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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천재와 노예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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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릭이 제련해 준 흑요석 반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검지손가락에 끼워진 검은 고리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아벨의 손끝에서 흘러내린 피가 대기 중에서 굳는 것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었다. 동시에 혈관 속의 마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보이지 않는 지지대 역할을 수행했다. 바르도의 오답 노트를 품에 안고 대장간을 나선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은 시점, 아벨은 자신의 새로운 무기를 시험할 틈도 없이 제3연습장의 거대한 석조 기둥 뒤로 몸을 숨겨야 했다.


“모두 묶어라! 단 한 마리도 풀려나선 안 된다!”


간수들의 거친 채찍 소리와 쇠사슬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음이 연습장의 메마른 모래 먼지 속에서 울려 퍼졌다. 연습장 중앙에는 야수 전사 가르크를 비롯한 수십 명의 노예 검투사들이 거대한 철제 기둥에 사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가르크의 사자 갈기 같은 황금빛 머리칼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전신에 새겨진 채찍 자국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황금빛 눈동자만큼은 사슬을 움켜쥔 간수들을 찢어발길 듯이 흉포하게 이글거렸다.


저 멀리, 아레나 중앙 투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려한 공중 누각, 바실리우스 백작의 귀빈석(VIP Box)에는 비단 옷을 걸친 영주와 제국 마법의회의 고위 귀족들이 와인을 홀짝이며 이 참혹한 광경을 유희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3연습장 정중앙, 노예 표적들 앞에는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된 청색 마법 로브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귀족 청년이 오만하게 서 있었다.


제국 마법의회가 공인한 100년에 한 번 나올 천재, 율리우스였다.


“하찮은 노예 가축들의 생명력이야말로, 내가 설계한 새로운 광역 파괴 주문의 위력을 증명할 가장 완벽한 땔감이지.”


율리우스는 가문의 성물인 ‘적염의 루비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지팡이 끝에 박힌 거대한 루비가 태양빛을 받아 핏빛 광휘를 뿜어냈다. 그는 정식 ‘신성어 시전자(Divine Speaker)’로서의 권위를 뽐내듯,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 장엄하게 영창을 시작했다.


“퓌로스(Pyros)…… 에테르의 흐름이여, 오만히 군림하는 불꽃의 군주여……”


그가 외치는 제국의 고대 마법 언어 ‘에테르 아르스’는 장황하기 짝이 없었다. 아벨은 석조 기둥 뒤에서 숨을 죽인 채, 고대 문자 연구가 엘레나가 비밀리에 보내주었던 마법 렌즈인 ‘모노클 오브 트루스(프로토타입)’를 오른쪽 눈에 착용했다. 렌즈를 통해 흘러간 미세한 마나가 시신경을 자극하자, 눈앞의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재구성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대기 중의 마나 흐름이 수만 갈래의 붉은 실줄기가 되어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전개되었다. 율리우스의 지팡이 끝을 중심으로 붉은 마나의 실들이 엉키고 설키며 거대한 마법 진의 트리 구조를 형성해 나갔다.


그 순간, 아벨의 머릿속에서 ‘언어학적 직관’이 폭발적으로 가동되었다.


‘역시…… 오류투성이의 조잡한 코드다.’


아벨은 속으로 냉소했다. 현대 한국어의 초성, 중성, 종성 구조를 연구했던 천재 언어학자의 영혼은 율리우스의 주문을 가차 없이 형태소 단위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율리우스의 주문은 귀족의 가문적 권위와 신성함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와 불필요한 장식적 접두사로 가득 차 있었다. 불꽃의 온도를 높이는 본질적인 어근은 단 하나뿐인데,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위대한 가문의 영광’이니 ‘신성한 피의 지배’니 하는 무의미한 수식어들이 마나의 주파수를 미세하게 흔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대기 중의 화염 마나가 균일하게 압축되지 못하고, 마법 진 내부에서 서로 간섭을 일으키며 위험천만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저 주문은 불안정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부의 통사론적 결합 구조가 완전히 뒤틀려 있어. 조금만 외부에서 주파수를 흔들면 주문 자체가 시전자에게 역류할 정도로 약점이 명확해.’


아벨은 가르크와 노예들을 구하기 위해 즉시 행동에 나서야 했다. 처음에는 소음 차단 룬을 활용해 율리우스의 영창 소리를 지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율리우스가 가동하고 있는 마나의 규모는 3서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혀가 잘린 채 필사자 단계에 머물러 있는 아벨의 빈약한 마력 보유량으로는, 저 거대한 화염의 에너지를 단순히 ‘묵(默)’ 자 룬 하나로 억누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무리하게 상쇄하려다간 오히려 아벨 자신의 마나 회로가 먼저 터져 나갈 터였다.


‘억누를 수 없다면, 흐름을 비틀어 스스로 붕괴하게 만든다.’


아벨은 검지손가락 끝을 찌르고 있던 철필을 꽉 쥐었다. 흑요석 반지가 그의 피를 머금으며 검붉은 마나를 흘려보냈다. 아벨은 석조 기둥 뒤쪽, 보이지 않는 벽면 바닥에 피로 한글 구조식의 기초 획을 긋기 시작했다. 초성 ‘ㅂ’, 중성 ‘ㅏ’, 종성 ‘ㄴ’을 결합해 ‘반(反)’ 자의 기하학적 블록을 설계하고, 그 옆에 인과율의 방향을 뒤트는 보조 룬을 정교하게 배치했다.


그와 동시에, 율리우스의 영창은 종결 어미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지팡이 끝의 루비는 이제 스스로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며 백색의 화염 구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르크는 다가오는 죽음의 열기를 느끼면서도 이빨을 드러내며 율리우스를 노려보았다.


“파괴하라, 적염의 주권이여! 도미누스(Dominus)……!”


율리우스가 오만하게 지팡이를 치켜들며 주문의 마지막 종결 어미를 외치려는 찰나였다.


아벨의 오른쪽 눈에 낀 모노클 너머로, 붉은색 마나 연결선들의 가장 취약한 중심부—주문 구조가 급격히 꺾이는 치명적인 ‘오역 노드’가 붉은색 스파크를 일으키며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초고속 연산의 대가는 참혹했다. 아벨의 시신경에 가해진 극심한 과부하로 인해, 모노클 렌즈 아래로 한 줄기 검붉은 피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새겨진 피의 반사 룬이 백금빛 오라를 뿜어내며 적의 오역 노드를 정조준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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