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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의 안식과 현자의 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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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신전이 정화되며 뿜어져 나온 은빛 에테르 성수는 사방을 몽환적인 수증기로 가득 채웠다. 핏빛으로 물들어 있던 제단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그곳에는 투명하고 따뜻한 온천수가 끊임없이 솟구쳐 흐르는 ‘에테르 분수 광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궁의 음산한 냄새 대신 은은한 고대 꽃향기가 수증기를 타고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진우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벨리알의 대마법을 억지로 비틀어 역류시킨 대가는 가혹했다. 그의 가느다란 마나 맥로는 마치 뜨거운 인두로 지져진 듯한 극심한 화상 통증을 내뿜고 있었고, 무리하게 고대 코드를 외치느라 성대는 완전히 파열되어 신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완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F급 고고학자에게 유적의 권능을 조작하는 것은 영혼의 수명을 깎아 먹는 일과 같았다.


진우는 서하린의 부드러운 품에 안긴 채 비틀거렸다. 그의 눈가와 귀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서하린의 은빛 단발머리와 뺨에 묻어났다. 서하린은 평소의 냉혹한 살수다운 무표정을 잃어버린 채, 극도의 안타까움과 떨리는 눈빛으로 진우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바로 그때, 정화된 분수 광장의 입구 너머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들과 용병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쥐고 경계 태세를 취했으나, 안개 속에서 나타난 얼굴들을 보고 이내 무기를 내렸다.


“아이고, 사령관님! 몸이 이 지경이 되시다니!”


무법지대에서 진우의 지혜를 믿고 자원해 동행했던 캠프 요리사 피에르와, 싹싹한 가사 도우미 메이드 마리가 부서진 석실 틈새를 뚫고 마침내 이곳에 도달한 것이었다. 마리는 광장의 따뜻한 온천수를 보자마자 얼른 깨끗한 타월과 대원들의 여벌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피에르는 진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사색이 되어 냄비를 꺼내 들었다.


“사령관님의 타버린 마나 맥로를 치유하려면 당장 이 정화된 물과 비약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주 특별한 수프를 끓여 올 테니, 대장님들은 사령관님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십시오!”


피에르는 분수대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붉은 눈물수’를 가득 담아 올렸다. 그리고 진우가 예전에 카론에게서 얻어 가방 깊숙이 보관해 두었던 단 한 방울의 ‘마력 정수 엘릭서’를 떨어트렸다. 영혼의 균열까지 메워준다는 신화적인 치유 비약이 은빛 성수와 만나자, 냄비 안에서 황금빛 서리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했다.


피에르가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진우는 분수대 옆 아늑한 바위 틈새에 눕혀졌다. 그가 입고 있는 방검 가죽 코트 깃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성대 파열로 인해 말을 할 수 없는 진우는 그저 눈짓으로 고마움을 전하려 했으나, 대장들의 눈빛은 이미 심상치 않게 타오르고 있었다. 진우를 향한 깊은 죄책감과 맹목적인 보호 본능,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은밀하고도 살벌한 질투심이 온천의 수증기 속에서 팽팽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사령관님, 성광의 온기가 몸을 녹여줄 것입니다. 제 무릎에 편히 누우십시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성광 기사단의 엘리시아였다. 그녀는 기품 있는 백은색 판금 갑옷의 하부 장갑을 소리 없이 해체하더니, 정결하고 부드러운 허벅지를 진우의 머리 밑으로 밀어 넣었다. 완벽한 무릎베개였다. 엘리시아는 진우의 가슴팍에 정결한 두 손을 얹고 따뜻한 성광 마법을 미세하게 흘려보내며 그의 화상 통증을 달랬다.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성기사보다도 단호했다.


그 모습을 본 철혈 용병단의 강소희가 이마에 힘줄을 돋우며 거칠게 다가왔다.


“야, 위선자 기사단장! 환자한테 갑옷 냄새 풍기지 말고 비켜! 사령관님, 용병단에서 쓰는 최고급 야수 가죽 담요입니다. 이걸 덮으셔야 체온이 유지됩니다.”


강소희는 엘리시아를 밀치듯 다가와 푹신하고 따뜻한 가죽 담요로 진우의 몸을 꼼꼼하게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진우가 입고 있는 방검 가죽 코트의 깃을 손수 여며주며, 그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자신의 소매로 거칠게 닦아주었다. 얼굴을 붉히며 툴툴대는 전형적인 츤데레의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손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사령관님, 체력을 회복하려면 용병단식 마나 회복 독주가 직빵입니다. 자, 이거 한 모금 마셔보세요!”


강소희가 허리춤에서 독주 병을 꺼내 진우의 입가에 대려 하자, 엘리시아가 성검 아우렐리아의 칼끝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쳐냈다.


“그만두게, 강소희! 사령관님의 성대는 지금 완전히 파열되어 침묵의 법칙 아래 있네! 그런 독한 술을 환자에게 먹이려 하다니, 죽일 셈인가? 내 용납할 수 없네!”


“뭐라? 이게 진짜 싸우자는 건가!”


두 대장이 으르렁거리는 사이, 그림자 속에서 은빛 단발머리의 서하린이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두 대장의 유치한 싸움을 완전히 무시한 채, 마리가 온천수에 적셔온 따뜻하고 깨끗한 물수건을 진우의 이마에 얹어주었다. 서하린은 진우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령관님…… 하린이가 곁에 있습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서하린의 붉은 눈동자에는 진우를 향한 맹목적인 안도감과 복종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진우의 가녀린 손을 꼭 쥔 채, 그의 체온을 느끼며 뺨을 살짝 붉혔다.


그때, 보랏빛 지팡이 아스트라를 쥔 적색 마탑의 윤채원이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자색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눈빛에는 지적 경외감을 넘어선 광기 어린 집착이 가득 차 있었다. 윤채원은 마탑 비전의 정신 안정 약초 향을 모닥불가에 피우며, 진우의 반대쪽 손을 가볍게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어머, 다들 환자를 간호할 줄 모르는군요. 사령관님의 타버린 맥로를 안정시키려면 마학적인 기류 정화가 우선이랍니다. 사령관님…… 당신의 그 초공학적 지혜는 정말 위대해요. 이제 제 마탑의 수식과 당신의 고대어 지식을 하나로 합쳐야 해요. 당신은 평생 제 연구실에서 저만을 위해 해독해 주셔야 한답니다, 후후.”


윤채원은 진우의 손가락을 하나씩 매만지며 소름 끼치도록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우는 그녀들의 팽팽한 애정 공방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향한 그녀들의 깊은 염려와 헌신을 느끼며 온화하게 눈을 감았다. 누구 하나를 편애하기보다, 그는 소리 없이 그녀들의 손길을 모두 수용하며 정서적 균형을 조율했다.


그때, 피에르가 황금빛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완성되었습니다! 붉은 눈물수와 마력 정수 엘릭서를 베이스로 한 ‘현자의 수프’입니다!”


수프의 뚜껑이 열리자, 신전 전체에 온화하고 성스러운 마나 향기가 가득 찼다. 엘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진우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고, 윤채원은 수프 그릇을 받아 직접 스푼으로 진우의 입가에 흘려보내 주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진우는 전신을 관통하는 따뜻한 치유의 에너지를 느꼈다. 타버린 듯 아프던 심장 마나 맥로의 통증이 부드럽게 가라앉았고, 뇌 세포를 지지던 만성 두통이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피로가 완벽히 회복되며 그의 뺨에 생기가 돌아왔다. 대장들은 진우의 안색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안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아아아악—!


갑자기 베이스캠프 입구 쪽에서 쇠붙이가 긁히는 듯한 날카롭고 기괴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진우가 마나 코어를 재조정하여 베이스캠프의 경비견으로 개조해 둔 석상 몬스터 ‘가고’의 경보 울음소리였다.


철컥, 철컥, 철컥.


가고의 경보음 뒤로, 수십 명의 중장갑 기사들이 무거운 철퇴를 돌바닥에 끌며 걸어오는 기분 나쁜 쳇소리와 압도적인 마나의 진동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메아리쳐 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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