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에서의 사투와 바르도의 가르침
철컥, 콰앙!
무거운 무쇠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지하의 음산한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뒤이어 쇠사슬이 얽히고 거대한 자물쇠가 잠기는 둔탁한 파찰음이 들렸다. 간수들의 멀어지는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그곳에 남은 것은 완벽하고도 절대적인 암흑이었다.
지하 5층 제1독방. 타르타로스 대감옥에서도 가장 깊은 심연에 위치한 징벌방이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로건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의 벽은 소리마저 빨아들이는 특수 마법 석재로 마감되어 있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고막을 터뜨릴 듯이 쿵쾅거렸다.
‘자가 진단을 시작한다.’
로건, 아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수석 법의관이었던 김민혁은 본능적으로 이성을 붙잡았다. 감각 차단실과 다름없는 이 공간에서 공포에 질려 정신을 놓는 순간 자아는 붕괴한다. 그는 의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자신의 신체 신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심박수 분당 115회. 호흡수 분당 24회. 아드레날린 과다 분비로 인한 미세한 손떨림 감지. 전두엽의 인지 왜곡이 시작되기 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민혁은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며 자율신경계를 통제했다. 하지만 육체적인 한계는 명확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영양실조와 간수장 크롤에게 맞은 등 가죽의 상처가 비명을 질렀다.
가장 심각한 것은 왼손이었다.
대공의 뇌하수체에서 사후 마력을 자극해 ‘망자의 3초 잔류 기억’을 강제로 적출해 낸 반동이 왼손 신경망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손가락 끝은 감각을 잃은 채 은빛 결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팔꿈치 아래로는 얼음물을 끼얹은 듯 시린 통증이 지속되었다.
거기에 목과 양 손목을 구속하고 있는 ‘간수용 마력 억제 족쇄’가 무겁게 짓눌러 왔다.
철컥.
로건이 몸을 일으키려 손목을 움직이자, 족쇄 표면에 새겨진 마법 룬 문자가 붉게 반응하며 뇌리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으윽……!”
억제 족쇄의 마력 역류 주술이었다. 구속된 죄수가 억지로 힘을 쓰거나 마력을 방출하려 하면, 신경계를 직접 타격해 극심한 두통과 근육 마비를 유발하도록 설계된 잔인한 도구였다. 억지로 풀려 할수록 손목의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마력 화상만이 축적될 뿐이었다.
완벽한 고립. 그리고 무력화.
케네스와 크롤은 이 독방에서 로건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려, 대공 암살의 누명을 자백하는 서류에 강제로 지장을 찍게 만들 작정이었다.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단 48시간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삐이이— 하는 이명 소리 뒤로, 전생의 국과수 부검실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사체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환각처럼 귀가를 맴돌았다.
‘정신 차려, 김민혁. 이건 감각 차단이 유도하는 전형적인 뇌의 인지 왜곡일 뿐이다. 속지 마라.’
그가 자신의 허벅지를 오른손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자해를 통해서라도 감각을 깨우려던 그때였다.
“어이, 새로 들어온 친구. 헛수고하지 말게.”
벽 너머, 아니 바로 이웃한 철창 모퉁이의 어둠 속에서 낮고 갈라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 석재로 인해 소리가 극도로 감쇄되어 들렸지만, 분명히 인간의 목소리였다.
로건은 호흡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 족쇄는 억지로 힘을 쓸수록 뼈를 깎는 고통을 주도록 제련되었지. 자네가 아무리 강인한 육체를 가졌어도, 그 주술 회로를 힘으로 깨뜨릴 수는 없네.”
“……누구십니까?”
로건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바르도(Bardo)라고 하네. 이 타르타로스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평생 돌과 쇠를 깎아온 맹인 조각가지.”
바르도. 로건은 스승 발타자르의 암호 노트 조각에서 그 이름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전설적인 천재 조각가였으나, 황실의 금기 주술 도구를 조각했다는 누명을 쓰고 눈이 멀어 수감된 장기수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조각을 하십니까?”
로건의 질문에 벽 너머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눈으로 보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네. 진짜 형태는 손끝에 닿는 미세한 저항과 마력의 떨림 속에 있지. 어둠은 빈 공간이 아닐세. 자네의 손끝이 예민하다면, 이 어둠 속에서도 공기의 미세한 흐름과 쇠붙이 내부의 결이 입체적인 도화지처럼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게야.”
형태는 손끝에 닿는 저항과 떨림 속에 있다.
그 말은 현대 법의관으로서 수천 구의 시신을 부검하며 미세한 신경과 혈관을 분리해 내던 김민혁의 직업적 감각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보지 않고도 손끝의 감각만으로 0.1mm 두께의 동맥을 찾아내던 그 손 기술.
“바르도 님. 제게…… 그 손끝의 감각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호, 천민 시체 수거인 주제에 지적 호기심이 대단하군. 좋네. 어차피 이 어둠 속에서 시간은 넘쳐나니까. 자네의 손을 족쇄에 대 보게. 그리고 눈을 감아라. 이미 어둠 속이지만, 마음의 눈마저 감고 손가락 끝의 세포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걸세.”
로건은 바르도의 지시에 따라 오른손을 들어 손목을 묶은 철제 족쇄의 차가운 표면에 가져다 대었다.
“쇠붙이는 살아있네. 그 안에 흐르는 마력의 룬 회로는 물길과 같지. 손가락 끝으로 철 표면의 미세한 온도의 고저를 느껴 보게. 마력이 흐르는 길은 주변보다 미세하게 차갑거나 뜨겁다네.”
로건은 호흡을 극도로 낮추고 손끝의 촉각을 예민하게 다듬었다. 그의 뇌리 속에서 현대 인체 해부학의 정밀한 신경망 지도가 펼쳐지며, 손끝의 말초신경들이 극한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단순히 차가운 쇳덩이인 줄만 알았던 족쇄 표면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규칙적이고 아주 미약한 파동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맥박처럼, 족쇄 내부의 마법 룬 회로가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좋아, 아주 영리한 친구로군.”
벽 너머에서 바르도가 로건의 호흡 변화를 감지했는지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제 그 진동의 중심을 찾아보게. 족쇄의 자물쇠 내부에는 기계식 핀과 마력 억제 룬의 접합점이 있네. 그 접합점은 자네가 쇠붙이를 자극할 때 미세하게 마찰음이 달라지는 구역이지. 손끝의 진동만으로 내부의 기형적인 결합을 인지하는 것, 그것이 내가 돌을 깎을 때 쓰던 ‘미세 촉각’의 비기일세.”
로건은 침을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서 바르도의 조각적 청각 유도가 시작되자, 어둠 속의 족쇄 내부 구조가 머릿속에서 3D 도면처럼 서서히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품속을 뒤적였다.
간수들이 들이닥치기 전, 가죽 작업복 바지 안쪽 솔기에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작은 백은 메스 날 조각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크롤이 장부를 찾느라 로건의 몸을 대강 수색한 덕분에 용케 빼앗기지 않은 마지막 무기였다.
로건은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으로 작은 백은 메스 날을 쥐고, 족쇄의 아주 미세한 열쇠구멍 틈새로 밀어 넣었다.
*스윽, 스으윽.*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극도로 미세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보통의 죄수라면 메스를 넣는 순간 마력 억제 주술이 발동해 뇌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었을 터였다. 하지만 로건의 오른손 끝은 바르도의 가르침에 따라 마법 회로의 흐름을 비껴가고 있었다.
메스 날 끝이 족쇄 내부의 황동 핀에 닿았다.
‘첫 번째 핀, 마찰 저항 약 50g. 두 번째 핀, 미세한 주술 전도성 감지. 이 부분을 건드리면 마력 역류가 일어난다.’
로건은 신경 수술을 집도하듯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눈가에 맺혔지만 눈을 깜빡일 여유조차 없었다. 오직 메스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회전 저항력에만 우주 전체를 집중시켰다.
‘두 번째 주술 핀을 우회하고, 세 번째 기계식 고정 핀의 스프링 장력을 누른다.’
*핀셋으로 신경 다발을 골라내듯, 아주 미세한 각도로 메스를 비틀었다.*
*틱.*
족쇄 내부에서 아주 미세한 기계적 마찰음이 들렸다. 마력 억제 주술의 붉은 불꽃이 일지 않았다. 주술 회로를 건드리지 않고 기계식 고정 장치만을 완벽하게 무력화한 것이었다.
“지금일세, 돌려라!”
바르도의 나직한 외침과 동시에 로건은 손목을 꺾으며 메스 끝에 회전력을 가했다.
철컥! 털썩!
묵직한 철제 족쇄가 양 손목에서 힘없이 풀려나며 차가운 돌바닥 위로 떨어졌다. 동시에 목을 조이고 있던 마력 억제 장치 역시 스르륵 풀려나갔다.
양 손목에 자유가 찾아왔다. 마력 억제 주술이 걷히자, 가슴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특이 마력 친화성의 불꽃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전신으로 온기가 퍼져나갔다. 마비되었던 왼손의 끝에도 아주 미약하지만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로건은 해방된 양손을 내려다보며 벅차오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미신과 마법으로 포장된 제국의 구속구조차,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미세 촉각과 해부학적 정밀함 앞에서는 한낱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해냈군, 젊은 친구. 내 가르침을 단 한 시간 만에 깨닫다니…… 자네는 정말 괴물이네.”
벽 너머 바르도의 목소리에 깊은 경외감이 담겨 있었다.
로건이 바닥에 떨어진 족쇄를 주워 들고 바르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옥 같은 침묵이 지배하던 지하 5층의 복도 저편, 또 다른 깊은 벽 너머에서 늙고 쇠약한 남자의 마른 기침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쿨럭, 쿨럭…….”
혀가 잘려 말을 잃은 전대 황실 수석 의사, 발타자르의 은밀한 응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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