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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가족, 가마터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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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야. 나 풀려났어. 어떤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와서 수갑을 풀어줬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동생 이지호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이지안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가방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던 그녀의 전신에서 긴장이 탁 풀렸다.


오른손바닥에 새겨진 메스 자상 흉터가 욱신거렸고, 대리석 로비에서 은혜라가 던진 현금 뭉치에 스쳤던 뺨과 깨진 유리 조각에 베인 발목이 찌르는 듯 아파왔지만, 지금은 그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지안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은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휠체어에 앉아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는 은지원이 있었다. 그의 왼손바닥 역시 신경 안정 한방 펜던트를 너무 세게 쥔 탓에 생긴 손톱 자상으로 인해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깊었다.


“지호가 무사히 공방으로 돌아갔답니다, 상무님.”


지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원은 그녀의 떨리는 호흡을 자신의 예민한 ‘숨소리 공감각 청각’으로 읽어내며, 붕대가 감긴 왼손을 뻗어 지안의 차가운 손을 가만히 쥐었다. 두 사람의 상처 입은 손바닥이 맞닿으며 묘한 온기가 번져나갔다.


“내가 말했지. 내 저택에서, 내 사람에게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고. 지안이 너는 물론이고, 네 가족도 내 사람이다.”


그의 나지막한 음성에는 명목상 후계자 권력을 쥐고 흔드는 지배자 특유의 오만함과, 오직 지안만을 향한 맹목적인 수호의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지안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감정에 목이 메었다. 비정한 대기업의 권력 전쟁 속에서, 이 차가운 사내가 자신을 위해 기꺼이 방패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


불과 한 시간 전, 경기도 여주의 은광요 가마터 마당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은정학 부회장의 아들이자 사교계의 망나니 은석우가 파놓은 덫에 걸려 이지호가 상해 현행범으로 체포되기 직전의 상황. 은석우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열하게 웃고 있었고, 미리 매수된 은성경찰서의 경찰들이 지호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채우려 다가서고 있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가마터 마당의 흙먼지를 뚫고 검은색 방탄 세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사내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다부진 체격, 칠흑 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은지원의 최정예 사설 경호원 최강식이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범접할 수 없는 중압감에 현장에 있던 경찰들과 은석우의 수하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최강식은 쓰러진 석우나 흥분한 지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바로 현장을 지휘하던 은성경찰서 형사과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에는 은지원 후계자의 직속 항의 서한과 로펌 태평의 최태준 변호사가 작성한 대리인 위임장이 들려 있었다.


“은지원 상무님의 직속 경호팀장 최강식입니다. 이지호 군의 신변은 지금부터 저희가 확보합니다.”


“뭐, 뭐야? 너희가 뭔데 현행범 체포를 방해해? 이 새끼가 대기업 후계자 후보인 나를 때렸다고! 당장 수갑 채워!”


은석우가 바닥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지만, 최강식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매수된 형사과장 역시 석우의 눈치를 보며 짐짓 엄한 목소리로 최강식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정당한 공권력 집행 중이오. 비켜서지 않으면 사법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으로 당신들도 연행하겠소.”


최강식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품 안에서 묵직한 마닐라지 봉투를 꺼내 형사과장의 가슴팍에 가볍게 툭 쳤다. 봉투가 벌어지며 그 안에서 몇 장의 서류 사본이 드러났다.


그것은 은석우가 은성경찰서 형사과장과 서장의 개인 비밀 계좌로 송금한 불법 정치 자금 및 뇌물 거래 내역서 원본의 복사본이었다. 최태준 변호사와 수현 흥신소가 밤새 추적해 확보한 아킬레스건이었다.


“과장님, 그리고 서장님의 은밀한 금융 거래 흔적입니다. 이 서류가 지금 대검찰청 감찰부와 언론사에 실시간으로 전송되기까지 정확히 3분 남았습니다. 공권력 집행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지호 군의 석방 조서를 작성하시겠습니까?”


형사과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수갑을 쥐고 있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석우의 돈 몇 푼에 자신의 평생 관직과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장은 서둘러 수하들에게 소리쳤.


“수…… 수갑 풀어! 현장 정황을 보니 쌍방 과실 및 단순 훈방 조치로 종결한다. 철수해!”


“과장님! 미쳤어요? 돈을 얼마를 받아 처먹어 놓고!”


은석우가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겁에 질린 경찰들은 이미 수갑을 풀고 순찰차로 도망치듯 탑승하고 있었다. 지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풀려난 손목을 만졌고, 최강식은 흙먼지 묻은 지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나직하게 말했다.


“누님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공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올리십시오.”


***


“상무님의 경호원 아저씨 덕분에 살았어, 누나. 은지원 상무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줘…….”


지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끊어지고, 지안은 스마트폰을 가슴에 품은 채 깊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자, 지원이 휠체어 바퀴를 굴려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마음이 좀 놓이나.”


지원은 지안의 손가락 끝에 묻은 흙먼지와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안은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의 터전인 은광요 공방과 동생을 지켜낸 이 기적은, 온전히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비정한 권력을 휘두른 결과였다.


“상무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갚을 필요 없다. 너는 이미 내 목숨을 구했으니까. 그리고 아직 우리의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지원의 시선이 아틀리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로 향했다. 지안은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지원의 예민한 뇌 신경을 안정시키고, 아직 체내에 남아 있는 만성 독극물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한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두 사람은 성북동 대저택 지하 아틀리에의 수동 물레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테이블 위 백열등 불빛만큼은 두 사람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안은 도구 상자를 열고 정갈하게 정돈된 대나무 주걱과 물을 꺼냈다. 그리고 가마터에서 가져온 회청색의 ‘고려청자 비색 태토’를 물레 위에 얹었다. 차갑고 정직한 흙내음이 아틀리에 내부의 소독약 냄새를 덮으며 은은하게 퍼져나갔.


“상무님, 오늘 수업은 ‘흙 반죽 손끝 교감 요법’입니다. 흙의 원초적인 촉각을 통해 뇌 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떨리는 손끝의 감각을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입니다.”


지원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물레 앞 의자에 앉았다. 그의 사지는 아직 해독제의 누적 효과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지안은 물레를 천천히 회전시켰다. 웅웅거리는 나직한 회전음과 함께 회청색 흙더미가 둥글게 돌기 시작했다. 지안은 지원의 뒤편에 바짝 다가서서 그의 창백하고 미세하게 떨리는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탁.


차가운 진흙의 감각과 지안의 따뜻한 체온이 동시에 지원의 손끝을 타고 뇌 신경으로 흘러들었다. 지원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지만, 이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지안의 규칙적이고 정직한 숨소리에 맞춰 그의 호흡도 차분해졌다.


지안은 지원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짚어가며 흙의 중심을 잡도록 유도했다. 물레 위에서 회색 흙이 두 사람의 손길에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올랐고, 그들의 호흡은 완벽하게 동조되어 갔다. 차가운 대기업의 음모 속에서, 오직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깨진 영혼을 황금빛 실로 메워나가는 듯한 완전한 평화가 깃들었다.


지원은 물레 위에서 지안의 손가락 움직임을 느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안아, 네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 온기가…… 내 차가운 족쇄를 녹여주는 것 같다.”


지안은 대답 대신 지원의 손을 더욱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물레 위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운 청자 곡선에 머물렀다.


그때였다.


지안이 빚어진 점토를 떼어내어 그늘진 점토 건조대 구석으로 옮기려던 찰나, 그녀의 예민한 절대 촉각과 식별력이 건조대 모퉁이의 미세한 이물감을 포착했다.


어두운 나무 선반의 아주 좁은 틈새,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구석에서 아주 미세하고 이질적인 인공의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지안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점토 건조대 구석 깊숙한 곳에 교묘하게 숨겨진 초소형 카메라 렌즈였다. 그리고 그 렌즈 안쪽에서, 두 사람의 다정한 손길과 밀착된 신체를 실시간으로 녹화하듯 붉은 불빛이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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