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먼 파수꾼의 시간
오후 10시 15분. 야간 자율학습이 모두 종료된 성화고등학교 본관은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낮 동안 아이들의 비명과 웃음소리, 서태수 교사의 신경질적인 지휘봉 소리로 가득했던 복도는 오직 천장의 푸르스름한 비상구 유도등 불빛만이 바닥의 차가운 왁스칠 위로 길게 늘어질 뿐이었다.
구관 도서관 지하 서고의 녹슨 철문 안쪽, 도현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초침이 기계적인 소음을 내며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도현의 왼쪽 상완에는 여전히 감색 도서부 완장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는 한태수 교사에게 건네받은 청동 마스터키가 살을 차갑게 찌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오늘 밤이 지나면 통제실의 야간 보안 코드가 변경된다. 그렇게 되면 김민우의 누명을 벗길 유일한 물리적 증거인 CCTV 원본 영상은 영구히 학생회의 손아귀에서 인멸될 것이다.’
도현은 가슴 주머니에서 급식실 배식원 김옥자 아주머니가 건네주었던 기름 묻은 영수증 쪽지를 꺼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쪽지 모퉁이에는 아주머니가 배식 도중 엿들었던 규율부장 김호진과 송민우의 밀담 내용, 그리고 오늘 밤 보안 코드 변경 일정이 수기로 적혀 있었다. 아주머니의 제보는 정확했다. 학생회는 내일 오전 9시로 예정된 징계위원회 전에 모든 흔적을 지우려 하고 있었다.
도현은 주머니 속에서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와 심장 박동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동생 도진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기득권의 오만한 위선에 대한 분노가 차가운 지략의 에너지로 정제되는 순간이었다.
‘오윤식 경비원님은 매일 밤 10시 30분에 본관 1층 초소에서 야간 근무 교대를 준비하신다. 그리고 그분의 고질적인 무릎 관절염은 기온이 떨어지는 밤 시간이 되면 극도로 악화되지. 그분이 초소를 비우고 보건실에서 온찜질 팩을 가져오는 시간은 정확히 15분. 그것이 내가 통제실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적 맹점이다.’
도현은 이미 며칠 동안 오윤식 경비원의 걸음걸이 템포와 척추의 기울기를 정밀하게 프로파일링해 두었다. 오윤식 경비원은 도현이 평소 그의 무릎 통증을 걱정하며 세탁소에서 가져온 특제 온방 파스를 건넸을 때 깊은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그 사소한 신뢰의 상호 교환은 오늘 밤, 경비원이 도현의 미세한 동선 침범을 무의식적으로 방조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될 것이었다.
도현은 심호흡을 한 뒤 구관 지하실의 철문을 소리 없이 닫고 본관 연결 통로로 나섰다.
이제부터는 ‘CCTV 사각지대 보행’ 수칙을 극대화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본관 복도 천장에는 90도 화각을 가진 돔형 카메라들이 15초 주기로 좌우로 회전하며 붉은 감시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도현은 머릿속의 ‘마인드팰리스’를 가동했다. 카메라의 렌즈 각도, 돔 커버의 반사 왜곡률, 그리고 벽면 음영의 경계선이 도현의 안경 너머 시야에 입체적인 홀로그램처럼 매핑되었다.
스스스.
도현은 벽면에 몸을 밀착한 채 소리 없이 걸음을 옮겼다. 천장의 카메라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순간, 도현은 소방 시설의 돌출부 그늘 속으로 스르륵 몸을 밀어 넣었다. 카메라 렌즈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3초 공백. 도현은 그 찰나의 틈을 타 다음 기둥 뒤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발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세탁소에서 단단히 다려진 교복 바지 밑단이 쓸리는 미세한 마찰음조차 복도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흡수되었다.
‘본관 1층 복도 중앙 카메라의 사각지대는 바닥으로부터 1.2미터 높이 이하의 벽면 그늘이다. 머리를 최대한 낮추고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도현은 단 1초의 화면 노출도 허용하지 않은 채, 완벽한 유령처럼 본관 복도를 횡단했다. 마침내 1층 복도 끝, ‘CCTV 통제실’이라고 적힌 무채색의 철제 문 앞에 도달했다.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0시 31분.
복도 반대편에서 둔탁하고 느린 발소리가 들려왔다. 왼쪽 다리를 약간 지탱하며 끄는 듯한 걸음걸이 템포. 오윤식 경비원이 무릎을 절뚝이며 보건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도현은 기둥 뒤에 숨어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오윤식 경비원은 복도 모퉁이를 돌며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뱉었다. 도현이 계산한 15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도현은 신속하게 통제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도어락은 최신형 디지털 번호키였다. 하지만 도현은 이미 이 시스템의 허점을 알고 있었다. 사설 보안 팀장 김태섭은 기계적인 순찰 루틴을 고수하는 인물이었고, 그가 매일 아침 도어락을 누를 때 손가락 끝의 유분과 먼지가 키패드의 특정 숫자 위에 집중적으로 묻어난다는 사실을 도현은 방과 후 관찰을 통해 파악해 두었다.
‘1, 3, 7, 9.’
도현은 주머니에서 소형 LED 펜라이트를 꺼내 키패드의 각도를 비스듬히 비추었다. 네 개의 숫자 표면에 미세한 지문 자국과 먼지의 마모 흔적이 도드라져 보였다. 김태섭이 자주 사용하는 비밀번호 조합의 경우의 수는 단 몇 가지로 압축되었다. 도현은 김태섭의 개인 사물함 비밀번호와 그의 군 복무 시절 기수 데이터를 뇌내에서 교차 대조했다.
‘9, 7, 1, 3.’
도현은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네 자리를 차분히 눌렀다.
띠리릭.
가벼운 전자음과 함께 통제실의 빗장이 풀렸다. 도현은 문을 살짝 열고 내부의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은 뒤, 문을 소리 없이 닫았다.
통제실 내부는 수십 대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광원과 서버 랙의 거친 냉각팬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면들 속에는 성화고등학교 전 구역의 사각지대 없는 감시 피드들이 실시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교무실 복도, 운동장 화단, 체육관 뒤편 폐창고까지. 성화고의 모든 계급적 억압이 이 방의 모니터들을 통해 감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도현은 메인 제어 콘솔 앞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화면 우측 하단의 로그 기록을 스캔했다. ‘심화 수학 시험지 유출 사건 당일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의 본관 4층 교무실 복도 녹화 파일.’
도현은 준비해 온 USB 드라이브를 서버 전면부 포트에 꽂았다. 화면에 파일 전송 창이 팝업되었다.
[데이터 복사 중... 0%... 10%...]
예상 다운로드 시간은 3분. 냉각팬의 소음이 유독 크게 들려왔고, 도현의 관자놀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려 턱끝에 맺혔다. 도현은 주머니 속 은색 줄자를 다시 한번 꽉 쥐며 ‘감정 격리 규정’을 발동했다. 맥박수를 강제로 낮추고 오감을 주변의 사소한 소음에 집중시켰다.
[40%... 50%...]
시간이 멈춘 듯한 서스펜스 속에서 화면의 그래프가 느리게 채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통제실 외곽 복도 너머로 묵직하고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윤식 경비원의 느리고 절뚝이는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날이 선 군화 밑창이 시멘트 바닥을 칼같이 때리는 소리. 보폭의 간격은 정확히 75센티미터, 걸음의 BPM은 110.
‘사설 보안 팀장 김태섭이다.’
그가 불시에 통제실로 복귀하고 있었다. 발소리는 빠른 속도로 통제실 문 앞으로 다가왔다.
도현의 시선이 화면으로 향했다. [80%... 85%...]
다운로드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단 15초. 지금 USB를 강제로 뽑으면 파일이 완전히 깨져 물증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발소리는 이미 통제실 문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다. 쇠붙이가 부딪치는 무전기 인이어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삑, 삑, 삑, 삑.
김태섭이 외부 도어락의 패스워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도현은 정문 탈출이 불가능함을 즉각 인지했다. 도현의 머릿속 마인드팰리스가 통제실 내부의 모든 공간 규격을 순식간에 시각화했다. 도현은 물리적 대치 대신 은신을 선택했다. 그는 전송 완료 메시지가 화면에 뜨는 0.1초의 찰나에 USB를 낚아채 주머니에 넣고, 메인 콘솔 데스크 밑 서버 배관이 겹겹이 얽혀 있는 어두운 사각지대로 몸을 슬라이딩시켰.
철컥.
통제실 문이 열리고, 김태섭의 거구와 강한 야간 랜턴 불빛이 방 안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