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칼날이 교차하는 미궁
쿠구구구궁—!
육중한 강철 석문이 등 뒤에서 완전히 닫히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지상에서 추격해 오던 하인리히 교수의 사설 경비대원들의 고함 소리는 그 무거운 금속음 너머로 완전히 차단되었다. 사방은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오진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차가운 돌바닥을 적셨고, 왼쪽 눈에 착용한 ‘앤티크 모노클’은 여전히 은은한 황금빛 에테르를 뿜어내고 있었다. 손등에 새겨진 푸른빛의 ‘아키텍트의 표식’이 맥박치듯 뜨겁게 요동쳤다.
“하아, 하아…… 정말 죽을 뻔했군.”
진우는 가죽 가방을 고쳐 매며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는 축축하고 붉은 지하수가 고여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신들의 심연 1층, ‘눈물의 미궁’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바닥에 흐르는 붉은 물은 마치 고대 신들이 흘린 눈물처럼 음산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미궁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아앙—!
미궁 깊은 곳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 여파로 천장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고, 진우의 뺨을 스치는 공기 속에 살벌한 오라와 마나의 파동이 실려 왔다. 일반적인 마물들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대륙 최정상급 강자들이 뿜어내는 파괴적인 투기였다.
‘이 살기는…… 설마?’
진우는 낡은 일지를 품에 꼭 쥐고, 앤티크 모노클의 테두리를 미세하게 돌렸다. 푸른 에테르의 흐름이 복도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저 멀리 넓은 공동에서 격돌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폭풍을 시각화해 보여주었다. 그 크기와 농도는 비전투원인 진우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진우는 숨을 죽이고 은밀하게 복도를 따라 전진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웅장한 석조 원형 광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진우는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성광 기사단의 가식적인 위선자년들! 감히 우리 용병단의 앞길을 가로막아?”
호탕하면서도 야성미가 넘치는 거친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붉은 포니테일 머리를 휘날리며, 탄탄한 구릿빛 피부를 드러낸 미녀가 거대한 검은색 마장 도끼 ‘바르그’를 치켜들고 있었다. 철혈 용병단의 대장, 강소희였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대지를 분쇄할 듯한 적색 오라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법지대의 천박한 도적 떼 주제에 신성한 교국의 사명을 방해하다니. 그 오만한 도끼를 내려놓지 않으면 신의 이름으로 단죄하겠다, 강소희.”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눈부신 금발을 땋아 내린 정결한 기품의 여기사였다. 백은색 판금 갑옷 위로 성스러운 황금빛 오라가 감돌고 있는 그녀는 성광 기사단의 대장, 엘리시아 폰 로엔그린이었다. 그녀가 든 백은색 방패에서는 거대한 신성 장벽이 펼쳐져 강소희의 살기를 완벽히 방어하고 있었다.
두 명의 마스터급 강자가 내뿜는 투기만으로도 광장의 공기가 찢어질 듯 팽팽하게 얼어붙었다. 하지만 갈등은 그 둘뿐이 아니었다.
“후후, 칼과 방패나 들고 설치는 야만인들이 유적의 주인을 논하다니 애처롭기 짝이 없군요. 이 유적의 고대 마법 공학은 오직 우리 적색 마탑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광장 뒤편, 지상에서 반쯤 떠오른 채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색 안경의 미녀가 있었다. 흘러넘치는 마력과 매혹적인 몸매를 지닌 그녀는 적색 마탑의 대장, 윤채원이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별빛 지팡이 ‘아스트라’ 끝에서 보랏빛 차원 왜곡 마법진이 기괴한 연산 수식을 그리며 무섭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윤채원의 바로 등 뒤,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지더니 은빛 단발머리를 흩날리는 가녀린 형상이 소리 없이 솟구쳐 올랐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말이 너무 많아. 어둠 속에서 목이 잘려 나가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지.”
몸에 밀착되는 은신 가죽 슈트를 입은 차가운 미녀, 일식 암살길드의 대장 서하린이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며, 고대 단검 ‘그림자 송곳니’의 날카로운 끝을 윤채원의 가녀린 목덜미에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네 명의 여성 대장들. 서로 원수지간인 거대 세력의 수장들이 이 좁은 미궁 1층에서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었다. 그녀들의 살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미치겠군. 저 괴물들이 여기서 전면전을 벌인다면…….’
진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들의 충격파 한 번이면 비전투원인 자신은 흔적도 없이 찢겨 나갈 터였다. 게다가 아버님의 일지에 따르면, 이 구역은 평범한 석실이 아니었다.
진우는 급히 앤티크 모노클을 통해 광장의 바닥과 기둥을 분석했다. 모노클의 렌즈가 빠르게 회전하며, 바닥에 흐르는 붉은 물속에 숨겨진 기하학적 마법 회로를 붉은색 경고선으로 투영해 보여주었다.
[위험: 고대 방어 시스템 ‘피의 침묵’ 가동 대기 상태]
[트리거: 제단 반경 50미터 이내에서의 고농도 마나 충돌 및 유혈 사태]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저 바닥은 거대한 압력 트리거 장치다. 저기서 오라와 마법을 부딪쳤다간 유적 전체가 우리를 침입자로 규정하고 즉사 트랩을 가동할 거야!’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강소희가 바르그를 고쳐 잡으며 대지를 들이받을 기세로 도약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기사단년들부터 가루로 만들어 주마! 철혈 광폭참(鐵血狂暴斬)—!”
“신성 단죄참(神聖斷罪斬)—! 성광의 이름으로 사악한 무리를 멸하리라!”
엘리시아 역시 성검 아우렐리아를 치켜세우며 황금빛 오라를 폭발시켰다. 붉은색과 황금빛의 거대한 오라 폭풍이 광장 중앙에서 정면으로 격돌하려 했다.
진우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바위 뒤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모두 멈춰요! 무기를 거두지 않으면 우리 전부 여기서 몰살당합니다!”
그러나 거친 전장의 폭풍 속에서 평민 학도의 가녀린 목소리는 너무나 나약했다. 강소희가 휘두른 도끼바람의 미세한 여파가 진우를 덮쳤다.
“크윽!”
단지 스쳐 지나가는 도끼바람이었음에도, 비전투원인 진우의 몸은 허공을 날아 거친 돌바닥 위로 나자빠졌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태현이 빌려준 가죽 가방의 끈이 끊어졌고, 바닥의 날카로운 돌날에 쓸린 그의 손등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아앗……!”
진우는 고통에 신음하며 손등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고통보다 더 큰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그의 피 한 방울이 바닥에 고인 붉은 물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광장 전체를 지탱하던 석조 기둥의 문양들이 불길한 핏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우우웅—!
기괴한 진동음과 함께 미궁의 마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윤채원의 마법진이 뒤틀렸고, 서하린의 그림자 동화가 강제로 해제되었다. 엘리시아와 강소희 역시 자신들의 오라가 유적의 거대한 중력에 짓눌려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느끼고 멈칫했다.
“이, 이 마나의 흐름은 뭐지? 내 차원 수식이 강제로 왜곡되고 있어!”
윤채원이 당황한 목소리로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네 대장의 시선이 일제히 광장 구석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약한 청년, 오진우에게로 향했다.
진우는 앤티크 모노클을 고쳐 쓰며, 손등에 선명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아키텍트의 표식’을 보란 듯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광장의 기둥에 새겨진 고대 문자들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외쳤다.
“기둥에 새겨진 문양을 봐요! [피를 흘리는 자, 심연의 분노를 마주하리라. 제단 위에서 피를 흘리면 미궁은 영원히 폐쇄된다.] 당신들이 흘린 투기와 살기가 이 유적의 ‘피의 침묵’ 법칙을 깨웠습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무력을 부딪쳤다간, 천장이 통째로 내려앉아 우리 모두 이 미궁의 썩은 거름이 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비록 가늘었으나, 유적의 법칙을 완벽히 꿰뚫고 있는 지적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륙 최강이라 오만하던 네 명의 여성 대장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약해 보이는 고고학자의 손끝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우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광장 바닥 전체가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붉은빛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석문 너머 미궁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수호 가디언들의 불길한 구동음이 메아리쳐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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