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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사의 체포와 구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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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의 밀수 마차가 레오폴드의 정예 수색조에 의해 강제 검문당하는 위기 속에서, 빅토르는 특유의 노회한 상인 기질을 발휘했다. 그는 바실리우스 백작과의 거래 명분과 황실 공인 통행증을 들이밀며 레오폴드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아벨과 결사대원들은 그 틈을 타 대장간의 비밀 지하 통로를 통해 무사히 지하 9호실로 퇴각할 수 있었다. 간신히 은화 상자를 지켜냈지만, 한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쉭…… 쉭……”


지하 9호실의 어두컴컴한 석조 벽에 기댄 아벨의 호흡은 거칠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끝은 끊임없는 피의 룬 시전으로 인해 살점이 갈라져 진물이 흐르고 있었고, 왼손에 낀 응고 방지 흑요석 반지는 마력 과부하로 인해 검은 표면의 미세한 균열이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전신의 마나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저체온증과 만성 빈혈은 아벨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려 했다.


그때, 철문이 조용히 열리며 행동대장 얀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9호실 내부로 들이닥쳤다. 그의 손에는 낡은 철퇴가 위태롭게 쥐여 있었다.


“아벨! 큰일났다! 안나가…… 안나가 잡혀갔어!”


얀의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지하 감옥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벨의 눈동자가 일순간 날카롭게 좁혀졌다. 말을 잃은 설근에서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만이 흘러나왔으나, 그의 눈빛은 얀에게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레오폴드의 정밀 수색조 놈들이 안나의 온실을 급습했어. 온실 바닥에 숨겨져 있던 루마 헤르바의 잔해를 찾아내고는, 이단 방조 혐의를 씌워 그녀를 끌고 갔다. 지금 아레나 의무실 지하의 임시 격리소에 갇혀 있어. 그곳에서 심문을 시작했다는데…… 안나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네 피의 마법과 우리 반란 계획을 자백하면, 결사대 전체가 목줄이 채워진 채 몰살당할 거야!”


얀의 목소리는 공포와 분노로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안나(Anna). 그녀는 아벨이 피를 흘려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체내의 피를 빠르게 재생시켜 주는 조혈의 영초 ‘루마 헤르바’를 공급해 주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그녀가 잡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의 유출을 넘어, 아벨이 더 이상 피의 마법을 지속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것은 결사대 전체의 생존을 뒤흔드는 극단적인 ‘일상적 위기’였다.


아벨은 가슴을 짓누르는 트라우마와 분노를 억눌렀다. 말을 잃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노예 시절, 크로이츠의 채찍 아래 동료들이 비명 속에 쓰러져 가던 끔찍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는 천재 언어학자 최강민의 영혼을 지닌 자였다. 위기가 닥칠수록 그의 머릿속 연산 장치는 더욱 차갑고 정교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의무실 지하 임시 격리소라…….’


아레나 의무실은 삼엄한 경비 기사단과 제국 마수 사냥대원들이 상주하는 요새와 같은 곳이었다. 정면 돌파는 자살 행위였다. 내부 지리와 은밀한 침투 경로가 필요했다. 아벨은 소매를 찢어 손가락의 피를 닦아내며, 옆에 서 있던 가르크와 얀에게 무언의 수화로 지시했다.


[의사 제라드를 찾아간다. 그가 열쇠를 쥐고 있다.]


***


깊은 밤, 아레나 의무실의 약품 냄새 가득한 개인 진료실.


알코올 중독자 의사 제라드는 평소처럼 독한 호밀주를 들이켜며 낡은 메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진료실의 창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거구의 가르크와 창백한 얼굴의 아벨이 스며들듯 들어왔다. 제라드는 놀라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으나, 이내 아벨의 목덜미에 남은 성대 수술 자국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미친 놈들…… 내 신경 접합 수술이 아무리 기적적이었다 한들, 이 야밤에 이단 혐의로 수색망이 펼쳐진 의무실에 기어들어 오다니. 제정신이냐?”


아벨은 대답 대신 제라드의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양필지 조각을 당겼다. 그리고 깨진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손끝을 살짝 찔러, 배어 나오는 검붉은 피로 단호하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안나가 지하 격리소에 갇혔다. 그녀가 입을 열면, 나에게 발성 신경 수술을 집도해 준 당신 역시 이단 공모자로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우리는 공생(共생) 관계다.]


제라드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벨의 지적이고 냉혹한 분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제국의 이단 심문관들은 꼬리를 잡으면 배후의 의사까지 모조리 영혼 정화 주술의 제물로 삼아버리는 자들이었다. 제라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벨의 피 묻은 글자를 응시하다가, 결국 서랍 깊숙한 곳에서 의무실 지하의 비밀 통로가 그려진 지도를 꺼내 놓았다.


“……의무실 약제 보관실 구석에 지하 환기구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 그곳을 통해 내려가면 격리소 내부의 감방 구역으로 바로 하강할 수 있지. 하지만 그곳은 제국 마수 사냥대원들과 경비 기사들이 상시 감시하는 곳이다. 들키는 순간 끝장이야.”


아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라드가 건넨 지도를 머릿속에 각인했다. 그의 ‘언어학적 직관’이 지도의 통로 구조와 마나 흐름의 취약 노드를 실시간으로 연산해 냈다.


***


어둡고 축축한 의무실 지하 환기구 내부.


가르크의 거구와 얀의 단단한 신체가 먼지 쌓인 철제 환기구 틈새를 소리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아벨은 맨 뒤에서 흔들리는 흑요석 반지를 움켜쥔 채 미세한 호흡을 유지했다. 마나가 고갈된 그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백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탁, 탁.


환기구 아래쪽에서 가죽 채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안나의 신음 소리가 미세하게 흘러나왔다. 아벨은 환기구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횃불이 일렁이는 지하 격리소 복도, 쇠사슬에 묶인 안나가 의자에 묶여 있었고, 징 박힌 가죽 옷을 입은 제국 마수 사냥대원 두 명이 고문 도구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


“말해라, 노예 약초사 년아. 네가 조제해 바친 루마 헤르바가 누구의 피를 채우는 데 쓰였지? 지하 감옥의 그 벙어리 노예 놈이냐?”


안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으나, 그녀의 이마에서는 땀방울과 피가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벨은 가르크에게 단호하게 눈짓했다.


쿠웅!


철제 환기구 덮개가 뜯겨 나가며, 거구의 야수 전사 가르크가 먼저 바닥으로 하강했다. 그의 거대한 배틀액스가 공기를 가르며 고문관의 어깨를 짓눌렀다. 동시에 얀이 환기구에서 뛰어내리며 자신의 철철 끓는 혈기를 철퇴에 실어 전방의 경비병을 향해 돌격했다.


“기습이다! 노예 놈들이 침투했다!”


경비병들이 방패를 치켜세우며 방진을 짜려 했으나, 얀의 무자비한 철퇴 격타가 경비병의 철제 방패를 단숨에 분쇄하며 대지를 흔들었다.


그 순간, 감옥 내부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마수 사냥대원 한 명이 벽면에 부착된 붉은색 마력 경보 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장치가 작동하는 순간, 아레나 전체의 경비대와 레오폴드의 정예 기사단이 이 지하 격리소로 몰려들 터였다.


‘막아야 한다.’


아벨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쥐어짜냈다. 전신 마나 회로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흑요석 반지의 미세한 진동에 혈류를 동조시키며 벽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새기는 것은 제국의 장황한 신성어가 아니었다.


초성 ‘ㅁ’, 중성 ‘ㅜ’, 종성 ‘ㅁ’.

그리고 초성 ‘ㅅ’, 중성 ‘ㅗ’, 종성 ‘ㄱ’.

‘무음(無音)’과 ‘가속’의 의미를 담은 한글 구조식 룬.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이 사각형 공간 안에 결합하는 기하학적 대칭성은 대기 중의 음향 진동 주파수를 O(1)의 속도로 즉각 상쇄시켰다. 아벨이 벽면에 피로 문자를 각인하는 순간, 은밀한 음파 차단 장막이 경보 장치 주변을 덮쳤다.


파지직!


사냥대원이 경보 장치의 마나 수정을 강하게 눌렀으나, 장치에서 뿜어져 나와야 할 마력 진동 주파수는 아벨이 새긴 ‘무음’ 룬의 기하학적 장벽에 갇혀 외부로 단 한 마디의 신호도 전송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했다. 완벽한 침묵의 역전극이었다.


“이, 이게 무슨…… 경보가 작동하지 않는다!”


사냥대원이 당황해 비명을 지르는 사이, 아벨은 가르크의 발목을 향해 ‘가속(風)’의 룬을 연이어 새겼다.


피의 룬이 가동되자 가르크의 전신 근육이 폭발하듯 팽창했고, 그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가르크는 바람을 가르며 돌격해, 경보 장치를 누르려던 사냥대원의 가슴을 배틀액스 자루로 강타해 벽면에 처박아버렸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격리소 안쪽 깊은 감방 문앞을 지키고 있던 제국 정예 경비 기사단 소대장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은빛 장검 표면 위로 붉은색 마력 검기(Sword Aura)가 이글거리며 피어올랐다.


“더러운 이단 노예 놈들이 감히 신성한 격리소를 더럽히는구나!”


기사단장이 검을 내리치자, 파괴적인 붉은 검기가 가르크의 전방을 가로막으며 폭발적인 충격파를 방출했다. 가르크는 대검으로 검기를 막아섰으나, 기사단의 정예 중갑 방진에 막혀 구출 작전이 지체될 위기였다.


아벨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생혈을 닦아내며, 가르크의 무기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Morpheme: Sharpness]를 대입한다.’


아벨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피의 선들이 가르크의 배틀액스 날 표면에 새겨진 ‘파괴’ 한글 조합 룬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예리(銳利)의 룬과 강화(强化)의 룬이 물리적 결합 마력으로 융합되는 순간이었다.


가르크의 도끼날이 초고주파 마력 진동을 일으키며 푸른빛으로 타올랐다. 가르크는 괴성을 지르며 도끼를 휘둘렀고, 기사단이 자랑하던 광역 충격파 방어망은 아벨의 버프를 받은 가르크의 일격에 종이처럼 찢겨 나가며 무력화되었다. 기사들의 중갑 방진이 사방으로 무너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얀! 안나의 감방 문을 부숴라!”


얀은 기세를 몰아 안나가 갇힌 무거운 철창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쇠사슬을 감아쥐고 문을 강제로 부수려 했다.


철컥! 파지직!


그 순간, 감방 문틀에 새겨져 있던 붉은색 강제 제약 주술—기사단 가르시아의 붉은 검기 인장—이 발동했다. 뜨거운 화염 마나가 얀의 어깨를 덮쳤고, 얀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어깨 가죽 옷이 타들어 가며 심각한 화상 흉터가 발생했다.


“으윽……! 문에 주술이 걸려 있다!”


아벨은 흔들리는 시야를 억누르며 안나의 감방 문앞으로 다가갔다. 연속적인 대규모 룬 시전으로 인해 그의 손끝 피부는 심하게 갈라져 피와 진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고, 극심한 빈혈로 인해 무릎이 꺾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빨을 악물고 문틀의 마나 흐름을 스캔했다.


‘고대어 형태소 분석법 가동.’


문틀에 새겨진 제국의 구속 주술은 복잡한 장식적 접두사로 가득한 조잡한 형태였다. 아벨은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문틀에 대고, 피로 한글 구조식 ‘해방(解)’의 룬을 직접 덮어씌웠다.


치이이익!


제국의 붉은 구속 마법 선들이 아벨의 백금빛 한글 룬에 의해 녹아내리듯 스러지며, 굳게 잠겨 있던 철창 문이 툭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나……!”


얀이 다급하게 안나의 사슬을 끊어내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안나는 창백한 얼굴로 아벨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벨…… 미안해…… 나 때문에……”


아벨은 말없이 안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퇴각 신호를 보냈다.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의무실 위층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지하 격리소의 반대편 복도 끝에서 묵직한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박차고 열렸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중갑을 입은 제국 경비 기사단 소대와 마수 사냥대원 수십 명이 일제히 석궁과 마력 장검을 뽑아 들며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들의 정중앙에서, 경보가 울리지 않는 것에 의심을 품고 지하로 내려온 수색 대장이 아벨 일행을 발견하고 검을 치켜들었다.


“이단 침입자들이다! 경보를 울려라! 북문 외곽 경비대 전체를 의무실로 집결시켜라!”


그와 동시에, 지하 격리소 천장에 부착된 보조 마력 종들이 굉음을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의무실 지상과 아레나 외곽 전체에 반란 진압 경보가 요동치는 소리가 지하 예배당 벽면을 타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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