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미궁, 깊어지는 인연
쿠구구구구구—!
거인의 무덤 공동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파괴적인 맥동은 더 가차 없이 지반을 찢어발겼다.
골리앗의 등 뒤 제어 슬롯에 피 묻은 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매달려 있던 오진우는, 손끝을 타고 흐르는 기계의 맥박을 느꼈다. 붉게 타오르던 거대 골렘의 안광이 일순간 깜빡이더니, 이내 정결하고 깊은 푸른빛으로 변모했다.
[고대 가디언 ‘골리앗’ 해킹 완료]
[관리자 권한 등록: 오진우(아키텍트 직계 후예)]
“쿠오오오오……”
광폭화되어 날뛰던 10미터 크기의 석조 거구가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붉은색 과부하 오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골리앗은 진우를 등 뒤에 태운 채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완벽한 복종의 서약이었다.
“사, 사령관님!”
어둠 속에서 서하린이 은신을 풀며 진우의 곁으로 날렵하게 착지했다. 은발을 휘날리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안도감과 함께,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진우는 골리앗의 장갑판을 붙잡고 겨우 바닥으로 내려왔다.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눈앞이 핑 돌며 무릎이 꺾였다. 자신의 아키텍트 혈통 피를 무리하게 주입한 대가로 극심한 빈혈과 전신 탈진이 몰려온 탓이었다.
“오진우 씨!”
윤채원이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 아스트라를 던져두고 달려와 진우의 상체를 부축했다. 평소의 오만하고 지적인 마탑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의 자색 눈동자는 눈물로 젖어 있었고, 진우를 움켜쥔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바보 같은 짓을…… 무력도 없는 사람이 왜 매번 그렇게 목숨을 던지는 건가요? 당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는……!”
“……콜록.”
진우는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입가에서 흘러내린 붉은 선혈이 윤채원의 은빛 학자 가운을 붉게 적셨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모노클 너머로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마틴 놈이 도망치며 가동한 1층 자폭 시퀀스가…… 유적의 메인 동력로를 건드렸습니다.”
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동의 천장이 거대하게 갈라지며 수천 톤의 토사와 석조물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지상으로 통하는 퇴로가……!”
성기사 부관 레온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유적 1층으로 들어왔던 거대한 석조 통로가 무너지며 수천 톤의 거대 낙석들로 완전히 차단된 것이 보였다. 붕괴는 입구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딛고 선 공동의 바닥 역시 거미줄 같은 균열을 그리며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방이 막혔어! 위로 올라가는 길은 완전히 붕괴했다고!”
부상을 입은 용병단장 강소희가 어긋난 손목을 움켜쥔 채 이를 갈았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평생 전장을 누벼온 베테랑 용병인 그녀였지만, 유적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이 장엄하고도 파멸적인 자연의 힘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우리는 아래로 간다.”
진우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래라니? 오진우 씨, 밑은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이에요! 떨어지면 뼈도 못 추려요!”
윤채원이 절박하게 소리쳤으나, 진우는 왼쪽 눈의 앤티크 모노클을 거칠게 회전시켰다. 2단계: 분석가(Analyst)의 경지에 도달한 그의 뇌 세포가 폭발적인 속도로 유적의 에테르 기류를 연산하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 패스파인더의 눈(Pathfinder's Sight) 활성화]
진우의 시야에 무너져 내리는 낙석들의 물리적 낙하 궤적이 붉은색 실선으로 투영되었다. 그리고 공동 바닥 중앙, 갈라지는 대지 밑바닥 깊은 곳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의 통로가 푸른색 안전 영역으로 밝게 떠올랐.
“골리앗! 11시 방향으로 전진! 에테르 방벽 전개!”
진우의 쉰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무릎을 꿇고 있던 골리앗이 육중한 금속음을 내며 일어섰. 거대한 백은색 거구는 진우의 명령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골리앗이 양팔을 치켜들자, 전신에 흐르는 푸른 에테르 배선들이 공명하며 머리 위로 거대한 반투명 방패 장막을 전개했다.
쿠우우웅—!
천장에서 낙하하던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 낙석들이 골리앗의 에테르 방벽에 부딪히며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 충격으로 골리앗의 석조 장갑에 미세한 균열이 갔지만, 기계 가디언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아군 대열의 머리 위를 완벽하게 가로막았다.
“엘리시아 씨! 골리앗의 동력만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성벽 결계를 더하십시오!”
진우의 지시에 엘리시아 폰 로엔그린이 성검 아우렐리아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는 피를 토하며 쓰러져가는 진우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 선조들이 아키텍트를 배신했던 원죄, 그리고 지금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지휘하는 사령관의 헌신.
그녀의 신앙은 이미 신성 교국이 아닌, 오직 오진우라는 사내를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나의 검은 당신의 방패가 되리라! 엘리시아의 성벽(Elysia's Barrier)—!”
엘리시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정결한 백은색과 황금빛 신성 오라가 골리앗의 에테르 방벽과 공명했다. 두 개의 결계가 하나로 묶이자, 머리 위를 덮쳐오던 붕괴의 폭풍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하지만 대지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들이 딛고 서 있던 공동 중앙의 바닥이 마침내 완전히 갈라지며, 지하 2층으로 통하는 거대한 수직 구멍—과거 ‘낙하하는 나선 계단’이 존재했던 무저갱의 입구가 그 어두운 아가리를 벌렸다.
“바닥이 무너진다! 모두 한곳으로 뭉쳐!”
강소희가 소리치며 왼팔로 진우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비전투원인 진우의 몸은 그녀의 야성적인 품 안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들렸다.
진우는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머릿속의 계산기를 멈추지 않았다.
‘낙하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전원의 무게와 마장 장비의 에테르 밀도를 균등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낙하하는 순간의 압력 변화로 장기가 파열될 것이다.’
“모두…… 서로 밀착하십시오. 하중 분산 보행법을 역으로 응용합니다.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단단히 묶고, 마나 주파수를 하나로 동조화해야 낙하 충격을 분산할 수 있습니다!”
진우의 명령에 대장들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윤채원이 진우의 오른팔을 감싸 안으며 자신의 체온을 나누었고, 서하린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진우의 등 뒤에 밀착해 그의 목덜미를 감싸 안았다. 엘리시아 역시 성벽 결계를 유지한 채 진우의 전면을 자신의 정결한 판금 갑옷으로 덮듯이 껴안았다.
네 명의 대륙 최강자들이, 오직 무력 없는 단 한 명의 고고학자를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로의 몸을 완전히 밀착시킨 채 하나의 거대한 방어 구체를 형성했다.
“골리앗! 뛰어내려라!”
진우의 마지막 명령과 함께, 골리앗이 대방패 결계를 쥔 채 수직 무저갱 속으로 거대한 몸을 던졌다. 그 뒤를 이어 네 대장들과 연합 탐험대원들 전체가 붕괴하는 대지의 잔해와 함께 어둠 속으로 투신했다.
슈우우우우욱—!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순간, 사방에서 날카로운 낙석 파편들이 방어막을 두드렸으나 대장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들의 온 신경은 오직 자신들의 품 안에 갇힌 나약하고도 위대한 사령관, 오진우에게만 쏠려 있었다.
“사령관님…… 정신 잃으시면 안 됩니다!”
서하린이 진우의 귀밑머리를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그녀의 차가운 체온 속에서 느껴지는 맹목적인 복종의 열기가 진우의 피부를 자극했다.
“진우 씨, 제가 지키겠어요. 제국의 그 어떤 음모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게 하겠어요.”
엘리시아의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품이 진우의 가슴을 짓눌렀고, 강소희는 툴툴거리면서도 진우의 허리를 부러질 듯 강하게 움켜쥐며 그의 즉사를 막기 위한 생명 공유 서약의 반지를 꽉 쥐었다. 윤채원의 집착 서린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보랏빛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추락의 가속도가 극에 달한 순간, 저 먼 밑바닥 어둠 속에서 수천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고대 생명 마법의 몽환적인 푸른 빛과 축축한 고대 식물들의 넝쿨이 일행의 몸을 옭아매기 위해 서서히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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