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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 살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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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이익—!


백은의 메스 ‘아스클레피오스’가 알리스터 대공의 창백한 가슴 피부를 가르는 순간, 절개선 틈새로 피어오른 것은 붉은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괴하고 짙은 보라색 연기였다. 지하 안치소의 차가운 공기와 만난 연기는 순식간에 썩은 유황과 비린내 섞인 악취를 풍기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의, 의원님! 가스가……!”


옆에서 해부용 받침대를 들고 대기하던 견습 조수 토토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던 비밀 해부실이 순식간에 음산한 주술적 기운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로건은 눈을 찌푸렸다. 이 보라색 연기는 단순한 사체 부패 가스가 아니었다. 암살자들이 대공을 독살한 후, 사인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신 내부에 걸어둔 ‘주술적 덫’이었다. 가스를 들이마시는 순간 호흡기 점막이 괴사해 검시관을 즉사시키거나, 시신 자체를 부식시켜 흔적을 없애려는 치밀한 안배였다.


“토토, 물러서지 마라! 당장 식초 탄산수액 분사기를 가져와!”


로건은 가죽 방수 앞치마의 끈을 단단히 조이며 차갑게 외쳤다. 그는 이미 주술 독가스 정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은빛 이끼 필터가 내장된 마스크 너머로 로건의 호흡음이 무겁게 울렸다.


토토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끓인 식초와 소금물, 그리고 탄산수가 배합된 분사기를 들어 올렸다. 로건은 분사기를 받아 대공의 절개 부위에 가차 없이 뿜어댔다.


*치이이이익—!*


식초의 강한 아세트산 성분과 소금물의 염소 이온이 탄산수의 압력을 타고 분출되며 보라색 연기와 격렬하게 충돌했다. 연금술로 합성된 주술 가스는 현대 화학적 산성 중화 반응 앞에 급격히 힘을 잃었다. 보라색 연기는 거품을 일으키며 안치대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침전되었다.


“후우…….”


로건은 숨을 고르고 메스를 다시 고쳐 쥐었다. 손끝의 미세 촉각이 백은 메스의 손잡이를 통해 대공의 단단하게 굳은 흉골 부근의 저항력을 고스란히 전달해 왔다. 마력 전도율이 제로에 수렴하는 백은 메스 ‘아스클레피오스’는 독소 가스의 방해 공작 속에서도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가운 인광을 발하고 있었다. 이 도구가 없었다면 첫 절개 단계에서 주술적 반발 폭발이 일어나 시신과 안치소 전체가 날아갔을 터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토토, 기록 준비해.”


“예, 예! 나리!”


토토는 갈라진 손끝으로 깃털 펜을 쥔 채, 로건의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로건의 위생 소독법 덕분에 손의 진물이 가라앉은 소년은 이제 그를 단순한 사형수가 아닌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로건은 정교한 Y자 절개를 통해 대공의 흉강과 복강을 완전히 개방했다. 대리석 돌침대 위로 대공의 내부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건은 왼쪽 눈에 밀착된 은빛 외안경 ‘베리타스’를 톡톡 두드렸다. 미세한 마력을 흘려보내자, 렌즈가 푸른빛으로 빛나며 장기 세포 속에 숨겨진 마력의 흐름을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로건의 시선이 향한 곳은 대공의 위장(胃臟)이었다.


‘위 내용물 소화도 분석법을 적용한다.’


로건은 백은 메스로 위벽을 조심스럽게 가른 후, 내부의 소화액과 음식물 찌꺼기를 채취했다. 위장 내부에는 대공이 사망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섭취한 야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약간의 양고기 조각과 잘게 부서진 허브 잎사귀들.


로건은 핀셋으로 양고기 조각을 들어 올려 표면의 부식 상태를 관찰하고, 위산의 pH 농도를 측정했다.


“양고기의 단백질 변성도가 극히 낮아. 위산에 의한 부식 흔적이 거의 없다. 소화가 시작된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위장 활동이 완전히 정지했다는 뜻이지.”


로건의 건조한 설명에 토토가 받아 적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화가 멈췄다는 건…… 먹자마자 바로 죽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대공이 마지막 야식인 허브 차와 양고기를 먹은 시각은 대공가 기록에 따르면 저녁 7시 30분이다. 그렇다면 대공의 실제 사망 시각은 저녁 8시경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로건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교단은 대공이 자정에 평화롭게 승천했다고 발표했지. 하지만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자정과 저녁 8시 사이에는 무려 4시간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 4시간 동안, 암살자들은 대공의 시신을 붙잡아두고 가짜 유서를 작성하며 현장을 조작한 거야.”


이것이 바로 현대 법의학이 증명해 낸 첫 번째 인과관계였다. 교단과 이단심문관 케네스가 주장한 알리바이를 밑바닥부터 박살 내는 결정적인 단서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공이 자연사나 병사가 아닌 ‘독살’당했음을 증명할 물리적 실물 증거가 필요했다.


로건은 위장 점막 세포를 베리타스 외안경으로 정밀 투시했다. 그러자 위벽 깊숙한 곳에서 일반적인 생체 조직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파동이 감지되었다. 세포 핵 주위로 푸른색의 미세한 결정들이 기생충처럼 엉겨 붙어 맥동하고 있었다.


“찾았다.”


로건은 품속에서 은제 독소 반응 시약 침을 꺼냈다. 특수 연금술 시약이 코팅된 은침을 대공의 위장 점막 괴사 조직에 찔러 넣었다.


*스으으으—*


은침이 조직에 닿는 순간, 침의 끝부분이 검게 변하는 동시에 찬란하고도 서늘한 청색 광 파동이 흘러나왔다. 유리 시험관 속으로 걸러진 미세한 결정들이 모래알처럼 가라앉았다.


“이것은…… ‘청색 살의 독소 잔류물’이네.”


로건이 중얼거렸다. 황실 약제사 길드가 독점하는 금기 마력 독소. 은침 반응 시 특유의 청색 광을 뿜어내며 체내 세포를 강제로 괴사시키는 치명적인 독약이었다. 대공의 사인이 단순 심장마비가 아닌, 정교하게 기획된 연금술 독살임이 완벽하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적어라, 토토. 대공의 위 점막 세포에서 고농도의 청색 살의 독소 검출. 사후 마력 침전 속도로 보아 치사량의 3배 이상이 야식에 섞여 투여됨.”


“예, 예! 나리! 적었습니다!”


토토의 이마에도 긴장 어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대공을 죽인 진짜 범인의 흔적이 마침내 로건의 손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로건의 눈빛은 만족하지 못했다. 독소의 실체는 밝혔으나, 이 독약을 대공에게 직접 먹인 하수인의 정체와 그 배후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재판정에서 케네스를 단죄할 수 없었다. 물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필요했다.


로건은 백은 메스를 들어 대공의 두개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망자의 3초 잔류 기억을 추출한다.’


이것은 시신의 뇌하수체에 잔류하는 마지막 마력 핵을 자극하여, 망자가 죽기 직전 목격한 마지막 3초의 시각 정보를 자신의 자아와 동기화하는 극도로 위험한 주술 의학 기술이었다.


로건은 메스 끝의 미세 촉각을 극대화했다. 대공의 뇌 조직은 독소의 파괴 작용과 사후 괴사로 인해 이미 일부 붕괴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뇌하수체 중앙의 미세 마력 핵을 건드리는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라도 발생한다면, 뇌 세포 전체가 녹아내려 기억은 영구히 소멸할 터였다.


*서걱…… 서걱…….*


숨이 막힐 듯한 고요 속에서 백은 메스가 뇌하수체 주변의 미세 신경망을 박리해 나갔다. 로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족쇄의 마력 억제 주술이 그의 신경을 압박해 오며 머릿속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로건은 한국 국과수 시절 수천 번의 미세 뇌부검을 집도했던 감각을 되살려 내며, 메스의 날끝을 0.1mm 단위로 제어했다.


마침내, 대공의 뇌하수체 중앙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반투명한 푸른색 마력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건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백은 메스 끝으로 그 마력 핵을 정교하게 찔러 자극했다. 동시에 자신의 정신을 시신의 신경망과 동기화시켰다.


*콰아아아아—!*


순간, 로건의 눈앞이 완전히 암전되었다.


머릿속이 도끼로 찍히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이세계의 주술적 저주와 망자의 잔류 사념이 로건의 뇌세포를 무자비하게 헤집기 시작했다. 로건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버텨야 한다. 내 자아를 잃지 마라. 나는 법의관 김민혁이다!’


그가 자신의 이성적 자아를 정신적 닻으로 삼아 비명을 지르는 원혼들의 사념을 밀어내자, 흑백의 시야가 기괴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알리스터 대공의 눈으로 보는 마지막 3초의 세상이었다.


어둡고 화려한 대공가의 개인 집무실. 대공은 책상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목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 속에서, 대공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눈앞에는 은반지를 낀 가냘픈 손이 야식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대공에게 독이 든 허브 차를 바친 하수인, 대공가의 시녀였다. 대공의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둥글고 앳된 얼굴에 겁에 질린 듯한 눈동자. 그리고 그녀의 갈색 머리칼에는 백합 모양의 정교한 은빛 머리핀이 꽂혀 있었다.


그 은빛 머리핀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남부의 방계 귀족인 제라드 백작 가문의 문양이 미세하게 음각되어 있는 특별한 표식이었다.


그리고 대공이 쓰러지기 직전, 시야의 가장자리인 문가 어둠 속에서 한 사내의 실루엣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색 이단심문관 로브를 입고, 가슴에는 커다란 금빛 십자가를 찬 사내. 차갑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공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는 이단심문관 케네스였다.


*“평안히 잠드십시오, 대공.”*


케네스의 서늘한 목소리가 대공의 마지막 청각 신경을 울리는 순간, 3초의 기억은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허윽—!”


로건은 격렬한 기침과 함께 동기화에서 깨어났다. 입안에서 비릿한 핏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의 왼쪽 눈에서 붉은 피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뇌하수체 자극의 부작용으로 인한 극심한 신경 과부하였다. 그의 왼손 신경망이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되어 은빛 결정처럼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토토가 비명을 지르며 로건을 부축했다.


로건은 마비된 왼손을 가슴에 얹은 채, 피 묻은 입술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괜찮다……. 범인의 얼굴을 봤어.”


대공에게 직접 독배를 건넨 자는 제라드 백작의 사주를 받은 대공가의 시녀 마리였고, 그 배후에서 암살을 지휘하고 은폐한 자는 이단심문관 케네스였다. 세포에 새겨진 물리적 증거와 망자의 기억이 가리키는 진실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하지만 카타르시스도 잠시, 로건의 귀에 안치소 벽 너머 지하 복도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쿵! 쿵! 쿵!*


수십 명의 장정들이 무거운 철제 군화를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 파동이 지하 4층의 석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간수들의 거친 고함과 함께 쇠사슬이 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수장 크롤이 대공의 시신을 강제로 회수하고 로건을 처단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지하 안치소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소각 유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물리적인 위협이 그들의 턱밑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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