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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의 가방에 흘린 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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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10분, 성화고등학교 2학년 3반 교실.


철야 분석의 여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도현은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교복 안주머니에서 인공눈물을 꺼내어 양쪽 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차가운 액체가 각막을 적시는 순간, 일시적으로 흐려졌던 시야가 이내 칼날처럼 선명하게 돌아왔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고 피곤에 찌든 전교 하위권 학생의 모습이었지만, 도현의 머릿속 ‘기억의 도서관(Mind Palace)’은 이미 백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슈퍼컴퓨터처럼 기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어젯밤, 세탁소 다락방의 겨울 코트 안감 속에 숨겨둔 CCTV 원본 USB. 그 안에서 추출한 송민우의 3.5도 골반 비대칭 보행 지문과 한지훈 부회장의 실시간 사주 타이밍 데이터는 완벽한 무기였다. 하지만 무기가 강력할수록 휘두르는 타이밍은 신중해야 했다. 섣부른 폭로는 카르텔의 꼬리 자르기식 방어막에 막힐 뿐이다. 단 한 번의 격발로 교감과 학생회 수뇌부를 동시에 매장하려면, 다가올 징계위원회라는 단 하나의 판이 완성될 때까지 적들의 시선을 철저히 교란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교란의 첫 번째 타깃이 도현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야, 배진식. 빗자루질 똑바로 안 해? 먼지 다 날리잖아.”


교실 뒤편에서 청소 당번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3반의 자발적 투명인간인 도현은 책상에 엎드린 채, 안경테의 미세한 반사광을 이용해 교실 중앙을 관찰했다.


배진식.


단정하게 내린 머리칼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의 눈빛은 늘 반 아이들의 책상 서랍과 가방 틈새를 힐끔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배진식은 성적과 대학 입시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부류였다. 하지만 애매한 중위권 성적으로는 명문대 수시 전형의 문턱조차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기꺼이 학생회 부회장 한지훈의 ‘밀정(프락치)’이 되는 길을 택했다. 동급생들의 사소한 비행이나 소문을 학생회실에 밀고하고, 그 대가로 생활기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들어갈 ‘리더십 가산점’과 ‘수행평가 족보’를 챙기는 추악한 거래.


‘배진식의 시선 주기가 내 책상 주변에 머무는 시간이 어제보다 1.5초 늘어났다. 한지훈이 교내에 보이지 않는 쥐새끼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밀정들에게 수색 명령을 내린 거군.’


도현은 책상 밑에서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를 만지작거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적이 냄새를 맡고 다가온다면, 그 코앞에 가장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독약을 탄 미끼를 던져주는 것이 설계자의 방식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도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학교 뒤편 오솔길’로 향했다. 낡은 구관 건물과 후문을 연결하는 이 숲길은 인적이 드물어 정보망의 아날로그 접선지로 최적의 장소였다.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실루엣이 수풀 사이에서 나타났다. 행동대장 강준혁이었다. 준혁은 도현의 세탁소 마크가 새겨진 손목 아대를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도현아, 학생회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녀. 규율부 놈들이 체육관 사물함까지 뒤지기 시작했어. 꼬리가 밟히는 건 시간문제야.”


도현은 감색 도서부 완장을 고쳐 차며 준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알고 있어, 준혁아. 한지훈이 3반의 배진식을 부추겨 내 주변을 감시하게 만들었더군.”


“배진식? 그 비열한 새끼가? 내가 당장 손봐줄까?”


준혁이 주먹을 꽉 쥐자 거대한 체구에서 묵직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도현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니. 직접적인 무력은 우리의 보안을 해칠 뿐이야. 배진식은 자신이 대단한 정보원이라도 된 양 영웅 심리에 젖어 있어. 그 탐욕을 역이용한다. 한지훈이 가장 신뢰하는 밀정의 손으로, 학생회 규율부의 전력을 완전히 낭비하게 만드는 덫을 놓을 거야.”


도현은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 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준혁에게 건넸다.


“이건 체육관 열쇠고리야. 네가 쓰던 낡은 거 맞지? 그리고 이 종이 조각에는 내가 일부러 찢어놓은 가짜 ‘심화 수학 시험 출제 범위’ 메모가 적혀 있어. 이제부터 ‘미끼의 분할’ 작전을 시작한다.”


준혁은 도현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지략의 에너지를 느끼며 침을 삼켰다.


“내가 뭘 하면 되지?”


“아무것도 하지 마. 평소처럼 교실에서 긴장한 척 행동하고, 청소 시간이 되면 내가 지시한 타이밍에 맞춰 자리를 비우기만 해.”


***


오후 4시 10분, 방과 후 청소 시간.


교실 안은 빗자루질 소리와 아이들의 잡담으로 어수선했다. 도현은 자신의 가방을 책상 옆걸이에 걸어두고, 가방 지퍼를 아주 미세하게, 약 3센티미터 정도 열어두었다. 그 틈새로 준혁의 낡은 체육관 열쇠고리와 붉은색 볼펜으로 ‘기밀’이라 적힌 찢어진 메모 조각이 언뜻 보이도록 물리적 배치를 끝마쳤다.


도현은 빗자루를 들고 교실 뒷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멀리 창문 유리의 반사광을 통해 자신의 책상 주변을 서성이는 배진식의 동선을 추적했다.


‘시선 각도 45도 하향. 타깃 확인.’


배진식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되는 것이 유리의 반사광 너머로 포착되었다. 진식은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쇄골 부근이 거칠게 들썩였다. 호흡 주기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도현의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도현의 무전 신호를 받은 준혁이 교실 앞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야, 나 체육관 비품 정리 좀 도우러 간다!”


준혁이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가자, 배진식의 얼굴에 확신에 찬 탐욕이 들어찼다. 진식은 도현이 쓰레기통을 비우러 복도로 나간 찰나의 10초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잽싸게 도현의 책상 옆으로 다가와 열린 가방 틈새로 손을 밀어 넣었다.


도현은 복도 모퉁이에서 몸을 숨긴 채, 주머니 속 은색 줄자의 금속 촉감을 느끼며 숫자를 세었다.


‘1, 2, 3.’


배진식은 가방 속에서 찢어진 메모 조각과 준혁의 열쇠고리를 꺼내지 않았다. 도현의 예상대로, 그는 꼬리가 밟히는 것을 두려워해 스마트폰을 꺼내어 무음 카메라 앱으로 가방 내부의 단서들을 정밀 촬영했다. 찰칵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차가운 디지털 흔적. 진식은 흥분으로 손을 미세하게 떨며 촬영을 마친 뒤,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그가 보낸 패킷 데이터는 학교 인트라넷 망을 거쳐 학생회 부회장 한지훈의 마스터 태블릿으로 즉각 전송되었다.


[배진식: 부회장님, 찾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강준혁의 체육관 열쇠고리와 유출된 시험지 범위가 적힌 메모가 박도현의 가방에서 나왔습니다. 놈들의 아지트는 체육관 비품실 뒤편 탈의실이 확실합니다.]


학생회실에서 대나무숲 모니터를 감시하던 한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지훈은 얇은 입술을 뒤틀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최근 자신들의 숨통을 조여오던 ‘그림자’의 실체를 드디어 잡았다는 승리감에 도취된 것이다.


“김호진 부장. 규율부원 10명 소집해. 당장 체육관 비품실과 탈의실을 덮친다. 단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봉쇄해.”


한지훈의 날카로운 지시와 함께, 완장을 찬 규율부원 10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육중한 발소리가 본관 복도를 거칠게 울렸다.


***


오후 4시 30분, 체육관 뒤편 탈의실 복도.


쾅!


김호진 규율부장이 체육관 탈의실의 낡은 철문을 군화 발로 거칠게 걷어찼다. 철문이 벽면에 부딪치며 굉음을 냈고, 규율부원들이 쇠파이프와 손전등을 든 채 내부로 들이닥쳤.


“다 엎어! 사물함 내부, 샤워실 안쪽까지 샅샅이 뒤져!”


그들은 먼지가 가득한 탈의실의 사물함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비품 상자들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텅 빈 공간과 캐캐묵은 먼지 더미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그림자 정보망의 흔적이나 비밀 장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녹슨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부장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부원들의 보고를 받은 김호진의 얼굴이 극도로 구겨졌다. 그는 즉시 수화기를 들어 한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지훈 부회장. 장난해? 체육관 탈의실에는 먼지밖에 없어. 완전히 헛다리 짚었다고.”


학생회실에서 전화를 받은 한지훈의 미간에 깊은 균열이 생겼다. 지훈은 책상을 거칠게 내리치며 배진식의 프로필 사진을 노려보았다.


“배진식…… 이 쓸모없는 새끼가 감히 나한테 거짓 정보를 들고 와?”


한지훈의 신뢰가 단숨에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배진식은 졸지에 학생회를 기만한 무능한 밀정이자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다. 적들의 전력은 허공에서 완전히 낭비되었고, 내부의 불신과 자중지란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본관 2층 복도 모퉁이 그늘막.


도현은 조용히 벽에 몸을 기댄 채, 체육관 방향으로 분주하게 뛰어가는 규율부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에는 어떠한 동요도, 흥분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데이터의 흐름을 읽는 설계자의 초연함만이 깃들어 있었다.


‘적의 감시를 피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감시자에게 오염된 정보를 주입해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도현은 조용히 안경을 고쳐 쓰며, 낡은 도서부 완장을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첫 번째 미끼는 완벽하게 격발되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덫이 엉뚱한 곳에서 터진 것을 알게 된 송민우가 자신들의 계획이 계속해서 어긋나자 폭주하기 시작할 터였다.


도현은 다음 단계인 ‘무법지대의 사냥꾼’을 대비하기 위해, 차가운 복도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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