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안치소의 금기된 시선
간수들이 던져준 썩은 빵을 보며 감옥 내부의 고질적인 오염을 간파한 로건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철창 너머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불규칙했다. 가볍게 디디는 오른발의 소리에 비해, 왼발이 바닥에 닿을 때는 둔탁하고 무거운 끌림이 섞여 있었다. 쩔뚝이는 걸음걸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수석 법의관 시절, 수없이 많은 환자와 사체의 보행 분석을 해왔던 김민혁의 뇌리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좌측 하지의 급성 관절염, 혹은 만성적인 납 중독으로 인한 말초신경 장애.’
이윽고 독방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낡은 경비병 제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굽은 어깨에 피로가 가득한 눈을 한 서른대반의 감옥 경비병, 토마스(Thomas)였다. 그는 한 손으로 열쇠 꾸러미를 덜컹거리며, 다른 손으로는 은밀하게 자신의 왼쪽 허벅지를 주무르고 있었다. 얼굴에는 황달의 기운이 완연했고, 입술은 납 중독 특유의 푸르스름한 선이 미세하게 감돌았다.
“어이, 사형수. 시간 됐다. 제3시체안치소로 이동한다.”
토마스의 목소리는 쌕쌕거리는 천명음이 섞여 거칠었다. 로건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과 손목을 옥죄는 마력 억제 족쇄가 차갑게 요동쳤지만, 그는 자극하지 않기 위해 손끝의 마력을 철저히 침묵시켰다. 이 족쇄의 미세한 틈새를 열기 위해서는 우선 감옥 내부에서의 물리적 자유와 동조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눈앞의 토마스는 가장 완벽한 타겟이었다.
지하 4층의 어둡고 습한 복도를 지나 요새의 가장 깊은 구석으로 향하자, 무거운 석문이 가로막고 있는 제3시체안치소가 나타났다. 석문이 열리자마자 뿜어져 나온 것은 숨이 턱 막히는 악취였다. 부패해가는 유기물의 비린내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좁은 안치소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서 시체를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해라. 쓸데없는 짓을 하면 바로 채찍이다.”
토마스는 석문 옆의 벽에 기대어 서며 차갑게 뱉었다. 그의 이마에는 통증을 참느라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안치소 내부에는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난 열다섯 남짓한 소년이 낡은 걸레를 든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시체 수거소의 견습생, 토토(Toto)였다. 소년은 로건이 들어서자 저주받은 사형수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세계에서 시체를 만지는 자들은 신의 저주를 받은 천민으로 여겨져 철저히 멸시당했다. 소년의 손끝은 부패한 시독(尸毒)의 전염을 두려워해 온통 갈라지고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로건은 천천히 안치소 내부를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정체불명의 오물과 핏자국이 방치되어 있었고, 돌침대 위에는 방금 이송된 듯한 죄수의 사체가 아무런 가리개도 없이 놓여 있었다. 현대의 법의관 기준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비위생적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시신을 만지면 저주가 아니라 패혈증으로 죽는 거다.”
로건의 건조한 중얼거림에 토토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로건은 족쇄에 묶인 손을 움직여 구석에 방치된 낡은 양동이와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얘야. 물을 끓여 와라. 그리고 식초와 소금이 있다면 있는 대로 가져와.”
“예, 예...? 하지만 시체를 만지면 저주가...”
“저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물 속의 균은 네 갈라진 손끝으로 침투해 네 목숨을 앗아간다. 살고 싶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로건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의학적 권위가 실려 있었다. 토토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치소 구석의 화로로 달려가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로건은 끓는 물에 식초와 소금을 섞어 천연 소독액을 만들었다. 그리고 걸레를 삶아 안치대의 돌침대와 바닥의 핏자국을 철저히 닦아내기 시작했다. 퀴퀴한 부패취가 식초의 시큼한 향과 고열의 증기에 씻겨 나가며, 어둡고 음산했던 안치소의 공기가 점차 맑게 정화되어 갔다.
어느 정도 청결이 확보되자, 로건은 돌침대 위에 누워 있는 무연고 죄수의 사체 앞으로 다가갔다. 사인을 규명하고 이 세계의 마력 법칙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검시의 순간이었다.
로건이 숨을 죽이고 사체의 차가운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그의 심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아스클레온 가문의 특이 마력 친화성이 요동쳤다. 김민혁이 평생을 바쳐 구축한 현대 해부학적 3D 인지 능력이 이세계의 육체적 특성과 결합하며, 그의 뇌리에 기괴한 시각적 변화가 일어났다.
스우우우.
눈앞의 시신이 서서히 반투명하게 투시되기 시작했다. 피부 아래의 근육 조직, 혈관의 분포, 그리고 장기의 형태가 정교한 입체 도면처럼 겹쳐 보였다. 이것이 바로 망자의 사후 마력 반응과 신체 손상도를 세포 단위로 읽어내는 ‘마력 해부안(魔力 解剖眼)’이었다.
사체의 폐 조직 주변에 희미하게 잔존하는 푸른색 마력 파동의 흐름이 보였다. 폐포가 비정상적으로 수축되어 있었고, 기도 내부에는 미세한 그을음과 함께 마력 침전물이 보라색 선을 그리며 굳어 있었다.
‘사인은 단순 병사가 아니다. 기도를 강제로 폐쇄하는 마법적 질식사, 혹은 연금술 독소에 의한 급성 호흡 부전.’
메스를 대기도 전에 사체의 내부 비밀이 그의 뇌리에 완벽한 인과관계로 각인되었다. 이 마력 해부안만 있다면, 아무리 정교한 주술 암살이라도 세포에 새겨진 살해 흔적을 완벽히 도려내 증명할 수 있었다. 로건의 심장이 차가운 지적 투지로 맥동했다.
“아아악! 빌어먹을...!”
그때, 안치소 벽에 기대어 서 있던 경비병 토마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자신의 왼쪽 발목을 움켜쥔 채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엄지발가락 관절 부위가 마치 붉은 자두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고, 미세한 스침에도 살을 에는 듯한 극통을 느끼는 상태였다. 전형적인 통풍의 급성 발작이었다.
로건은 사체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토마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라! 이 저주받은 사형수 놈이...!”
토마스가 허리춤의 곤봉을 쥐려 했으나, 관절의 통증이 너무나 극심해 손가락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고 바닥을 긁었다.
로건은 무릎을 꿇고 토마스의 부풀어 오른 관절 부위를 차분히 관찰했다. 그의 눈동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의관의 그것이었다.
“통풍(Gout)이군요. 관절 내부에 요산 결정이 바늘처럼 돋아나 신경을 찌르는 질환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 감옥 내부의 고질적인 납 중독입니다.”
“...뭐, 뭐라고?”
“이 감옥의 식수관은 녹슨 연납 파이프를 씁니다. 게다가 배식되는 빵 역시 납 분진에 오염되어 있죠. 당신의 안구 공막이 노랗게 변한 황달과 입술의 푸른 선은 체내에 납이 쌓여 신장이 망가졌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신장이 요산을 배출하지 못하니, 발목에 저주 같은 통증이 찾아오는 겁니다.”
토마스는 멍하니 로건을 바라보았다. 신전의 치유사들도 ‘마력의 불균형’이니 ‘신의 시험’이니 하는 모호한 말만 늘어놓았을 뿐,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토록 정교하게 짚어낸 자는 없었다.
“내, 내가 신전에서 비싼 돈을 주고 성수(Holy Water)를 사서 마셨단 말이다! 그런데도 왜 점점 심해지는 거냐!”
로건의 입꼬리가 냉소적으로 올라갔다.
“그 성수라는 것, 일시적으로 통증을 마비시키는 마약성 흥분제가 섞여 있을 뿐입니다. 일시적으로 아픔은 가시겠지만, 성수의 화학 성분은 당신의 신장을 더 빠르게 파괴합니다. 계속 마셨다간 반 년 내로 왼쪽 다리를 완전히 잘라내야 할 겁니다.”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말에 토마스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감옥 경비병에게 다리 절단은 곧 직장과 생계의 상실, 그리고 빈민가에서의 비참한 죽음을 의미했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이 뭘 안다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발목은 지금 당장이라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로건은 토마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상대의 절박함을 레버리지로 삼는 차가운 협상가로서의 시선이었다.
“나에게 거래를 제안하라는 건가?”
토마스가 이를 갈며 물었다.
“약고에 직접 침입하는 것은 삼엄한 경비 때문에 불가능하더군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가능하겠죠. 약고에서 흔히 구하는 기본 약재 몇 가지와 증류된 독주를 가져다주십시오. 내가 체내의 납 성분과 요산 결정을 강제로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납 중독 방지 정혈제’를 조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퓨린이 가득한 맥주와 고기 배식을 끊고 끓인 물을 매일 3리터씩 마시는 식이요법을 따르십시오.”
로건은 손가락으로 안치소 내부의 깨끗해진 바닥을 가리켰다.
“대신, 나에게 이 안치소 내에서의 위생 관리 권한과 청소 도구의 자유로운 사용, 그리고 외부와의 연락을 묵인해 주십시오.”
토마스는 쓰러진 채 격렬하게 갈등했다. 사형수의 말을 믿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지만, 발목을 찌르는 극통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로건이 제시한 감옥의 오염 실태와 자신의 신체 징후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좋다. 만약 네놈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사형 집행 전에 내 손으로 직접 네놈의 가죽을 벗겨내 주마.”
거래는 성립되었다.
몇 시간 뒤, 토마스는 경비병의 권한을 이용해 약고에서 로건이 요구한 약초들과 증류주를 은밀히 반입했다. 로건은 안치소 구석의 화로를 사용해 화학적 비전 공식에 따라 약재를 삶고 알코올과 배합하여 간이 ‘납 중독 방지 정혈제’를 완성했다. 투명한 시약병에 담긴 정혈제는 미세한 은빛 광택을 띠고 있었다.
“이것을 하루 세 번 복용하고, 내가 말한 대로 오염되지 않은 끓인 물을 끊임없이 마십시오.”
토마스는 반신반의하며 정혈제를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씁쓸하면서도 타는 듯한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전신으로 퍼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안치소의 석문이 열리며 들어온 토마스의 걸음걸이는 어제와 완전히 달랐다. 쩔뚝이던 왼쪽 다리가 바닥을 곧게 디디고 있었다. 발목의 붉은 부종은 기적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늘 피로에 찌들어 황달이 감돌던 그의 안색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허벅지를 주무르지 않았으며, 걸을 때마다 나던 둔탁한 쇳소리도 사라졌다.
토마스가 완치된 다리로 제대로 걷기 시작하자, 안치소의 견습생 토토가 로건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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