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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구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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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 ‘침몰한 정원’의 공기는 썩은 이끼와 축축한 흙먼지로 가득했다. 사방을 가로막은 거대한 석벽의 균열 사이로 보랏빛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진우는 쓰린 목을 부여잡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자멸 시퀀스를 멈추느라 성대가 찢어져 피가 고인 탓에, 입을 열어도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왼쪽 눈에 걸친 앤티크 모노클 너머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진우는 옆에 서 있던 성광 기사단장 엘리시아의 갑옷 소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좁은 석벽 틈새 너머를 가리켰다.


“사령관……? 설마 저 어둠 속에 누군가 있다는 건가요?”


엘리시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우의 창백한 얼굴을 살폈다. 진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왼쪽 눈가에는 능력을 무리하게 사용해 흘러내린 붉은 핏자국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 처절한 모습을 본 철혈 용병단장 강소희가 주먹을 불끈 쥐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말도 못 하는 몸으로 그렇게 눈빛을 보내면, 우리가 어떻게 모른 척하겠어? 비켜봐, 내가 저 벽을 바르그로 박살 내버릴 테니까!”


강소희가 거대 도끼 바르그를 치켜들며 적색 오라를 뿜으려 하자, 진우는 다급하게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완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손길이었지만, 강소희는 거짓말처럼 오라를 거두고 툴툴거리며 도끼를 내렸다. 진우는 바닥의 흙 위에 손가락으로 거칠게 글씨를 썼.


[무력 파괴 금지. 진동이 울리면 천장의 낙석이 2차 붕괴한다. 우회로를 찾는다.]


“역시 사령관의 판단이 옳아요. 소희, 당신은 그 무식한 힘 좀 그만 쓰세요.”


적색 마탑주 윤채원이 지적인 자색 안경을 치켜쓰며 진우의 곁으로 밀착했다. 그녀는 진우의 어깨에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은밀히 밀착시키며 뺨을 붉혔다.


“당신이 가리킨 곳의 에테르 흐름을 제가 분석해 보겠어요. 하지만 당신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부디 무리하지 마세요.”


진우는 품속에서 은빛 금속 테두리가 둘러진 고대 보구, ‘에테르 아침반’을 꺼내 들었다. 중심의 푸른 보석에 손가락 끝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아침반의 바늘이 거칠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아침반에서 방출된 푸른 에테르 에너지가 공중에 거대한 3D 홀로그램 지도를 전개했다. 사방 50미터 이내의 보이지 않는 미궁 구조와 함께, 바닥에 숨겨진 즉사급 가시 발판과 화살 트랩들의 가동 범위가 붉은색 선과 점으로 시각화되어 공중에 떠올랐다.


진우는 앤티크 모노클의 이중 렌즈를 조율해 붉은 위험 선들을 피해 가는 안전한 우회 경로를 찾아냈다. 그리고 대장들을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나를 따라와라.’


말 한마디 없었지만, 네 명의 대장들은 이미 진우의 손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아침반이 제시하는 좁은 바위 틈새와 무너진 기둥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강소희와 엘리시아가 그의 양옆을 철통같이 호위했고, 서하린은 소리 없이 진우의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주위를 경계했다.


약 10분을 걸어 들어갔을 때, 일행의 눈앞에 보랏빛 마기로 뒤덮인 거대한 강철 문이 나타났다. 과거 고대 경비대의 지하 임시 감옥이자, 현재는 기사단 임시 감옥으로 불리는 ‘강철 석실’의 입구였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요!”


윤채원이 귀를 기울이며 소리쳤다.


철문 너머에서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흩어졌던 부하들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단장님! 제발 정신 차리십시오! 성광의 방벽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이 보랏빛 가스는 대체 어디서 흘러나오는 거야? 도진 형님, 힘 좀 더 써봐요!”


성기사 부관 레온의 절박한 외침과 용병 부대원 박도진의 거친 신음이었다. 그들은 석실 내부에 갇힌 채 역류하는 마기와 싸우고 있었다.


철문 우측 벽면에 설치된 고대 제어 기판에는 붉은색 아키텍트 문양이 깜빡이며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뿜고 있었다. 자폭 시퀀스가 활성화된 것이다. 남은 시간은 단 30분.


“비켜봐! 저 문만 부수면 애들을 구할 수 있어!”


강소희가 다시 도끼를 휘두르려 하자, 진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채원이 급히 기판을 살피며 소리쳤다.


“안 돼요, 소희! 이 문은 고대 마나 락으로 봉인되어 있어요! 억지로 부수려 하면 내부의 마력로가 즉각 과부하되어 석실 전체가 통째로 폭발하는 구조예요!”


“그럼 어쩌라는 거야? 저 안에서 애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엘리시아 역시 다급한 마음에 성검 아우렐리아를 쥐고 기도문을 외웠다.


“내가 성광의 마력을 주입해 봉인을 정화해 보겠네!”


윤채원이 제지하기도 전에, 엘리시아가 제어 기판에 손을 대고 정결한 신성 마나를 주입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지이이이잉—!


제어 기판이 격렬한 적색 스파크를 방출하며 엘리시아의 마력을 거칠게 밀쳐냈다. 유적의 역마나 방어막이 작동한 것이다. 기판 중앙의 카운트다운 숫자가 30분에서 순식간에 25분으로 단축되며 경보음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으윽……!”


엘리시아가 마력 반동으로 뒤로 비틀거렸다. 그녀의 황금빛 오라가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진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엘리시아의 앞을 막아서며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타이르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비전투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하고 단호했다. 엘리시아는 자신의 성급함에 귀끝까지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사령관. 내가 너무 경솔했네.”


진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제어 기판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가죽 코트 주머니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고대 해체용 펜치’와 ‘에테르 렌치’를 꺼내 들었다.


[고유 능력 ‘에테르 싱크로 (Ether Synchro)’ 활성화]


진우가 제어 장치의 차가운 금속 외장에 손을 얹자, 그의 머릿속으로 기상천외한 광경이 펼쳐졌다. 복잡하게 얽힌 수천 개의 푸른 에테르 배선과 동력 흐름이 정교한 3D CAD 설계도처럼 뇌리에 투영되었다.


‘과거 아키텍트 경비대의 표준 잠금 장치군. 외부 마나 주입에는 자폭으로 대응하지만, 고유 주파수를 맞추면 우회할 수 있어.’


진우는 앤티크 모노클의 이중 렌즈를 회전시켜 기판 벽면에 새겨진 미세한 고대 문양들을 읽어 내려갔.


[고대 문자 3형식 해석법 가동]


‘명사는 동력 제어기, 동사는 바이패스, 조건은 비접촉 주파수 공명…….’


진우는 펜치 끝으로 기판 내부의 가장 미세한 에테르 도선 세 개를 조심스럽게 집어 올렸다. 조금만 손이 미끄러져도 고압의 에테르 스파크가 발생해 양손이 타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그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턱끝으로 떨어졌다.


“…….”


대장들은 숨을 죽인 채 진우의 손끝만을 바라보았다. 대마법사인 윤채원조차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초고대 공학 제어 장치를, 마나 한 톨 없는 평민 학자가 오직 도구와 지식만으로 해체해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었다. 윤채원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진우를 향한 지적 숭배와 독점욕이 무섭게 끓어올랐다.


째깍, 째깍.


카운트다운이 5분을 가리키며 석실 내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레온과 박도진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감이 공동 전체를 짓눌렀다.


진우는 흔들리는 지반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에테르 렌치로 동력 나사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그리고 마지막 청색 도선을 황금빛 우회 노선에 연결하는 순간—


틱.


맑은 금속음과 함께 기판의 붉은빛이 부드러운 푸른색으로 정화되었다.


쿠구구구구—!


굳게 닫혀 있던 강철 석실의 거대한 문이 좌우로 슬라이드하며 열렸다.


“콜록! 콜록……!”


문이 열리자마자 짙은 보랏빛 마기 연기와 함께 부상자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사단 부관 레온이 찌그러진 방패를 든 채 바닥에 주저앉았고, 베테랑 용병 박도진은 온몸이 마기에 그을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의 뒤편에서 귀여운 단발머리의 마법 조수 린이 마도서를 품에 꼭 안은 채 울먹이며 기어 나왔다.


“사, 사령관님……! 기사단장님!”


린이 진우를 발견하자마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바지깃을 붙잡았다.


“어떻게 저희를…… 이 괴물 같은 문을 어떻게 여신 건가요?”


박도진 역시 진우의 완벽한 해킹 실력을 목격하고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젠장, 마탑의 영감들도 혀를 내두를 고대 봉인을 단 5분 만에 열어버리다니…… 사령관, 당신은 진짜 신이 내린 길잡이요!”


부하들의 경탄 섞인 시선이 진우에게 집중되었다. 기사단과 용병단 내부에서 진우의 지휘권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여론이 완벽하게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진우의 그림자가 기묘하게 일렁이더니 은빛 단발머리의 암살자 대원 설아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그녀는 구출되자마자 진우의 신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의 등 뒤에 밀착해 그림자 경호를 자처했다.


진우는 린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린은 여전히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진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사령관님,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저희가 여기에 갇힌 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요!”


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린의 눈을 응시했다. 린이 침을 삼키며 다급하게 속삭였다.


“기사단의 수녀로 위장해 잠입해 있던 에밀리…… 제국 정보부의 스파이인 그 여자가 저희를 이곳에 가두었어요! 그리고 가두기 직전에, 의심스러운 붉은색 마도구를 기판에 강제로 가동해 유적 전체의 자폭 시퀀스를 자극했어요! 그 여자는 이미 유적 더 깊은 곳으로 달아났어요!”


린의 폭로가 끝나는 순간, 유적 지하 깊은 곳으로부터 둥, 둥, 둥— 하고 거대한 심장의 박동 소리가 고통스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미궁 전역의 환기구에서 보랏빛 오염 마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며, 그들의 발밑이 다시 한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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