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의 저주와 은빛 음차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것은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있는 비명이 아니었다. 단단한 고딕풍 석조 벽면을 타고 메아리치는 소리는, 마치 수천 명의 망령이 동시에 손톱으로 강철판을 긁어내리는 듯한 극도의 불쾌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속삭임의 회랑(속삭임의 회랑) 경계선을 넘어선 제국 마법사들의 푸른색 마법 장벽은 아무런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이 시전한 3서클급 마법의 마나가 회랑 벽면에 새겨진 기하학적 룬 문자들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핏빛으로 붉게 달아오른 룬 문자들이 사방에서 맥동할 때마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고주파의 진동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내 머리!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가장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카일의 뒤를 따르던 제국 학술 조사단의 견습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산 안경이 깨져나가는 것도 모른 채, 양손으로 귀를 감싸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귀와 코, 그리고 눈가에서 붉은 혈선이 흘러내렸다.
“이, 이게 무슨……! 장벽을 유지해라! 마나 출력을 높여!”
카일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의 눈에 착용된 3서클 연산 안경의 렌즈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마도서를 휘두르며 장벽을 강화하려 했으나, 마력을 뿜어낼 때마다 벽면의 룬 문자들이 더욱 무섭게 요동치며 소리의 파괴력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인과의 수식이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지상의 얄팍한 마학 공식으로는 이 초고대 음향 공학의 함정을 해독할 수 없었다.
“크아아악! 괴물이다! 망령들이 내 몸을 뜯어먹고 있어!”
결국 저주 음파에 정신이 완전히 붕괴된 제국 기사 한 명이 광기에 휩싸여 칼을 뽑아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핏발이 서 있었고, 아군인 제국 마법사의 목덜미를 향해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좁은 회랑은 순식간에 피아 구분을 잃은 비명과 칼부림의 생지옥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저주의 파동은 경계선 바로 바깥에 서 있던 진우 일행에게도 여과 없이 들이닥쳤다.
“으윽……!”
엘리시아가 신음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백은색 갑옷 위로 흐르던 성스러운 황금빛 오라가 유령처럼 흐려졌다. 그녀는 성검 아우렐리아를 바닥에 짚고 겨우 중심을 잡았으나, 정결한 미간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단순한 마법이 아니네. 성광의 결계가 물리적인 진동에 간섭당해 산산이 부서지고 있어! 기도를 올리려 해도 환청이 뇌를 찔러 집중할 수가 없네!”
“빌어먹을! 머릿속을 송곳으로 휘젓는 것 같잖아!”
강소희 역시 거대 도끼 바르그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지를 분쇄하던 그녀의 적색 오라가 통제를 잃고 사방으로 거칠게 폭발했다. 무력만큼은 대륙 최정상급인 대장들이었지만, 영혼의 주파수를 직접 타격하는 음향 저주 앞에서는 검도 오라도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했다.
윤채원은 지팡이 아스트라를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적인 자색 눈동자가 공포로 흔들렸다.
“마나의 파형이…… 우리 체내의 마나 맥로와 공명하여 폭주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뇌 세포가 완전히 타버릴 거예요. 수식을…… 역연산할 시간이 부족해요!”
기사단 후보생 루카스를 비롯한 정예 기사단원들과 베테랑 용병들 역시 무기를 떨어뜨린 채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무력만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즉사 구역(Red Zone)의 진정한 공포가 미궁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진우 역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만성 두통이 마치 뜨거운 인두로 뇌를 지지는 듯한 작열감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성광의 펜던트가 희미한 은빛 온기를 뿜어내며 정신의 붕괴를 간신히 지연시켜 주고 있었다. 엘리시아가 자신의 성력을 불어넣어 선물했던 그 펜던트가, 진우의 나약한 영혼을 붙드는 보이지 않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모두 망령의 노예가 된다.’
진우는 이를 악물고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손끝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모노클의 이중 렌즈를 미세하게 조율하자, 마침내 ‘패스파인더의 눈’이 개안되었다.
스아아아아—!
진우의 시야에 공기 중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음파의 파형들이 시각화되어 투영되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기하학적 파동들이 회랑의 아치형 천장과 석조 벽면에 부딪히며 거미줄처럼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튕겨 나가고 있었다.
모노클의 렌즈 위에 디지털 카운트다운처럼 기하학적 수식들이 실시간으로 연산되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었다. 초고대 아키텍트들이 특정 음향 주파수를 왜곡하여 뇌의 신경계를 교란하도록 정밀하게 설계한 물리적 음향 함정이었다. 그렇기에 지상의 마법 공식으로는 해독할 수 없었고, 오직 이 주파수를 물리적으로 상쇄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진우는 가죽 가방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의 손가락 끝에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각이 닿았다.
은퇴한 대도 장 영감(장 영감)이 그에게 물려주었던 특수 도구, ‘소리 상쇄 음차’였다.
‘진우야, 이 음차는 단순히 자물쇠를 딸 때만 쓰는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문과 함정에는 고유의 진동 주파수가 있지.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타이밍에 음차를 튕겨 반대 파형을 만들어내면, 그 어떤 저주스러운 소리도 완벽한 무음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명심해라. 타이밍이 단 0.1초라도 어긋나면, 역류한 진동이 네 고막과 뇌를 먼저 날려버릴 게다.’
장 영감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엄격했던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은빛 음차를 꺼내 들었다. 그의 귀에서 고주파 진동의 여파로 미세한 혈흔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적셨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속에서, 그는 모노클이 투영하는 음파의 기하학적 교차점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파란색 선으로 표시된 음파의 상쇄 노드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 파동이 가장 크게 팽창했다가 꺾이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음차를 튕겨야 했다.
“진우 씨…… 안 돼……! 더 이상 능력을 쓰면 머리가……!”
엘리시아가 피를 토하듯 소리치며 진우의 옷자락을 잡으려 했으나, 진우는 그녀의 손길을 조용히 비껴내며 음차를 허공에 세웠다.
0.3초. 0.2초. 0.1초.
진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팅————!
맑고 청아한 은빛 울림이 진우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소리였으나,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기적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진우가 연산해 낸 ‘주파수 역진동 공식’에 따라 조율된 은빛 파동이, 회랑 전체를 뒤덮고 있던 핏빛 저주 음파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로 상반되는 파형이 맞물리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소리가 완벽하게 지워졌다.
진우를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이내의 공간에 반투명한 푸른빛의 장막이 구체 형태로 펼쳐졌다. 장 영감의 가르침과 진우의 천재적인 기하학 연산이 융합되어 완성된 30초 한정의 절대 무음 필드, ‘소리 상쇄 필드’였다.
“하아……! 하아……!”
머리를 짓누르던 저주 소리가 뚝 끊기자, 강소희와 엘리시아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폭풍 같은 숨을 몰아쉬었다. 흐려졌던 그녀들의 눈동자에 서서히 이성이 돌아왔고,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정적의 장막을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리가…… 안 들려. 뇌를 찌르던 그 끔찍한 비명이 완전히 사라졌어.”
강소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윤채원 역시 머리를 흔들며 진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종교적 수준의 지적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소리를…… 진동 주파수로 완벽하게 상쇄해 버렸어요. 마법 공식도 쓰지 않고, 고작 저 작은 금속 막대 하나로 유적의 붉은 저주를 완전히 지워버리다니…… 진우 씨, 당신은 대체…….”
하지만 평화는 오직 진우가 전개한 5미터의 장막 내부뿐이었다.
장막 너머, 소리 상쇄 필드의 혜택을 받지 못한 제국 학술 조사단의 구역은 여전히 피와 비명으로 가득 찬 생지옥이었다. 카일의 부하들은 서로의 목을 조르며 파멸해가고 있었고, 오만한 수석 카일 역시 피를 토하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진우는 음차를 쥔 손을 굳게 유지했다. 그의 양 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은빛 가운의 깃을 붉게 물들였다. 눈앞이 흐려지고 극심한 어지럼증이 닥쳐왔지만, 그는 대장들을 향해 낮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명령했다.
“내 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마십시오. 이 무음 장막이 유지되는 시간은 단 30초입니다. 그 안에 회랑의 안전 지대로 진입해야 합니다.”
대장들은 대답 대신 묵묵히 진우의 주위를 철통같이 감싸 안았다. 무력 없는 약골 고고학자가 전개한 작은 침묵의 장벽이, 대륙 최강의 여강자들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패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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