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천재들의 침입
안식의 공간을 흔드는 진동과 함께, 결계막 표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하며 평화롭게 타오르던 모닥불의 불꽃이 기류의 급격한 변화에 휩쓸려 요동쳤다. 간이막사의 단단한 고대 석조 벽면을 타고 내려온 것은 둔탁하고 불길한 파쇄음이었다. 단순한 유적의 자연 붕괴가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화약을 터뜨리고 마법 폭격을 가해 외벽을 무자비하게 뚫고 들어오는 난폭한 진동.
“쳇, 아침부터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흙먼지를 피우는 거야?”
강소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거대 도끼 바르그를 어깨에 멨다. 그녀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적색 오라가 모닥불의 주황빛을 짓누르며 붉게 타올랐다.
엘리시아 역시 조용히 성검 아우렐리아의 손잡이를 쥔 채 진우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녀의 정결한 금발이 진동의 여파로 흔들리는 먼지 속에서 빛났다.
“진우 씨, 내 뒤에 서게. 결계막 외부에서 지상의 마나 파동이 느껴지네. 그것도 아주 오만하고 무분별한 형태의 마력일세.”
진우는 지독한 만성 두통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렌즈의 이중 테두리가 부드럽게 맞물려 돌아가며, 결계막 너머 통로의 에테르 흐름을 시각화했다. 붉은색 파괴의 궤적들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황실의 마력 폭약이군. 유적의 구조적 안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외벽을 부수며 들어오고 있어. 이 속도라면 1분도 안 돼서 이 초소 앞까지 도달할 거다.’
쿠우우웅—!
마침내 간이막사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황금빛 결계막이 거대한 물리적 충격과 함께 크게 찌그러졌다. 그리고 자욱한 흙먼지를 뚫고, 화려한 비단 로브와 제국 군부의 은빛 갑옷을 입은 무리가 오만한 발걸음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무리의 선두에 선 인물을 본 순간, 진우의 차가운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정갈하게 빗어 넘긴 백발에 제국 학술원의 금빛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단 노신사. 진우의 천재적인 고대 유적 해독 논문을 가로채고, 그를 표절범이자 사기꾼으로 몰아 학계에서 매장했던 장본인. 황립 고고학 아카데미의 하인리히 교수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황금빛 자수가 놓인 화려한 푸른 학자 예복을 입고, 턱을 한껏 치켜든 금발의 미청년이 서 있었다. 아카데미의 수석 졸업생이자 하인리히의 새로운 애제자인 카일이었다. 카일은 한쪽 눈에 3서클 연산 안경을 착용한 채, 진우를 발견하자마자 비열한 실소를 터뜨렸다.
“하! 이게 누구십니까? 학회에서 개처럼 쫓겨나 미궁 밑바닥에서 시체로 썩어갈 줄 알았던 오진우 조수 아닙니까? 기어이 살아서 이 신성한 황실 유적을 더럽히고 있었군요.”
카일의 오만한 음성이 좁은 석실 내부를 울렸다. 하인리히 교수 역시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지팡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진우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았다.
“오진우, 네놈이 감히 황실의 발굴 허가서도 없이 무단으로 유적에 침입해 고대 유물을 약탈하려 하다니. 이는 제국법에 의거해 즉각 참수에 처할 중죄다.”
하인리히는 품속에서 황금색 봉인이 찍힌 제국 황실 발굴 허가서를 꺼내 흔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학자로서의 양심 대신, 권력의 비호 아래 남의 성과를 다시 한번 가로채겠다는 탐욕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비열한 태도에 강소희가 당장이라도 도끼로 대가리를 쪼개버릴 기세로 이빨을 갈았다. 하지만 진우는 차분하게 그녀의 어깨를 짚어 제지했다. 완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몸이었지만, 그의 손길에는 대장을 통제하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허가서라…….”
진우는 목소리가 쉰 상태였기에 낮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하인리히 교수님. 제 논문을 훔쳐 만든 가짜 해독서로 유적의 겉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것이 제국 학술원의 수준입니까? 유적의 안정성을 해치는 무분별한 폭격은 유적 전체의 폭주를 부를 뿐입니다.”
“닥쳐라, 무등급 사기꾼 놈이 감히 대륙의 권위자이신 하인리히 교수님의 학식을 논하느냐!”
카일이 앞으로 나서며 진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가리켰다.
“그리고 네 왼쪽 눈에 낀 그 모노클. 그것 역시 아카데미의 자산이었을 터. 제국 황실의 명에 따라 즉각 압수하겠다. 당장 넘겨라.”
하인리히 교수가 눈독을 들인 것은 진우의 앤티크 모노클이었다. 그 신비로운 안경이 유적 해독의 핵심 열쇠임을 직감한 것이다.
그 순간, 자색 안경을 치켜쓰며 윤채원이 차가운 걸음으로 진우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별빛 지팡이 아스트라 끝에서 보랏빛 차원 마법진이 기괴하게 회전하며 강한 마력 압박을 방출했다.
“적색 마탑의 수석인 내가 보증하는 학자에게 손을 대겠다니. 제국 학술원이 언제부터 마탑의 권위를 우습게 볼 만큼 오만해진 거지, 카일?”
윤채원의 오만하고 지적인 목소리가 석실을 압도했다. 마탑의 대장인 그녀가 직접 나서서 진우를 비호하자, 카일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제국 학술원이 아무리 황실의 후원을 받는다 해도, 대륙 최강의 마법 집단인 적색 마탑과의 전면전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채원 수석님…… 어째서 이런 평민 출신의 사기꾼 놈을 비호하시는 겁니까? 이 자는 아카데미에서 표절로 영구 제명된 범죄자입니다!”
카일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자 윤채원은 차가운 실소를 흘렸다.
“표절이라니? 지상의 얄팍한 마법 공식만으로 유적을 뚫을 수 있다고 믿는 너희의 무지함이 더 죄악이 아닌가? 너희가 가져온 그 조작된 사본과 진우 씨의 깊이 있는 고대어 해석력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이미 이 유적의 결계가 증명하고 있다.”
윤채원은 진우가 활성화해 둔 완벽한 정화 결계를 지목했다. 제국 마법사들이 수일 동안 뚫지 못했던 미궁의 장벽을, 진우는 단 하나의 고대 방어석으로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다. 카일은 입술을 깨물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하인리히 교수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진우의 가죽 가방에 매달린 낡은 기록지 일부를 지팡이 끝으로 낚아채듯 빼앗았다. 그것은 진우의 아버지가 남겨준 옛 기록지 사본의 일부였다.
“이따위 엉터리 기록지에 의지해 사기를 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오진우.”
하인리히는 빼앗은 기록지를 진우의 눈앞에서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찢어발겼다. 툭, 툭 하며 찢어진 종이 조각들이 바닥의 붉은 흙더미 위로 흩날렸다.
진우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극도로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배신자들을 향한 냉혹한 카타르시스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찢어버렸군. 상관없다. 어차피 진짜 해독 수식은 내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니까. 그리고 너희가 찢어버린 그 페이지는…….’
진우는 시선을 돌려 통로 너머의 어두운 회랑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1층 미궁의 가장 악명 높은 즉사 구역(Red Zone), ‘속삭임의 회랑’으로 이어지는 입구였다.
“하인리히 교수님. 그리고 카일 씨.”
진우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경고했다.
“그 통로 너머의 비문은 단순한 바람 소리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저 회랑의 소리는 침입자의 영혼 주파수를 뒤트는 저주입니다. 마법을 난사해 강제로 돌파하려 했다간, 유적의 방어 시스템이 폭주해 너희 모두의 고막과 정신을 찢어발길 겁니다.”
그 경고를 들은 카일은 코웃음을 쳤다.
“하하하! 끝까지 사기를 치는구나, 오진우!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평민 약골 놈이 우리의 위대한 3서클 연산 안경과 마법 공식을 무시해? 저 회랑의 바람 소리는 단순한 기압 차에 의한 물리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의 정교한 마법 장벽만으로 저 따위 회랑은 단숨에 돌파해 보이지!”
카일은 자신의 마도서를 치켜들며 제국 마법사들에게 명령했다.
“전원, 마법 장벽을 가동해라! 저 사기꾼 놈의 얄팍한 거짓말이 얼마나 우스운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제국 마법사들이 일제히 지팡이를 치켜들며 푸른색 마법 장벽을 전개했다. 그들의 오만한 기세가 좁은 미궁의 공기를 휘저었다.
진우는 더 이상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방관자의 눈빛으로, 스스로 덫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나방들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카일이 제국 마법사들을 이끌고 거침없이 속삭임의 회랑 내부로 발을 들였다.
그들이 회랑 경계선을 넘어선 바로 그 순간.
웅, 우우우웅—!
회랑 벽면에 거칠게 새겨져 있던 기하학적인 고대 룬 문자들이 기괴한 핏빛 붉은색으로 빛나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궁 전체를 뒤흔드는 고주파의 날카로운 울림이 고막을 찢을 듯 메아리쳐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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