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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정밀 세척, 숨겨진 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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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군화 소리와 함께, 복도 저편에서 수장고 문을 향해 다가오는 경비원들의 랜턴 불빛이 붉은 경보등 사이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지하 수장고 제7실의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이지안은 숨을 죽인 채, 검은 라커 칠로 흉측하게 훼손된 비색 청자 주전자를 품에 안았다. 걸을 때마다 지난밤 베인 발목의 자상에서 칼칼한 통증이 척수를 타고 올라왔고, 오른손바닥에 새겨진 메스 자상 흉터 역시 터질 듯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와 발걸음 소리는 심장 박동을 미칠 듯이 가속시켰다.


‘경비원들이 수장고 문 앞까지 다가왔어. 3분, 아니 길어야 2분 안에 이 라커를 벗겨내고 암호를 읽어야 해.’


지안은 어둠 속에서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상자 황동 잠금장치를 열자 은은한 옻나무 기름 냄새가 났지만, 지금 꺼내야 할 것은 복원용 옻칠 도구가 아니었다. 지안은 가문 대대로 내려온 ‘미세 균열 화학 세척법’에 쓰이는 천연 유기산 세척 유액 병을 꺼냈다. 이 유액은 고려청자의 약한 유약 층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표면에 인위적으로 도포된 합성 타르나 라커 층만을 정교하게 녹여내는 비방의 약재였다.


삑, 삑, 삐리릭—.


수장고 철문 바깥의 마스터키 리더기에서 기계식 보안 경보음이 울렸다. 경비원들이 마스터카드를 대고 잠금을 해제하려는 순간이었다.


지안은 주저하지 않고 약솜에 유기산 유액을 듬뿍 적셨다. 그리고 손끝의 절대 촉각을 가동했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끝의 감각이 검은 라커 층의 두께를 미세하게 읽어내기 시작했다. 유미란 관장이 주전자의 각인을 가리기 위해 부은 도료는 주둥이와 바닥 내벽 쪽이 유독 두꺼웠다. 지안은 촉각으로 두께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며, 약솜을 주전자 표면에 대고 정교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화학 시약이 검은 라커와 반응하며 미세한 거품을 내고 기화하기 시작했다. 밀폐된 수장고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매캐하고 비릿한 화학 독성 가스가 피어올랐다. 가스가 코끝을 찌르는 순간, 지안의 목구멍에서 격렬한 기심이 터져 나오려 했다. 지안은 이를 악물고 기침을 참았다. 호흡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솜을 쥔 손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소리를 내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었다.


‘지원 씨는 이보다 더한 마비독의 고통 속에서도 나를 믿고 버텨냈어.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안은 저택에서 피멍이 든 오른팔을 치료받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성북동의 감옥을 깨고 나와주었던 은지원의 차가우면서도 간절했던 눈빛을 떠올렸다. 그 정서적 동조가 지안의 손끝에 초인적인 집중력을 불어넣었다.


철컥, 쿵—.


마침내 수장고 제7실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눈부신 백색 랜턴 광선이 어두운 수장고 내부를 칼날처럼 가르며 들어왔다.


“어이, 조심해. 유 관장님이 제7실은 비상 노이즈가 한 번이라도 감지되면 이 잡듯 뒤지라고 하셨어.”


경비원들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철제 선반 사이를 걸어 다녔다. 랜턴 불빛이 선반에 보관된 백자와 청자들의 표면을 차례로 훑었다.


지안은 주전자를 안은 채, 거대한 옹기 항아리와 고미술품 상자들이 가득 쌓인 선반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 구석으로 몸을 납작하게 웅크렸다. 발목의 자상에서 피가 흘러 양말을 적시는 축축한 감각이 느껴졌지만, 지안은 호흡을 완전히 멈춘 채 랜턴 불빛의 궤적을 쫓았다. 랜턴 빛이 그녀가 숨은 선반 바로 옆 칸을 스쳐 지나갔다.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지안은 숨을 죽인 채, 세척액에 의해 검은 장막이 완전히 녹아내린 주전자 내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기산 유액에 녹아내린 라커 층 아래로, 마침내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비색 청자의 영롱하고 투명한 유약 빛깔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지안은 주머니에서 ‘고배율 보존 현미경 루페’를 꺼내 눈에 대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오직 감각만으로 ‘미세 균열 육안 식별력’을 가동했다.


청자 표면에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자연스러운 가마 빙열(빙열) 무늬들. 그 세월의 균열들 사이로, 인위적으로 아주 미세하게 음각된 음각 기호들이 루페의 렌즈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도자기의 흠집이나 균열처럼 보였을 미세한 흔적들이었지만, 지안의 예술적 혜안 아래서는 정교한 숫자의 형태로 재배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여진 이사장이 스위스 취리히 신탁 은행 금고를 잠그기 위해 음각해 둔 12자리의 비밀 각인이었다. 지원의 가문을 구원하고 은정학 부회장의 비자금 줄을 단숨에 끊어버릴 마스터 패스코드.


지안은 가슴이 터질 듯한 전율을 느끼며,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떨리는 왼손으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루페 너머로 보이는 숫자를 마음속으로 읽으며 한 자리씩 수첩에 정밀하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7…… 4…… 9…… 1…….’


수장고 내부를 수색하던 경비원의 발걸음 소리가 지안이 숨은 선반 코앞까지 다가왔다. 랜턴 불빛이 지안의 검은 구두 끝을 비추기 직전의 찰나였다. 지안은 극도의 안구 통증과 피로를 견뎌내며 마지막 숫자를 판독해 냈다.


‘……8.’


지안이 마지막 12번째 암호 숫자를 수첩에 적는 순간, 수장고 철문의 잠금장치가 철컥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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