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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자의 혀를 묶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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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칼리두스 지하 9호실의 철문이 둔탁한 굉음과 함께 닫혔다. 크로이츠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피해 간신히 고문실에서 풀려난 아벨의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전신을 가로지르는 검붉은 채찍 자국은 살을 태우는 듯이 뜨거웠고,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빈혈은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려 손끝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혔다. 무엇보다 무리하게 ‘역설적 회피’를 연산한 대가로 오른쪽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아 초점을 잃었고, 귓가에는 날카로운 이명이 끊이지 않고 웅웅거렸다.


“쉭…… 쉭……”


잘린 성대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은 오직 쉭쉭거리는 거친 바람 소리뿐이었다. 아벨은 차가운 석회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한 두통이 뇌리를 찌르는 와중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방 안의 마나 흐름을 살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바닥의 흙더미 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비열한 시선이 느껴졌다.


시몬이었다.


비쩍 마르고 한쪽 눈을 찡그리는 비열한 인상의 노예 시몬은 아벨이 방에 들어오기 직전, 9호실 바닥 구석에 남아 있던 피의 문자 잔해를 발견하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벨이 대화재 속에서 완성하고 급히 흙으로 덮었던 ‘묵(默)’ 자의 기하학적 흔적이었다. 흐릿한 시야와 극심한 탈진 탓에 아벨이 미처 완벽히 정화하지 못한 치명적인 단서가 드러난 것이다.


시몬은 상판을 일그러뜨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이…… 이단 주술의 흔적……! 크로이츠 간수장님께 가져가면 난 즉시 자유다. 평민 신분증과 황금도 얻을 수 있어! 이 벙어리 새끼가 범인이었어!”


시몬은 아벨이 만신창이가 되어 숨을 몰아쉬는 틈을 타, 잽싸게 감방 문틈을 빠져나가 간수실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품속에는 간수 크로이츠에게 밀고의 대가로 미리 받아두었던 하급 마력 방어 반지가 붉은빛을 띠며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철창 너머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웅크려 들었다. 야수 전사 가르크였다. 가르크는 야수 특유의 초감각으로 시몬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걸음으로, 그것도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간수실 쪽으로 향하는 것을 포착했다. 가르크는 아벨의 창살 앞으로 다가와 묵직한 수화와 눈빛을 보냈다.


[그 비열한 쥐새끼가 네 피의 흔적을 보고 간수실로 뛰었다. 밀고하려는 거다.]


아벨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정보가 새어나가면, 아직 완벽히 조직되지 못한 ‘검투사 노예 자치회’는 반란의 불씨를 지피기도 전에 크로이츠와 프란츠 간수장의 철퇴 아래 몰살당할 터였다. 혀가 잘린 채 침묵해야 했던 그 처절한 고통의 역사를 다른 동료들에게까지 반복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아벨은 성대 사이로 바람 소리를 내며 가르크에게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잡아야 한다. 간수실에 닿기 전에.


시몬이 선택한 경로는 일반적인 감옥 복도가 아니었다. 다른 노예들의 눈을 피하고 간수들에게 조용히 독점적인 공을 바치기 위해, 그는 백 년 전 아레나 건설 당시 석공들이 버려둔 ‘지하 하수도 미로’를 택했다. 독가스와 오물이 가득한 그곳은 경비병들의 감시 사각지대였고, 동시에 간수실 하부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그 미로의 지리는 로이의 척후망을 통해 이미 아벨과 가르크의 머릿속에 도식화되어 있었다. 아벨과 가르크는 하수도 지름길을 통해 시몬의 앞길을 차단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뚝, 뚝.”


천장에서 떨어지는 더러운 물방울 소리가 하수도 아치형 벽면을 타고 기괴하게 반사되었다. 어둡고 습한 하수도 내부, 썩은 오물 냄새가 코를 찌르는 통로를 시몬은 숨가쁘게 달렸다.


“이것만 있으면…… 이 지옥 같은 검투장을 나가 평민으로 살 수 있어……”


시몬이 어두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거대한 벽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 벽이 아니었다. 사자 갈기 같은 황금빛 머리칼을 지닌 거구의 수인, 가르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투성이 누더기를 걸친 채,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아벨이 서 있었다.


“헉……!”


시몬은 경악하며 뒤로 주춤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는 비열한 눈을 굴리며 비명을 지르려 목구멍에 마력을 모았다.


“경비……! 읍!”


가르크가 거대한 손을 뻗어 시몬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아벨이 급히 가르크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 하수도 미로의 구조는 소리를 수십 배로 증폭시키는 천연 공명통이었다. 여기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해 뼈가 부러지는 소리나 비명이 울려 퍼진다면, 반경 수백 미터 내의 경비 기사들이 즉시 장벽을 폐쇄하고 들이닥칠 터였다. 철저한 무음 제압만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시몬은 아벨이 무력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줄 알고, 기세를 올려 손가락에 낀 방어 반지를 활성화했다.


웅——!


시몬의 전신을 감싸며 검붉은 마력 장막이 반투명하게 피어올랐다. 하급 마력 방어 반지에서 전개된 물리 및 원소 차단 결계였다.


“하하! 이 가축 새끼들아! 들어와 봐라! 이 반지는 어떠한 물리적 타격도 막아낸다! 경비병! 여기 이단이—!”


시몬이 목청을 높여 소리치려는 찰나, 아벨이 움직였다. 그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자신의 입술을 가차 없이 깨물었다. 설근의 흉터에서 차오른 붉은 생혈이 손가락 끝에 맺혔다. 아벨은 전신 마나가 95% 이상 고갈되어 심장이 터질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뇌세포를 쥐어짜며 기하학적 연산을 시작했다.


‘제국의 방어막은 오직 물리적 충격과 속성 원소만을 방어의 범주로 인식한다. 의미론적 제약은 방어의 통사 구조에 걸리지 않는다.’


아벨은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휘둘렀다. 그의 손끝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붉은 피가 대기 중에 고정되었다. 초성 ‘ㅊ’, 중성 ‘ㅣ’, 종성 ‘ㅁ’. 한글의 기하학적 블록 결합이 허공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것은 침묵의 의미를 담은 극도로 간결하고 정교한 한글 구조식 룬이었다. 시몬은 비웃으며 외쳤다.


“피로 낙서나 하는 벙어리 놈이……!”


그러나 아벨이 룬의 마지막 획을 긋고 마나 주파수를 동조시키는 순간, 허공의 핏자국이 눈부신 백금빛 광휘를 발하며 시몬의 검붉은 방어 장막을 투명하게 통과했다. 물리적 질량도, 화염이나 번개 같은 원소도 아니었기에 방어 반지는 룬의 진입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슉—!


백금빛의 음절 블록이 시몬의 목덜미, 성대 신경망의 마나 제어 노드에 정확히 스며들었다. 시몬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와야 했을 거대한 비명이, 찰나의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의 성대 근육은 요동치고 있었고, 폐부에서는 비명을 지르기 위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순간, 아벨이 새겨둔 ‘침묵’의 문법적 제약이 소리의 물리적 진동 자체를 인과율 수준에서 부정해 버렸다.


오직 메마른 바람 소리만이 하수도의 축축한 공기 사이로 쉭쉭거리며 흩어질 뿐이었다.


“쉭…… 쉭? 쉭……!”


시몬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눈동자가 공포로 뒤집혔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 해도, 혀를 움직여 발음을 하려 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목소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멸시하고 조롱했던 벙어리 아벨과 똑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시몬은 절망과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벨의 눈빛은 차가운 얼음과도 같았다. 말을 빼앗긴 자의 분노가 침묵의 형벌이 되어 배신자의 혀를 영원히 묶어버린 것이다.


“욱……!”


그 순간, 아벨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피가 역류했다. 무리하게 마나를 쥐어짜 시전한 대가로, 예전에 잘렸던 성대 흉터가 미세하게 파열되어 붉은 피가 입술을 타고 흘러내렸다.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냉증과 함께 극심한 이명이 오른쪽 귀를 찔렀다. 가르크가 쓰러지려는 아벨을 단단한 어깨로 부축했다. 아벨은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주저앉은 시몬을 차갑게 응시했다. 시몬의 혀는 묶였으나, 그의 기이한 실어증은 간수들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또 다른 불씨가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치회의 보안을 지켜낸 것이 우선이었다.


가르크는 무언의 눈빛으로 아벨에게 경의를 표하며, 시몬을 어두운 하수도 구석으로 밀쳐두고 아벨과 함께 노역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하수도의 어두운 안개 속에서, 침묵의 지배자가 딛는 발걸음 소리만이 소리 없이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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