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자르기
성화고등학교의 아침은 유난히 차갑고 무거웠다. 송민우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은 전교생 사이에 들불처럼 번졌지만, 기득권의 침묵은 그보다 훨씬 단단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아졌고, 교무실 주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도현은 감색 도서부 완장을 고쳐 차며 조용히 본관 복도를 걸었다. 시선은 바닥 15도 각도. 어깨는 약간 구부정하게 굽힌 채였다. ‘투명인간의 원칙(Invisible Rule)’은 오늘도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이 복도를 메우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도서부원 박도현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행정동 1층 교감실 앞을 지나칠 때, 도현의 예리한 청각이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고함을 포착했다.
“경찰차가 감히 교내까지 들어오도록 방조해? 오윤식 씨, 당신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교감 임용태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이내 문이 거칠게 열리며 수석 경비원 오윤식 아저씨가 걸어 나왔다. 15년간 성화고를 지켜온 베테랑의 넓은 어깨가 오늘따라 쓸쓸하게 처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경위서 및 시말서’라고 적힌 흰색 종이 뭉치가 쥐어져 있었다. 임용태는 문가에 대머리를 비죽이 내밀며 오윤식의 등 뒤에 대고 혀를 찼다.
“재단 이사회에서 알면 당신 목이야! 당장 시말서 작성해서 행정실로 제출해!”
쿵, 하고 교감실 문이 신경질적으로 닫혔다. 오윤식은 깊은 한숨을 쉬며 관절염이 도진 오른쪽 무릎을 쓸어내렸다. 도현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머니 속 은색 줄자를 꽉 쥐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기득권의 비열한 행태에 대한 차가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오윤식 아저씨는 도현이 야간에 기밀을 수집할 수 있도록 묵묵히 순찰 시간을 늦춰주었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런 그가 송민우의 체포를 방조했다는 이유만으로 꼭두각시 교감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매점 도우미 이필성이 반납용 빵 상자 수레를 밀며 도현의 옆을 스쳐 지나갔. 필성은 고개를 숙인 채, 복도 벽면의 이질적인 얼룩을 닦는 척하며 도현에게만 들릴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현아, 방금 정문 주차장에 그 검은색 뚱뚱한 세단이 섰어. 송민우 아버지 백승철이야. 교감이랑 행정실장을 데리고 행정동 3층 VIP 컨퍼런스룸으로 올라가더군. 얼굴이 아주 흙빛이었어.”
필성의 제보가 끝나자마자 도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림자 정보망의 안테나가 작동한 것이다.
백승철. 송민우의 아버지이자 지역 유지인 그가 움직였다는 것은, 송민우의 폭행 및 시험지 유출 사건을 사법적 처벌 이전에 합법적인 돈과 인맥으로 무마하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한지훈 부회장 역시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수사망을 피하고자 백승철의 권력 뒤로 숨으려 할 터였다. 이대로 두면 송민우는 ‘가벼운 훈방 조치’로 풀려나고, 준혁의 전치 3주 상처와 민우의 억울함은 다시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꼬리를 자르게 둘 순 없다. 몸통까지 통째로 끌어내야 해.’
도현은 즉각 행정동 3층으로 향했다. VIP 컨퍼런스룸은 유력 자산가와 정계 인물들로 구성된 PTA 학부모회가 학교 행정실장을 불러놓고 외압을 행사하는 호화 밀실이자 최고 보안 구역이었다. 일반 학생은 물론 교사들의 출입조차 철저히 통제되는 금단의 땅.
도현은 우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무선 도청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하려 했다. 하지만 컨퍼런스룸이 위치한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스마트폰 화면 상단의 안테나 표시가 일제히 엑스(X)자로 변했다.
‘전파 차단기(Jammer)가 작동하고 있군.’
행정동 3층은 불법적인 거래가 오가는 장소답게 상시 전파 차단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 최신 디지털 장비나 무선 해킹 기술은 이곳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세탁소 다락방에서 또 하나의 장비를 챙겨왔었다.
도현은 구석 계단참으로 내려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쪽에서 나온 것은 아버지가 살아생전 세탁소에서 사용하던 아주 오래된 구형 일제 아날로그 태엽식 녹음기였다. 디지털 전파를 전혀 송출하지 않고, 오직 내부의 기계식 태엽과 마이크로 카세트테이프의 마찰만으로 구동되는 순수 아날로그 장치. 이 장비는 전파 차단기의 방해 주파수 대역을 완벽하게 무력화할 수 있었다.
도현은 이필성에게 무전 신호를 보냈다.
[PDH: 필성 형, 매점 배달용 대형 카트 하나만 3층 컨퍼런스룸 앞으로 올려줘. 위장막이 필요해.]
[LPS: 알았어. 3분 뒤에 도착해.]
정확히 3분 뒤, 이필성이 음료수 박스가 가득 쌓인 대형 카트를 밀고 3층 복도로 진입했다. 도현은 도서부 완장을 찬 채 자연스럽게 카트 뒤편에 붙어 복도 바닥의 먼지를 쓰는 척하며 컨퍼런스룸 문 앞으로 접근했다.
복도 천장의 CCTV 카메라 렌즈가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찰나의 3초 공백. 도현은 ‘CCTV 사각지대 보행’ 수칙을 가동하여 카트 바닥 틈새에 부착해 두었던 지향성 집음 마이크가 연결된 아날로그 녹음기를 컨퍼런스룸 문짝 하단의 환기 슬릿 틈새로 신속하게 밀어 넣었다. 금속 마찰음은 전혀 나지 않았다.
녹음기의 태엽이 태엽 소리 차단용 실리콘 패드 안에서 소리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자, 두꺼운 참나무 문 너머로 백승철의 거만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도현의 고막을 때렸다.
[“임 교감. 내 아들 민우가 경찰서 유치장에 앉아 있는 꼴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건가? 내신 시험지 유출이야 한지훈 그 영악한 놈이 시켜서 한 짓이고, 강준혁 그 험상궂은 놈이랑은 단순 쌍방 과실로 생긴 마찰 아닙니까?”]
뒤이어 임용태 교감의 비굴하게 굽실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고, 백 회장님. 당연히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이번에 전교생 앞에서 음성이 송출되는 바람에…… 교육청 장학사 장정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당장 손을 대기가 쉽지 않습니다.”]
탁, 하고 백승철이 가죽 소파 팔걸이를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가 녹음기 너머로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장학사들이 무슨 상관이야! 내가 오늘 아침에 서대문 경찰서장하고 직접 통화했어. 단순 10대들의 우발적 다툼으로 내사 종결 처리하라고 지시해 뒀으니까, 학교 측에서는 학폭위 기록 자체를 완전히 세탁해서 제출하란 말입니다. 임 교감 승진 서약서에 서명한 재단 이사장의 직인이 누구 손에서 나온 건지 잊은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어찌 잊겠습니까. 행정실장에게 즉각 지시해서 강준혁의 가해 사실을 추가로 조작해 쌍방 폭행으로 생기부 기록을 맞추겠습니다. 송민우 학생의 기록은 깨끗하게 무혐의로 말소 처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돈과 인맥으로 법을 짓밟고, 피해자를 순식간에 가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추악한 밀실 거래의 전말이었다. 도현은 감정 격리 규정을 발동해 맥박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이들의 뻔뻔함에 턱관절을 단단히 맞물렸다. 기득권의 오만함은 언제나 자신들이 설계한 성벽 안에서만 안전하다고 믿는 맹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 성벽 밑바닥의 흙을 파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것을.
철컥, 소리와 함께 컨퍼런스룸 내부의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회의가 종료되려 하고 있었다.
도현은 즉각 이필성에게 신호를 보냈다. 필성이 카트를 문 앞으로 바짝 붙이는 사이, 도현은 문틈 사이에 끼워져 있던 아날로그 녹음기를 0.5초 만에 낚아채 카트 밑 이중 수거함에 은밀히 숨겼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도서부 완장을 차고 복도 기둥 뒤 사각지대로 빠져나갔다.
문이 열리며 백승철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고, 임용태 교감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그를 배웅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놓여 있던 아날로그 덫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도현은 방과 후, 세탁소 지하실 아지트로 복귀하여 아날로그 마이크로 카테스 테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지민이 구축해 둔 무손실 오디오 변환 장치를 통해 녹음본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여 물리적인 USB에 담았다.
이 파괴적인 폭탄을 터뜨릴 최적의 우회 통로는 성화고 내부에서 유일하게 정의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학생회의 압박에 숨죽이고 있던 신문부 부장 최강우였다.
늦은 저녁, 전교생이 야간 자율학습에 열중해 복도가 고요해진 시간. 도현은 ‘CCTV 사각지대 보행’ 수칙을 활용해 텅 빈 신문부실 내부로 소리 없이 침투했다. 그리고 최강우의 낡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취재 수첩 바로 옆에, 아무런 표시도 없는 검은색 USB를 올려놓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복도 끝에서 최강우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신문부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 학생회의 압박으로 신문부 예산이 전액 삭감될 위기에 처해 그의 얼굴은 극도로 피로해 보였다. 강우는 가방을 내려놓으려다 자신의 책상 한가운데 놓인 낯선 USB를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섰다.
“이게 뭐지……? 누가 두고 간 건가?”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신문부실 안에는 차가운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는 침을 꿀컥 삼키며 노트북을 열고 USB를 포트에 꽂았다. 마우스 클릭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스피커 너머로 백승철과 교감 임용태의 생생한 뇌물 수수 및 학폭 기록 세탁 모의 육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단순 10대들의 우발적 다툼으로 내사 종결 처리하라고 지시해 뒀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백 회장님. 기록 자체를 완전히 세탁해서……”]
최강우의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다. 기사를 쓰면 신문부를 폐쇄하겠다는 학생회의 협박 앞에서 좌절하고 있던 젊은 언론인의 심장에, 거대한 진실의 주파수가 다이렉트로 내리꽂히는 순간이었다. 강우는 헤드폰을 귀에 고쳐 쓰며, 손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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