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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코트 속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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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섭의 육중한 군화 끝자락이 데스크 바로 앞, 불과 십 센티미터 거리에서 멈춰 섰다.


데스크 밑, 서버 배관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어둠 속에서 도현은 숨을 완전히 멈췄다. 허파가 쪼그라들고 갈비뼈 사이가 비틀리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지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감정 격리 규정’을 되뇌었다. 맥박수는 분당 64회.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려 턱끝에서 툭 떨어졌으나, 소리는 나지 않았다.


김태섭이 쥔 강한 야간 랜턴의 백색 광선이 데스크 밑바닥을 가로질렀다. 빛의 경계선이 도현의 교복 바지 밑단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1초. 2초. 3초.


그때, 본관 반대편 복도 끝에서 육중한 금속 마찰음이 고요한 정적을 찢었다.


쾅! 찌이익—


유압식 도어 클로저가 완전히 고장 나 철문이 벽면을 긁으며 닫히는 특유의 이질적인 소음이었다. 도현이 침투하기 전, 본관 1층 보일러실 철문의 유압 벨브를 은색 줄자로 미세하게 비틀어놓았던 아날로그 트랩이 마침내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쯧, 보일러실 문이 또 열렸나 보군.”


김태섭이 낮게 욕설을 뱉으며 랜턴 불빛을 거두었다. 그의 군화 소리가 빠르게 통제실 밖으로 멀어졌다. 복도 너머로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도현은 굳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가쁜 호흡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안경을 치켜올리며 이성을 다잡았다.


도현은 메인 서버에서 완벽하게 다운로드가 완료된 USB를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문틈으로 복도의 기류를 살폈다. 김태섭이 보일러실로 향한 틈은 정확히 45초. 도현은 몸을 낮추고 ‘CCTV 사각지대 보행’ 수칙에 따라 천장 돔 카메라의 회전 각도를 회피하며 유령처럼 본관을 빠져나갔다.


***


새벽 1시 15분, 도현 세탁소.


스팀다리미의 옅은 잔열과 섬유유연제 냄새가 은은하게 감도는 세탁소 내부로 도현이 소리 없이 걸어 들어왔. 1층 카운터 뒤편 안방에서는 어머니 이선자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은 안도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다락방으로 향하는 낡은 나무 계단을 밟았다.


다락방에 들어서자마자 도현은 문을 잠그고, 주머니에서 차가운 금속 USB를 꺼냈다. 이 작은 칩 하나에 김민우의 인생과 성화고 카르텔의 목줄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발각되는 순간, 무단 침입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도현 역시 파멸할 터였다. 완벽한 은닉처가 필요했다.


도현은 다락방 구석, 세탁 완료 태그가 붙은 채 수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해 방치된 ‘세탁소 보관 낡은 겨울 코트’ 앞으로 다가갔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가장 아끼던 두꺼운 군용 규격 방한 파카 코트였다.


도현은 코트 안감 왼쪽 겨드랑이 밑부분을 들추었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수선해 둔 정교한 이중 실리콘 지퍼가 숨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수색으로는 절대 만져지지 않는 아날로그의 맹점. 도현은 지퍼를 열고 복사한 CCTV 원본 USB 사본을 깊숙이 밀어 넣은 뒤, 안감을 다시 매끄럽게 다듬었다. 이제 가택 수색이 들어오더라도 이 증거는 안전할 것이었다.


진짜 작업은 이제부터였다.


도현은 노트북을 켜고 원본 영상을 재생했다. 화면에는 비가 내리던 시험지 유출 당일 오후 6시 42분의 교무실 복도가 흐릿하게 나타났다. 검은 마스크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실루엣이 복도를 서성이다가 교무실 문을 열고 침투하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도현은 먼저 얼굴 식별을 위해 화질 개선 필터를 적용했다. 하지만 먼지가 낀 낡은 CCTV의 저화질 해상도로는 마스크 너머의 이목구비를 복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화면은 뭉개진 픽셀로 가득 찼다.


‘얼굴을 가리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신체적 습관까지 가릴 수는 없지.’


도현은 즉시 생체 역학적 분석으로 전환했다. 그는 다락방 벽면을 가득 채운 전교생 동선 일람표와 행동 관찰 데이터 마인드맵을 펼쳤다. ‘마인드맵 공간화(Mind Palace)’ 기술이 가동되자, 도현의 뇌내에서 전교생 600명의 걸음걸이 템포와 신체 규격이 입체적인 홀로그램처럼 매핑되기 시작했다.


도현은 영상 속 범인의 보행 프레임을 초당 24프레임으로 쪼개어 분석했다. 범인이 복도를 걸어갈 때의 보폭, 어깨의 흔들림 각도, 골반의 기울기를 정밀 스캔했다.


“보폭 74센티미터. 걸음의 템포는 110 BPM.”


도현은 은색 줄자를 쥐고 벽면의 관찰 일지 속 수치들과 대조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했다. 영상 속 범인은 걸을 때마다 좌우 골반의 흔들림 각도가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오른쪽 골반은 고정되어 있는 반면, 왼쪽 골반이 걸음을 뗄 때마다 바깥쪽으로 정확히 3.5도 비틀어졌다.


‘좌우 골반 비대칭 각도 3.5도. 이것은 고질적인 왼쪽 무릎 반월판 부상으로 인해 걸을 때마다 무게 중심이 우측으로 쏠리는 신체 지문이다.’


도현의 손끝이 관찰 일지의 한 페이지에서 멈췄다.


[2학년 규율부 행동대장 송민우: 중학교 시절 rugby 부상으로 왼쪽 무릎 수술 이력 있음. 보행 시 좌우 골반 비대칭 각도 3.5도 일치.]


영상 속 범인의 신체 지문은 송민우와 100% 일치했다.


도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범인이 교무실 금고를 만진 후 빠져나오는 마지막 10초를 주목했다. 범인은 금고 경첩을 만진 손을 닦기 위해 자신의 오른쪽 교복 소매 깃에 손을 가볍게 비벼 비볐다. 교무실 기밀 금고 경첩에는 도현이 이전에 포착했던 PFPE 방청유가 묻어 있었다.


‘송민우의 교복 오른쪽 소매 깃. 그곳에 금고 방청유 얼룩이 고스란히 묻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현은 범인이 교무실을 나서며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 화면의 미세한 반사광을 확대했다. 뭉개진 화면 속에서도 화면이 켜지는 순간, 액정 유리에 반사된 백색 광선이 범인의 마스크 앞부분을 일시적으로 밝혀주었다. 그 찰나의 순간, 화면 너머로 송민우가 받은 메시지의 발신자 프로필 이미지와 텍스트의 윤곽이 도현의 눈에 들어왔.


[한지훈: 지금 들어가라. 교무실 비었음.]


한지훈이 배후에서 실시간으로 지시를 내린 타임라인이 CCTV 타임코드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복원되는 순간이었다.


도현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철야 연산으로 인해 극심한 안구 건조증과 편두통이 밀려왔지만,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에는 차가운 승리감이 출렁였다.


송민우의 교복 소매 깃에 묻은 방청유 얼룩과, CCTV 속 범인이 금고를 만진 후 손을 닦던 동작이 완벽히 겹쳐지는 순간, 도현은 외통수의 설계를 끝마쳤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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