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ạc nềnHesitation

침묵의 저택, 깨진 인연의 시작

Audio truyện
Chưa có audio. Bấm để tự tạo audio cho tập này.

흙은 기억을 가진다.


지안이 아버지 이만길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가마 속에서 마르고 구워지는 흙은 사기장의 손길뿐만 아니라, 그날의 습도와 바람의 미세한 방향까지 모조리 제 몸에 새겨 넣는다고 했다. 그러나 자본의 비정함은 그런 장인 정신 따위는 기억하지 않았다.


숙부 이만수가 도박 빚의 담보로 가문의 유산인 ‘은광요(恩光窯)’ 공방을 통째로 넘겨주고 야반도주했을 때, 지안이 마주한 현실은 차가운 황토 벽돌보다 더 매서웠다. 당장 일주일 안에 3억 원을 갚지 않으면 가마터는 포클레인에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만성 폐질환으로 각혈을 하는 아버지를 병실에 눕혀두고, 지안은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어두운 사무실에서 계약서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월 2천만 원입니다. 조건은 단 하나, 은지원 상무의 폭주를 막고 그의 곁에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무는 것.”


은성그룹의 법률고문 최태준 변호사가 건넨 ‘대저택 미술 치료 교사 고용 계약서’는 지안에게 썩은 동아줄이자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은성그룹의 후계자이자, 심각한 학대 트라우마로 인해 성북동 저택에 스스로를 감금한 채 자해를 일삼는다는 미치광이 황태자, 은지원. 지안은 그 어둠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가문의 심장인 은광요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 했으니까.


***


서울 성북동의 가장 깊은 언덕 끝자락.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담벼락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요새, 혹은 합법적으로 지어진 감옥에 가까웠다. 정문에서부터 귀에 인이어를 낀 사설 경비원들이 삼엄한 눈빛으로 지안의 온몸을 훑었다.


안면 인식과 지문 등록, 그리고 소지품 정밀 검색까지 거치는 3중의 보안 검색대는 들어서는 이의 숨통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지안의 낡은 가방 안에서 나온 손때 묻은 오동나무 킨츠기 도구 상자를 검사하던 경비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무엇도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위반 시 계약 해지는 물론,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겁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지안은 질끈 묶은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단단히 대답했다.


안내를 맡은 한 집사의 묵묵한 발걸음을 따라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고급 대리석 바닥은 먼지 한 톨 없이 매끄러웠지만,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마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웠다.


지안이 가야 할 곳은 저택의 가장 깊은 곳, 지하에 마련된 아틀리에였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졌고, 미세한 소독약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여 코끝을 찔렀다.


철컥, 무거운 방화문이 열리고 지안은 마침내 대저택 지하 아틀리에 안으로 발을 들였다.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오직 천장 중앙에서 떨어지는 외줄기 백색 핀조명만이 방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은지원.


칠흑 같은 흑발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빚어놓은 백자처럼 창백했다. 날카롭게 깎아지른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은 타인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는 짐승 같은 경계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최 변호사가 경고했던 ‘극단적 폐쇄 장벽(Extreme Closed Barrier)’의 실체였다.


지안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구두굽 소리가 적막한 지하실에 날카롭게 울렸다.


“안녕하세요, 은지원 상무님. 오늘부터 킨츠기 미술 치료를 맡게 된 이지안입니다.”


지안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오동나무 도구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지원이 휠체어 바퀴를 뒤로 거칠게 물리며 쇠가 긁히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지안의 얼굴을 꿰뚫을 듯이 쏘아보았다.


“미술 치료?”


지원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쓰지 않은 기계처럼 거칠고 낮았다. 그는 지안의 낡은 린넨 셔츠와 소맷자락 끝에 묻은 흙먼지, 그리고 손톱 밑에 박힌 미세한 점토 흔적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비정한 조소가 흘러나왔.


“옷꼬락서니 하고는. 은정학이 보낸 첩자치고는 제법 성의가 없군. 이딴 가난한 장사꾼 년을 치료사랍시고 내 방에 밀어 넣으면,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았나?”


그의 말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고, 가시가 돋쳐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수치심에 고개를 숙이거나 눈물을 흘렸을 모욕이었다. 하지만 지안은 도자기를 구우며 1200도가 넘는 가마 불꽃을 견뎌온 장인이었다. 그녀는 흔들림 없이 지원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은정학 부회장님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전 그저 최태준 변호사님의 의뢰를 받고 왔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지원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아틀리에 벽면에 부딪혀 울렸다.


“너희 같은 부류는 다 똑같아. 동정하는 척, 치료하는 척 다가와서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가식적인 보고서를 올리지. 얼마를 받기로 했지? 은정학이 네 가난한 공방이라도 사주겠다고 약속하든?”


지안은 조용히 자신의 흙먼지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돈 때문에 왔습니다.”


지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정면 돌파에 그의 비웃음이 멈추었다.


“월 2천만 원. 제 가문의 공방인 은광요가 사채 빚 3억 때문에 공중분해 되기 직전입니다. 아버지는 병실에서 각혈을 하고 계시고요. 전 상무님을 동정하러 온 것도 아니고, 대기업의 권력 싸움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제 공방을 지키기 위해, 그 돈이 절박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겁니다.”


지안의 날것 그대로의 정직함이 지원의 머릿속에 박혔다. 가식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들만 보아왔던 지원에게, 자신의 탐욕과 절박함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지안의 태도는 큰 충격이었다. 그의 차가운 방어 기제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찰나였다.


그러나 그 충격은 이내 그의 내면에 내재된 거대한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지안의 강렬한 존재감이 그의 정서적 경계를 흔들자, 지원의 호흡이 급격히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지원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되고, 그의 오른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시계 초침 소리와 클래식 음악이 뒤엉킨 환청이 울려 퍼졌다. 발작이었다.


“나가... 당장 내 방에서 나가!”


지원은 소리를 지르며 책상 서랍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진 차갑고 날카로운 의료용 메스 손잡이에 닿았다. 스스로에게 통증을 가해 환각을 쫓아내려는 처절한 자해 충동이 그의 이성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틀리에 천장의 비상등이 붉은빛을 뿜으며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복도 너머에서 육중한 철문이 하강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저택의 자동 보안 시스템이 환자의 이상 심박수를 감지하고 구역을 폐쇄한 것이다.


지원은 메스를 꽉 쥔 채, 광기 어린 눈빛으로 지안을 겨누었다. 붉은 비상등 불빛 아래, 날카로운 메스 끝이 번뜩였다.

HẾT CHƯƠNG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