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집행 3일 전의 각성
차갑다. 단단하고, 비정상적일 정도로 축축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김민혁은 눈을 뜨기 전, 본능적으로 자신의 오감을 통해 주변 환경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코끝을 찌르는 것은 포르말린의 알싸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썩어가는 유기물의 비린내, 오래된 돌벽에 찌든 곰팡이의 쿰쿰함,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철과 녹슨 쇠사슬에서 풍기는 비린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의 무균 공기와는 완벽히 대척점에 서 있는 불결한 냄새.
“...으윽.”
신음 소리와 함께 상체를 일으키려던 민혁은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목과 손목을 조여오는 구속감에 멈칫했다. 둔탁한 가죽과 철로 이루어진 족쇄가 그의 목과 양 손목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쇠사슬을 거칠게 잡아당겨 탈출을 시도한 순간,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정체불명의 불꽃이 튀어 올랐다.
지이이잉!
“아아악!”
단순한 물리적 압박이 아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전류 같은 통증이 신경계를 사정없이 유린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폐포가 쪼그라들어 숨이 턱 막혔다. 민혁은 바닥에 쓰러져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입안 가득 쇠맛이 도는 침이 고였다.
이것은 제국의 사법 기관이 죄수들의 마력 방출과 신체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단조한 ‘마력 억제 족쇄’였다.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거나 구속을 풀려 하면 착용자의 마력 순환계를 뒤틀어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최악의 고문구.
‘진정해라. 심박수가 분당 140을 넘어섰다. 호흡을 가다듬어.’
민혁은 차가운 돌바닥에 뺨을 댄 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수천 구의 시신을 가르며 다져진 강철 같은 이성이 그를 공포의 심연에서 건져 올렸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서서히 초점을 맞췄다. 회색빛 석조 벽면, 이끼가 낀 바닥, 그리고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보라색 등불.
이곳은 현대 한국이 아니었다. 시체를 만지면 저주를 받는다는 미신이 지배하는 마법 제국, 아르카디아의 악명 높은 지하 요새 ‘타르타로스 대감옥 지하 4층’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국과수 수석 법의관 김민혁이 아니었다. 사형당하거나 병사한 천민들의 시신을 무단 투기하고 수거하는 노예 계급, ‘최하층 시체 수거인’ 로건의 육체에 빙의해 있었다.
‘자가 진단을 시작한다.’
민혁은 조용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24세 전후로 추정되는 청년의 몸. 손바닥은 사체를 운반하며 긁힌 상처와 굳은살로 엉망이었고, 피부는 햇빛을 보지 못해 핏기 없이 창백했다. 영양실조로 인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폐 깊은 곳에서는 시독(尸毒) 노출로 인한 만성적인 기침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최악의 상태였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것은 이 신체가 직면한 사법적 현실이었다.
‘알리스터 대공의 의문사. 그리고 신성모독죄 누명.’
머릿속에 로건의 파편화된 기억들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황실의 거두인 알리스터 대공이 돌연사했고, 대공의 시신을 안치소로 운반하던 시체 수거인 로건은 사령술 주술을 걸어 시신을 훼손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다. 이단심문관 케네스의 집요한 기소로 인해 사형 선고가 내려진 상태였다.
남은 시간은 단 3일. 72시간 뒤면 이 목에 밧줄이 걸리거나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질 터였다.
철커덕!
육중한 철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횃불의 붉은 빛이 일렁이며 한 사내의 실루엣을 비췄다. 가죽 흉갑을 입고 한쪽 뺨에 거대한 칼자국이 새겨진 사내. 타르타로스 감옥의 소장 바르그의 심복이자, 죄수들을 구타하고 장기를 적출해 암시장에 파는 악랄한 간수장 크롤(Kroll)이었다.
크롤은 허리춤에 찬 굵은 가죽 채찍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어이, 신성모독자 사형수 놈. 아직 살아 있나 보군?”
크롤이 안치소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흙먼지와 사독 냄새가 횃불의 열기와 함께 섞여 들어왔다. 그는 누워 있는 로건의 옆구리를 단단한 군화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퍽!
“윽...!”
“사형 집행이 고작 3일 남았는데, 벌써부터 송장 시늉을 하는 거냐? 네놈이 대공의 고결한 유해에 손을 대려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모른다. 천민 주제에 감히 신성한 제국의 율법을 어겨?”
크롤은 가죽 채찍을 높이 들어 올렸다. 휙 하는 파공음과 함께 채찍이 로건의 얇은 죄수복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짝!
등 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마력 억제 족쇄가 가해진 상태에서 물리적인 타격까지 더해지자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하지만 로건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입술을 꽉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분노로 눈을 부릅뜨거나 덤벼들지 않았다. 무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반항하는 것은 크롤에게 즉결 처형의 명분만을 제공할 뿐이라는 것을 법의학적 이성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로건의 눈동자는 차갑고 건조하게 빛나며 크롤의 온몸을 훑어내렸다.
‘관찰해라. 저 자의 모든 신체적 징후를.’
로건의 머릿속에서 현대 한국의 수석 법의관 김민혁의 지식이 기계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크롤의 걸음걸이. 왼발을 디딜 때마다 미세하게 왼쪽 골반이 처지고 어깨가 기우뚱한다. 좌측 대퇴사두근의 약화, 혹은 고질적인 통풍성 관절염의 징후다.
그의 안색. 횃불 빛 너머로 보이는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황갈색을 띠고 있으며, 눈의 공막에는 노란 황달 수치가 미세하게 관찰된다. 간 기능의 심각한 저하, 혹은 감옥 내부의 오염된 식수로 인한 만성적인 납 중독(Lead Poisoning)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의 호흡. 가슴을 들썩이며 내쉬는 숨소리에서 쌕쌕거리는 천명음과 함께 불규칙한 천식성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쥐새끼 같은 눈깔을 확 도려내 줄까?”
크롤이 채찍을 다시 치켜들며 으르렁거렸다. 로건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순종적인 태도를 가장했다.
“...죄송합니다, 나리. 사형을 앞두고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 크롤은 로건의 비굴한 태도에 만족한 듯 튄 침을 닦으며 채찍을 거두었다.
“흥, 3일 뒤면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갈 놈이 이제야 주제를 파악했군. 얌전히 목을 씻고 기다려라.”
크롤은 비열하게 웃으며 허리춤에서 딱딱하게 굳어 곰팡이가 핀 호밀빵 한 조각을 바닥의 오물 위로 툭 던졌다.
“이게 네놈의 마지막 배식이다. 돼지처럼 처먹고 단두대 위에서 똥오줌이나 지리지 마라.”
철컥, 쾅!
문이 닫히고 다시 안치소에 차가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로건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썩은 호밀빵을 집어 들었다. 흙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한 빵조각. 그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는 대신,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알싸한 금속성 냄새와 함께 곰팡이 틈새로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황화수소의 악취. 그리고 빵 표면에 묻은 습기에서 느껴지는 비정상적인 점성.
이것은 단순한 부패가 아니었다. 감옥 내부의 연납 파이프에서 흘러나온 고농도의 납과, 지하 시체 투기장에서 역류한 시독 가스가 식수와 식량 전체를 고질적으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로건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 감옥을 지배하는 자들이 죄수들을 서서히 죽여가고 있는 오염의 실체. 그리고 자신을 때리던 간수장 크롤이 앓고 있는 만성 질환의 원인.
법의학자에게 있어, 환경의 오염과 신체의 질병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무너뜨리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물리적 카드’였다.
사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72시간.
로건은 썩은 빵을 움켜쥔 채,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아스클레온 가문의 특이 체질과 현대 법의학의 이성이 결합하는 순간, 이 타르타로스 대감옥의 질서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다.
간수들이 던져준 썩은 빵을 보며 감옥 내부의 고질적인 오염을 간파한 로건의 눈빛이 매섭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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