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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동맹과 안식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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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궁—!


머리 위를 짓누르던 육중한 파열음이 마침내 멎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지상으로 통하던 유일한 회귀 통로가 수천 톤의 거대한 낙석들로 완전히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사방을 메운 것은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축축한 마기의 냄새뿐이었다. 저 멀리 미궁의 음습한 복도 너머로, 굶주린 고대 마물들의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메아리쳐 오기 시작했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었군.”


성광 기사단의 대장, 엘리시아 폰 로엔그린이 성검 아우렐리아를 바닥에 짚으며 무겁게 읊조렸다. 그녀의 백은색 판금 갑옷에 묻은 먼지가 바닥의 붉은 물웅덩이로 툭툭 떨어졌다.


광장에 모인 네 세력의 대원들 사이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상과의 연락 두절, 한정된 보급, 그리고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는 마물들. 대장들 역시 극도의 피로와 긴장감으로 인해 날이 서 있었다.


“야, 약골 학도 새끼.”


그때, 붉은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강소희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녀는 진우의 깃덜미를 거칠게 움켜쥐며 들어 올렸다. 야성적인 붉은 눈동자에는 분노와 초조함이 가득 차 있었다.


“네놈이 함정을 멈춘 건 인정해. 하지만 지상으로 가는 길이 막혔잖아! 숨겨진 다른 출구가 어디 있는지 당장 불어. 아니면 이 도끼로 네 머통을 깨부수고 뇌를 직접 파내서라도 알아낼 테니까!”


목덜미를 조여오는 거구의 완력에 진우는 숨이 턱 막혔다. 왼쪽 눈가에서는 아까 ‘패스파인더의 눈’을 무리하게 가동한 대가로 흘러내린 피가 아직 붉게 얼룩져 있었다. 머릿속은 쇠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강소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손 치워요, 강소희 씨.”


진우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지만, 기묘할 정도로 단호했다.


“내 목뼈를 부러뜨리는 건 당신 자유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요. 내가 죽는 순간, 당신들의 그 잘난 오라나 마법은 이 미궁의 함정들을 단 한 개도 해독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당신들의 수습 용병들과 기사단원들 모두가 이 어둠 속에서 굶주린 마물의 밥이 되겠지.”


“이 새끼가 진짜……!”


강소희가 이를 갈며 도끼를 치켜들려 하자, 엘리시아가 신속하게 성검의 칼날로 도끼 자루를 가로막았다.


“그만두게, 강소희! 그의 말이 맞네. 이 유적의 법칙 앞에서는 우리의 검과 방패가 나약할 뿐이라는 것을 방금 전 화살 함정에서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나? 진우 씨의 고고학적 가치는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네. 그를 해치는 자는 성광 기사단 전체의 적대자로 규정하겠네.”


엘리시아의 단호한 중재에 강소희는 쯧, 하고 침을 뱉으며 진우를 바닥으로 툭 던졌다. 진우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흙먼지가 묻은 가죽 코트를 털어내며, 그는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군. 무력만으로는 이 유적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내 지휘권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


“후후, 기사단장님의 고결한 척은 여전하군요.”


윤채원이 자색 안경을 치켜쓰며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지상의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신앙심이 배를 채워주진 않죠. 제안을 하죠, 오진우 씨. 우리 적색 마탑의 비전 결계석으로 안전지대를 만들 테니, 당신은 우리 마탑의 전속 학자로 합류해 해독을 도우세요. 저 무식한 용병들과 위선자 기사들을 버린다면 신변을 확실히 보장해 드리죠.”


윤채원은 손가락 끝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마탑의 결계석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습니다. 이 유적 상층부 ‘눈물의 미궁’에 흐르는 마기는 특수한 역방향 주파수를 띱니다. 지상의 일반적인 마력 결계석을 가동하는 순간, 유적의 마기가 결계를 강제로 오염시키고 폭주시킬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윤채원이 불쾌한 표정으로 결계석에 마력을 주입하려던 찰나였다. 진우의 말대로 결계석 표면에 흐르던 푸른 마력이 순식간에 기괴한 검붉은 마기로 물들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윤채원은 깜짝 놀라 결계석을 바닥으로 내던졌고, 그것은 땅에 닿자마자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부서져 버렸다.


“이, 이럴 수가…… 마탑의 정밀 제련석이 이렇게 허망하게 침식되다니.”


윤채원의 눈동자가 지적 패배감과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 대마법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유적의 법칙. 그 속에서 오직 진우만이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진우는 가방을 고쳐 메며 어둠 속을 지목했다.


“나를 따르십시오. 살아남고 싶다면, 그리고 지상으로 갈 방법을 찾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임시 동맹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거부하겠다면 혼자 어둠 속으로 걸어가셔도 좋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어둠 속에서 은신을 유지하고 있던 일식 암살길드의 대장 서하린이 소리 없이 진우의 그림자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녀는 진우의 흔들림 없는 깊은 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묵묵히 고개를 숙여 복종의 의사를 표시했다.


가장 차갑고 냉혹한 암살자가 먼저 무릎을 꿇자, 남은 대장들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강소희는 툴툴거리며 도끼를 어깨에 멨고, 윤채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엘리시아는 조용히 성검을 칼집에 써넣었다.


“……인도해 주시게, 사령관.”


엘리시아의 선언과 함께, 마침내 네 거대 세력의 임시 동맹이 성립되었다.


***


진우는 에테르 아침반의 미세한 떨림을 앤티크 모노클로 추적하며 일행을 이끌었다. 좁고 음습한 통로를 지나 도달한 곳은, 무너진 석벽 사이에 숨겨져 있던 고대 아키텍트 경비대의 간이 초소 유적이었다.


사방이 단단한 고대 석조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마물의 기습을 막기에 최적의 구조였다.


진우는 초소 중앙의 제단으로 걸어갔다. 제단 내부에는 에테르 전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고대 해체용 펜치’를 꺼내 들었다. 손가락 끝의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제단 하단의 훼손된 마나 회로를 정교하게 우회 연결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정밀 작업으로 관자놀이가 터질 듯한 두통이 덮쳐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침내 마지막 에테르 전선이 딱 소리를 내며 고정되었다.


진우는 품속에서 ‘고대 방어석’을 꺼내 제단 홈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우우우웅—!


순간, 방어석에서 눈부신 은빛 정화 마나가 해일처럼 뿜어져 나왔다. 차갑고 축축하던 초소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따뜻하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초소 입구에는 물리적 침입을 완벽히 차단하는 황금빛의 신성한 결계막이 돔 형태로 전개되었다.


완벽한 ‘안전 구역 (Green Zone)’이자, 최초의 베이스캠프인 ‘안식의 간이막사’가 구축된 순간이었다.


결계 바깥쪽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온 마물들이 황금빛 결계막에 닿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 가 도망쳤다.


“이건…… 완벽한 마력 정화 장막이잖아?”


윤채원이 제단 주위를 서성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지상의 어떤 정화 마법진으로도 이토록 완벽하게 미궁의 마기를 차단할 수는 없어요. 오진우 씨, 당신 대체 이 고대 공학 기술을 어디서 배운 거죠?”


진우는 대답 대신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패스파인더의 눈을 과도하게 사용한 대가로 온몸의 마나가 맥동치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만성적인 불면증과 두통이 겹쳐 그의 안색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대장들은 그가 유적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의 약한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녀들의 마음속에 묘한 죄책감과 모성애 어린 보호 본능이 싹트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초소 구석에 모닥불을 피웠다. 어둡고 위험한 미궁 속에서 따뜻하게 불타오르는 모닥불의 주황빛은 지친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선사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이 차가운 돌벽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진우는 모닥불가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지독한 두통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자 아주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스스슥—.


그때, 가벼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정결한 백은색 갑옷을 입은 엘리시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진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벽안에는 깊은 염려와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진우 씨, 아직 눈가에 피가 흐르고 있네. 가만히 있게나.”


엘리시아가 부드러운 손길로 진우의 뺨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따뜻하고 정결한 성광의 치유 마나가 흘러나와 진우의 왼쪽 눈가를 감쌌다. 찌르는 듯했던 통증이 봄눈 녹듯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엘리시아 씨.”


진우가 힘겹게 눈을 뜨며 속삭였다. 모닥불 빛을 받아 그녀의 투명한 금발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의 완고하고 엄격한 기사단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한 남자의 부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여인의 부드러운 얼굴만이 그곳에 있었다.


엘리시아는 진우의 수수한 얼굴과 앤티크 모노클 너머로 보이는 깊고 지적인 눈빛을 마주하자, 심장이 미세하게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상의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귀족들과는 전혀 다른, 오직 지혜와 다정함만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준 이 약골 학도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가슴팍에서 은빛 펜던트를 풀어 진우의 목에 조심스럽게 걸어주었다.


“이것은 성광 기사단의 초대 단장께서 쓰시던 ‘성광의 펜던트’라네. 치명적인 위해가 가해질 때 착용자를 보호하는 힘이 있지. 비전투원인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일 걸세. 부디…… 몸을 더 아끼게나.”


진우는 목에 걸린 펜던트의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리시아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닥불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소희가 쳇, 하고 이빨을 갰고, 윤채원은 불쾌한 듯 지팡이를 만지작거렸으며, 서하린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작은 간이막사 안, 미세하게 피어나는 묘한 감정의 기류 속에서 유적 탐사의 첫 번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 법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진우는 눈을 떴다. 간이막사의 단단한 석조 바닥을 통해, 유적 외곽으로부터 기분 나쁜 기계적 진동과 굉음이 미세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제국 학술 조사단이 유적의 외곽 방어벽을 강제로 파괴하며 무단 굴착을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안식의 공간을 흔드는 진동과 함께, 결계막 표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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