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의 사냥꾼
노을빛이 성화고등학교 구관 건물 뒤편을 붉게 물들이다가, 이내 검붉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은 마치 거대하게 번진 피멍 같았다.
도현은 본관 2층 복도 모퉁이 그늘막에서 늘어지는 그림자를 밟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철야 분석으로 인한 안구 건조증이 다시 도져 눈가가 뻑뻑했지만,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학교 뒤편 조경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행동대장 강준혁이 송민우와 그의 오른팔 박태규를 비롯한 규율부 패거리 서너 명에게 둘러싸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준혁의 덩치는 웬만한 일진들보다 거대했지만, 도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그들의 걸음을 따르고 있었다.
‘송민우. 체육관 탈의실에서 허탕을 치고 한지훈에게 질책을 당하자마자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한 준혁이부터 물고 늘어지는군.’
도현은 주머니 속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의 매끄러운 금속 표면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차가운 촉감이 뇌의 온도를 급격히 낮춰주었다. 송민우의 폭주는 도현의 계산 범주 안에 있었다. 힘의 서열로만 세상을 지배하려는 폭력배들은 자신의 통제권이 어긋났을 때 극심한 나르시시즘적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원초적인 무력(暴力)을 행사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었다.
도현은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학교 뒤편, 녹슨 자물쇠와 거미줄로 뒤덮인 채 방치된 ‘학교 뒤 폐쇄된 구 매점 창고’였다.
***
쿵!
무겁고 낡은 목조 창고의 문이 닫히며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곰팡이 냄새와 녹슨 철제 비품들의 매캐한 먼지가 들이닥친 이들의 발길에 흩날렸다. 창고 안은 오직 깨진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만이 바닥의 먼지 더미를 비추고 있었다.
“야, 강준혁.”
송민우가 쇠파이프를 바닥에 질질 끌며 준혁의 앞으로 다가왔다. 쇠파이프가 시멘트 바닥과 마찰하며 내는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창고 내부의 정적을 찢었다. 박태규와 일진 행동대원 최영호가 준혁의 등 뒤를 막아서며 탈출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네놈이 요즘 도서관 벌레 새끼랑 붙어 다니면서 쥐새끼처럼 쪼르르 기어 다닌다는 제보를 받았거든.”
송민우는 준혁의 가슴을 쇠파이프 끝으로 툭툭 치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의 목울대는 분노와 조급함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지훈에게 ‘무능한 사냥개’ 취급을 당한 뒤로, 그의 안면 근육은 겉보기와 달리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말해 봐. 체육관에 덫을 놓은 놈이 누구야? 그 도서관 먼지 새끼냐, 아니면 다른 놈이 배후에 있어?”
준혁은 턱을 굳게 다문 채 송민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오른쪽 손목에는 도현이 선물한 ‘도현 세탁소 마크가 새겨진 손목 아대’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준혁은 머릿속으로 도현이 귀에 인이 박이도록 강조했던 ‘그림자 정보망 작전 행동 수칙’ 중 하나를 떠올렸다.
‘감정 격리 규정(Emotional Isolation). 적의 어떤 도발과 물리적 위협 앞에서도 이성을 분리해라. 놈들의 폭력은 너의 공포를 먹고 자란다. 공포를 보여주지 않는 순간, 조급해지는 것은 놈들이다.’
준혁은 호흡을 깊고 일정하게 유지했다. 그의 맥박수는 요동치지 않았다. 송민우의 질문이 끝났음에도, 준혁은 오직 차갑고 묵직한 눈빛으로 민우의 동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정교하게 초 단위로 흐르는 침묵. 도현이 전수해 준 ‘침묵의 7초 법칙(Silent Pressure)’이었다. 질문을 던진 상대방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7초 동안 침묵을 유지하는 기술.
다섯, 여섯, 일곱.
아무런 대답도, 비굴한 변명도 돌아오지 않자 창고 안의 공기가 기묘하게 얼어붙었다. 송민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폭력적 위압감이 상대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만한 포식자의 내면에 숨겨진 열등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 새끼가 진짜 귀가 처먹었나……!”
송민우가 이성을 잃고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옆에 있던 박태규가 준혁의 다리를 걷어찼고, 균형이 무너진 준혁의 어깨 위로 송민우의 쇠파이프가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준혁의 두꺼운 어깨뼈가 거칠게 흔들렸다. 억 소리 나는 신음이 터져 나올 법한 고통이었지만, 준혁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쇠파이프가 쓸고 간 교복 어깨 안감 사이로 붉은 피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전치 3주는 족히 나올 법한 타박상과 출혈이었다.
하지만 준혁의 눈동자는 여전히 송민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눈빛에, 오히려 때린 송민우가 흠칫 놀라며 쇠파이프를 쥔 손을 뒤로 뺐다.
“뭐야, 이 눈빛은? 네가 뭘 믿고 이렇게 뻐기는 건데? 한지훈 부회장님이 너 같은 아웃사이더 새끼 하나 묻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셨어. 내신 시험지 유출범으로 김민우를 깔끔하게 담근 것처럼 말이야!”
송민우가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나르시시즘에 취해 소리쳤다. 그 오만하고 비대해진 자존심의 틈새를 향해, 준혁은 도현이 설계한 최후의 미끼를 던졌다. ‘동조 효과 역이용(Reversed Conformity)’의 변형된 도발 전술이었다.
준혁은 입가에 묻은 피를 슥 닦아내며, 조소 섞인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송민우. 넌 참 멍청하구나.”
“뭐라구?”
“한지훈이 너를 진짜 동맹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넌 그저 그놈의 더러운 뒤처리를 해주는 사냥개에 불과해. 시험지 유출? 한지훈이 교무실 금고에서 시험지를 직접 빼돌렸을 때, 네가 교실 뒤편에서 망을 봐준 대가로 받은 게 고작 그 낡은 규율부 완장 하나잖아. 일이 터지면 한지훈은 빠져나가고, 감방에 갈 놈은 너야.”
“개소리 지껄이지 마! 지훈이 형이 나한테 직접 약속했어! 이번 일만 깔끔하게 김민우한테 누명 씌워서 처리하면, 내 학폭 기록 생기부에서 완전히 지워주고 명문대 체육 특기자 전형 포트폴리오까지 만들어 주겠다고!”
송민우가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리치며 광기 어리게 소리쳤. 자존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냥개는 자신이 ‘사냥개’가 아닌 ‘대등한 파트너’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자백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훈이 형이 행정동 마스터키로 교무실 금고를 열고 시험지 원본을 복사할 때, 내가 복도 CCTV 사각지대 동선을 다 짜줬다고! 그리고 김민우 가방에 유출 파지 조각을 밀어 넣은 것도 나야! 한지훈 부회장님이 뒤에서 다 알아서 덮어준다고 했단 말이다!”
송민우가 광포하게 포효하는 순간, 창고의 어두운 천장 대들보 틈새, 거미줄과 먼지 사이에 정교하게 매설되어 있던 ‘소형 아날로그 녹음기(Analog Recorder)’의 미세한 붉은색 LED 표시등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깜빡이고 있었다.
그 소형 녹음기는 도현이 세탁소에서 안 쓰는 아버지가 남겨준 구형 카세트 녹음기를 마찰식 마이크 센서로 개조한 물건이었다. 특정 데시벨 이상의 음성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태엽이 돌며 물리적으로 테이프를 감는 아날로그 장치. 그렇기에 유성민의 어떤 최첨단 전파 방해기나 도청 탐지기로도 잡아낼 수 없는 완벽한 그림자의 무기였다.
창고 밖 숲길 그늘 속에 몸을 숨긴 도현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수신기 너머로 송민우의 육성 자백이 한 자 한 자 선명하게 채록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벼려진 칼날처럼 빛났다.
‘송민우. 네 오만함이 결국 너와 한지훈의 숨통을 동시에 끊을 단 한 번의 방화쇠가 되었군.’
도현은 손목시계의 아날로그 초침을 확인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다가올 파멸의 카운트다운처럼 울렸다.
징계위원회 개최까지 남은 시간은 단 12시간.
도현은 녹음 장비의 수신 주파수 상태를 최종 점검한 뒤,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성화고등학교 기득권 카르텔의 심장부를 단숨에 붕괴시킬 마지막 폭로의 판을 짤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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