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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각과 운명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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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타로스 대감옥 지하 5층의 예비 신문실에서 경비병들에게 이끌려 나왔을 때, 로건이 당도한 곳은 축축하고 음산한 독방이 아니었다.


수사관 엘레나의 직권으로 임시 이송된 곳. 이단심문소 남부 지부 수사관실의 문이 무겁게 닫히는 순간, 빗장을 지르는 쇳소리가 방 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창밖에는 밤새 내리는 차가운 가을비가 대리석 외벽을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고, 방 안은 책상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단 하나의 촛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벽면에 걸린 거대한 철제 십자가가 흔들리는 불빛에 따라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방. 책상 위에는 대공 암살 사건의 수사 서류와 복잡한 양피지 뭉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엘레나는 투구를 벗어 책상 위에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단정하게 묶은 금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그녀의 청안은 평소의 냉정함을 잃은 채 격렬한 고뇌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로건을 돌아보았다. 피고인석의 사슬을 찬 채로도 미동조차 없이 서 있는 깡마른 청년. 영양실조로 창백한 그의 안색은 촛불 아래에서 마치 정교하게 조각된 석고상처럼 보였다.


“로건.”


엘레나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오늘 신문실에서 재판장 줄리안과 케네스 심문관의 눈빛을 보았나? 그들은 이미 한센의 위증이 깨졌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신속하게 재판을 끝내려 하고 있어. 내일 아침, 중앙 연병장에서 열릴 본 재판은 법의 이름을 빌린 공개 처형장이 될 거다. 교단과 제라드 백작이 손을 잡고 너를 단두대로 밀어 넣으려는데…… 너는 어찌 그리 차분할 수 있지?”


로건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엘레나를 응시했다.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전생의 국과수 수석 법의관, 김민혁의 이성이 그의 입술을 움직였다.


“수사관님. 법의학을 공부하며 제가 가장 먼저 배운 진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학적 지식인가?”


“아닙니다.”


로건이 나직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미천한 시체 수거인의 신분을 뛰어넘는, 범접할 수 없는 지적 권위가 서려 있었다.


“죽은 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신에 남겨진 상처, 위장 속에 남아 있는 음식물의 소화 정도, 세포 핵 속에 침전된 독소의 결정…… 이 모든 물리적 흔적들은 그 어떤 권력자도, 정교한 마법 주술도 왜곡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말해줍니다. 오직 살아있는 자들만이 자신의 탐욕과 공포를 감추기 위해 거짓을 지어낼 뿐이지요.”


로건은 족쇄에 묶인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겉으로는 단단히 잠긴 것처럼 보였으나, 맹인 조각가 바르도에게 전수받은 촉각의 감각으로 락 장치를 미세하게 우회해 둔 상태였다. 그는 책상 위의 양피지 서류들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케네스가 내일 제출할 카드는 뻔합니다. 대공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조작한 가짜 유서와 위조된 약물 영수증이겠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인간이 손으로 쓴 ‘기록’에 불과합니다. 기록은 위조할 수 있지만, 대공의 차가운 육체 세포에 새겨진 ‘청색 살의’ 독소의 물리적 반응은 결코 위조할 수 없습니다.”


엘레나는 침을 삼켰다. 로건의 논리는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교단의 신비주의적 맹신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무리 명백한 증거라 해도, 재판장 줄리안이 사법 권한을 남용해 기각해 버리면 끝이다. 내일 재판에서 네가 제시할 대공의 위장 조직 샘플을 그들이 ‘사후에 조작된 가짜 증거’라고 몰아세운다면 법적으로 방어할 방법이 없어.”


“그렇기에 사법적인 방패막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로건이 책상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수사관님. 현대…… 아니, 제 가문의 비전 의학에는 ‘증거 보존 체인 규칙(Chain of Custody)’이라는 철칙이 존재합니다. 채취한 증거물이 법정에 서기까지 누구의 손을 거쳤고, 어떻게 봉인되었는지를 일일이 공문서로 기록하여 조작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규정이지요.”


로건은 양피지 한 장을 끌어당겨 깃털 펜을 잉크에 적셨다. 그리고 정교하고 깔끔한 필체로 증거 보존 기록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증거물의 명칭인 ‘알리스터 대공의 위장 점막 세포 및 독소 잔류물’, 채취 시간, 보관 장소, 그리고 수사관 엘레나와 제국 사법부 감찰국의 서명 란까지.


“이 기록지에 수사관님의 공식 인장을 찍고 서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일 재판에 참석할 사법 감찰국의 참관인 루카스에게도 공동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 보존 체인이 완성되는 순간, 케네스는 제가 증거를 조작했다는 억지 주장을 법률적으로 제기할 수 없게 됩니다. 교단 스스로가 신성시하는 증거 보존 규정을 정면으로 찌르는 방패가 되는 것이지요.”


엘레나는 로건이 써 내려간 기록지를 내려다보았다. 잉크가 마르며 양피지 표면 위에 미세한 마력의 인장이 새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 서류에 서명하는 순간, 그녀는 교단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반역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된다. 가문의 명예와 기사단 수사관으로서의 지위가 모두 담보로 잡히는 도덕적 결단이었다.


그러나 오늘 예비 신문실에서 보았던 케네스의 추악한 조작 수사와 줄리안 판사의 비겁한 침묵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진정한 기사도란 신의 이름을 빌려 거짓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있었다.


“……좋다.”


엘레나는 단호하게 허리춤에서 자신의 공식 황동 인장을 꺼냈다. 붉은 왁스를 녹여 양피지 하단에 떨어뜨린 후, 남부 지부 수석 수사관의 인장을 깊게 눌러 압인했다.


치이익.


인장이 찍히는 순간, 양피지 전체가 은은한 백은빛 마력 파동을 뿜어내며 증거 보존 체인의 계약을 공식 활성화했다. 문서의 글자들이 위조되거나 수정되려 할 경우 즉시 붉은빛으로 발광하여 조작을 알리는 불가역적인 사법 문서가 완성된 것이다.


“이것으로 법률적인 방패는 준비되었습니다.”


로건이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말아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위협은 여전하지요. 케네스는 제가 입을 열기 전에 연병장 현장에서 사설 집행관들을 움직여 저를 물리적으로 침묵시키려 할 겁니다.”


그 순간, 엘레나의 눈빛이 무섭도록 가라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갑옷 안쪽의 비밀 가죽 주머니에서 차갑고 푸른 인광을 내뿜는 백은빛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검날 전체가 초고순도의 백은으로 제련되어 마력 전도율을 완벽히 차단하는 가문의 명예용 단검, ‘엘레나의 은장도’였다. 단검의 칼날이 드러나자 수사관실 내부의 미세한 마력 파동들이 일시적으로 침묵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엘레나는 두 손으로 단검을 받쳐 들고 로건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내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기사의 맹세용 단검이다. 마력을 억제하고 주술적 장막을 베어내는 성질이 있지. 내일 재판정에서 그 어떤 부정한 폭력이나 교단의 초법적인 사적 제재가 너를 덮치려 한다면…… 이 엘레나가 기사단의 무력과 내 목숨을 걸고 너를 지키겠다. 이 단검이 그 서약의 징표다.”


로건은 은빛 단검의 자루를 쥐었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백은의 차갑고 묵직한 감각. 메스 끝의 미세 촉각이 단검 내부의 정교한 마법 제어 회로를 완벽하게 인지했다. 이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법정에서 케네스의 주술적 기습을 차단하고 자신의 신변을 보증해 줄 궁극의 물리적 수호 장치였다.


“서약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수사관님.”


로건이 단검을 품속 깊은 곳에 은닉하는 순간.


수사관실의 높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너머, 빗물이 흘러내리는 어두운 복도 구석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황실 중앙 도서관 사서이자 제2황자 레이몬드의 은밀한 정보원인 제레미(Jeremy)였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쓸어올리며 품속의 작은 비밀 가죽 수첩에 깃털 펜으로 빠르게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제2황자 전하께 보고합니다. 수석 법의관의 자질을 지닌 사형수 로건과 이단심문소의 여기사 엘레나가 마침내 가문의 은장도를 매개로 피의 맹세를 맺었습니다. 교단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전하의 세력을 넓히기 위한 최고의 패가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레미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녹아 사라진 바로 그 찰나.


똑, 똑, 똑.


폭우 소리를 뚫고, 수사관실의 무거운 오크통 나무 문을 두드리는 나직하고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레나가 즉시 경계하며 에스텔의 검 자루에 손을 얹었다.


“누구냐.”


문틈 사이로, 대공비 비아트리스의 가문 문양인 백합 인장이 찍힌 젖은 밀서를 쥔 비밀 밀사의 차가운 손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단검을 쥔 로건의 눈빛이 밤을 꿰뚫는 순간, 운명의 재판을 몇 시간 앞둔 전야의 공기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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