안 게이트가 이미 바닥까지 내려앉아 완전히 잠겨 있었다.
“비상 정전으로 인해 모든 출입구가 폐쇄되었습니다. 관람객 및 직원 여러분은 제자리에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계적인 안내 방송이 붉은 조명 아래 울려 퍼졌다. 탈출구가 막힌 로비 한가운데,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에 홀로 선 지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녀가 뒤를 돌아 다른 피난 통로를 찾으려던 찰나, 로비 저편의 엘리베이터 홀에서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두드리며 다가왔다.
또각, 또각, 또각.
붉은 비상등 불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짙은 화장에 화려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은성미술관 관장 유미란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설 경호원 4명이 삼엄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유미란은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지안의 앞길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밤늦은 시간에 우리 미술관 수장고에서 쥐새끼처럼 기어 나오는 게 누구인가 했더니, 지원이 곁에 붙어 있는 그 가난뱅이 복원가 기집애였네.”
유미란의 목소리에는 뼈를 찌르는 듯한 경멸과 오만함이 가득했다. 지안은 가방끈을 꽉 쥐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가방 안감의 이중 주머니 속에는 오만석 주치의의 범죄 물증인 독극물 주사기 공병이 숨겨져 있었고, 가방 중앙에는 패스코드가 숨겨진 청자 주전자가 들어 있는 오동나무 상자가 있었다. 이것들을 빼앗기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관장님, 저는 한예슬 큐레이터의 정식 협조를 받아 보존 처리실의 유물 상태를 점검하러 온 것입니다. 주거 침입이나 무단침입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안이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유미란은 코웃음을 치며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한예슬? 그 하찮은 기집애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수장고 문을 열어줘? 이지안, 네까짓 게 감히 은성그룹의 유품에 손을 대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 보안팀, 저 기집애의 가방을 당장 빼앗아 수색해. 수장고 유물을 무단 반출하려 한 절도 현행범으로 경찰에 인계하겠어.”
“이러실 권리는 없습니다! 영장 없는 신체 수색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지안이 가방을 뒤로 숨기며 버텼지만, 거구의 사설 경호원들이 무자비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아 압착했다. 발목의 통증으로 지안의 무릎이 꺾이는 순간, 경호원의 거친 손길이 지안의 어깨에서 가죽 가방을 강제로 강탈해 유미란의 발밑으로 던져버렸다.
쿵.
가죽 가방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무거운 소리를 냈다. 유미란이 구두 끝으로 가방을 툭툭 치며 경비원에게 가방을 열라고 지시하려던 바로 그 순간, 미술관 정문의 폐쇄된 유리문 너머로 묵직하고 권위 있는 목소리가 로비 전체를 호령하듯 울려 퍼졌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로비의 붉은 조명을 뚫고 걸어 들어온 사내는 정갈한 수트에 안경을 쓴 은성그룹의 법률고문 최태준 변호사였다. 그는 정문 옆의 비상 수동 개방 장치를 가동해 문을 열고 들어와, 유미란 관장의 앞을 무겁게 가로막았다.
“유미란 관장, 지금 은성그룹의 공식 ‘전담 뇌 신경 치료 자문관’이자 후계자의 신원 보증을 받는 이지안 선생에게 무슨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까?”
최태준의 묵직하고 논리적인 호통에 유미란의 눈썹이 꿈틀했다.
“최 변호사? 당신이 왜 여기 와서 이 꽃뱀 기집애의 편을 드는 거지? 이 여자는 지금 미술관 수장고에 무단 침입해 유물을 절도하려 한 현행범이야. 관장인 나에게는 현장 수색 권한이 있어!”
“현장 수색 권한?”
최태준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서류 봉투를 들이밀었다.
“미술관 정관 및 상법상의 규정에 따르면, 비상 상황이라 할지라도 법원의 수색 영장이나 소유자의 명백한 동의 없는 사설 경호원의 신체 및 재물 수색은 엄연한 ‘강요죄’이자 ‘불법 수색 영장 남용죄’에 해당합니다. 유 관장, 당신이 이지안 선생의 가방에 손을 대는 순간, 나는 변호사 자격을 걸고 당신을 형사 고소할 것이며 은성문화재단 이사회에 관장 해임안을 즉각 상정할 것입니다.”
최태준의 정교한 법리적 반격에 유미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물러설 여인이 아니었다. 유미란은 은정학 부회장의 권력을 등에 업고 오만하게 턱을 치켜올렸다.
“해임안? 하, 해볼 테면 해봐. 하지만 이 미술관의 보안 규정 제12조에 따르면, 비상 경보 작동 시 관장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의심스러운 외부인의 소지품을 긴급 수색할 임시 권한을 갖게 되어 있어. 최 변호사, 당신이 아무리 법을 읊어대도 이 가방 안에서 우리 수장고의 청자가 나오면 끝이야!”
유미란은 최태준의 제지를 몸으로 밀쳐내며, 바닥에 떨어진 지안의 가방을 직접 손으로 낚아채 지퍼를 거칠게 열어젖혔다.
“안 돼……!”
지안이 비명을 지르며 제지하려 했으나 경호원들의 손길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유미란은 가방 내부를 헤집더니, 지안이 아끼는 손때 묻은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도구 상자의 황동 잠금장치를 난폭하게 풀어헤쳐 대리석 바닥을 향해 거꾸로 쏟아버렸다.
와르르르창—!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도구 상자 내부의 물건들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무참하게 쏟아져 내렸다. 지안이 가마터에서부터 정성스레 가꾸어 온 전통 복원용 세필 붓들이 바닥을 뒹굴었고, 임시 접합용 천연 아교병과 정밀 세척용 화학 시약병들이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나 깨져버렸다. 시큼하고 매운 복원 약품의 냄새가 깨진 유리 파편 사이로 흘러나와 로비의 공기를 오염시켰다.
“이게 뭐야? 겨우 이따위 쓰레기 같은 붓이랑 약병들뿐이야?”
유미란이 깨진 시약병들을 구두 굽으로 짓밟으며 소리쳤다. 오동나무 상자 이중 안감 속에 숨겨진 마비독 주사기 공병과 청자 주전자는 아직 가방 내벽의 숨겨진 주머니 속에 안전하게 걸려 있었지만, 지안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굴욕감과 분노로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장인으로서 평생을 가꾸어 온 도구들이 자본의 오만함 아래 무참히 짓밟히는 광경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잔인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난도질했다.
그때였다.
거칠게 찢겨 나간 가죽 가방의 안감 틈새에서, 동전 크기만 한 은색 금속 물체 하나가 굴러 나와 깨진 유리 파편들 사이로 댕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것은 사설 탐정 차수현이 지안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방 안감 속에 몰래 꿰매어 숨겨두었던 ‘차수현의 초소형 위치 추적기’였다. 붉은색 미세 LED 불빛이 어둠 속에서 아주 작게 깜빡이고 있었다.
유미란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바닥을 구르는 은색 금속 물체로 향했다. 만약 저 위치 추적기가 은성그룹 보안팀의 감정 하에 들어가게 된다면, 지안이 외부 사설 탐정 및 해커 세력과 연대하여 은성그룹 내부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는 물증이 되어 주거침입 및 산업 스파이 혐의로 즉각 체포될 수 있는 최악의 올가미였다.
‘들키면 끝장이야……!’
지안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멎는 듯한 극도의 공포가 전신을 엄습했다.
탁.
찰나의 순간, 지안은 발목의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무시한 채 앞으로 한 걸음 미끄러지듯 나아가, 피로 물든 자신의 구두 밑창으로 바닥의 초소형 위치 추적기를 꽉 밟아 뭉개며 시야에서 완벽하게 감추었다. 발목의 자상에서 새어 나온 붉은 피가 대리석 바닥에 번지며 추적기의 은색 표면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지안은 턱을 치켜세운 채,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 서 있는 유미란 관장을 향해 이빨을 악물고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난한 복원가로서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마지막 자존심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유미란 관장님! 겨우 돈 몇 푼 쥐고 있다고 해서, 대대로 전통을 이어온 장인의 도구들을 이토록 천박하게 짓밟을 권리가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오만함의 대가는, 조만간 당신이 가진 그 화려한 가면과 함께 통째로 치러야 할 것입니다!”
지안의 독기 서린 호통과 발끝 아래 숨겨진 붉은 추적기의 깜빡임이, 로비의 서늘한 적막 속에서 팽팽한 대치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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