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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의 인과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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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뜬 몸이 아래로 사정없이 잡아당겨졌다.


오라가 서린 발트 기사의 강철 쇠사슬은 무자비했다. 추락하는 발트 기사의 수십 톤에 달하는 낙하 하중이 쇠사슬을 타고 고스란히 오진우의 오른쪽 발목으로 전달되었다. 콰직, 하고 가죽 장화가 짓눌리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뼈가 어긋나는 듯한 격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성대 파열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는 진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오직 바람을 헐떡이는 가쁜 숨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사방의 중력이 상실되고, 심연의 무저갱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청색 마기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거칠게 사방으로 흩날렸다.


“사령관님—!”


엘리시아의 절박한 비명이 절벽 끝자락에서 메아리쳤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손가락 끝은 허공에 남은 잔상만을 스칠 뿐이었다. 강소희 역시 이빨을 악물며 절벽 끝으로 몸을 던지듯 달려왔으나, 쇠사슬의 낙하 속도는 마스터급 강자들의 신체 반응 속도마저 아슬아슬하게 추월하고 있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즉사였다.


추락하는 그 찰나의 순간, 진우의 머릿속은 기묘할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비전투원인 그에게는 이 상황을 모면할 오라도, 마법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겨준 최후의 보명 유물이 있었다.


진우는 허공에서 요동치는 신체를 억누르며, 방검 가죽 코트 안쪽 주머니로 오른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은빛의 낡고 묵직한 금속체였다.


‘크로노스 회중시계.’


진우는 필사적으로 시계의 상단 태엽 버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심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미세한 아키텍트의 마나를 억지로 끌어올려 시계 내부의 톱니바퀴로 주입했다.


‘돌아가라.’


째깍—!


유적 전체의 공간을 뒤흔드는 날카롭고 무거운 금속음이 진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주인공 고유 능력: 시간 역행 (Time Rewind) 활성화]

[경고: 하루 단 1회만 가동 가능하며, 시전 시 심장에 극심한 과부하가 발생합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귓가를 찢을 듯이 불어대던 무저갱의 마기 바람 소리가 기괴하게 늘어지며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떨어져 내리던 돌가루와 먼지 장막이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솟구쳤다. 쪼개지며 무너지던 외나무다리의 석조 파편들이 은빛 모래시계의 왜곡과 함께 다시 맞춰지며 위로 올라갔다.


진우의 몸을 감싸고 아래로 당기던 쇠사슬 역시 뒤로 스르륵 풀려나갔다. 시공간이 은빛으로 뒤틀리는 기묘한 감각 속에서, 진우의 신체는 정확히 ‘3초 전’의 과거로 강제로 역행했다.


툭.


진우의 두 발이 다시 차가운 절벽 끝자락의 돌바닥을 밟았다. 다리가 무너지기 직전, 발트 기사가 쇠사슬을 던지기 바로 3초 전의 시간 선이었다.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찰나, 진우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유적 법칙: 인과율의 역조 규칙 (Law of Causal Backflow) 적용]

[경고: 되돌아간 시간 선 안에서 이전과 동일한 행동을 반복할 경우, 인과의 왜곡으로 인해 함정의 파괴력이 2배로 강화됩니다.]


‘동일한 자리에 서서 다리 난간을 잡거나 버티려 해선 안 된다.’


진우는 즉각 판단을 내렸다. 만약 그가 이전 시간 선에서처럼 다리의 붕괴를 감상하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다면, 발트 기사의 쇠사슬은 인과율의 보정에 의해 2배 빠른 속도로 날아와 그의 발목을 아예 끊어버릴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행동 경로를 택해야만 했다.


진우는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거칠게 회전시켰다.


[고유 능력: 패스파인더의 눈 (Pathfinder's Sight) 동조]


진우의 시야 속에서, 3초 뒤 발트 기사가 던질 쇠사슬의 궤적이 붉은색 실선으로 투영되었다. 그 붉은 선은 정확히 진우가 지금 딛고 서 있는 오른쪽 발목을 조준하고 있었다.


시간은 단 1초도 남지 않았다. 발트 기사가 다리 중앙에서 최후의 오라를 끌어올리며 쇠사슬을 뒤로 젖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왼쪽 바닥으로 날렸다. 비전투원의 나약한 몸뚱이였기에 우아한 회피는 불가능했다. 그는 차가운 돌바닥 위를 사정없이 구르며 자신의 이전 위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동시에 진우는 고개를 들어 그의 그림자 곁을 맹렬히 스쳐 지나가려던 은발의 암살자, 서하린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함구증 상태였지만, 그의 눈빛과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하린, 10시 방향! 날아오는 사슬의 세 번째 고리를 끊어라!’


서하린의 차가운 붉은 눈동자가 진우의 손짓과 허공의 붉은 궤적을 동시에 담아냈다. 그녀는 진우가 왜 갑자기 바닥을 굴렀는지 묻지 않았다. 사령관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만이 그녀의 신체를 기계처럼 움직였다.


슈아아아악—!


예측된 시간 선 그대로, 발트 기사의 쇠사슬이 공기를 찢으며 진우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향해 뱀처럼 날아들었다.


하지만 진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사슬이 허공을 가르는 찰나, 그림자 속에서 솟구친 서하린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녀의 손에 쥔 고대 단검 ‘그림자 송곳니’가 은빛 궤적을 그리며 대각선으로 그어졌다.


깡—!


정교하게 연산된 사슬의 약한 고리—진우의 모노클이 붉은색 점으로 짚어냈던 바로 그 이음새에 서하린의 단검이 정확히 내리꽂혔다. 오라가 실린 단검의 예리한 일격에, 발트 기사의 쇠사슬은 맥없이 두 동강 나며 튕겨 나갔다.


“무, 무슨……! 어떻게 피한 것이냐!”


추락하던 발트 기사의 얼굴이 경악과 절망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완벽한 동귀어진 기습이 날아오는 궤적마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피해낸 약골 고고학자의 지혜 앞에, 그는 완전히 패배했음을 깨달았다.


“오진우우우우—!”


발트 기사의 마지막 비명은 청색 마기가 요동치는 무저갱의 깊은 심연 속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쿵, 하는 둔중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아득한 어둠이 그의 존재를 영원히 집어삼켰다.


제국의 정예 중장갑 부대는 그렇게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완벽하게 소멸했다. 오직 유적의 하중 법칙과 3초의 시간 인과율만을 비틀어 거둔 완벽한 지략의 승리였다.


그러나 기적이 끝난 직후, 가혹한 대가가 진우의 신체를 덮쳤다.


두근—!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시간을 인위적으로 뒤틀어버린 인과율의 반동이 그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뜨거운 인두로 심장을 직접 지지는 듯한 극심한 과부하 통증에, 진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쥐어짜야 했다.


“우욱……!”


갈라진 목구멍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검붉은 피가 그의 입술 사이로 울컥 쏟아져 내렸다. 차가운 돌바닥 위로 붉은 혈흔이 번지며 진우의 시야가 급격하게 흐려졌다. 전신이 빈혈로 인해 차갑게 식어갔다.


그 순간, 제단 주변의 공기가 기괴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엘리시아, 강소희, 서하린, 윤채원. 네 대장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서약의 반지 (프로토타입)’의 붉은 보석이 일제히 피처럼 붉고 짙은 빛을 뿜어냈다.


“으윽……!”


네 명의 대장들이 동시에 신음하며 자신들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유적 법칙: 생명 공유 서약 규칙 (Life-Sharing Covenant Rule) 발동]

[사령관 오진우가 입은 심각한 내상의 고통 50%가 서약의 반지를 통해 대장들의 영혼으로 분산 전달됩니다.]


그녀들의 가슴속으로 진우가 느끼고 있는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극심한 피로의 파동이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통증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대륙 최강의 강자이면서도, 무력 하나 없는 약골 사령관에게 다시 한번 목숨을 빚졌다는 처절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곧, 자신들의 사령관을 다치게 만든 세상의 모든 적을 향한 광기 어린 분노로 변모했다.


“사령관님—!”


엘리시아가 성검 아우렐리아를 내팽개치듯 바닥에 던져두고 진우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의 정결한 눈동자는 이미 눈물과 함께 이성이 반쯤 날아간 상태였다. 그녀는 진우의 차가운 몸을 품에 안으며, 그의 입가에 묻은 피를 자신의 하얀 손가락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제발……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제가 더 빨랐어야 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방패가 되어 드리지 못해…… 당신이 또 이런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습니다!”


강소희 역시 거대 도끼 바르그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진우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색 오라가 분노로 인해 기괴하게 요동치며 주변의 낙석들을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야…… 약골 사령관…… 눈 떠봐! 장난치지 마! 내 오라를 가져가서라도 살란 말이야! 감히 어떤 새끼가 널 이렇게 만든 거야? 제국 놈들…… 그 대공이라는 새끼의 목을 내 손으로 직접 찢어버리겠어!”


그녀들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의 붉은 보석은 이제 핏빛을 넘어 검붉은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 진우를 다치게 한 세상의 불합리한 질서와 제국 전체를 멸해버리겠다는 맹목적인 보호 본능과 얀데레적인 독점욕이, 네 대장의 눈빛 속에서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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