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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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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례 시간의 폭풍이 지나간 성화고등학교의 복도는 겉보기에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담임 서태수가 바닥에 찢어발겨 내팽개친 호외 신문의 조각들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손에 의해 흔적도 없이 쓸려 나갔지만, 학생들이 나누는 나지막한 속삭임까지 쓸어낼 수는 없었다. 교실마다, 복도 모퉁이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쥔 채 눈을 빛내며 수군거렸다. 백승철 회장과 교감 임용태의 유착, 그리고 일진 송민우의 폭력 자백. 그것은 성화고를 지배하던 견고한 신분제 성벽에 가해진 최초의 거대한 균열이었다.


같은 시각, 본관 4층에 위치한 학생회장 전용 정독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통유리 너머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학생회장 정우진의 뒷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고 완벽했다. 칼같이 다려진 교복 깃,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는 헤어스타일. 그러나 그가 한 손에 쥐고 있는 국회의원 문양이 새겨진 만년필을 쥔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재가 묻은 흰색 손수건이 놓여 있었다. 대강당 지하 방송실의 메인 믹서 콘솔 뒤편에서 그가 직접 채집한, 아주 미세한 수제 납땜의 그을음이었다.


정우진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온화한 가면 뒤에 숨겨진 소시오패스적인 싸늘한 눈빛이 책상 앞에 굳은 자세로 서 있는 학생회 서기 이성민을 향했다.


“이성민.”


정우진의 목소리는 나지막했고, 오히려 그래서 더 위협적이었다.


“네, 회장님.”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학생회 수첩을 꼭 쥔 이성민이 고개를 숙였다. 이성민은 송민우 같은 무식한 폭력배나 한지훈처럼 얄팍한 선동가와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었다. 철두철미하고 냉혹한 분석력으로 정우진의 가장 충직한 사냥개 역할을 수행해 온 서기였다.


“디지털 해킹이 아니야.”


정우진이 책상 위의 손수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외부에서 학교 서버망을 뚫은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유성민이 밤새 방화벽을 점검했지만 허사였지. 범인은 내부인이다. 그것도 아주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메인 콘솔의 회로를 직접 자르고 우회 무선 칩을 납땜해 넣은 놈이야. 우리 학교에서 인두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거나, 먼지 묻은 전선과 기계를 만지는 데 거리낌이 없는 부류를 찾아.”


이성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즉각 자신의 마스터 태블릿을 켜며 대답했다.


“기계 공작이나 물리적 회로 개조가 가능한 학생들의 명단을 이미 추출하고 있었습니다. 과학 동아리와 로봇 제작부 부원들, 그리고 가내 수공업이나 기술직 부모를 둔 학생들의 배경 조사를 대조 중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성민이 태블릿 화면을 정우진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구관 도서관의 평면도와 최근 2주간의 야간 출입 대장 로그가 띄워져 있었다.


“방송실로 통하는 지하 대피로와 연결된 구관 도서관 주변에서 최근 수상한 전파 간섭과 야간 잔류 흔적이 포착되었습니다. CCTV가 닿지 않는 완벽한 사각지대죠. 누군가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장비를 조립하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정우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위선적인 미소였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죽어 있었다.


“구관이라…… 쥐새끼가 숨기에 아주 적절한 어둠이군. 이성민, 지금 즉시 구관 도서관의 수기 출입 대장과 최근 야간 잔류 인원들의 알리바이를 정밀 분석해. 한지훈처럼 요란하게 움직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놈의 숨통을 꽉 쥐어라.”


“알겠습니다. 오늘 안으로 꼬리를 잡아내겠습니다.”


이성민이 경례를 하듯 고개를 숙인 뒤, 소리 없이 정독실을 빠져나갔다.


***


오후 4시 30분. 방과 후의 구관 도서관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적막했다. 낡은 목조 서가 사이로 먼지 섞인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쬐고 있었다.


박도현은 교복 소매에 감색 도서부 완장을 단단히 고정해 찬 채, 반납된 도서들을 카트에 정리해 담고 있었다. 그의 손끝은 아버지가 남겨준 은색 줄자를 만지작거리며 일정하게 움직였다. 맥박수는 분당 68회. 완벽한 평정심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머릿속 ‘기억의 도서관’은 풀가동 중이었다. 아침 조례 시간의 폭로 성공은 기득권 카르텔에 치명타를 입혔지만, 동시에 정우진이라는 거대한 포식자의 경계심을 완전히 깨워버렸다. 도현은 방송실 콘솔에 무선 칩을 납땜할 때 생긴 아주 미세한 그을음이 정우진의 손에 들어갔을 것임을 이미 계산하고 있었다.


‘정우진은 영리해. 자신이 당한 방식이 디지털 해킹이 아닌 아날로그 물리 우회임을 간파했을 터다. 그렇다면 수사망은 자연스럽게 기계 공작 실력자, 그리고 야간에 구관 도서관을 드나든 인물들로 좁혀지겠지.’


도현은 안경테를 살짝 치켜올렸다. 이미 어젯밤, 그는 세탁소 지하실 아지트에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알리바이 방어막을 짜두었다.


구관 도서관의 야간 출입 대장은 아날로그 수기 장부였다. 도현은 도서부장 이민우와 국가근로장학생 김민지의 필적을 며칠 동안 정밀하게 분석해 연습했었다. 그리고 야간에 자신이 도서관 지하실에서 작업했던 시간대의 출입 대장 서명을, 마치 이민우와 김민지가 공동으로 도서 분류 작업을 한 것처럼 정교하게 위조해 채워 넣었다. 필적의 각도, 누르는 필압의 강도까지 완벽하게 복제한 위조 서명이었다.


터벅, 터벅, 터벅.


고요한 도서관의 정적을 깨고, 차갑고 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다가왔다.


도현은 ‘신체 지문 식별(Body Print ID)’ 기술을 가동했다. 발소리의 BPM은 82. 좌우 어깨의 기울기가 완벽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으며, 걸을 때 척추가 단 1도도 흐트러지지 않는 정교한 걸음걸이. 학생회 서기 이성민이었다.


이성민은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자습서를 보고 있던 근로학생 김민지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마스터 태블릿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얼음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학생회에서 나왔습니다. 최근 2주간의 구관 도서관 야간 출입 대장 실물 장부를 확인해야겠습니다.”


김민지는 이성민이 뿜어내는 고압적인 학생회 서기의 아우라에 겁을 먹고 어깨를 떨었다.


“아, 네…… 잠시만요.”


민지가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가죽 바인더로 된 수기 대장을 꺼내 이성민에게 건넸다. 이성민은 장부를 받자마자 데스크 위에 펼쳐놓고, 자신의 태블릿 화면에 띄워진 본관 야간자율학습 탈출 대장 로그와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얇은 입술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도현은 서가 사이에서 책 수레를 밀며 자연스럽게 그 광경을 시야의 사각지대에 담았다.


이성민은 매우 집요했다. 단순히 이름만 훑어보는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서명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서명된 잉크의 번짐 정도와 필적의 일관성을 정밀하게 검사하고 있었다.


“김민지 학생.”


이성민이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하게 물었다.


“여기 지난주 수요일 야간 대장을 보면, 밤 8시 40분에 네 서명이 적혀 있네. 그런데 본관 야간자율학습 탈출 대장에는 네가 밤 9시 10분에 기숙사 통행증을 끊고 나간 거로 되어 있어. 30분의 공백이 발생하는데, 이 시간에 넌 어디 있었지?”


“어…… 그게……”


민지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사실 그 시간은 도현이 민지의 필적을 위조해 적어둔 시간대였다. 민지는 도현의 은밀한 활동을 묵인해 주고 있었기에, 이성민의 날카로운 추궁에 숨이 막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마에 미세한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성민의 눈빛이 매섭게 좁혀졌다. 사냥개가 먹잇감의 피 냄새를 맡은 순간이었다.


“답변이 늦네. 도서관 수기 대장이 조작되었거나, 누군가의 알리바이를 허위로 증명해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이성민의 고압적인 다그침에 민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민지가 공포에 질려 도현의 야간 잔류 사실을 털어놓을 위기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도현은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결코 똑똑하게 나서서는 안 되었다. 적이 지능적인 사냥개일수록, 자신을 철저히 ‘무가치하고 덜렁대는 바보’로 인지하게 만들어야 했다.


도현은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내딛으며 책 수레를 이성민의 뒤편 2미터 거리로 밀고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철저히 바닥 15도 각도에 고정되어 있었고, 어깨는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


‘이성민의 시선 각도 45도 우측 하단. 지금이다.’


도현은 책 수레 바퀴 밑에 떨어져 있던 미세한 지우개 가루를 디디는 척하며, 발목을 크게 꺾었다. 동시에 수레 앞부분을 서가 모서리에 일부러 강하게 부딪쳤다.


쾅! 와르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레 위에 쌓여 있던 수십 권의 두껍고 먼지 낀 백과사전들이 바닥으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사방으로 자욱한 먼지가 일었고, 무거운 책들이 이성민의 구두 바로 앞까지 굴러갔다.


“앗! 어, 어떡해……!”


도현은 안경이 비뚤어진 채 허둥지둥 바닥에 엎어졌다. 그는 완전히 패닉에 빠진 찌질한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연출하며, 바닥에 흩어진 책들을 양손으로 허겁지겁 쓸어 담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나빠서 앞을 잘 못 보고…… 서기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머리가 나빠서 자꾸 실수를 하네요. 다치신 데는 없으신가요?”


도현은 비굴할 정도로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이성민의 구두 밑바닥을 닦아내듯 고개를 조아렸다. 이것이 바로 ‘칭찬을 통한 무장해제(Flattery Disarmament)’ 기술이었다. 학생회의 거대한 권위와 이성민이라는 인물의 지위를 과장되게 치켜세우며,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굴욕적인 연기.


이성민은 갑작스러운 소음과 먼지 폭탄에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깨끗한 가죽 구두에 도서관의 낡은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이성민은 바닥에서 벌벌 떨며 책을 줍고 있는 도현을 내려다보았다.


비뚤어진 안경, 흙먼지가 묻은 교복 무릎, 겁에 질려 잘게 떨리는 손가락.


이성민의 머릿속 연산 장치가 작동했다.


‘정우진 회장의 권위를 흔들고 대강당 방송실을 장악한 천재 설계자가…… 설마 이런 한심하고 멍청한 도서관 벌레새끼일 리가 없다.’


지능적인 사냥개일수록 자신의 논리적 완벽성을 맹신하며, ‘천재 적수는 자신만큼 우아하고 똑똑할 것’이라는 치명적인 인지적 편견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었다. 도현이 보여준 극단적인 찌질함과 비굴함은 이성민의 정밀한 의심 회로를 단숨에 마비시켜 버렸다.


“비켜.”


이성민이 차가운 목소리로 뱉으며 도현을 피해 안내 데스크의 장부를 쾅 덮었다. 도현의 돌발 소동 덕분에 김민지를 향했던 날카로운 추궁의 흐름은 완벽하게 끊어져 버렸다.


“장부는 확인했으니 가져가겠다. 앞으로 출입 대장 관리에 공백이 발생하면 도서부 전체에 벌점을 부과하겠어.”


이성민은 태블릿을 챙겨 들고 도서관 출구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이성민의 의심을 일시적으로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성민은 출입문 고리를 잡기 직전,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책을 정리하고 있는 도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이 도현의 왼쪽 상완에 채워진, 빛바랜 감색 직물의 낡은 도서부 완장에 꽂혔다.


고요한 도서관 내부에 이성민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요즘 야간 정리를 참 열심히 하네, 박도현?”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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