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병장 법정의 막이 오르다
어젯밤, 대공비 비아트리스가 보낸 비밀 밀사가 전한 가죽 봉투 속에는 젖은 양피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대공가의 공식 인장과 함께 짧지만 뼈를 깎는 듯한 대공비의 친필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내 남편의 육신을 갈라 서라도 진실을 밝혀라. 교단이 가로막는다면, 대공가의 이름으로 그들의 성역을 부수겠다.]
그 피 묻은 결의를 품은 채, 마침내 타르타로스 대감옥의 거대한 심장이 열렸다.
차가운 새벽비가 갠 연병장의 아침 공기는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웠다. 타르타로스의 높은 석조 성벽이 드리운 거대한 음영 아래, 수백 명의 광신도 군중과 죄수들이 빼곡히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연병장 중앙에 급조된 야외 재판정은 그야말로 합법을 가장한 도살장이나 다름없었다.
“이단 사형수를 처형하라!”
“대공 님의 시신을 모독한 사령술사 놈에게 신의 심판을!”
군중이 내뿜는 적대적인 열기와 광기 어린 함성이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로건은 피고인석의 거친 나무 의자에 쇠사슬로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차가운 독방 감금으로 인해 그의 육체는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핏기 없는 안색의 그가 가벼운 기침을 뱉을 때마다, 쇠사슬이 짤랑이는 쓸쓸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만큼은 전생의 국과수 수석 법의관 김민혁 시절과 다름없이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재판정의 가장 높은 단상 위에는 화려한 법관 가운을 입은 줄리안 판사가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탐욕과 오만함이 가득했다. 줄리안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방청석 귀빈석에 앉아 있는 제라드 백작과 은밀한 눈빛을 교환했다. 제라드 백작의 콧수염 아래로 비열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고, 줄리안은 묵직한 황금빛 재판정 의사봉을 만지작거렸다. 이미 판결은 정해져 있다는 듯한 무언의 약속이었다.
줄리안의 바로 옆자리에는 피처럼 붉은 이단심문관 로브를 입은 케네스가 승리감에 도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의 가슴에 걸린 금빛 십자가가 아침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그리고 그 대척점, 배심원석과 참관인석 사이에는 제국 사법부 감찰국 소속의 젊은 법률가, 루카스가 두꺼운 법률 가죽 책을 가슴에 품은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재판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은빛 판금 갑옷을 입고 기사단의 삼엄한 무력으로 재판정 주변의 경계 전선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허리춤의 검 자루 위에 굳건히 얹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오직 로건을 향해 있었다.
탕! 탕! 탕!
줄리안 판사가 황금 의사봉을 내리쳤다. 그 둔탁한 소리가 연병장의 함성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혔다.
“정숙하라! 지금부터 알리스터 대공 님의 시신을 훼손하고 사령술을 시도한 대역죄인 로건에 대한 종교 재판을 개정한다!”
줄리안이 고압적인 목소리로 공소장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자비도 없었다.
“피고인 로건은 천민 시체 수거인의 신분으로 신성한 대공 님의 유해에 손을 대어 불경한 주술을 걸었으며, 이는 제국 율법 제1조와 교단 성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신성모독이다. 본 재판정은 사안의 중대성과 주민들의 신앙적 안녕을 고려하여, 피고인의 변론권을 박탈하고 즉각적인 화형 선고를 내릴 것을……”
“이의 있습니다.”
갈라지고 쇠약한, 그러나 연병장 전체를 관통하는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가 줄리안의 말을 끊었다.
피고인석에 묶여 있던 로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나 비굴함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차가운 해부학 교실에서 메스를 쥔 법의관의 이성만이 서려 있었다.
“이의라니! 감히 이단 사형수 놈이 재판장의 권위에 도전하는가!”
케네스가 붉은 로브를 펄럭이며 소리쳤다. 군중 역시 야유를 퍼부으며 로건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로건은 요동하지 않고 줄리안 판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재판장님. 이단심문소 자체 규정집 제14조 제2항을 인용하겠습니다. [모든 생명의 육신은 창조주께서 설계하신 물리적 법칙에 따라 소멸하며, 이 소멸의 과정을 증명하는 변론의 의무는 그 어떤 신분이라 할지라도 박탈할 수 없다.] 사령술 혐의를 입증하기 전에, 피고인이 그 육신에 가해진 물리적 변화를 설명할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창조주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 즉 신의 설계를 부정하는 이단적 행위입니다.”
이단심문소 종교재판 변론법의 핵심이었다. 교단이 스스로의 무오류성을 증명하기 위해 세운 도그마를 역으로 찔러, 물리적 법칙의 신성함을 논리적 방패로 삼는 전술.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케네스가 안색을 붉히며 줄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참관인석에 앉아 있던 사법 감찰국의 루카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두꺼운 법률 책을 펼쳐 보이며 정중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개입했다.
“재판장님. 피고인 로건의 법률 인용은 정확합니다. 제국 헌법과 종교법의 특별 Concordat 협약에 따르면, 신체 소멸의 자연 법칙을 증명하려는 피고인의 변론 권리는 교단 사법권보다 우선합니다. 이를 기각할 경우, 사법 감찰국은 본 재판의 절차적 위법성을 황실 원로원에 공식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줄리안 판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슬쩍 제라드 백작을 바라보았으나, 제라드 역시 예상치 못한 사법 감찰국의 강경한 태도에 미간을 찌푸린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관료적인 법관인 줄리안은 감찰국의 눈 밖에 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좋다. 찰나의 변론 기회를 허가하겠다. 하지만 만약 무의미한 궤변으로 재판을 지연시킨다면 즉시 즉결 처형을 집행할 것이다.”
줄리안이 이를 갈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로건은 쇠사슬을 짤랑이며 가만히 숨을 고른 후, 케네스를 바라보았다.
“케네스 심문관님. 당신은 대공 님이 자정에 평화롭게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주장하셨지요. 그리고 그 사인을 신전 치유사단이 증명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 대공 님의 고결한 심장이 멈춘 것은 신성한 섭리였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대공 님의 시신에 남겨진 사후 경직도(Rigidity)와 체온 강하의 물리적 법칙은 왜 무시하셨습니까? 사후 경직은 턱관절에서 시작해 사지로 내려가며, 체온은 사망 후 매 시간마다 일정한 속도로 하강합니다. 내가 대공 님의 유해를 인도받았을 때, 직장의 온도와 사지의 굳어짐은 이미 사망 후 최소 14시간이 경과했음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로건의 차가운 목소리가 연병장의 정적을 깨뜨렸다.
“대공 님이 사망하신 진짜 시각은 자정이 아니라, 그보다 4시간 전인 저녁 8시경이었습니다. 교단이 사망을 공식 발표하기 전, 그 비어 있는 4시간 동안 대공 님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까? 왜 그 시각의 기록을 조작해야만 했습니까?”
연병장을 가득 채운 군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사법 감찰국의 루카스는 로건의 날카로운 온도 역산 추론을 받아 적으며 눈을 빛냈다.
케네스의 얼굴이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다급히 줄리안 판사를 바라보았다. 줄리안은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다급히 의사봉을 거칠게 두드렸다.
“정숙! 정숙하라! 피고인은 확인되지 않은 사적 견해로 법정을 모독하지 마라! 대공 님의 공식 부검서가 사법부의 공식 인장을 받지 않은 이상, 네놈의 주장은 법률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천민의 낙서일 뿐이다! 더 이상의 시간낭비는 불허한다!”
줄리안이 기습적으로 판결봉을 내리치려던 바로 그 순간.
로건은 품속에서 엘레나와 함께 작성하고 사법부 감찰국의 예비 서명까지 마친 ‘증거 보존 기록지’를 꺼내 들었다. 백은빛 마력 파동이 서류 표면 위에서 은은하게 일렁이자, 줄리안의 황금 의사봉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 백은빛 인장을 바라보는 사법 감찰국 참관인들의 눈빛이 격렬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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