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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포식자를 굴복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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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격리소 천장에 부착된 보조 마력 종들이 굉음을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의무실 지상과 아레나 외곽 전체에 반란 진압 경보가 요동치는 소리가 지하 예배당 벽면을 타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쉭…… 쉭!”


아벨은 찢어진 손가락 끝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움켜쥔 채, 거칠게 바람 소리를 내며 가르크에게 신호를 보냈다. 의사 제라드가 건네준 지도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3차원 경로로 환원되어 있었다. 정면의 철문 너머로 제국 기사단의 무거운 구두 굽 소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상 입구는 이미 프란츠의 직속 중장보병들에게 포위당했을 터였다. 남은 퇴로는 단 하나, 격리소 하부의 오물 배출용 수로를 통해 지하 하수도 미로로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얀, 안나를 업어라! 가르크, 수로 문을 부순다!”


얀은 왼쪽 어깨에 입은 심각한 화상 흉터의 극심한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신속하게 안나를 등 뒤로 업어 올렸다. 안나는 고문으로 인해 짓무른 몸을 얀의 어깨에 기대며 미안함과 경외감이 뒤섞인 눈으로 아벨을 바라보았다. 가르크가 거구를 날려 수로의 녹슨 철문을 배틀액스 자루로 내리쳤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철문이 찌그러지며 어둡고 습한 하수도 미로의 입구가 드러났다.


습하고 불결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아벨 일행은 망설임 없이 검은 탁류가 흐르는 지하 수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머리 위 격리소에서는 기사들의 고함과 함께 마력 탐지 장치들이 웅웅거리는 진동이 하수도 아치형 천장을 타고 무겁게 울렸다.


지하 하수도 미로는 백 년 동안 방치되어 제국의 공식 지도에서도 누락된 복잡한 그물망이었다. 차갑고 더러운 물이 아벨의 짓무른 발목을 적실 때마다, 만성 빈혈로 인한 차가운 한기가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마나가 완전히 방전된 아벨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의 뇌세포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정교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이 미로는 제국의 스캐너가 쉽게 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하지만…….’


아벨은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야수 특유의 초감각을 지닌 가르크 역시 대검을 고쳐 잡으며 웅크렸다.


철벅, 철벅.


하수도 저편에서 물을 가르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세 개의 거대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고 온몸에서 검은 연기 같은 어둠 마력을 뿜어내는 거대한 마수, ‘그림자 늑대’ 무리였다. 그 포악한 짐승들의 등 뒤로, 검은 가죽 갑옷을 입고 마수의 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건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날카로운 갈고리칼을 쥔 사내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제국 마수 사냥대의 추적대장, 울프였다.


“쥐새끼들이 결국 똥통 속으로 기어들어 왔군.”


울프는 차가운 폭소를 터뜨리며 품속에서 은빛 호각을 꺼내 들었다.


“이단 노예 놈들아, 네놈들의 피비린내는 이 계곡의 포식자들에게 아주 훌륭한 먹잇감이지. 찢어발겨라!”


피이이익——!


울프가 은빛 호각을 불자, 인간의 귀에는 거의 들리지 않는 미세하고 날카로운 고주파 음파가 하수도 공기를 찢었다. 그 소리가 그림자 늑대들의 귀에 닿는 순간, 늑대들의 번뜩이던 적안이 광기로 물들며 대지를 박찼다. 세 마리의 그림자 늑대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속도로 아벨 일행을 향해 고속 돌격해 왔다.


“오오오오!”


가르크가 거구를 앞세워 최전방으로 나섰다. 가르크는 대검을 휘두르는 대신, 좁은 하수도 통로를 막아서며 거대한 배틀액스 자루를 가로로 뉘어 늑대들의 강철 같은 이빨을 육탄으로 가로막았다.


콰아앙!


가장 거대한 그림자 늑대의 아가리가 도끼자루를 물어뜯으며 가르크를 밀어붙였다. 가르크의 발목이 하수도 오물 바닥에 깊게 박히며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얀은 화상 입은 어깨를 감싸 쥐며 철퇴를 휘둘러 보려 했으나, 몰려드는 어둠의 기운에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가르크 혼자서 세 마리의 상급 마수를 좁은 수로에서 다 막아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공격 마법으로는 늦는다. 저 짐승들의 뇌를 직접 해킹해야 한다.’


아벨은 오른쪽 눈가에 손을 대며 ‘모노클 오브 트루스’를 가동했다. 시신경이 잘려 나가는 듯한 연산 과부하의 고통이 밀려왔지만, 아벨은 이빨을 악물고 울프의 은빛 호각 소리를 시각적으로 텍스트화했다.


모노클을 통해 전개된 세상 속에서, 울프의 호각 소리는 수천 갈래의 붉은 마나 선으로 구성된 제국의 ‘에테르 아르스’ 구문 구조로 스캔되었다.


`[Imperative: Destroy / Target: Non-Beast Lifeforms / Binding: Whistle Frequency]`


그것은 늑대들의 전두엽 신경 회로에 강제적인 제약을 걸어 절대적인 복종을 유도하는 조잡한 명령식이었다. 제국의 마법사들이 설계한 모든 주문이 그렇듯, 이 마수 지배 명령어 역시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접두사로 가득 차 있었다.


‘지배 명령어의 주파수 노드가 흔들리고 있다. 이 결함을 파고든다면…… 명령의 주체 자체를 나로 치환할 수 있다.’


아벨은 왼손 검지손가락에 끼워진 ‘응고 방지 흑요석 반지’를 움켜쥐었다. 반지가 차가운 진동을 일으키며 그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마나 전도율을 유지해 주었다. 그는 부러진 철필을 쥘 여력조차 없었기에, 찢어진 오른손 손가락 끝의 피를 허공에 직접 뿌렸다.


그가 새기는 것은 제국의 늘어지는 영창이 아니었다.

오직 현대 한국어의 기하학적 형태론을 대입한 단 한 음절의 문자 블록.


초성 ‘ㅂ’, 중성 ‘ㅗ’, 종성 ‘ㄱ’.

‘복(伏)’.


한글의 초성 ‘ㅂ’은 마나의 흐름을 가두어 고정하는 입술소리의 획을 담당하고, 중성 ‘ㅗ’는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절대적인 지배의 주파수를 형성하며, 종성 ‘ㄱ’은 대상의 뇌 신경 회로를 완벽하게 잠그는 제동의 역할을 수행한다. 단 한 음절의 기하학적 블록 안에 ‘굴복하고 엎드리라’는 절대적인 인과율의 명령이 압축되는 순간이었다.


파지직!


아벨이 허공에 그린 피의 문자가 눈부신 백금빛 광휘를 뿜어내며 세 갈래의 빛줄기로 분열했다. 그 백금빛 복종의 룬은 울프가 내뿜던 은빛 호각의 구속 주파수를 ‘상위 명령권자 귀속’이라는 보편 문법 정렬로 덮어써서 상쇄해 버렸다.


슈우우우욱!


백금빛 복종 룬이 세 마리의 그림자 늑대의 이마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그 순간, 울프의 호각 소리에 광포하게 날뛰던 늑대들의 신체가 일시적으로 굳어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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