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심판
지하 감옥의 공기는 언제나 썩은 물비린내와 곰팡이 냄새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돌벽의 미세한 틈새를 타고 흘러내린 오수가 바닥의 홈에 고여 검은 웅덩이를 이뤘고, 그 위로 횃불의 불완전한 주황빛이 흔들리며 괴상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파지직, 파직!
침묵을 찢어발기는 불길한 전류음이 어두운 복도를 가득 채웠다. 크로이츠가 들고 있는 마력 채찍 끝에서 푸른빛의 뇌전 아크가 사납게 날뛰었다. 그 무자비한 에너지는 무음 결계의 보이지 않는 장막에 부딪혀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오직 시각적인 광휘만을 사방으로 비산시켰다.
“쉭…… 쉭……”
아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9호실 입구의 석회 벽면에 등을 기댔다. 체내의 마나는 이미 2% 미만으로 떨어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낮 동안 제국 황실의 금서를 해독하고 감시관 클라라를 기만하기 위해 대규모 결계를 유지한 대가는 가혹했다. 전신의 뼈마디가 얼음물에 담긴 듯 시려왔고, 심장 부근은 쥐어짜는 듯한 흉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벨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크로이츠의 비열한 눈동자를 쏘아보았다.
“쥐새끼 같은 벙어리 놈.”
크로이츠가 소리 없이 입모양을 일그러뜨렸다. 무음 결계 내부였기에 그의 목소리는 대기 속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오만한 기세는 목소리보다 더 선명하게 아벨의 피부를 찔러왔다.
크로이츠의 허리춤에 매달린 ‘형벌의 은장도’가 횃불 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났다. 저 은장도는 3년 전, 아벨의 부족을 무참히 짓밟고 저항하던 아벨의 입을 강제로 벌려 혀를 잘라내던 바로 그 칼날이었다.
순간, 아벨의 성대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환각이 몰아쳤다. 잘린 혀의 단면에서 흘러내리던 비린 피의 온기, 쇠사슬에 묶인 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어야 했던 짐승 같던 시간. 말을 잃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노예 시절의 처절한 트라우마가 심장을 난도질했다. 거친 호흡과 함께 차가운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진정해라.’
아벨은 자신의 왼손 검지손가락을 세차게 움켜쥐었다. 손가락에 끼워진 [응고 방지 흑요석 반지]의 표면에 패인 미세한 실금들이 마력의 파동을 받아 희미하게 떨렸다. 반지가 전해오는 서늘한 냉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공포의 환각을 차갑게 식혀주었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순간 연산은 흐트러진다. 적의 마법은 그저 오류투성이의 코드일 뿐이다.’
아벨은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며 [언어학적 직관]을 극한으로 가동했다. 모노클을 쓰지 않았음에도, 크로이츠의 마력 채찍을 타고 흐르는 에테르 아르스의 마나 궤적이 푸른 실줄기가 되어 그의 시야에 3차원 트리 구조로 펼쳐졌다.
‘마력 강화 채찍술. 2서클 마법 기사의 정형화된 공식.’
주문 구조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전류의 전도율을 높이기 위해 배치된 고대어 형태소들은 불필요한 장식적 수식어구와 가문적 오만을 과시하는 접두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에 마나가 한 점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사방으로 분산되며 낭비되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피의 역류 방어]를 시전해 단숨에 반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벨은 철필을 쥔 손을 내렸다.
‘안 된다. 이 좁은 감옥 복도에서 피의 역류 방어를 시전하면, 채찍의 고압 전류가 철벽 장막을 타고 전도되어 그림자 속에 숨은 가르크와 록산느까지 감전될 위험이 있다. 게다가 내 잔여 마나로는 광역 장막을 유지할 물리적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물리적 좌표 자체를 일시적으로 인과율의 계산식에서 제외하는 궁극의 보명기.
[역설적 회피(Paradoxical Evasion)].
파지직! 쾅!
크로이츠가 참지 못하고 마력 채찍을 내리쳤다. 무음 결계로 인해 타격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채찍이 닿은 9호실 입구의 단단한 석회 벽면이 두부처럼 으깨어지며 사방으로 돌가루가 비산했다. 뇌전의 푸른 불꽃이 튀며 아벨의 뺨을 스쳤다. 살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크로이츠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가볍게 회수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말을 못 하는 하등한 노예 따위가 자신에게 저항할 수 있을 리 없다는 지배 계급 특유의 얄팍한 오만함이었다.
크로이츠가 다시 한번 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아벨의 가슴 정중앙, 심장을 정확히 노린 필살의 궤적이었다. 채찍 끝에 달린 형벌의 은장도가 뇌전의 에너지를 받아 검붉은 빛으로 달아올랐다.
스으읍.
아벨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자신의 검지손가락 끝을 이빨로 강하게 깨물었다. 뜨거운 생혈이 흑요석 반지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스며들며 반지의 진동을 극대화했다.
‘지금이다.’
채찍이 아벨의 가슴을 향해 광포하게 쏟아져 내리기 직전, 단 0.01초의 찰나.
아벨은 성대 깊은 곳에서 쉭 소리를 내며 머릿속으로 역설적 좌표 변환 수식을 완벽하게 연산해냈다. 자신의 존재라는 단어의 형태소를 우주의 근원 문법에서 일시적으로 '모순(Paradox)'으로 재정의하는 고도의 언어학적 변환.
스윽.
크로이츠의 마력 채찍이 아벨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다.
하지만 피는 튀지 않았다. 채찍 끝에 달린 은장도와 거친 뇌전의 불꽃은 아벨의 몸을 마치 허공에 비친 홀로그램인 양 그대로 투명하게 통과해 뒤쪽 돌바닥을 강타했다. 돌바닥이 깨어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일었지만, 아벨의 육체는 그 어떤 물리적 충격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크로이츠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채찍이 노예의 몸을 통과해 바닥을 쳤다는 인지 부조화. 그 오만한 지배자의 이성이 경악으로 마비된 1초의 공백.
그 짧은 비존재의 잔상 속에서, 아벨은 앞으로 돌진했다.
피가 흐르는 검지손가락 끝이 허공을 가르며 크로이츠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 나갔다. 아벨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손가락 끝의 피로 크로이츠의 목 가죽 위에 세 개의 한글 자모음을 신속하게 새겨 넣었다.
초성 ‘ㅅ’, 중성 ‘ㅣ’, 종성 ‘ㅁ’.
그리고 ‘잠잠할 침(沈)’과 ‘침묵’의 의미적 형태소를 결합한 기하학적 블록.
검붉은 피의 선들이 크로이츠의 목 피부 속으로 스며들며 눈부신 백금빛의 룬 각인으로 고착되었다.
[침묵(Silence)의 룬]이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
크로이츠가 급히 뒤로 물러서며 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소리를 질러 복도 외곽의 경비병들에게 경보를 전송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성대는 완벽하게 묶여 있었다. 목구멍을 넘어 뿜어져 나와야 할 음성 주파수가 한글 룬의 기하학적 장벽에 걸려 강제로 소멸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대와 연결된 전신의 마나 회로가 침묵 룬의 제약 문법에 동조되어 굳어버렸다. 채찍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서 푸른 전류가 힘없이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크로이츠는 목을 쥐어짜며 바람 빠지는 소리만을 낼 뿐, 단 한 마디의 신성어도 외우지 못했다.
목소리를 잃고 당황한 지배자의 얼굴에 처참한 공포가 서서히 물들었다. 자신이 노예들에게 강요했던 그 '침묵'의 형벌이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스스스.
크로이츠의 배후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사자 갈기 같은 황금빛 머리칼을 흩날리는 야수 수인 전사, 가르크였다. 가르크는 아벨의 무언의 눈빛을 받고 이미 크로이츠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가르크의 단단한 근육질 양팔이 거대한 배틀액스를 꼬아 쥐었다. 도끼날 표면에는 아벨이 새겨둔 ‘파괴’의 한글 조합 룬이 검붉은 빛을 발하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스윽.
무음 결계 내부였기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직 찬란한 금속성의 궤적만이 허공을 둥글게 그렸다.
서걱!
가르크의 분노 어린 배틀액스가 크로이츠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완벽하게 양단했다. 강철 갑옷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크로이츠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눈동자를 뒤집으며 차가운 돌바닥 위로 쓰러졌다.
털썩.
원수의 시체가 바닥의 오물 웅덩이에 처박혔다.
“하아…… 하앗……”
아벨은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다. 역설적 회피의 시공간 왜곡 반동이 전신을 덮쳐왔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극심한 멀미와 함께, 위장이 뒤틀리며 검붉은 피가 목구멍을 타고 울컥 쏟아져 나왔. 마나 회로가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가르크가 황급히 도끼를 내려놓고 아벨의 어깨를 든든하게 부축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아벨을 향한 깊은 경외감과 충성심이 서려 있었다.
록산느 역시 어둠 속에서 스며나와 크로이츠의 품을 뒤져 ‘형벌의 은장도’를 수거했다. 그녀는 아벨의 손바닥 위에 신속하게 수화를 새겼다.
[처단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곧 아침 순찰대가 이 지하 감옥 복도를 지날 것입니다. 크로이츠의 시체가 발견되면 간수장의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어 결사대의 정체가 탄로 날 것입니다.]
아벨은 피 묻은 입술을 겨우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바닥의 오물 위에 흐릿하게 글씨를 적었다.
[시체에 무거운 고철들을 묶어라. 그리고 저 깊고 어두운 지하 하수도 미로 속으로 던져버려라. 흔적을 완전히 지워야 한다.]
가르크와 록산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크는 크로이츠의 시체를 가볍게 짊어지고, 록산느는 주변 복도의 고철 쓰레기더미에서 무거운 쇠사슬과 부러진 철판들을 가져와 그의 몸에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아벨은 차가운 지하 감옥 벽에 기대어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원수를 심판했다는 지적 카타르시스 뒤로, 전신을 짓누르는 극도의 피로감과 다가올 아침의 경보망이 무거운 사슬처럼 그의 목을 다시 옥죄어 오고 있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