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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텍트의 영혼, 그리고 정원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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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 늦었다! 대공 전하의 위업이 드디어 완성되는구나! 이 더러운 미궁과 함께 전부 먼지가 되어 사라져라!”


바락의 광기 어린 노성이 통제실을 가득 메운 굉음 사이로 찢어지듯 울려 퍼졌다.


제어반 슬롯에 꽂힌 황금빛 자폭 열쇠가 바락의 손아귀 안에서 기괴한 쇳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어반 내부의 고대 태엽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시뻘건 파멸의 에너지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붉은 섬광이 콘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경고: 유적 1층 자폭 시퀀스 최종 단계 진입]

[남은 시간: 3초]


3초.


그 짧은 찰나가 이 유적에 발을 들인 모든 이들의 생사를 가를 마지막 순간이었다. 천장에서는 집채만 한 석조 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광폭화된 백은색 가디언들의 붉은 안광은 진우의 숨통을 끊어놓기 위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오진우는 제어반 콘솔 위에 양손을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전의 시간 역행으로 인해 심장 맥로는 이미 화상을 입은 듯 뜨겁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목구멍까지 울컥 치밀어 오르는 피비린내를 삼키며, 진우는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극렬하게 회전시켰다. 모노클의 이중 렌즈 너머로 폭주하는 에테르 기류의 기하학적 중심선이 푸른빛 실선으로 매핑되었다.


‘하드웨어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스템 자체를 오버라이드한다.’


진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무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비전투원의 육체였지만, 그의 몸속에는 이 거대한 심연을 설계하고 건설한 초고대 황실, ‘아키텍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진우는 손등에 새겨진 아키텍트의 표식에 강제로 자신의 미세한 마나를 짜내어 주입했다.


화아아악!


그의 손등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이 핏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강렬한 광채를 내뿜으며 폭발하듯 빛났다. 진우는 그 표식이 새겨진 손바닥을 제어반의 마스터 인식기 위에 거칠게 내리찍었다.


동시에, 진우는 성대가 찢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감을 느끼며 입술을 열었다.


이미 성대가 파열되어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함구증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아테나가 전수해 준 고대 아키텍트 지배자 가문의 성조와 발음 체계를 머릿속으로 완벽하게 연산해 냈다. 목구멍 안쪽에서 피가 울컥 솟구쳐 입술 사이로 흘러내렸지만, 진우는 터질 듯한 성대를 쥐어짜며 기적과도 같은 고대의 음성을 토해냈다.


“……!!”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영혼의 주파수를 직접 타격하는 고대 황실의 언어였다. 극도로 정교하고 단호하며, 흔들림 없는 성조가 통제실 전역을 넘어 유적 전체의 벽면에 깊숙이 울려 퍼졌다.


[시스템 리부트(System Reboot). 자폭 시퀀스 영구 파기(Permanent Destruction).]


정확한 발음과 성조가 제어반의 에테르 흐름과 공명하는 순간, 공중에 홀로그램 형태로 떠 있던 붉은색 경보창들이 일제히 정지했다.


기괴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던 황금빛 자폭 열쇠의 회전이 뚝 멈춰 섰다.


바락의 얼굴에서 광기 어린 미소가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무슨……!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다! 마나가…… 제국의 트리거가 방전되고 있어!”


그때, 통제실 허공에서 차가운 은빛 에테르 나비들이 날아오르듯, 반투명한 푸른 여신의 형상을 한 유적의 중앙 AI 아테나의 목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정당한 아키텍트 후계자의 음성을 감지했습니다.]

[관리자 권한: 최우선 오버라이드 승인.]

[자폭 시퀀스를 강제 종료하고, 시스템 리부트 세션을 기동합니다.]


콰아아아앙!


제어반 슬롯에 박혀 있던 제국제 황금빛 열쇠가 푸른 에테르 광풍에 밀려나며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던 제어반의 조명들이 눈부시게 맑은 은빛 장막으로 치환되며 흘러내렸다.


“말도 안 돼! 고작 무력도 없는 약골 학자 조수 놈이…… 어떻게 신의 권능을 잠재운단 말이냐!”


바락이 비명을 지르며 제단을 붙잡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자폭 에너지가 차단되자, 유적의 붕괴 진동이 거짓말처럼 멈추기 시작했다. 오염된 톱니바퀴들이 역회전하며 정화의 은빛 장막이 통제실 내부를 부드럽게 감쌌다. 광폭화되어 기사들과 용병들을 찢어발기려던 백은색 가디언들의 눈빛이 붉은색에서 온순한 푸른색으로 돌아오며, 일제히 진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신전이…… 무너지지 않아?”


성검 아우렐리아를 쥐고 결사적인 방어 대열을 갖추고 있던 엘리시아의 벽안이 경악으로 커졌다.


그 순간, 천장의 균열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져 내린 거대한 석조 기둥이 제단 뒤편을 덮쳤다.


“아악!”


피를 흘리며 도망치려던 타락한 신관 요한이 무너지는 거대한 낙석에 깔려 비명조차 온전히 지르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으아아아! 신의 정화가…… 나의 구원이 이딴 약골 놈의 손끝에 무너지다니!”


요한의 죽음을 목격한 바락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의 신앙이자 광신적인 종말론이 무력 없는 고고학자 한 명의 지혜 앞에 완벽히 분쇄당했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바락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제단 뒤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무저갱—‘심연의 틈’ 아래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그의 검은 로브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광기 어린 저주 섞인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스으으으으…….


마침내 통제실을 뒤흔들던 파멸의 진동이 완벽하게 가라앉았다.


정막이 내려앉은 은빛 공간 속에서, 진우의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 성대를 무리하게 쓴 대가로 눈앞이 핑 돌았고, 심장 맥로의 화상 통증이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사령관님!”


바닥으로 쓰러지려던 진우의 몸을 받아낸 것은 엘리시아였다. 그녀는 자신의 백은색 갑옷이 진우를 다치게 할까 봐 급히 가슴 장갑을 해체하고, 부드러운 품으로 진우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사령관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제 손을 잡으세요!”


엘리시아의 눈물이 진우의 뺨 위로 툭툭 떨어졌다.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진 ‘서약의 반지’가 따뜻한 황금빛으로 공명하며 진우의 극심한 고통을 분산하기 시작했다.


“야! 사령관! 죽으면 가만 안 둔다고 했잖아!”


강소희가 거대 도끼 바르그를 내팽개치고 달려와 진우의 오른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녀의 반지 역시 붉은빛을 발하며 진우의 통증을 나누어 가졌다. 그녀의 털털하던 눈매에는 진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상실 공포와 눈물이 그득했다.


윤채원은 진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지팡이 아스트라의 마력으로 그의 전신을 정밀 스캔했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나 맥로가…… 완전히 타버렸어요. 지상의 마법은 평생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상관없어요. 제가 평생 사령관님의 마법이 되어 드릴 테니까요.”


윤채원의 입가에 기이하고도 집착 어린 미소가 번졌다. 지적으로 완벽하게 조교당한 대마법사의 눈빛은 이제 오직 진우만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서하린은 소리 없이 진우의 그림자 속에서 솟구쳐 올라, 차가운 물수건으로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진우를 해치려던 세상 모든 적을 향한 잔혹한 살기와, 진우를 향한 맹목적인 복종만이 공존하고 있었다.


진우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그녀들의 손을 느슨하게 맞잡으며 눈짓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때, 통제실 중앙 제단 바닥에서 둔중한 기계음이 울렸다.


쿠구구구구—!


정화된 은빛 마나가 바닥으로 수렴되더니, 제단 중앙의 거대한 강철 판들이 좌우로 정교하게 갈라졌다. 그리고 그 틈새로,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거대하고 장엄한 정식 ‘낙하하는 나선 계단’이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1층의 불안정하던 붕괴 통로와는 차원이 다른, 고대 아키텍트들이 정식으로 설계한 아름다운 은빛 대리석 계단이었다.


새롭게 열린 문 너머로,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 생명 마법의 몽환적인 푸른빛이 아련하게 흘러나왔다. 이와 함께 축축하고 달콤한 정원의 꽃향기가 통제실의 피비린내를 지워내며 일행의 코끝을 부드럽게 스쳤.


윤채원이 그 향기를 맡으며 지팡이 끝을 조율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령관님…… 이 아래에서 느껴지는 에테르의 파동은 단순한 식물의 마나가 아니에요. 영혼의 균열과 타버린 마나 맥로를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는…… 초고대 문명의 치유 장치가 정원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 말에 엘리시아와 강소희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그렇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네. 사령관님을 치유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심연의 밑바닥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선두에 서겠네.”


엘리시아가 성검을 치켜들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강소희 역시 도끼를 어깨에 메며 진우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약골 사령관, 이번엔 우리가 널 안전하게 모실 테니까 얌전히 안겨서 구경이나 하라고.”


진우는 그녀들의 따뜻한 수호 의지를 느끼며, 영혼의 지도상에 새롭게 밝혀지는 지하 2층 ‘침몰한 정원’의 경로를 조용히 응시했다.


서로를 죽이려던 대륙 최강의 대장들이, 이제는 오직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하나의 완벽한 가문이자 방패로 뭉쳐 있었다.


진우는 네 대장의 손을 꼭 쥐었다.


열린 정원의 문 너머, 몽환적인 푸른 안개 속에서 그들의 새로운 서사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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