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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도의 수장과 붕괴의 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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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찢어질 듯한 격통과 함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진우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시야가 온통 뿌연 흙먼지와 붉은 마기의 잔상으로 흐려져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울컥 솟구쳤다. 시간을 3초 되돌린 대가, ‘크로노스 회중시계’의 인과율 반동이 그의 나약한 육체를 사정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사령관님……! 정신이 드십니까?”


귀를 울리는 것은 절박하게 떨리는 엘리시아의 목소리였다.


진우는 자신이 그녀의 정결한 백은색 판금 갑옷 위에 기대어 있음을 깨달았다. 엘리시아는 성검 아우렐리아를 바닥에 내팽개친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진우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은 흙먼지로 더러워져 있었고, 벽안에서는 눈물이 고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옆을 돌아보자, 강소희가 거대 도끼 바르그를 바닥에 거칠게 내리찍은 채 진우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야성적인 구릿빛 피부 위로 핏줄이 불거져 있었고, 붉은 포니테일 머리칼 아래로 이성을 잃은 듯한 살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야, 사령관……! 똑바로 눈뜨라고! 죽지 마, 제발 장난치지 마!”


화아아아악—!


그녀들의 손가락에 끼워진 ‘서약의 반지 (프로토타입)’의 붉은 보석이 핏빛으로 강렬하게 폭주하며 공명하고 있었다.


[유적 법칙: 생명 공유 서약 규칙 (Life-Sharing Covenant Rule) 작동 중]

[사령관 오진우가 입은 심각한 내상의 고통 50%가 서약의 반지를 통해 대장들의 영혼으로 분산 전달됩니다.]


진우는 그녀들의 얼굴이 왜 그토록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는지 이해했다.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인과율의 역조 격통이 반지를 통해 그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무력도 없는 약골 사령관이 또다시 영혼을 깎아 기적을 행했다는 처절한 죄책감. 그리고 그 고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느끼는 절박함이 그녀들의 얀데레적인 독점욕과 수호 본능을 광기 어린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윤채원은 지팡이 아스트라를 쥔 손에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며, 자색 안경 너머로 잔혹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서하린은 이미 소리 없이 진우의 그림자 위를 완전히 덮으며, 주변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한 무음의 살의를 사방으로 방출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그때, 그들의 안식처였던 ‘에테르 회로 통제실’ 전체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고대의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리며 쇳소리를 냈고, 천장에서는 주먹만 한 돌가루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때가 왔다! 위대한 심연의 정화가 시작되리라!”


통제실 중앙 제단 위에서 광기 어린 노성이 터져 나왔다.


진우는 고개를 돌렸다. 앤티크 모노클 너머로 투박한 검은 로브를 온몸에 휘감은 사내의 형상이 비쳤다. ‘심연의 광신도 집단’의 수장, 바락이었다. 그 옆에는 오염된 신관 의복을 걸치고 해골 성수병을 든 타락한 신관 요한이 기괴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바락…… 요한……!”


엘리시아가 이빨을 갈며 진우를 품에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성검 아우렐리아를 쥐고 일어서는 순간, 전신에서 황금빛 성광 오라가 무섭게 타올랐다.


“감히 사령관님을 해치고 유적을 폭주시키려 하다니, 신성 교국의 이름 아래 너희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단죄하겠다!”


“흐흐흐, 늦었다, 어리석은 수호자의 후예들이여! 우리는 이미 제단의 ‘피의 침묵 법칙’을 완전히 깨뜨렸다!”


바락이 제단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붉은 피가 가득 고여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제단 위에서 자신들의 피를 흘려 유적의 고대 수호수들을 광폭화시키는 금기를 고의로 저지른 것이다.


쿠우우웅—!


통제실 양옆의 석조 벽면이 열리며, 잠들어 있던 백은색 고대 수호 골렘들이 깨어났다. 하지만 평소의 온순한 푸른 안광이 아니었다. 피의 냄새를 맡고 완전히 광폭화된 기계 파수꾼들의 눈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적아 구별 프로그래밍이 완전히 파괴된 채 일행을 향해 무차별적인 살기를 뿜어냈다.


동시에 바락의 손에 쥔 황금빛 태엽 열쇠가 빛났다.


진우의 왼쪽 눈에 착용한 ‘앤티크 모노클’의 이중 렌즈가 급격히 회전하며 경고 창을 띄웠다.


[적대 유물 분석 완료]

[아이템명: 제국제 강제 폭주 트리거 (Imperial Self-Destruct Key)]

[출처: 제국 대공 프레데릭 폰 아델하이트 제공]

[설명: 유적 1층의 에테르 회로를 강제로 역류시켜 1층 전체를 지하 2층으로 완전히 붕괴시키는 파멸의 열쇠.]


‘대공 프레데릭…… 역시 그자가 배후였나.’


진우는 이빨을 악물었다. 바락이 저 열쇠를 제어반 슬롯에 꽂아 돌리는 순간, 자폭 시퀀스가 완전히 맞물려 1층 전체가 지하 2층 ‘침몰한 정원’으로 쏟아져 내릴 터였다. 그렇게 되면 베이스캠프의 대원들은 물론이고 자신들 모두가 수천 톤의 석조물에 깔려 즉사할 것이었다.


진우는 성대 파열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울컥 솟구쳤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제단 중앙의 마스터 콘솔을 가리켰다. 그리고 대장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를 저 제어반 앞으로 인도해라. 저 열쇠가 돌아가기 전에 막아야 한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네 명의 대장들은 진우의 눈빛만으로 그의 의도를 완벽히 읽어냈다.


“사령관님의 뜻이다.”


서하린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그림자 송곳니 단검을 고쳐 쥐며 속삭였다.


“방해하는 것들은…… 전부 찢어발긴다.”


“공세 개시!”


강소희가 포효하며 거대 도끼 바르그를 치켜들고 앞으로 돌격했다. 전신에서 방출되는 적색 오라가 폭풍처럼 회오리치며 통제실 바닥을 산산조각 냈다.


쿠우우웅—!


광폭화된 거대 수호 골렘 두 마리가 강소희를 향해 거대한 석조 주먹을 내리찍었다. 그 무시무시한 물리적 질량감 앞에 일반적인 용병들이라면 뼈도 추리지 못했겠지만, 지금의 강소희는 진우를 다치게 한 적들을 향한 광기 어린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비켜, 이 고철 덩어리들아—!”


강소희의 도끼날이 적색 오라와 함께 대각선으로 그어졌다. 동시에 엘리시아가 그녀의 옆으로 도약하며 성검 아우렐리아를 치켜들었다.


“성광의 단죄참 (Holy Judgment)—!”


콰아아아앙—!


두 마스터급 강자의 합격기가 폭발했다. 정결한 황금빛 신성력과 야성적인 적색 오라가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빛의 폭풍을 형성했다. 광폭화된 골렘들의 거대한 석조 팔이 일격에 단번에 으스러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무력의 정점에 선 두 대장이 길을 터트리는 사이, 윤채원이 앞으로 나섰다.


“바락, 감히 그 더러운 손으로 제어반을 만지려 드는가!”


윤채원이 지팡이 아스트라를 제단 방향으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마법 시전: 차원 봉쇄 결계 (Dimensional Seal Boundary)]


웅—!


바락이 서 있는 제단 주변의 공간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푸른색 기하학적 수식 장벽이 그를 옭아맸다. 물리적인 속박이 아닌 시공간의 왜곡이었다. 바락이 황금 열쇠를 제어반 슬롯에 꽂아 넣으려던 손길이, 차원의 인력에 밀려 정확히 0.1초 지연되었다.


“으윽……! 이 교활한 마법사년이!”


바락이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려 하자, 그 옆에 서 있던 타락한 신관 요한이 자신의 품속에서 또 다른 암흑 성수 병을 꺼내 들었다.


“방해하게 두지 않는다! 심연의 마기여, 더 폭주하라!”


요한이 성수 병을 바닥에 내던지려던 찰나였다.


슈아악—!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은빛 궤적이 일섬했다. 서하린의 저격 단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요한의 손목을 정확히 스쳐 지나갔다.


쨍그랑—!


요한의 손에 쥐여 있던 해골 모양의 암흑 성수 병이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며 파편과 함께 오염된 액체가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성수가 제단에 직접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기화하자, 요한은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내, 내 성수가……! 어떤 쥐새끼냐!”


“닥쳐라, 배신자여.”


어둠 속에서 반쯤 모습을 드러낸 서하린의 붉은 눈동자가 요한의 목덜미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 사이, 진우는 무너져 내리는 통제실 바닥을 딛고 필사적으로 제단을 향해 달렸다. 다리가 꺾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의 곁에는 든든한 가신들이 있었다.


완전 방전 상태에서 자가 복구 기능으로 간신히 최소 동력을 확보한 거대 골렘 골리앗이 진우의 발밑을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 몸을 웅크렸다.


진우는 골리앗의 거대한 석조 어깨를 밟고 공중으로 힘껏 도약했다.


타앗—!


공중을 가르는 그의 방검 가죽 코트 자락 너머로, 천장에서 무너져 내린 거대한 석조 보가 굉음을 내며 그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덮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흔적도 없이 으스러졌을 찰나의 타이밍이었다.


쿵—!


진우는 굴러 떨어지듯 제단 중앙 마스터 콘솔 바로 앞에 착지했다. 차가운 금속 제어반의 촉감이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아키텍트의 표식’이 제어반의 에테르 흐름과 공명하며 푸른빛으로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방해다! 방해야!”


차원 결계를 억지로 찢고 나온 바락이 광소하며 황금빛 자폭 열쇠를 제어반의 마지막 슬롯에 완전히 밀어 넣었다. 철컥, 하고 기어들이 무섭게 맞물리는 불길한 마찰음이 통제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경고: 유적 1층 자폭 시퀀스 최종 단계 진입]

[남은 시간: 5초]


제어판 주변에서 검붉은 파멸의 에너지가 폭사하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락의 손가락이 열쇠를 잡고 시계 방향으로 돌리려 힘을 주는 그 순간.


진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가슴의 통증을 억눌렀다. 그의 목구멍에서 피가 섞인 기침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앤티크 모노클 너머로 바락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찢어진 성대를 억지로 쥐어짜 올렸다.


‘아키텍트 음성 명령법 (Architect Voice Command)’을 가동할 비장한 준비가 그의 입술 끝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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