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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하는 화염과 은밀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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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아지랑이가 연습장을 삼키는 순간, 아벨의 손끝이 바닥에 새겨진 반사 룬의 마지막 획을 완성했다.


“파괴하라, 적염의 주권이여! 도미누스(Dominus)——!”


율리우스의 오만한 외침과 함께 지팡이 끝의 거대한 화염 구체가 해방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었다. 제국 마법의회가 독점한 신성어, ‘에테르 아르스’의 강제적 인과율이 부여된 파멸의 질량이었다. 공기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백색에 가까운 열파가 모래바닥을 휩쓸며 사슬에 묶인 노예들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율리우스가 설계한 주문의 치명적인 ‘오역 노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얄팍한 허세와 가문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주문 속에 억지로 집어넣은 불필요한 장식적 접두사들. 그 수식어들이 대기 중의 화염 마나와 간섭을 일으키며 주파수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폭발적인 마나의 파동은 아레나 전체를 감싸고 있던 ‘마나 제어 핵 탑’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쿠르릉, 릉!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율리우스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통제력을 잃고 사방으로 튀었다. 화염구는 원래 조준했던 노예들이 아니라, 제3연습장의 석조 기둥과 목재 관람석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마나가 역류하며 발생한 열역학적 팽창은 억제 불가능한 화염의 소용돌이로 돌변했다. 순식간에 연습장 전체가 거대한 불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결계가 폭주한다! 대피해라!”


“가축 놈들은 버려두고 문을 잠가라!”


관람석에 있던 하급 간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철제 문을 걸어 잠그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노예의 목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이 이 통제 불가능한 화염에 휩쓸리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는 공포뿐이었다. 철문이 쾅 하고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화염의 굉음 속에 묻혔다.


매캐한 유독가스와 타는 듯한 열기가 폐부를 찔러왔다.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래바닥을 뒹굴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비린내와 공포가 제3연습장을 가득 채웠다.


‘젠장, 마나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군.’


석조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아벨은 오른쪽 눈을 움켜쥐었다. 모노클 오브 트루스를 통해 율리우스의 주문을 초고속으로 연산한 대가는 참혹했다. 시신경이 가위질당하는 듯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뺨을 타고 흘러내린 검붉은 피눈물이 모래바닥을 적셨다. 게다가 첫 피의 룬 시전과 급격한 마나 역조율로 인해 체내 마나의 80%가 일시에 방전되어 있었다. 심장 부근이 쥐어짜는 듯이 조여왔고, 만성 빈혈로 인한 차가운 한기가 손끝에서부터 밀려왔다.


하지만 아벨은 멈출 수 없었다.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덮쳐오는 방향에 그의 유일한 역린이자 삶의 이유인 여동생 리사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사는 오빠를 위해 피비린내를 가릴 향초를 쥐고, 공포에 질린 채 무너진 석판 틈새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사슬에 묶여 온몸에 불꽃이 튀는 와중에도 이빨을 악물고 버티는 야수 전사 가르크가 있었다.


‘바람의 가속 룬으로는 이 화염을 밀어낼 수 없다. 산소가 공급되면 불길만 더 거세질 뿐이다. 그렇다면…… 화염이라는 무질서한 원소 운동 자체를 정지시켜야 한다.’


아벨은 왼손 검지손가락에 끼워진 ‘응고 방지 흑요석 반지’를 꽉 쥐었다. 반지가 차가운 마력 진동을 일으키며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점도를 완벽하게 유지해 주었다. 아벨은 부러진 철필 끝에 자신의 생혈을 묻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시전하려는 것은 제국의 길고 장황한 신성어 영창이 아니었다. 오직 현대 한국어의 기하학적 형태론을 대입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마법 체계, ‘한글 구조식 음절 마법’이었다.


스으으읍.


아벨은 성대의 통증을 억누르며 깊은 침묵 속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침묵의 영창이 시작되었다.


허공에 검붉은 피의 선들이 정교하게 그어졌다.

초성 ‘ㅇ’을 그리고, 대칭을 맞추어 중성 ‘ㅏ’의 획을 내리쳤으며, 마지막으로 마나의 흐름을 단단히 붙잡아줄 종성 ‘ㄴ’의 획을 결합했다.


[안(安)].


단 한 음절의 기하학적 블록이 완성되는 순간, 흑요석 반지가 머금고 있던 마나가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검붉은 피의 선들이 찬란한 백금빛으로 변했다. 그것은 제국의 마법사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공간 대칭의 미학이었다. 초성, 중성, 종성의 삼위일체 결합은 [속성: 화염 상쇄], [형태: 구형 장벽], [작용: 진동 정지]라는 세 가지 변수를 단 0.1초 만에 하나의 물리 법칙으로 고정해 버렸다.


위이이이잉——!


백금빛으로 빛나는 ‘안’ 자의 음절 블록을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이내의 대기가 얼어붙듯 고요해졌다. 화염의 본질은 원소들의 광포한 열역학적 진동이다. 하지만 아벨이 완성한 한글 구조식은 그 진동 에너지를 강제로 제로(0)로 정렬시키는 역설적 결합 주파수를 방출하고 있었다.


아벨은 멈추지 않고 그 옆에 ‘정(淨)’을 의미하는 초성 ‘ㅈ’, 중성 ‘ㅓ’, 종성 ‘ㅇ’의 블록을 연이어 그려 넣었다. 두 음절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은빛의 반투명한 장벽이 리사와 가르크가 있는 구역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통제를 잃고 연습장 전체를 집어삼키던 거대한 화염의 기둥이 아벨이 전개한 장벽을 향해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집어삼킬 듯한 백색의 불길이 은빛 장벽 표면에 닿았다.


콰아아아아——!


그러나 폭발음은 터지지 않았다. 화염의 기둥이 아벨의 은빛 한글 장벽에 닿자, 마치 뜨거운 쇳물이 얼음물에 닿은 것처럼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어 내리며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광포하게 날뛰던 열 에너지가 장벽 표면에서 순식간에 정화되어 무색의 차가운 대기로 환원되는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사슬에 묶인 채 죽음만을 기다리던 야수 전사 가르크는 경악했다. 불길 속에서 자신을 감싼 이 은빛 장벽의 기이한 글자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한 줄기 피눈물을 흘리며 검붉게 물든 손가락 끝으로 허공을 지배하고 있는 혀 잘린 노예 아벨의 모습을, 가르크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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