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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바닥, 엇갈린 발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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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층의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다.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고대 생명 마법의 잔해와 썩어가는 습기, 그리고 방금 전 끝난 대붕괴의 먼지가 뒤섞여 숨을 쉴 때마다 허파가 뻑뻑하게 타들어 가는 듯했다.


“……으윽.”


오진우는 갈라지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목구멍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1층 미궁의 자폭 시퀀스를 정지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고대 아키텍트의 음성 명령을 쥐어짜 냈던 대가였다. 성대가 찢어져 피가 고여 있는 탓에, 입술을 달싹여도 바람 빠지는 쉭쉭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정신이 드나, 사령관!”


가장 먼저 들린 것은 야성미 넘치는 거친 목소리였다.


진우는 자신이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무언가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시야를 흐리는 먼지 사이로 붉은 포니테일 머리칼과 구릿빛 피부가 보였다. 철혈 용병단의 대장, 강소희였다. 그녀는 어긋난 자신의 손목 부상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진우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조심히 얹고 있었다. 그녀의 야성적인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가득 차 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진우 씨. 성광의 기도가 아직 당신의 내상을 다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오른편에서 정결한 금발의 여기사, 엘리시아 폰 로엔그린이 진우의 차가운 손을 꽉 쥐었다. 그녀의 백은색 판금 갑옷은 낙하의 충격으로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균열이 가 있었으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성광 마력만큼은 진우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었다.


“아아, 드디어 눈을 떴군요. 나의 위대한 학자여.”


왼편에서는 윤채원이 진우의 셔츠 깃을 움켜쥔 채 매혹적인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그녀의 자색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빛은 지적 경외감을 넘어선 기묘한 집착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은빛 단발머리를 흩날리는 서하린이 소리 없이 검은 단검을 쥔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진우가 눈을 뜨자, 그녀의 차가운 붉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며 안도감의 빛을 띠었다.


진우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여기는…….’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가볍게 회전시키자, 뿌연 먼지 장막 너머의 지형이 투영되었다.


그들은 지하 2층 ‘침몰한 정원’의 초입 경계 구역에 떨어져 있었다. 주변은 온통 거대하게 부서진 나선 계단의 석조 잔해들로 가득했고, 그 너머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심연의 틈’이 기괴하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든든한 방패였던 고대 경비 기계 ‘골리앗’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층이 붕괴하며 수직 무저갱으로 낙하할 때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골리앗은 물론이고 그들이 챙겨왔던 보급품과 장비들의 대부분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 분명했다.


쿠구구구구—!


그때, 머리 위 천장에서 기분 나쁜 기계적 마찰음과 함께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대붕괴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에,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거대한 고대 석조 보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치잇! 아직도 무너질 게 남았단 말이야? 내가 저 고철 덩어리들을 다 부숴버리겠어!”


강소희가 이를 갈며 거대 도끼 바르그를 쥐고 일어섰다. 그녀의 전신에서 붉은색 폭발적인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오라의 기류가 좁은 공동의 벽면을 때리며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진우는 급히 손을 뻗어 강소희의 가죽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무력으로 저 낙석을 파괴하려 했다간, 오라의 진동이 유적의 하중 제어 장치를 자극해 2차 대붕괴를 부를 뿐이다.’


“사령관? 왜 그러는 거지? 저걸 치우지 않으면 우리가 깔려 죽는다고!”


강소희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진우는 대답하는 대신,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왼쪽 눈가에 걸친 앤티크 모노클을 짚었다. 그리고 미세한 마나를 주입해 고유 능력을 가동했다.


[고유 능력 ‘패스파인더의 눈 (Pathfinder's Sight)’ 활성화]

[2단계: 분석가 (Analyst) 경지 작동]


순간, 진우의 시야가 기하학적인 3D 와이어프레임 도면으로 전환되었다.


천장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낙석들의 무게 분포, 가해지는 물리적 하중의 궤적이 붉은색 선과 영역으로 그의 뇌리에 실시간으로 연산되어 꽂혔. 동시에, 낙석들이 떨어져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안전지대—구조적 사각지대가 푸른색 원형 영역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진우는 찢어지는 듯한 성대 통증을 참아내며, 모노클의 이중 렌즈를 조율해 푸른 광선을 벽면 한구석의 좁은 공동으로 투영했다. 그리고 대장들을 향해 단호하게 손짓했다.


‘저곳이다. 저 틈새만이 유일한 안전지대다.’


“저 좁은 바위 틈새로 피하라는 건가요?”


윤채원이 안경을 치켜쓰며 물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인 후, 엘리시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 뒤, 방패를 비스듬히 세우는 시늉을 했다.


엘리시아는 진우의 눈빛만으로 그의 의도를 단번에 간파했다.


“알겠네, 사령관. 낙석의 주 경로를 피해 미세한 파편만 방패로 흘려내라는 뜻이군! 나의 검은 당신의 방패가 되리라!”


엘리시아가 백은색 방패를 비스듬히 치켜들며 진우의 앞을 막아섰다. 정결한 황금빛 성벽 결계가 그녀의 방패 위로 얇지만 견고하게 쳐졌다.


쿠아아아앙—!


마침내 천장의 거대 석조 보가 무너져 내렸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폭풍처럼 쏟아지며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덮쳤다.


“소희, 채원! 사령관을 안고 안쪽으로 뛰어라!”


엘리시아의 외침과 동시에, 강소희는 진우의 허리를 낚아채듯 안아 들고 푸른색 안전 영역이 표시된 바위 틈새로 몸을 날렸다. 윤채원 역시 비틀거리면서도 진우의 옷자락을 꽉 쥔 채 뒤따랐다.


쾅! 콰콰쾅—!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지반이 흔들렸다. 엘리시아의 방패 위로 미세한 낙석들이 사정없이 부딪히며 불꽃을 뿜었으나, 진우가 계산한 비스듬한 각도 덕분에 거대한 하중은 방패를 타고 옆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단 한 발의 치명적인 낙석도 그들을 타격하지 못했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고, 진우 일행은 바위 틈새의 안전한 공동 내부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이 낙석으로 가로막혀 완전히 고립되었으나, 진우의 신산귀모한 지휘 덕분에 전원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은 것이다. 대장들은 먼지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진우를 향해 경외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시선을 보냈다.


“……정말이지, 괴물 같은 사내로군.”


강소희가 진우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으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진우의 옷자락을 쥔 손귀에는 힘이 풀리지 않았다.


“당신의 그 눈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보는 건가요? 마탑의 그 어떤 대현자도 이런 물리적 파멸 속에서 이토록 완벽한 궤적을 연산해 내진 못해요.”


윤채원이 숨을 헐떡이며 진우의 뺨에 고인 피를 부드러운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녀의 손길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섬세했고,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진우를 향한 소유욕이 더욱 짙게 타오르고 있었다.


진우는 가볍게 실소하며 손등의 찰과상을 쓸어내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제약 속에서도, 그는 대장들의 무력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생존의 우위를 점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자신을 향해 느끼는 깊은 부채감과 보호 본능은 이 혹독한 지하 2층 서바이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스으으으.


그때였다.


진우의 왼쪽 눈을 덮고 있던 앤티크 모노클의 금속 테두리가 스스로 미세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째깍거리는 정교한 기계음과 함께, 렌즈 주변의 마나 배선들이 찌릿한 진동을 일으켰다.


진우는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진동은…….’


모노클의 이중 렌즈가 겹치며, 어두운 공동 벽면 너머—수십 미터 두께의 단단한 석벽 뒤편의 에테르 기류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영혼의 주파수를 감지하는 특수 모드가 기동된 것이다.


암흑 같은 석벽 너머, 아주 미약하게 깜빡이는 두 개의 푸른색 마나 신호가 모노클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것은 낯선 신호가 아니었다.


하나는 성광 기사단의 정결하면서도 굳건한 신성 마나 주파수였고, 다른 하나는 철혈 용병단의 거칠고 묵직한 오라 주파수였다.


‘레온…… 그리고 박도진.’


대붕괴 속에서 흩어졌던 기사단 부관 레온과 베테랑 용병 박도진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나 신호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주변을 기분 나쁜 보랏빛의 오염된 마기 주파수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진우는 단검을 고쳐 쥐는 서하린의 어깨를 짚었다. 그리고 어둠 깊은 곳, 조난 신호가 흘러나오는 석벽 너머를 향해 단호하게 손가락을 가리켰.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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